‘극사실주의’를 추구하는, 아이스크림 가게의 사연

아이스디어

2022.09.26

아이스크림에 진심인가요? 그렇다면 아이스크림을 고르는 나름의 기준이 있을 거예요. 종류, 브랜드, 맛, 가격, 색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 아이스크림을 선택하죠. 그런데 방콕에 가면 그동안 고려하지 못했던 선택의 기준이 생겨요. 바로 ‘디자인’이에요. 제품을 디자인하듯 아이스크림을 만드는 아이스크림 가게가 있으니까요. 


‘아이스디어’. 아이스크림과 아이디어를 합쳐서 지은 이름이에요. 디자인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그걸 아이스크림으로 구현하는 아이스크림 가게죠. ‘맛볼 수 있는 디자인’을 추구하는 거예요. 아이스크림 디자인이라고 해서 대상의 모티브만 따서 형상화한 게 아니에요. 극사실주의에 가깝게 정교한 디자인으로 승부해요. 예술작품에 가까울 정도로요. 


그래봤자 아이스크림 아니냐고요? 아마 아이스디어 아이스크림을 보고 나면 아이스크림에 대한 고정관념이 깨질 거예요. 먹기 아깝다는 생각도 들 거고요.


아이스디어 미리보기

• 아이스크림도 디자인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극사실주의로 아이스크림의 차원을 끌어올린다

 매장의 틀을 깨고 나가는 디자이너의 생각법

 이벤트에 주목하면 시즈널한 수요가 보인다




방콕에는 차가운 돈가스를 파는 매장이 있었어요. 식은 돈가스도 아니고, 말 그대로 차갑고 시원한 돈가스를요. 아무리 날씨가 더운 방콕이라지만 차가운 돈가스라니 너무한 거 아닌가 싶다가도, 한 번 경험해 보면 그 의도와 맛에 공감이 될 거예요.



ⓒIcedea


이 음식의 정체는 ‘아이스디어(Icedea)’에서 판매하는 ‘돈가스 아이스크림’. 이 아이스크림은 돈가스를 본 떠 만든 아이스크림이에요. 그런데 형태만 어설프게 흉내낸 것이 아니에요. 고기를 빵가루에 묻혀 튀겨낸 돈가스의 특성을 살리려고, 달콤한 맛의 튀긴 빵 안에 아이스크림을 넣은 메뉴죠.



ⓒIcedea


돈가스가 있는데 스테이크가 빠지면 섭섭하겠죠? 아이스디어에는 ‘스테이크 아이스크림’도 있어요.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스테이크 모양으로 만든 거예요. 초콜릿 아이스크림 위에 초콜릿 시럽을 격자 모양으로 뿌려 디테일을 살린 것은 기본, 실제 스테이크처럼 ‘미디움 레어’, ‘웰던’ 등 굽기를 선택할 수도 있어요. 미디움 레어를 선택하면 분홍빛 우유 아이스크림을 감싼 브라우니 아이스크림이 나오고, 웰던을 선택하면 헤이즐넛 초콜릿 아이스크림이 나와요. 아이스크림 하나로 표현하는 디테일과 창의력의 레벨이 남다르죠.



ⓒIcedea



미디움 레어 굽기를 선택했을 때 나오는 메뉴예요. ⓒIcedea


아이스디어의 시그니처 메뉴 역할을 했던 이 두 메뉴는 아쉽게도 더 이상 먹어볼 수 없어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매장 내 취식이 제한되면서 플레이팅이 핵심인 이 메뉴들은 자연스럽게 중단되었죠. 하지만 아쉬워하기는 일러요. 아이스디어는 여전히 아이스크림과 연관짓기 어려운 음식을 아이스크림으로 표현하며 틀을 깨는 메뉴들을 선보이고 있거든요.



아이스크림도 디자인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아이스디어는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 ‘아이스크림’과 ‘아이디어’를 합쳐 만든 이름이에요. 스스로를 아이스크림 디자이너로 부르는 프리마 차크라반두 나 아유디아(Prima Chakrabandhu Na Ayudhya, 이하 프리마)가 2012년에 ‘아이스크림 베이커리’ 컨셉을 내세우며 만든 브랜드예요.


창업 이래 쭉 자리를 지켜온 매장도 방콕 예술문화센터(Bangkok Art & Culture Center, 이하 BACC)에 위치해 있어요. BACC는 미술, 음악, 연극, 디자인 등과 관련한 전시나 공연이 펼쳐지는 공간으로, 방콕 현대 미술의 현 주소를 알 수 있는 곳이에요. 아이스디어는 이런 공간에 자리잡으면서, 매장 위치로도 아이스크림과 디자인을 결합한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한층 강화하죠.



ⓒ시티호퍼스


‘맛볼 수 있는 디자인(Design that you can taste)’


아이스디어의 컨셉이자 차별점이에요. 아이스디어는 디자인이 항상 형태를 갖추는 것도 아니고, 제품에 국한되지도 않는다고 생각해요. 미학의 영역에 속하는 디자인은 누군가의 감각을 즐겁게 하는 한 맛, 향 등 어떤 것이든 될 수 있죠. 이런 생각을 브랜드로 만든 것이 바로 아이스디어고요.


