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으로 먼저 차를 마신다? 차를 고르는 감각적 고객 경험

모노그램 티

2022.07.13

레이어링(Layering). 여러 층을 만든다는 뜻으로, 향수, 패션, 액세서리 분야에서 흔하게 사용하는 스타일링 방법이에요. 서로 다른 향을 뿌려 새로운 향기를 만들고, 셔츠에 니트를 더하거나, 얇은 실링 타입의 링에 두꺼운 반지를 착용해 멋을 내는 식이죠.


싱가포르에는 특이하게 마시는 차로 레이어링을 제안하는 곳이 있어요. 바로 ‘모노그램 티(Monogram tea)’예요. 고객은 맛보길 원하는 두 가지 차를 조합할 수 있어요. 그런데 이 브랜드가 레이어링을 제안하는 방식이 예사롭지 않아요.


각 차에서 느껴지는 다양한 풍미를 그래프로 구현하는데, 그걸 보고 레이어링 될 차를 탐구하는 경험이 무척 감각적이거든요. 화면을 보고 있으면 마치 현실에서 천천히 우러나는 차를 보는 것만 같아요. 차 맛을 과학적으로 표현한 것도 신기한데, 예술성까지 더하니 고객이 알아서 찾고 경험하는 브랜드가 됐죠.


모노그램에서 비주얼로 구현한 레이어링 차트를 보다보면, 온라인에서도 차로 예술을 그리고 고객 경험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될 거예요.



모노그램 티 미리보기

• 1 더하기 1은 2가 아니라 새로운 1이다

• 레이어링 한 차를 눈으로 먼저 마신다

 차에 대한 니즈가 다르니 고객도 레이어링한다

 혁신이 진화하면 전통이 된다





일반 사람보다 1,000배 이상의 후각 능력을 가진 사람이 있어요. 이름은 조 말론. 그녀는 향에 대한 예민한 감각을 바탕으로 1994년 자신의 이름을 딴 향수 브랜드를 런칭해요. 바로 '조 말론 런던(Jo Malone London)'의 이야기죠. 조 말론 런던은 유명 모델을 기용해 이미지 메이킹을 하던 기존의 향수 브랜드와 달리, 향의 본질에 집중하며 성공가도를 달려요. 향의 원료를 전면에 내세우고, 심지어는 향수 이름도 원재료를 그대로 따와요. 조 말론 런던의 시그니처 향이 된 '라임 바질 앤 만다린'이 대표적이에요.


1999년 조 말론은 브랜드의 성장을 위해 조 말론 런던을 에스티 로더에 매각하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남았다가 2006년부터 아예 회사를 떠났어요. 그리고 5년이 지난 후 자신의 두 번째 향수 브랜드 '조 러브스'를 런칭하죠. 조 러브스의 인기는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에요.



조 말론 런던의 시그니처 향수인 라임 바질 앤 만다린. ⓒJo Malone London



조 러브스의 첫 번째이자 시그니처 향수인 포멜로예요. ⓒJo Loves


그렇다면 조 말론이 떠난 조 말론 런던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향기 천재이자 브랜드 그 자체였던 조 말론의 부재가 브랜드의 운명에 영향을 끼쳤을까요? 다행히도 조 말론 런던은 창립자의 천재성과 창의성을 물려받아 대중적이지만 뻔하지 않은 향수 브랜드로서의 입지를 지켜나갔어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업계 최초로 도입한 ‘프래그런스 컴바이닝(Fragrance Combining)’ 컨셉 덕이 컸어요. 프래그런스 컴바이닝은 한 개 이상의 향수를 겹쳐 뿌려 새로운 향을 만들어 낸다는 의미로, 우리가 흔히 아는 향수 레이어링과 같아요. 향수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임의로 여러 향수를 섞어 쓰는 일이 종종 있었지만, 향수 레이어링을 컨셉으로 내세운 브랜드는 조 말론 런던이 최초였죠.



ⓒJo Malone London


“센트 페어링(Scent pairing)에는 규칙이 따로 없습니다. 개인의 취향이 가장 중요하죠. 과감하게 용기를 내어 실험해보고, 평소 생각해보지 못한 조합을 시도해보세요. 무한한 가능성이 펼쳐질 거예요.”


