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손잡이에게는 신기한, 왼손잡이의 세상

레프티즈

2022.09.07

왼손잡이는 서럽습니다. 인구의 90%가 오른손잡이인지라, 일상제품부터 공공시설까지 오른손잡이에게 친화적으로 디자인되어 있기 때문이죠. 지하철 개찰구에서 교통카드를 찍을 때, 운전을 하려고 시동을 걸 때, 자판기에 동전을 넣을 때 등 오른손잡이에겐 인지조차 안되는 순간들조차 왼손잡이에게는 신경이 쓰이는 대상입니다.


제품을 만들거나 사회적 합의를 할 때 다수를 위한 선택을 한다는 전제를 고려하면 이해는 갑니다. 하지만, 여전히 왼손잡이들은 불리함을 느끼고 불편함을 겪죠. 소수로서 차별받고 있으나 사회적 약자라고 보기엔 어렵고, 그렇다고 해서 사회에서 소외당하지 않는다고 볼 수도 없는, 그렇지만 누구도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주지 않는 왼손잡이들의 서러움을 달래주는 곳은 없을까요?


샌프란시스코에 가면 왼손잡이의 편을 들어주는 '레프티즈'가 있습니다. 같이 가보실까요?


레프티즈 미리보기

• #1. 왼손잡이의 ‘불편’을 공략한다

 #2. 시장구조의 ‘빈틈’을 공략한다

 #3. 유동인구의 ‘확률’을 공략한다

 공감이 없는 공략은 공허하다




전체 인구 중 왼손잡이의 비중은 얼마나 될까요? 오른손, 왼손 둘 중 하나를 쓰는 거니까 확률적으로는 50%에 가까워야 하지만, 실제로 왼손잡이는 그 근처에도 못가는 10% 수준입니다. 하지만 야구장으로 가면 수치가 달라집니다. 미국 메이저리그의 약 25% 정도의 선수가 왼손잡이입니다. 평균보다 2.5배 가량 높습니다. 



ⓒWikipedia


이를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린 선수들로 좁혀보면 왼손잡이의 비율이 더 올라갑니다. 좌완투수의 경우는 전체 평균과 유사한 25% 수준이지만, 좌타자의 비율은 무려 45%로 높아져 확률적 수치인 50%에 가까워집니다. 이유가 뭘까요?


우수한 성과를 거둔 좌타자 비율이 좌타자 비율의 평균을 훨씬 웃도는 건, 야구가 왼손 타자에게 유리한 스포츠이기 때문입니다. 우선 좌타자는 우타자보다 1루에 더 가까운 곳에서 타격을 합니다. 그래서 1루까지 뛰는 거리가 5피트 가량(약 1.5m) 짧습니다. 


여기에다가 뛰는 방향도 좌타자의 편입니다. 우타자의 경우 스윙을 하면 몸이 3루 쪽으로 돌아가서 1루로 나가려면 관성을 역행해야 하는 반면 좌타자는 스윙 후 몸이 자연스럽게 루 방향으로 향해서 관성을 유지하면서 뛸 수 있습니다. 뛰는 거리도 짧고 스타트도 빨리 할 수 있으니 좌타자가 1루에 도착하는 시간이 우타자 대비 0.17초 가량 줄어듭니다. 내야 땅볼에도 살아나갈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지는 셈입니다.


야구장 구조는 내야 땅볼뿐만 아니라 장타를 칠 때도 좌타자에게 우호적인 환경입니다. 장타의 경우 당겨치는 비율이 높은데, 우타자가 당겨치면 좌익수 쪽으로 공이 떨어져 3루까지 송구 거리가 짧아지는 바람에 3루까지 뛰기가 어려운 반면, 왼손 타자가 당겨치면 우익수 쪽으로 공이 흘러 송구 거리가 멀어지므로 3루까지 뛸 수 있는 시간이 확보됩니다. 3루타를 칠 확률도 높아집니다.


또한 우완 투수 비율이 높은 점도 좌타자에게는 도움이 됩니다. 투수가 공을 140km의 속도로 던졌을 때 0.47초면 포수에게 도착합니다. 투수가 공을 던지는 순간에 판단을 해야 공을 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 때 우타자가 우완 투수를 만나면 등 뒤에서 공이 나오는 듯한 느낌이 들어 공의 릴리즈 포인트가 늦게 보이는 반면, 좌타자는 공을 좀 더 일찍 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체의 75%를 차지하는 우완 투수를 상대할 경우 좌타자가 우타자보다 유리합니다. 실제로 좌타자가 우완 투수를 상대로 안타를 칠 확률이 4% 정도 높습니다.


이처럼 야구장은 왼손잡이에게 친화적인 곳이지만, 야구장 밖의 세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인구의 90%가 오른손잡이인지라, 일상제품부터 공공시설까지 오른손잡이에게 친화적으로 디자인되어 있습니다. 제품을 만들거나 사회적 합의를 할 때 다수를 위한 선택을 한다는 전제를 고려하면 이해는 가나, 여전히 왼손잡이들은 불리함을 느끼고 불편함을 겪습니다. 그렇다고 왼손잡이들을 사회적 약자로 보기도 어려워서 시민 단체 등에서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주거나 정부가 그들을 정책적으로 지원해주는 경우도 드뭅니다.