더불어 태국의 아이스크림 시장 상황을 보더라도 차별화된 가치를 만들 필요가 있었어요. 태국은 일년 내내 날씨가 덥다 보니, 아이스크림 시장이 매해 성장하고 있어요. 그만큼 시장 경쟁이 치열한 건 물론이고요. 그래서 프리마는 원래 제품 디자이너, 문구 디자이너로 일하던 자신의 경력을 살려 ‘디자인’이 강점인 아이스크림을 만들었죠.


돈가스 아이스크림, 스테이크 아이스크림 등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은 아이스디어는 이후로도 창의적인 아이스크림 디자인을 구현해 지금까지도 성업 중이에요. 또 어떤 아이스크림들을 선보였는지 하나씩 살펴 볼까요?



극사실주의로 아이스크림의 차원을 끌어올린다

아이스크림으로 돈가스와 스테이크를 만들더니, 이제는 동물, 과일, 버블티 등까지 상상력을 확장했어요. 아까워서 먹기 힘든 비주얼이지만, 호기심에 한 입 베어 물고 나면 멈추기 어려워요. 아이스디어가 디자인을 강점이자 차별화된 컨셉으로 내세우긴 하지만, 맛에 대해서도 타협하지 않거든요.


아이스디어의 스테디 셀러는 강아지와 고양이 시리즈예요. 강아지 시리즈는 달마시안, 골든 리트리버, 시베리안 허스키, 웰시코기 등 서로 다른 종류의 강아지를 실감나게 형상화했어요. 반면 고양이 시리즈는 회색 고양이를 기본으로 딸기 모자, 옥수수 모자 등 다양한 모자를 씌워 디자인을 다양화했죠.



ⓒIcedea



ⓒIcedea


귀여운 반려동물을 털 한 올 한 올 정교하게 구현한 것은 물론, 각 동물의 색과 아이스크림의 맛에 연관성이 있어 디자인이 더 설득력을 가져요. 점박이가 특징인 달마시안 아이스크림은 쿠키 앤 크림 맛, 밀크티 컬러의 골든 리트리버 아이스크림은 얼그레이 맛, 초코우유 색의 웰시코기 아이스크림은 초코우유 맛이 나는 식이에요.



골든 리트리버 아이스크림은 쫀득한 질감에 얼그레이 맛이 나요. ⓒ시티호퍼스


과일 시리즈로 가면 이런 현실감이 더 극대화돼요. 망고스틴, 망고 앤 스티키 라이스(Mango & Sticky Rice), 두리안 등 태국을 대표하는 과일들을 아이스크림으로 만들었는데, 마치 사진같은 그림인 극사실주의 그림을 보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볼게요. 망고스틴 아이스크림은 태국산 망고스틴이 듬뿍 들어간 아이스크림이에요. 껍질과 꼭지까지 아이스크림으로 표현했어요. 손잡이 스틱만 아니면 영락없는 망고스틴이죠. 또한 망고 앤 스티키 라이스는 코코넛 밀크를 부은 찹쌀밥과 망고를 같이 먹는 태국식 디저트예요. 이 아이스크림은 코코넛 아이스크림과 망고 셔벗, 그리고 쌀알 모양의 바삭한 콩을 사용해 맛과 식감을 구현했어요. 뒷면은 칼집을 낸 망고처럼 만들어 디테일을 살렸죠.



망고스틴 아이스크림이에요. ⓒIcedea



망고 앤 스티키 라이스 아이스크림이에요. ⓒ시티호퍼스



망고 앤 스티키 라이스 아이스크림 뒷면은 이렇게 자른 망고처럼 생겼어요. ⓒ시티호퍼스


과일 시리즈 중에서 효자 상품은 두리안 아이스크림이에요. 이 아이스크림은 중국, 홍콩, 대만, 말레이시아 등에서 온 여행객들을 타깃해 개발한 맛이에요. 태국 두리안이 워낙 유명하다보니, 태국 여행 시 꼭 한 번 맛보고 싶은 과일 중 하나거든요. 아이스디어의 두리안 아이스크림은 뾰족한 바깥 껄질부터 노란 과육 속 둥근 씨까지 모두 아이스크림으로 표현해 그 정교함이 수준급인 데다가, 진짜 두리안 맛을 내기 위해 신선한 두리안을 사용해요.



두리안 아이스크림이에요. ⓒIcedea


다른 과일 시리즈들의 가격이 89~129바트 정도인데 반해, 두리안 아이스크림만 가격이 1개에 239바트(약 9천 원)로 2~2.5배에 달해요. 그럼에도 관광객뿐만 아니라 지역 주민들한테도 인기예요. 덕분에 두리안 아이스크림을 개발한 이후 매출이 약 5배나 성장했다고 하고요.



