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로봇은 바리스타인가요, 바텐더인가요?

레시오

2022.05.17

상하이에 위치한 카페 겸 칵테일 바인 레시오(Ratio)는 '로봇'을 활용해 경계를 넘나드는 매장을 운영합니다. 레시오의 로봇은 바리스타와 바텐더의 역할을 겸합니다. 단순히 로봇이 인력을 대체한 수준을 넘어 로봇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고객 경험을 설계했습니다. 고객 효용을 개선하면서 동시에 매장 효율을 높인 레시오의 사례에서 가까운 미래를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레시오 미리보기

• 비율은 맞추고, 비용은 낮추고

 #1. 공간의 가치를 높이는 기술

 #2. 인간의 가치를 높이는 기술

 #3. 시간의 가치를 높이는 기술

 닮은 듯 다른 미래






'스타벅스 커피'가 로고에서 '커피'를 뗐습니다. 커피에만 갇혀있지 않고 다른 음료나 베이커리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며 미래로 나아가겠다는 뜻입니다. 말뿐인 비전 선언이 아니었습니다. 2011년에 스타벅스 커피에서 스타벅스로 사명을 바꾼 후, 스타벅스는 2012년에 '티바나'라는 티 브랜드를 인수했고, 2016년에는 이탈리아의 베이커리 '프린치(Princi)'에 투자하면서 글로벌 라이선스를 확보했습니다. 커피의 틀을 깨고 나와 티와 베이커리로 사업을 확장한 스타벅스가 다음으로 손을 댄 영역은 술입니다. 스타벅스는 2018년에 주류를 파는 브랜드인 '바 믹사토(Bar Mixato)'를 출시하고, 2019년에 상하이 와이탄 지역에 세계에서 두 번째이자 아시아 최초로 '스타벅스 리저브 카페 앤 바 믹사토'를 런칭했습니다.



상하이 와이탄에 위치한 스타벅스 리저브 카페 앤 바 믹사토입니다. ⓒ시티호퍼스


스타벅스 리저브 카페 앤 바 믹사토에서는 커피는 물론이고, 각종 주류와 안주거리가 될만한 푸드 메뉴를 판매합니다. 이처럼 카페와 바를 결합하니 매장의 풍경이 달라집니다. 카페 카운터에 술병이 감각적으로 진열되어 있고, 테이블에서도 각자의 선호대로 커피 또는 술을 주문해 마시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바리스타는 물론이고 바텐더까지 상주합니다. 덕분에 리저브 매장의 고급 커피와 중국의 차를 첨가한 칵테일이 인기 메뉴로 자리잡았습니다. 그 뿐 아니라 영업 시간도 달라집니다. 오전 8시부터 새벽 2시까지 오픈합니다. 커피만 있었다면 밤늦은 시간대에 매장 분위기가 썰렁했을텐데, 술까지 함께 파니 늦은 밤에도 매장에 활기가 돕니다. 그만큼 매출이 늘어나는 것은 물론입니다.


하지만 이처럼 카페와 바를 결합하는 데는 만만치 않은 비용과 리스크를 감수해야 합니다. 우선 주류로 매출을 늘리기 위해서는 칵테일 제조에 필요한 주류들을 구비해야 하고, 영업 시간 동안 전문적인 바텐더를 고용해야 하는 등 비용이 발생합니다. 또한 정체성이 모호할 경우, 카페도 아니고 바도 아닌 곳이 될 수 있어 두 마리의 토끼를 잡으려도 둘 다 놓치는 우를 범할 수도 있습니다.



스타벅스 리저브 카페 앤 바 믹사토에서 판매하는 칵테일입니다. ⓒ시티호퍼스



술과 어울리는 푸드 메뉴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시티호퍼스


이론적으로는 카페와 바를 결합하면 매출이 오를 것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현실은 그만큼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요원한 일도 아닙니다. 상하이의 스타벅스 리저브 카페 앤 바 믹사토가 이 문제를 브랜드력으로 풀었다면, 상하이의 또 다른 카페이자 바인 '레시오(Ratio)'는 미래지향적인 해결법을 보여줍니다.