그렇다면 왼손잡이들은 야구장에서나 기를 펴고, 야구장 밖에서는 이러한 현실을 받아들여야 할까요? 대체로 그럴 수 밖에 없는 환경이지만,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매장인 '레프티즈'에서 만큼은 예외입니다.



#1. 왼손잡이의 ‘불편’을 공략한다

레프티즈는 왼손잡이를 위한 제품을 판매하는 매장입니다. 왼손잡이라고 해서 제품이 달라질 필요가 있을까 싶지만, 왼손잡이라고 가정하고 일상 생활을 해보면 예상치 못한 불편함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지하철 개찰구에서 교통카드를 찍을 때, 운전을 하려고 시동을 걸 때, 자판기에 동전을 넣을 때 등 오른손잡이에겐 인지조차 안되는 순간들조차 왼손잡이에게는 신경이 쓰이는 대상이죠. 물론 레프티즈가 이런 불편을 해결하기 위해 왼손잡이용 지하철 개찰구, 자동차, 자판기 등을 파는 건 아닙니다. 문구나 잡화 등 소소하지만 일상에서 꼭 필요한 제품들을 왼손잡이용으로 만들어 선보입니다.


레프티즈 매장에 들어가면 선반 위에 큼지막하게 붙어 있는 제품 사용법이 눈에 띕니다. 펜, 스프링 노트, 노트 패드, 가위, 캔 오프너 등 사용법을 모를리 없는 제품입니다. 세상에 없던 제품이라면 모를까 일상적인 물건의 사용법을 이렇게까지 전면에 내세워 설명해야하나는 의문이 들지도 모르지만, 내용을 읽어보면 생각이 달라집니다. 오른손잡이라면 설명을 보고서야 비로소 왼손잡이의 불편함과 레프티즈의 제품이 그 불편함을 어떻게 해결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죠.



ⓒ시티호퍼스


먼저 펜부터 살펴볼게요. 오른손잡이의 경우 글자를 쓰고나서 그 글자 위로 손이 지나갈 일이 없는 반면, 왼손잡이는 손이 글자에 후행하기 때문에 글자 위로 손이 지나갑니다. 그래서 왼손잡이는 펜을 쓸 때 2가지의 불편함을 느낍니다. 하나는 글자가 번지거나 뭉개지는 현상이고, 또다른 하나는 직전에 썼던 글자를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레프티즈는 빨리 마르는 잉크를 사용하고, 펜의 모양을 변형시켜 글씨 위로 손이 지나가지 않게 디자인했습니다. 좌우가 없어보이던 펜에 방향성을 부여하자, 펜류는 전체 매출의 25% 가량을 차지할 정도로 효자 상품군이 되었죠.



ⓒ시티호퍼스


스프링 노트, 가위, 캔 오프너 등도 마찬가지입니다. 왼손잡이는 스프링노트에 글을 쓰기 시작하는 부분에서 스프링 위에 손이 올라가 쓰기 불편하고, 가위는 손잡이 쪽이 거꾸로 되어 있어 가위질하기가 어려우며, 캔 오프너도 날과 손잡이가 반대 방향이라 왼손으로 사용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죠. 레프티즈에서는 왼손잡이의 소소한 불편함을 이해하고, 이를 해결하는 제품을 내놓으면서 의도치 않게 소외받았던 그들의 마음을 보듬어 줍니다.



#2. 시장구조의 ‘빈틈’을 공략한다

왼손잡이가 아니라면 쉽게 알 수 없는 불편함까지 이해하고 있으니 창업자인 마가렛 마주어(Margaret Majua)도 왼손잡이일 거 같지만, 예상과 달리 그는 오른손잡이입니다. 그는 스스로의 불편함을 해결하기 위해 레프티즈를 런칭한 것이 아니라 시장의 상황을 보고 사업을 시작했죠. 왼손잡이의 불편함이 확실하고 제품 차별화의 여지가 충분한데, 왼손잡이용 시장은 제품의 종류도 적고 취급하는 유통사들도 몇 개 안되는 등 공급이 부족했기 때문이에요.


그는 시장에 공급이 충분하지 않은 현상을 논리적인 결과라고 봤습니다. 펜, 가위, 노트 등을 맞춤 제작하려면 최소주문수량과 생산단가를 맞춰야 하는데 작은 기업들의 경우 새로운 시도를 할 만큼의 여력이 없을 거라 생각했고, 큰 회사들은 그들의 메인 타깃 대비 작은 시장이라 우선 순위에서 밀릴 거라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그 사이를 파고 들어 시장 기회를 만들려고 한 거예요.


그는 왼손잡이를 타깃으로 한 매장을 준비하면서 이미 시장에 출시된 제품들을 구해서 유통시키는 방향이 아니라 기존에 없던 제품을 새로 만들어 판매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리하여 10만 달러(약 1억 3천만원)를 투자해 20개의 왼손잡이용 문구류를 제작했죠.


