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가 복제가 아니라 자가 진화다, ‘아트 리테일’ 제국의 남다른 보법

K11

2024.12.24





면적 대비 가장 많은 백화점이 있는 나라는 어디일까요? 홍콩과 싱가포르가 늘 1,2위를 다투는데요. 국토 면적은 작은데 인구 밀도는 높은 상황에다가 소비 중심의 경제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에요.


특히 글로벌 수준의 쇼핑의 메카로 불리는 홍콩에는 소고, 하비 니콜스, 이온 등 외국계 백화점들이 많이 진출해 있어요. 그 틈에 남다른 존재감으로 자리 잡고 있는 홍콩의 백화점 브랜드가 있는데요. 바로 ‘K11’이에요. 지점에 따라 ‘K11 뮤제아’, ‘K11 아트 몰’ 등 이름이 달라져요.


K11의 가장 큰 특징은 ‘문화’와 ‘예술’을 리테일에 접목시켰다는 점이에요. 단순히 백화점 안에 예술 작품을 전시하는 것을 넘어 스스로의 영역을 확장하며 예술과 삶 사이의 간격을 좁혀 나가고 있죠. 그렇다면 K11은 리테일 격전지에서 ‘아트 리테일’, 혹은 ‘리테일테인먼트’로 어떻게 차별화하고 있을까요?


K11 미리보기

 타깃에 따라 따르게, ‘아트 리테일’ 제국을 세우다

 리테일 브랜드가 아트로 일상에 가까이 다가가는 법

 지상길, 바닷길, 하늘길이 열리는 곳을 주목하다

 성장과 역성장이 모두 필요한 이유




언제부터 백화점과 갤러리가 가까워진 걸까요? 백화점에 최초로 미술관이 생긴 사례는 20세기 초로 거슬러 올라가요. 1907년, 프랑스 파리의 르 봉 마르셰(Le Bon Marché) 백화점에서 미술관과 같은 전시 공간을 마련한 것이 시초라고 알려져 있어요. 같은 해, 일본 미츠코시 백화점의 오사카 지점에는 ‘신미술부’가 신설되었어요. 미술품의 상설 전시관을 백화점 안에 설치하며 고객 경험을 차별화하고, 백화점을 문화적 명소로 포지셔닝했죠.


이후 백화점과 예술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예술이 백화점으로 사람들을 모으기도 하고, 백화점이 예술가들의 등용문이 되기도 했죠. 여기에는 단순히 백화점에 아름다운 미술품을 전시하면, 사람들이 미술품을 감상하러 와서 백화점 매출이 오를 것이라는 경제학 관점만 있는 게 아니에요.


백화점과 예술의 상관관계는 ‘신경미학(Neuroesthetics)’의 관점에서도 과학적 근거를 가지는데요. 신경미학이란, 예술에 대해 인간이 느끼는 미적 경험을 자연과학적 방법론으로 접근하는 학문이에요. 실제로 뇌가 예술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탐구하는 비교적 새로운 과학 분야로, ‘우리가 예술에 감동 받을 때 우리의 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연구하죠.


이런 신경미학 분야의 연구에 따르면, 우리가 예술을 감상할 때 뇌의 여러 영역이 활성화된다고 해요. 예를 들어 그림을 보면 시각 정보를 처리하는 시각 피질이 활성화되고, 그림의 주제가 친숙하다면 관련된 기억을 떠올리기도 해요. 뿐만 아니라 우리가 어떤 작품을 아름답거나, 좋다고 느낄 때 뇌의 보상계 시스템이 활성화되어요. ‘기분 좋은’ 신경 전달 물질인 도파민이 방출되는 거죠.


감정과 생각을 자극하는 예술은, 백화점에서의 경험과 심리를 더 긍정적으로 바꾸어 놓아요. 고객이 백화점이라는 공간을 인식하고, 그 곳에서 발견한 브랜드들과 스스로를 연결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치는 거죠. 이처럼 백화점이 앞다투어 예술과 관련한 경험들을 공간으로 들이는 데에는 심리학적 역학이 존재해요.