프래그런스 컴바이닝 시스템을 도입한 조 말론 런던의 디렉터 셀린 루(Celine Roux)는 이렇게 말해요. 하지만 사실 여러 가지 향수를 레이어드하는 일은 쉽지만은 않아요. 향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고, 조합의 결과도 예측할 수 있어야 하죠. 그래서 조 말론 런던은 누가 레이어링을 하더라도 무난하게 어울릴 만한 향수의 조합을 추천하거나, 향수 개발 단계부터 레이어링을 고려해 원료의 구성을 단순하게 디자인하기도 해요. 덕분에 누구나 쉽게 같은 계열의 향수를 섞어 더 풍부한 향을 만들거나, 상반된 계열의 향을 조합해 부족한 점을 보완할 수도 있어요.



조 말론 런던은 센트 페어링 제안을 위해 조합이 좋은 향수 2가지가 포함된 ‘듀오 세트’를 판매하고 있어요. ⓒJo Malone London



1 더하기 1은 2가 아니라 새로운 1이다

그런데 향을 레이어링하는 건 향수에만 적용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싱가포르의 차 브랜드 ‘모노그램(Monogram)’은 패션이나 향수에서 익숙한 레이어링을 차에 적용했어요. 향수 만큼이나 차의 영역에서도 향이 중요하니 그럴 듯한 설득력을 가져요. 모노그램은 2가지 차를 섞어 마시는 ‘차 레이어링(Tea layering)’ 컨셉으로 다양한 차의 조합을 구현하고, 고객이 선호하는 조합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줘요. 그것도 지극히 아름다운 방법으로요.



모노그램의 차들이에요. ⓒMonogram


모노그램에서 고객이 자신만의 차 레이어링을 만드는 과정은 베이스가 될 차를 선택하는 것으로 시작해요. 모두 레이어링을 염두에 두고 생산한 차라 호기심과 감을 따라 베이스가 될 차를 선택하고 페어링할 차를 골라도, 기존에 경험할 수 없던 차의 맛에 만족스러울 거예요. 하지만 성공 확률을 더 높이고 싶다면 모노그램 웹사이트에서 제안하는 ‘레이어링 제안(Layering suggestion)’을 참고하면 돼요. 1개의 차당 2~3개의 페어링 차를 추천해주는데, 각 페어링 결과를 상세히 설명해 두어 레이어드 된 차의 맛을 상상하며 고르는 재미가 있어요. 각 차의 풍미와 맛있게 마시기 위한 온도, 차를 우리는 시간 등에 대한 정보는 기본이고요.



모노그램 티의 웹 메인페이지에서 먼저 베이스가 될 차를 선택해요. ⓒMonogram Tea


모노그램은 고객이 차 레이어링을 탐색하는 과정에서 정보를 얻을 뿐만 아니라, 과정 자체를 미학적으로 즐길 수 있도록 디자인했어요. 먼저 차분한 색감과 심플한 디자인으로 브랜드의 전체적인 톤앤매너를 유지하고, 각 차에 컬러를 부여했어요. 베이스가 되는 차를 왼쪽에 배치하고, 페어링할 차를 오른쪽에 배치해 가운데에는 두 차를 레이어링 했을 때 느낄 수 있는 맛을 방사형 그래프로 시각화했죠. ‘다음 제안(Next suggestion)’ 버튼을 부르면 페어링할 차가 바뀌는데 이때마다 가운데 그래프도 함께 바뀌어요. 기존 데이터가 사라졌다가 그래프의 한 가운데서부터 느린 나타내기 효과로 새로운 그래프가 나타나요. 마치 티백에 물을 부으면 차가 천천히 우러나는 것과 같죠. UX 디자인에 깃든 미학적 즐거움은 차와 고객 간의 만남을 유도해요.



왼쪽의 ‘일본 체리(Cherry Japonais)’ 차를 베이스로 오른쪽의 ‘아리아나의 로즈(Rose of Ariana)’를 페어링하는 것을 추천해요. ⓒMonogram Tea



첫 번째 추천 페어링이었던 아리아나의 로즈 아래의 다음 제안 버튼을 누르면 ‘사프로네(Saffonais)’차를 추천해줘요. ⓒMonogram Tea


차 레이어링 컨셉은 재무적 관점에서도 의미가 있어요. 최소 2가지 이상의 차가 필요하기 때문에 객단가를 높이는 효과가 있거든요. 게다가 모노그램은 12가지 차로 20개의 조합을 추천해요. 고객들은 모노그램의 ‘차’보다는 모노그램의 ‘레이어링’을 구매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20개의 상품을 갖고 있는 것과 동일한 효과를 내요. 상대적으로 적은 가짓 수의 상품으로 더 많은 제품을 판매할 수 있어 제품 개발의 측면에서도 유리하죠.