스스로가 왼손잡이는 아니지만, 왼손잡이들의 불편함에 공감하면서 그가 직접 디자인했을 정도로 왼손잡이용 제품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어요. 시장의 상황 속에서 빈틈을 발견하고 잠재 수요에 대한 확신이 있다고 예상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3. 유동인구의 ‘확률’을 공략한다

시장 진입에 대한 판단을 전략적으로 했듯이 매장 위치를 선정할 때도 전략적 접근이 필요합니다. 미술 용품 매장이 예술 대학 앞에 위치할 때 유리한 것처럼 특정 타깃을 대상으로 한다면 해당 수요가 많은 곳에 자리잡아야 매출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지죠. 그렇다면 왼손잡이가 많이 모여 있는 곳은 어디일까요?


아무리 고민해봐도 왼손잡이 비율이 높은 곳을 특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위에서 언급햇듯이 야구장에 왼손잡이의 비율이 높기는 하지만 선수 숫자 자체가 많지 않기 때문에 유의미한 시장은 아닙니다. 이처럼 장소에 따라 왼손잡이의 비율이 크게 다르지 않다면 모수 자체가 커져야 왼손잡이의 잠재 고객 수가 늘어나고 매출로 연계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그래서 레프티즈는 왼손잡이 비율이 높은 곳을 찾기보다 유동인구 수가 많은 관광지인 'Pier 39'에 자리잡았습니다.



ⓒ시티호퍼스


유동인구가 많은 곳이라면 샌프란시스코 다운타운에 위치할 수도 있는데, 레프티즈는 다운타운 대신 관광지를 선택했습니다. 두 지역은 어떤 차이가 있는 걸까요? 유동인구가 많다는 점에서는 비슷할 수 있지만 유동인구의 속성이 다릅니다. 


다운타운은 샌프란시스코 시민들의 비중이 크고 직장인들처럼 반복되는 숫자가 유동인구로 집계되는 반면 관광지인 Pier 39는 유동인구 수의 순도가 높습니다. 다운타운과 Pier 39의 유동인구 수가 같고 두 곳의 왼손잡이 비율이 동일하다고 가정하면 왼손잡이 숫자가 Pier 39에 더 많다는 뜻이죠. 특히 샌프란시스코의 인구수가 90만명 수준이고, 샌프란시스코에 방문하는 관광객수가 2,600만명 정도임을 감안하면 더더욱 관광지가 유리합니다.



ⓒ시티호퍼스


샌프란시스코의 Pier 39에 첫번째 매장을 런칭한 이후에 오픈한 매장들을 봐도 전략적 의도를 엿볼 수 있습니다. 레프티즈는 올랜도 디즈니 월드 등 관광객 비율이 높은 곳을 중심으로 매장을 열었습니다. 미국 뿐만 아니라 전세계에서 모여드는 관광객들의 10%는 레프티즈에 관심을 가질 잠재 고객들입니다. 


여기에다가 왼손잡이 친구, 연인, 손주 등을 둔 오른손잡이들도 여행 왔다가 선물을 위한 기념품으로 사갈 가능성도 있으니 잠재 고객 수는 더 커집니다. 선물 받을 대상의 특성을 고려한 선물이기에 구매 전환이 될 확률도 높고요.



공감이 없는 공략은 공허하다

예술가인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철학자인 니체, 괴테, 작곡가인 모차르트, 베토벤, 슈만, 작가인 마크 트웨인, 안데르센, 정치인인 버락 오바마, 빌 클린턴, 연예인인 오프라 윈프리, 폴 메카트니, 줄리아 로버츠, 탐 크루즈, 찰리 채플린, 기업인인 빌 게이츠, 헨리 포드, 록펠러 등 이름을 모르기 어려울 정도로 유명한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시티호퍼스


시대와 영역이 제각각이어도 이들 모두를 관통하는 키워드가 있습니다. 왼손잡이라는 거예요. 물론 왼손잡이라고 해서 이들처럼 유명해질 수는 없겠지만, 왼손잡이라는 이유로 이들과 공통분모를 갖게 된다면 어쩐지 모르게 자랑스러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레프티즈의 벽 상단에는 유명인들 중에 왼손잡이인 사람들의 초상화를 걸어두었습니다. 과거처럼 사회적으로 터부시될 정도는 아니어도 왼손잡이가 여전히 낯선 대상으로 여겨지는 사회적 분위기에서, 그들에게 연대감을 주겠다는 뜻입니다.


어쩌면 레프티즈가 판매하는 건 왼손잡이용 제품이 아니라 왼손잡이들에 대한 공감일런지도 모릅니다. 소수로서 차별받고 있으나 사회적 약자라고 보기엔 어렵고, 그렇다고 해서 사회에서 소외당하지 않는다고 볼 수도 없는, 그렇지만 누구도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주지 않아 슬픈 왼손잡이들에게, 그들의 편을 드는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레프티즈가 존재하는 이유는 충분합니다.






Reference

레프티즈 공식 홈페이지

• 왼손잡이를 위한 공간, 리미의 트래블라이브러리

• Where lefties are always right, CNN

• American lefties have never had it so, The 1843 Magazine

• Indian entrepreneurs are slowly noticing the untapped, Scroll 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