이처럼 예술과 리테일의 만남은 과학적으로 증명된 만큼, 오랫 동안 많은 백화점들이 시도해 왔어요. 홍콩의 ‘K11’도 그중 하나죠. K11을 이끄는 애드리안 쳉(Adrian Cheng)은 사람들이 ‘콜렉터가 본업, 백화점을 부업’이라고 말할 정도로 예술에 대한 열정이 대단한데요. 그렇다면 예술에 대한 남다른 관심을 바탕으로 한 K11은 홍콩의 리테일 씬(Scene)을 어떻게 예술적으로 물들이고 있을까요?



타깃에 따라 따르게, ‘아트 리테일’ 제국을 세우다


K11은 2008년에 홍콩 침사추이(Tsim Sha Tsui)에서 시작해 현재 침사추이에만 2개 지점을 운영 중이에요. 중국 본토에도 진출해 있고요. K11의 컨셉은 ‘문화적 상업(Cultural Commerce)’으로, 예술, 사람, 자연 이 3가지 요소를 융합하고 있어요. 쉽게 말해 예술과 리테일을 결합하고, 지속 가능성을 고려한다는 거죠.


그런데 침사추이에 있는 2개의 K11의 이름이 각각 달라요. 하나는 ‘K11 뮤제아(K11 MUSEA)’이고, 또 하나는 ‘K11 아트 몰(K11 Art Mall)’인데요. 같은 브랜드 아래 이름이 다른 건, 구현 방식이나 타깃 고객이 달라서예요.


먼저 K11의 가장 최근작이자 플래그십인 K11 뮤제아를 볼게요. K11 뮤제아는 빅토리아 항구(Victoria Harbour)에 위치해 있어요. 바다와 인접해 있어 건너편 스카이라인을 감상하기에도 좋은 자리예요. 2019년 문을 연 K11 뮤제아는 ‘문화의 실리콘밸리(Silicon Valley of Culture)’를 지향하면서 럭셔리하고, 몰입감 높은 쇼핑 경험을 구현해요.


ⓒFrancis Chen, Vacuum Workshop


ⓒ시티호퍼스


ⓒ시티호퍼스


K11 뮤제아라는 이름도 영감의 원천이 되는 ‘뮤즈(Muse)’라는 단어와 예술이 모여 있는 공간인 ‘뮤지엄(Museum)’에서 따왔어요. 소비를 하는 쇼핑몰을 넘어 예술, 문화 등으로 고객에게 영감을 주는 장소가 되고자 하는 목표를 반영했죠. 이 공간을 구현하기 위해 무려 100여 명의 건축가, 디자이너, 예술가들이 참여했어요.


K11 뮤제아는 하이엔드 쇼핑객들을 타깃으로 하기 때문에 각종 명품 브랜드들이 입점해 있는 것은 기본이에요. 동시에 예술에 조예가 깊은 고객들을 타깃해 건물 전체를 하나의 예술 작품처럼 디자인했는데요. 매장 내 곳곳에 비치된 아트 피스들뿐만 아니라, 에스컬레이터, 팝업 공간, 매장 내 조명, 심지어는 엘리베이터 버튼까지 예술 작품이에요.


엘리베이터 버튼 ⓒ시티호퍼스


ⓒ시티호퍼스


ⓒ시티호퍼스


ⓒ시티호퍼스


그중 K11 뮤제아에 들어서자마자 마주할 수 있는 공간인 ‘오페라 시어터(Opera Theatre)’는 이곳의 아이콘이에요. 약 1,800개의 수공예 크리스털 조명으로 장식한 오페라 시어터는 우주와 은하를 상징하는데요. 공간 중앙의 커다란 구체, ‘골드 볼(Gold Ball)’은 창의성을 발원지를 뜻하며, 골드 볼 내부는 팝업 스토어 공간으로 운영되고 있어요. 매장 공간조차 아트 피스로 구현한 거예요.