매장의 틀을 깨고 나가는 디자이너의 생각법

원재료와 레시피에 심혈을 기울이니 눈에 띄는 디자인만큼이나 맛도 뛰어나요. 그래서 아이스크림 브랜드같지만, 아이스디어는 스스로를 ‘아이스크림 브랜드’로 정의하지 않아요. 디자인을 표현하는 수단이 아이스크림이고, 디자인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아이스크림을 진심을 다해 연구하는 것이죠.


‘우리는 아이스크림 디자이너다.(We are ice cream designers)’


아이스디어가 스스로를 표현하는 말처럼 아이스디어는 ‘디자이너’예요. 즉 디자인 역량이 핵심인 브랜드죠. 그래서 아이스디어는 자체적으로 아이스크림 디자인을 기획하는 일뿐만 아니라 외부 기업들의 의뢰를 받아 아이스크림을 디자인하는 일을 하기도 해요. 고객사가 원하는 컨셉에 따라 디자인과 레시피를 개발하고, 고객사가 독점적으로 아이스크림을 판매하거나 이벤트에 사용할 수 있도록 아이스크림을 생산하는 거예요.


이런 방식으로 아이스크림 매장의 틀을 깨며 성장세를 이어갔는데, 코로나19 팬데믹이 엄습했어요. 아이스디어 매장의 매출이 감소한 건 물론이고, 오프라인 이벤트가 사실상 사라지면서 기업 고객 수요도 급감할 수 밖에요. 그렇다고 아이스크림이 녹는 걸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순 없었어요. 그래서 아이스디어는 또 한 번 사업 영역을 넓히죠.


코로나19 팬데믹 이전까지 아이스디어는 매장을 중심으로만 아이스크림을 판매했어요. 정교한 디자인과 좋은 식재료가 핵심이라 생산량이 한정적이었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매장 수요도, 기업 수요도 감소하니 그동안 시도하지 못했던 온라인 판매에 도전할 수 있었죠.


방콕에서는 포장을 보강해 ‘그랩푸드(GrabFood)’ 등의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배달을 시작했어요. 그리고 내친 김에 방콕 외 지역까지 확장하기로 했죠. 콜드 체인 시스템을 갖춘 ‘인터 익스프레스(Inter Express)’와 계약을 맺어 지방에서도 아이스디어 아이스크림을 맛볼 수 있게 한 거예요.


코로나19 팬데믹은 오프라인 매장을 중심으로 영업을 해 오던 아이스디어에게 분명 위기였어요. 하지만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온라인 시장을 개척했고, 덕분에 사업 영역은 더 커지고 지역적으로도 확장할 수 있었죠. 이처럼 비즈니스에서 위기는 실패의 계기가 아니라 성공할 기회가 될 수도 있어요.



이벤트에 주목하면 시즈널한 수요가 보인다

고유하고 정교한 디자인은 아이스디어의 차별화된 컨셉이고, 수준급의 맛은 아이스디어를 자꾸만 찾게 만드는 이유예요. 탄탄한 기본기를 갖고 있지만, 아이스디어의 창업자 프리마는 항상 부지런히 캠페인을 만들어 고객을 끌어 들이라고 말해요. 고객의 니즈보다 한 발 앞서 빠르게 대응해 시즈널한 수요를 놓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죠.


아이스디어는 무언가를 기념할 수 있는 이벤트가 있을 때를 놓치지 않고 한정판을 출시해요. 발렌타인 데이에는 장미 꽃다발과 장미 화분 모양의 아이스크림을, 어머니의 날에는 엄마의 사진을 프린팅할 수 있는 자스민 아이스크림을 출시하는 식이에요. 또한 대만의 ‘버블티 데이(National Bubble Tea Day)’에는 버블티 모양을 한 아이스크림을 선보이기도 했는데, 버블티 아이스크림은 반응이 좋아 상시 아이템으로 계속 판매되고 있어요.



ⓒIcedea



ⓒIcedea



ⓒ시티호퍼스


‘유니크한 디자인’이란 상대적인 것이라 시간이 지나면 평범하게 보일 수 있어요. 디자이너인 프리마가 이런 사실을 모를 리 없죠. 그렇기 때문에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늘 고객의 새로운 니즈를 찾아 맞추려고 노력해요. 덕분에 경쟁이 치열한 태국의 아이스크림 시장 속에서도, 한 때의 화제에 그치지 않고 존재감을 유지할 수 있는 거예요.


다음엔 또 어떤 디자인의 아이스크림이 나올까요? 맛이 아니라 디자인이 궁금해지다니. 아이스디어의 말처럼 아이스디어는 아이스크림 가게가 아니라 아이스크림 디자이너가 맞나 봅니다.





Reference

아이스디어 페이스북

 Top Koaysomboon, Kimpton hotel has just launched new selection of oh-so-cute dog- and cat-shaped ice cream, Timeout

 Petchanet Pratruangkrai, The Creative Ice-Cream Brand IceDEA, Established Four Years Ago, Is Seeing Sales Take Off After Introducing A New Product With The Taste And Appearance Of A Durian., The Nation Thailand

 IceDEA ตำนานหวานเย็นเด็กถาปัด ดีไซน์เก๋ไก๋ รสอร่อยลงตั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