레이어링 한 차를 눈으로 먼저 마신다

그런데 차 레이어링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차의 조합이 정교해야 해요. 2가지 차를 짝지어 두는 데 그친다면 단순한 아이디어에 지나지 않을 테니까요. 그래서 모노그램은 각 차의 맛을 세분화해요. 차의 맛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세분화해야 더 객관적이고 과학적으로 차를 조합할 수 있거든요. 레이어드된 차의 풍미도 쉽게 상상할 수 있고요. 모노그램의 그래프가 단지 시각적으로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신뢰할 만한 데이터가 되는 이유예요.


모노그램은 차에서 느낄 수 있는 풍미를 크게 9가지 계열로 분류해요. 나무(Wood), 허브(Herbaceous), 꽃(Floral), 크림(Creamy), 바다(Marine), 단맛(Sweet), 과일(Fruity) 등이죠. 그리고 각 계열 안에서 또 한 번 맛을 구체화해요. 예를 들어 꽃 계열의 풍미는 자스민, 장미, 벚꽃, 히야신스, 백합 등으로 세분화하는 거죠. 최종적으로 세분화된 풍미로 각 차의 맛을 표현하는데, 시각적으로는 방사형 그래프에 점을 찍어 나타내요. 차의 전체적인 풍미는 각 점을 연결한 면이 되고요. 2가지 차를 동시에 보여주는 레이어링 제안 그래프에서 레이어링한 2가지 차가 방사형 그래프에서 겹치는 면적이 넓을수록 비슷한 계열의 향을 더 풍부하게 느낄 수 있고, 겹치는 면적이 적을수록 상호 보완적이면서도 다채로운 풍미를 즐길 수 있어요.



얼 그레이 네롤리의 풍미를 세분화한 그래프와 설명이에요. ‘차 매트릭스(Tea Matrix)’ 섹션에서는 판매하는 모든 차의 풍미를 세분화한 데이터를 볼 수 있어요. ⓒMonogram Tea


방사형 그래프는 차에서 나는 각 풍미의 강도까지 표현해요. 하나의 차에 여러 가지 풍미가 있다고 해도 어떤 풍미는 더 진하고, 어떤 풍미는 은은할 수 있어요. 풍미의 종류 뿐 아니라 강도에 따라서도 차 맛이 미묘하게 달라지기에, 보다 섬세하게 차를 즐기고 싶은 고객에게는 유용한 정보가 되죠. 모노그램의 방사형 그래프는 풍미의 강도를 10단계로 나누어 점의 위치로 나타내요. 예를 들어 ‘얼그레이 네롤리(Earl Grey Neroli)’의 1차 풍미는 시트러스(Citrus)예요. 시트러스 안에서 한번 더 세분화된 풍미는 베르가못이고, 그래프 안에서 베르가못 풍미는 10 중 8의 위치에 점이 찍혀 있죠. 반면 솔향(Wood 계열)과 비스킷(Sweet 계열) 풍미는 각각 10 중 2에 해당해, 베르가못 풍미가 가장 지배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차에 대한 니즈가 다르니 고객도 레이어링한다

모노그램은 고객들이 최대한 많은 차 레이어링을 경험하고, 궁극적으로는 자기만의 차 레이어링 조합을 발견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갖고 있어요. 그래서 차를 구경하고, 레이어링 조합을 알아가는 과정을 즐길 수 있도록 웹사이트를 디자인한 거죠. 이렇게 온라인 상의 미학적 즐거움이 매력적인 것은 사실이지만, 오프라인 매장 없이 고객과 접점을 마련하기가 좀처럼 쉽지 않아요. 그래서 모노그램은 차에 대한 전문성을 바탕으로 더 적극적인 제스처를 취해요.