ⓒ시티호퍼스


ⓒK11 MUSEA


K11 뮤제아에서는 하드웨어를 예술적으로 디자인한 것을 넘어, 쇼핑객들이 이 아트 피스들을 충분히 감상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투어 프로그램을 제공해요. 예술 투어, 건축 투어, 뮤즈 투어 프로그램 등을 자체적으로 준비해 두었죠.


여기에 정기적인 이벤트로도 예술 허브로서의 입지를 단단히 하는데요. 매해 여는 ‘아트 카니발(Art Karnival)’이 대표적이에요. 이 기간에는 K11 뮤제아를 미술관처럼 활용해 홍콩을 포함한 전 세계 아티스트들의 창의적인 예술품들을 전시해요. 2023년에는 3월 말부터 5월 중순까지 아트 카니발을 진행했는데, 약 160여 개의 미술품들이 K11 뮤제아를 수놓았어요. 기간 한정 팝업, 공연, 예술 상품, 가이드 투어, 예술을 테마로 한 미식 요리 등도 준비되었고요.


2021년부터는  ‘아시아의  멧 갈라*’라고 불리기도 하는 패션 및 문화 행사인 ‘K11 나이트(K11 night)’가 추가되어 미술뿐만 아니라 패션으로도 영역을 넓혔어요. 전 세계 스타들이 이 밤을 위해 홍콩에 모이고, 다양한 패션을 선보이는 기념 행사로서 자리 잡았죠. 이처럼 K11 뮤제아는 대중적인 문화 예술보다 하이엔드, 럭셔리 백화점으로서 그에 걸맞는 예술 및 행사를 선보여요.


*멧 갈라: 공식적으로 코스튬 인스티튜트 베네핏(Costume Institute Benefit)이라고 불리며, 맨해튼에 위치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코스튬 인스티튜트를 위한 연례 오트쿠튀르 자선 행사예요.




이에 반해 K11의 시작점으로, 2009년에 개장한 ‘K11 아트 몰’은 홍콩 지하철인 MTR 침사추이역 바로 옆에 위치해 있어요. 위치부터 대중교통 접근성을 고려해 둥지를 틀었죠. 입점 브랜드들도 럭셔리 브랜드들보다는 미드 레인지(Mid-range) 가격대의 스트리트 패션이나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들이 주로 포진해 있어요. 다이닝도 미쉐린 스타 레스토랑, 파인 다이닝 등 보다는 캐주얼한 음식점들이 눈에 띄고요.


ⓒK11


K11 아트몰에서도 예술 작품들을 찾아볼 수 있는데요. 럭셔리한 예술보다는 스트리트 아트, 로컬 문화, 컨템포러리 아트 등과 같이 보다 젊고 트렌디한 고객들이 반응할 만한 문화 요소들을 갖추고 있어요. 비정기적으로 개최되는 이벤트들도 대규모의 하이엔드 행사들보다는 소규모의 토크쇼, 음악 공연 등이 주를 이루죠. 크리에이티브 산업 종사자들과의 토크인 ‘살롱 11(Salon 11)’, 인디 밴드 음악 공연인 ‘뮤직11(MusiK11), 인터랙티브 영화 상영 이벤트인 ‘무비11(Movie11)’ 등 젊은 층을 타깃한 문화 이벤트들이 대표적이에요.


ⓒK11


ⓒK11


이처럼 K11 예술과 리테일을 결합한다는 컨셉 하에서도 타깃 고객에 따라 이름, 위치,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를 달리 구성해 백화점을 운영 중이에요. 타깃 고객을 분류하니, K11이 양성하는 예술의 폭이 더 넓고, 깊어질 수 있죠.



리테일 브랜드가 아트로 일상에 가까이 다가가는 법


K11은 리테일에 예술을 더하는 것으로 시작했어요. 하지만 정체성을 리테일에만 한정하진 않아요. 예술의 가치는 리테일에서만 발휘되는 것이 아니니까요. K11은 소비하는 공간을 넘어 일하는 공간, 머무는 공간, 심지어 사는 공간까지 침투하죠. 쇼핑하면서 뿐만 아니라 더 넓은 삶의 영역에서 예술에 영감을 받을 수 있도록 사업을 확장하는 거예요.


2017년, K11은 K11 뮤제아 바로 옆에 ‘K11 아틀리에(K11 Atelier)’라는 공유 오피스의 문을 열었어요. K11 아틀리에는 현재 홍콩에서는 3개 지점을 운영하고 있는데요. ‘수직적 창의 도시(Vertical Creative City)’ 컨셉을 도입해 사무 공간의 디자인, 목적, 문화를 변화시켜요. ‘창의 도시’란, 창의성을 도시 발전의 전략적 요소로 인정하며, 시민들이 창의성을 기를 수 있는 장소, 경험, 기회 등을 제공하는 도시를 의미하는데요. K11 아틀리에는 이런 창의 도시 컨셉을 사무 공간 안에 구현했어요.


K11 아틀리에 빅토리아 독사이드 지점 ⓒNew World Development


ⓒNew World Development


우선 K11 아틀리에는 위치, 건축, 편의시설은 기본, 예술품, 인체공학적으로 디자인된 디자이너 가구 등으로 공간의 격을 높였어요. K11 아틀리에 빅토리아 독사이드 지점은 K11 뮤제아와 거의 연결되다시피 디자인되어 있어 K11 뮤제아의 인프라까지 누릴 수 있죠. 그뿐 아니라 요가, 필라테스 등 자체적인 웰니스 프로그램을 제공해 입주 회원들의 라이프스타일을 가꿔요.


ⓒNew World Development


ⓒNew World Development


ⓒNew World Development


K11 아틀리에는 입주사들에게 영감을 주기 위한 목적으로 공간 디자인을 했어요. 실용성이나 가성비를 중시하고, 미니멀하고 기능적인 디자인에 중점을 둔 기존 공유 오피스들과 차별화되는 지점이죠. 덕분에 K11 아틀리에에는 비용 효율적인 근무 환경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보다는 ‘영감’이 필요한 사람들이 모여요. 럭셔리, 예술, 섬세한 근무 환경 등의 가치를 높이 사고 이해하는 기업들이 주요 고객이에요.


K11 아틀리에에 이어 K11이 확장한 영역은 사는 영역, 즉 레지던스와 호텔이에요. 2019년, 이번에도 K11 뮤제아 바로 옆에 ‘K11 아르투스(K11 Artus)’라는 럭셔리 레지던스 겸 호텔의 문을 열었어요. ‘아르투스’라는 이름은 예술을 뜻하는 ‘아트(Art)’와 집을 뜻하는 라틴어 ‘도무스(Domus)’의 합성어로, 럭셔리하면서도 동시에 개인적인 주거 공간을 구현했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어요.




K11 아르투스는 ‘장인의 집(Artisanal home)’을 컨셉으로, 점점 사라지는 장인 정신을 홍보하는 아시아 최초의 럭셔리 레지던스예요. 개인 주택의 편안함과 럭셔리 호텔의 풀 서비스가 주는 편의성을 함께 누릴 수 있는 게 특징이죠. 호텔급 컨시어지 서비스, 수영장, 조식 서비스, 도서관, 살롱 등의 공용 서비스 및 공간은 물론, 모든 객실이 랩 어라운드 발코니를 갖추고 있어 홍콩 최고의 전망을 감상할 수 있어요. K11 아르투스는 K11 아틀리에와 마찬가지로 K11 뮤제아에 인접해 있어 입주민 혹은 투숙객들이 K11 브랜드의 인프라를 누리는 이점이 있어요.