모노그램은 고객이 매번 차 레이어링 조합을 고민하거나 선택할 필요가 없도록 ‘모노그램 디스커버리 박스(Monogram Discovery Box)’라는 구독 서비스를 운영해요. 매월 4가지 차를 큐레이션해 테이스팅 노트와 함께 집까지 배송해주는 서비스예요. 각 차를 4개씩 담아 총 16개의 티백을 한 번에 배송하기 때문에 테이스팅 노트를 참고하며 여러 가지 레이어링을 시도해 볼 수 있어요. 애초에 레어이링 재료들을 고객이 아닌 모노그램의 티 마스터가 대신 큐레이션해 보내주니, 선택에 전문성은 더하고 편견은 사라져요. 평소라면 시도하지 않았을 차나 예상하지 못했던 조합을 통해 차 레이어링의 경험치를 높여갈 수 있죠.


반면 기업이나 단체 고객 대상으로는 ‘모노그램 비스포크(Monogram Bespoke)’ 서비스를 운영해요. 사전 예약제로만 운영되는 비스포크 서비스는 말 그대로 모노그램의 티 마스터가 단 하나의 고객을 위해 맞춤형 차를 개발해주는 거예요. 비스포크 차는 고객의 라이프스타일이나 취향에 대한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 시작해요. 차는 단순히 맛으로만 즐기는 음료가 아니라, 개인의 취향이 담긴 라이프스타일이기 때문이에요. 고객과 나눈 대화를 바탕으로 다양한 재료들을 배합해 취향에 꼭 맞는 블렌딩을 개발하는 거죠. 이렇게 탄생한 차는 고급스러운 선물 패키지에 포장되어 고객에게 전달돼요.



ⓒMonogram



혁신이 진화하면 전통이 된다

참신한 차 레이어링 컨셉에서 엿볼 수 있듯, 모노그램은 혁신의 DNA를 갖고 있어요. 모노그램은 2006년 ‘그리폰 티 컴퍼니(Gryphon Tea Company)’가 회사 설립 100주년을 기념하며 출시한 차 브랜드로, 그리폰 티 컴퍼니의 창의적인 시도 중 하나였죠. 창립자 림 티안 위(Lim Tian Wee)는 경쟁이 심화되고, 트렌드가 빠르게 변화하는 싱가포르의 미식 시장과 차 시장에서 뒤쳐지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와 변화를 고민해요.


“시장 경쟁은 브랜드들이 다른 생각을 통해 마법을 만들어내도록 해주죠. 우리는 진화하여 전통이 되는 혁신을 만들어나가고자 합니다. (Market competition has spurred brands to continue to think differently to create magic. We hope to create innovation that will evolve to become traditions.)”


지금은 새로워 보이지만 결국 진화하여 전통이 되는 것.그리폰 티 컴퍼니의 지향점이에요. 그래서 그리폰 티 컴퍼니는 모노그램 전후로도 혁신적인 시도를 계속 해왔어요. 모노그램 런칭 이듬해에 출시한 ‘콜드 브루 스파클링 티(Cold-brewed Sparkling Tea)’는 리치(Lychee), 센차와 패션 프루트(Sencha with Passion Fruit), 얼 그레이 라벤더와 딸기(Earl Grey Lavender with Strawberry) 등 5가지 맛의 차를 콜드 브루 방식으로 최소 12시간 이상 우려내고, 천연 사탕수수와 가벼운 탄산을 더한 병입 차(Bottled tea)예요. 전형적인 차 시장을 넘어 탄산 음료나 주스의 영역까지 진출한 것이죠. 덕분에 파티와 같은 신나는 자리에도 무리없이 등장할 만한 음료로 자리 잡았어요. 제조 방식 뿐 아니라 차를 즐기는 문화까지도 기존의 관습에서 탈피해, 차의 설 자리를 넓힌 셈이에요.



그리폰 티 컴퍼니의 콜드 브루 스파클링 티 시리즈예요. ⓒGryphon Tea


차에 레이어링 컨셉을 적용한 모노그램, 차에 탄산 음료의 정체성을 가미한 콜드 브루 스파클링 티. 그리폰 티 컴퍼니의 혁신적인 시도들은 한계를 부수지만 파괴적이지는 않아요. 기존 시장을 파괴하고 장악하기보다는, 현재와 융합하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제안하죠. 새로운 클래식이 될 그리폰 티 컴퍼니의 혁신들이 기대되는 이유예요.




Reference

조 말론 런던 공식 웹사이트

모노그램 공식 웹사이트

Lim Tian Wee, Dylan Tan, Business Times

Gryphon Tea Founder Spills The Tea On How He Built A Global Brand With A S$2.5K Investment, Victoria Sek, Vulcan Post

그리폰 티 컴퍼니 공식 웹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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