ⓒK11 Artus


ⓒK11 Artus


K11 아르투스는 호텔 곳곳에 아트 피스들을 전시할 뿐만 아니라, 객실에도 ‘장인 정신’을 담았는데요. 객실 디자인에는 영국 인테리어 디자이너 피오나 바렛 캠벨(Fiona Barratt-Campbell), 뉴욕의 건축 및 디자인 회사 네마워크숍(Nemaworkshop), 홍콩의 인테리어 디자이너 조이스 왕(Joyce Wang) 등 전 세계적인 어워드 위닝 디자이너들이 참여해 객실마다 각기 다른 디자인 컨셉을 선보였어요.


ⓒK11 Artus


ⓒK11 Artus



지상길, 바닷길, 하늘길이 열리는 곳을 주목하다


K11 아트 몰로 시작해, K11 뮤제아, K11 아틀리에, K11 아르투스로 이어지는 K11 브랜드는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을까요? K11 브랜드의 플래그십 격인 K11 뮤제아의 시초는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요. K11 뮤제아가 위치한 ‘빅토리아 독사이드(Victoria Dockside)’라고 불리는 지역을 1970년대에 ‘뉴 월드 디벨롭먼트(New World Development)’라는 부동산 개발 회사가 매입해 본격적인 상업 단지로 개발하기 시작했어요.


뉴 월드 디벨롭먼트는 K11의 모회사이기도 한데요. 빅토리아 독사이즈 부지를 매입한 후, 10여 년에 걸쳐 쇼핑 단지, 사무실, 아파트 등이 포함된 ‘뉴 월드 센터(New World Center)’라는 복합 시설을 건설했어요. 완공 이후 뉴 월드 센터는 세계에서 가장 큰 상업 단지 중 하나였어요. 1980년대 초만 해도 이런 규모의 복합 시설이 흔치 않았기 때문에, 홍콩의 아이코닉한 상업 시설로 단박에 올라 섰죠.


이 뉴 월드 센터가 바로 K11 뮤제아의 토대예요. 2010년부터 뉴 월드 센터의 문을 닫고, K11 뮤제아, K11 아틀리에, K11 아르투스를 차례로 개발해 나가기 시작했죠. 원래는 빅토리아 항구로 불렸던 이 지역에 ‘빅토리아 독사이드’라는 새로운 이름을 지은 것도 2017년의 일이었어요. 이 개발은 2019년에 비로소 완료되어 홍콩의 새로운 랜드마크가 되었죠.


K11 뮤제아, K11 아틀리에, K11 아르투스 등이 모여 있는 빅토리아 독사이드 부지 ⓒFrancis Chen, Vacuum Workshop


K11의 둥지가 된 빅토리아 독사이드는 지금이야 야경이 멋진 관광 명소로 유명하지만, 원래는 ‘홀츠 워프(Holt’s Wharf)’라는 이름의 항구였어요. 한때 세계 주요 항구 중 하나였죠. 게다가 근처에 있는 지하철역인 ‘홍함역(Hung Ham Station)’은 과거에 중국 본토로 가는 열차가 지나기도 했어요. 바닷길이 열리는 지점인 것은 물론, 철도 교통의 요충지였던 셈이죠.


오래 전부터 홍콩 교통의 요충지였던 빅토리아 독사이드는 여전히 스타 페리와 지하철역을 끼고 있어 접근성이 좋아요. 자연스럽게 상업, 관광, 문화 등 각종 기반 시설과 비즈니스가 발달했고요. K11이 빅토리아 독사이드를 선택한 이유이기도 하죠.


이렇듯 교통 허브에는 비즈니스가 발달하기 마련인데요. 홍콩처럼 대지가 좁은 도시 국가일 수록 국경 밖과의 교류가 중요하기에 교통 허브가 가지는 의미가 더 크죠. 그런데 기존의 K11 시설들은 주로 내륙과 해상 교통 허브에 위치해 있었어요. 여기에 ‘교통 수단’ 혹은 ‘교통 허브’를 떠올렸을 때 한 가지 빠진 게 있어요. 바로 비행기, 즉 하늘길을 따라 연간 수백만 명이 드나드는 ‘공항’이에요.


특히 홍콩 국제 공항은 매해 7천만 명 이상의 탑승객들이 220개 목적지로 오고 가는 글로벌 항공 허브예요. 게다가 ‘홍콩-주하이-마카오 대교’와 같이 홍콩과 다른 지역을 연결하는 주요 인프라에 인접해 있어 GBA*로 통하는 길목에 위치해 있죠. GBA는 8천6백만명이 넘는 인구가 거주하는 지역인 데다가, 이 지역 주민들은 대부분 중산층 이상의 경제력을 가지고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홍콩 국제 공항은 지리적으로 해외 여행객들 뿐만 아니라 GBA 거주자들까지 타깃하기에 유리해요.


*GBA: Greater Bay Area의 준말로, 광저우, 선전, 주하이, 포산, 둥관, 중산, 장먼, 후이저우, 자오칭 등 광둥성의 9개 거대 도시와 2개의 특별행정구 홍콩, 마카오로 구성된 메갈로폴리스(Megalopolis)를 뜻해요.


홍콩 국제 공항의 지리적 이점을 알아 본 K11은 2020년, 새로운 복합 공간 개발 계획을 발표해요. 바로 홍콩 국제 공항 옆, 무려 380만ft²(약 10만6,800평) 규모의 종합 리테일, 사무공간, 심지어 엔터테인먼트까지 아우르는 ‘11 스카이스(11 Skies)’예요. 이 계획에는 3개의 비즈니스 타워, 800개가 넘는 매장, 120여 개의 다이닝, 홍콩 최대의 실내 및 몰입형 엔터테인먼트 시설 등이 포함되어 있죠. 11 스카이스는 홍콩 최초의 원스탑 ‘리테일테인먼트(Retailtainment)’ 공간으로서, 기존 K11 브랜드의 확장판이라고 볼 수 있어요.


ⓒ11 Skies


11 스카이스가 기존 K11대비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쇼핑몰, 오피스 빌딩에 더해 ‘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들이 더해졌다는 점인데요. 특히 홍콩 ‘최초’의 시설들을 많이 유치해 기대감을 더욱 부추기고 있어요. 4D 모션 플라잉 극장 ‘타임리스 플라이트(Timeless Flight), 버추얼 오션 어드벤처인 ‘브이쿠아리움(Vquarium)’, 패딩턴 테마의 에듀테인먼트 시설인 ‘패딩턴 플레이 어드벤처(Paddington Play Adventures)’ 등이 대표적이에요.


다만 11 스카이스는 아직 미완성이에요. 2022년 오피스 시설인 K11 아틀리에 11 스카이스 지점의 오픈을 시작으로, 단계별로 시설을 오픈해 2025년까지 완전한 개장을 목표로 하고 있죠. 2025년에는 홍콩의 새로운 랜드마크이자 관광명소로 거듭날 예정이죠.



성장과 역성장이 모두 필요한 이유


기존 핵심 비즈니스에 부가 가치를 더하며 사업을 확장해 온 K11. 지금까지의 성과는 어떨까요? K11의 2024년 성과는 호조세예요. 벌써 문을 연 지 15년 차인 K11 아트 몰은 2024년에 전년 대비 방문객수가 약 10%가 증가했고 매출은 약 16% 높아졌어요. K11 뮤제아의 방문객은 전년 대비 20%, 매출은 17%나 증가했고요.


단기적인 상승세인 것도 아니에요. 2020년부터 2024년까지 연평균 성장률을 산출해 봐도 K11 뮤제아는 32.4%, K11 아트 몰은 10.9%를 기록했죠. 이런 견고한 성장은 양적, 질적 성장과 더불어 비즈니스 간 시너지를 고려한 자산과 비용 관리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어요.


리테일 비즈니스는 브랜드 정체성은 물론이고 입점해 있는 테넌트도 중요한데요. 이에 K11은 신규 테넌트 유치 뿐만 아니라 이미 입점한 테넌트들이 K11 안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유도해 왔어요. K11 뮤제아의 오데마 피게, 반 클리프 앤 아펠, 브루넬로 쿠치넬리, 로에베 등의 럭셔리 브랜드들은 매장 확장 또는 리노베이션을 통해 K11 내 매장에 투자해 왔죠.


그리고 보다 젊은 고객들이 타깃인 K11 아트 몰의 경우 패왕차희미스터 도넛등 해외에서는 유명하지만 아직 홍콩에 진출하지 않은 F&B 브랜드를 유치했어요. F&B 브랜드뿐만 아니라, ‘토이저러스(ToysRUs)’와 같이 ‘경험’에 기반한 브랜드도 K11을 통해 홍콩에 진출했요. 토이저러스는 2024년 7월, K11 아트 몰에 컨셉 스토어를 오픈한 것을 시작으로, 9월에는 K11 뮤제아에도 두 번째 매장을 열었어요. 이는 토이저러스가 아시아에 최초로 오픈한 컨셉 스토어였어요. 이처럼 K11은 앞으로도 K11만의 문화적 상업 모델을 차별화하고, 각기 다른 K11 몰 간의 협업 기회를 구축할 계획이에요.


K11은 홍콩에서 시작한 리테일 브랜드지만, 그 영역은 진작부터 홍콩의 국경을 넘고 있어요. 일찍이 상하이, 광저우, 우한 등 중국 본토의 대도시에 진출했죠. 2024년에도 이런 지역적 확장을 계속했는데요. 올해 9월에는 중국 닝보(寧波)에 ‘더 파크 바이 K11 셀렉트(The Park by K11 Select)’의 문을 열었어요. 그리고 현재 중국 선전 시에 건설 중인 ‘K11 이코스트(K11 Ecoast)’는 중국 본토에서 K11의 플래그십 역할을 할 거예요.


K11은 이렇게 브랜드의 핵심 자산을 강화하는 한편, 비핵심 자산들은 과감하게 정리하는 중이에요. 여기에서 말하는 비핵심 자산이란 크게 3가지 기준에 부합하는 것들인데요. IRR이 낮고, 지분이 매우 적으며, 그룹사의 기존 비즈니스와 시너지가 낮은 자산들이죠. 즉, 뉴 월드 디벨롭먼트가 구축한 비즈니스 생태계에 편입이 어렵거나 효율성이 낮은 자산들은 과감히 처분하고자 하는 거예요.


K11을 소유한 뉴 월드 디벨롭먼트는 2019년부터 이런 기조를 유지해 왔고, 2024년에만 약 77억 홍콩달러(약 1조4,360억원)의 비핵심 자산들을 처분했어요. 2025년에는 130억 홍콩달러(약 2조4,244억원)의 비핵심 자산을 처분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


이렇듯 뉴 월드 디벨롭먼트는 일련의 NCD(Non-core disposals)를 통해 자금을 확보하고 차입을 줄여 재무 건전성을 강화하고 있어요. 성장에 치우치기 보다는 핵심 자산들은 성장시키되, 내실을 다지는 데에도 힘쓰는 거죠. K11의 확장에 걱정보다 믿음이 앞서는 이유예요.





Reference

뉴 월드 디벨롭먼트 공식 웹사이트

빅토리아 독사이드 공식 웹사이트

K11 공식 웹사이트

K11 아틀리에 공식 웹사이트

K11 아르투스 공식 웹사이트

11 스카이스 공식 웹사이트

FY2024 ANNUAL PRESENTATION ANALYST BRIEFING, New World Development

홍콩에 가면 들려야 할 ‘예술적’ 랜드마크, K11 MUSEA, W Korea

손정우, 이승복, 정우현, 지상현, 정성훈 (2012). 신경미학이란 무엇인가? : 정신의학에서의 새로운 패러다임

Blood, A. J., & Zatorre, R. J. (2001). Intensely pleasurable responses to music correlate with activity in brain regions implicated in reward and emotion.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98(20), 11818-11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