비율은 맞추고, 비용은 낮추고

레시오는 낮에는 카페, 밤에는 바를 지향합니다. 영어로 비율을 뜻하는 레시오라는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음료의 완벽한 비율을 추구합니다. 이 곳의 모든 커피류는 에스프레소, 우유, 거품, 설탕, 물, 알콜 등 5가지 요소의 비율이 정해져 있는데, 최고의 바리스타들이 연구한 비율입니다. 칵테일류도 마찬가지입니다. 칵테일을 구성하는 5가지 요소들을 실력 있는 믹솔로지스트들의 레시피에 따라 섞습니다. 고객들에게 모든 메뉴의 비율을 공개하고, 매번 같은 비율로 만들어진 음료를 일관성 있게 제공해 신뢰를 쌓았습니다.



상하이 래플스 시티 1층에 위치한 레시오 매장입니다. ⓒ시티호퍼스





레시오는 정확한 재료들의 비율에 따라 음료를 제조합니다. 일회용 컵에 제공되는 음료의 경우, 비율이 적힌 스티커가 컵에 붙여져 나옵니다. ⓒ시티호퍼스


그렇다면 매번 같은 비율로 음료를 제조하는 건 누구의 몫일까요? 보통의 경우 능숙한 바리스타나 바텐더의 역할이었겠지만, 레시오에서 음료의 정확도를 높이는 건 사람이 아닌 로봇입니다. 이 매장에는 바리스타나 바텐더가 없습니다. 대신 로봇이 바리스타와 바텐더의 역할을 겸해 고객이 주문한 음료를 제조합니다. 그 뿐 아니라 인공 지능을 탑재한 레시오의 로봇이 매장의 효율성을 입체적으로 개선합니다. 이처럼 기술을 활용해 비용 효율적인 방법으로 고객 경험을 개선한 레시오의 모습에서 이종 업계를 결합하여 매장의 영역을 넓히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레시오의 로봇은 바리스타와 바텐더를 겸합니다. ⓒ시티호퍼스



#1. 공간의 가치를 높이는 기술

레시오에는 주문 공간이나 음료 픽업 공간이 없습니다. 고객이 자리에 앉아 주문, 결제, 음료 수령까지 모두 해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선 매장을 방문한 고객은 원하는 자리에 착석하고, 스마트폰으로 주문을 합니다. 레시오만을 위한 별도의 어플리케이션이 필요한 것도 아닙니다. 10억 명 이상의 회원 수를 보유해 국민 메신저로 불리는 '위챗(WeChat)' 어플리케이션 내의 QR 코드 스캔 기능으로 테이블의 QR 코드를 스캔하면 주문 화면으로 넘어 갑니다. 고객은 어플리케이션으로 원하는 메뉴를 주문하고, 결제도 어플리케이션 내 결제 모듈인 '위챗 페이(WeChat Pay)'로 계산합니다. 결제가 끝나고 주문한 음료가 나오면 직원이 테이블로 서빙해 줍니다. 이런 방식으로 주문해서 마실 수 있으니 계산대와 음료 픽업대가 있어야 할 공간에 고객이 앉을 수 있는 좌석을 두어 더 많은 손님을 수용할 수 있습니다.



모든 테이블에는 고유의 QR코드가 있어 고객들은 앉은 자리에서 음료를 주문할 수 있습니다. ⓒ시티호퍼스


고객이 주문과 결제를 했다면, 다음은 로봇의 차례입니다. 로봇은 바리스타와 바텐더를 대신해 고객이 주문한 음료를 제조합니다. 음료를 제조하는 로봇이 차지하는 공간은 사람 한 명이 설 정도의 면적입니다. 레시오의 로봇은 자유자재로 팔을 접거나 펴거나 움직이며 한 자리에서 컵을 세척하고, 음료를 제조하며, 서버에게 음료를 내어주는 역할까지 해냅니다. 같은 역할을 사람이 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인원과 더 복잡한 동선이 필요한데, 레시오에서는 로봇 한 대가 사람의 역할을 대신하니 공간의 효율을 개선할 수 있습니다.



고객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하자, 레시오 로봇이 컵에 얼음을 받아 커피 머신 앞에 가져다 놓습니다. ⓒ시티호퍼스



커피 머신이 커피를 다 내리자 레시오 로봇이 컵을 들어 서버에게 가져다 줍니다. ⓒ시티호퍼스


이처럼 로봇이 음료를 제조하니 사람이 서있을 공간뿐 만 아니라 재료가 보관되어 있을 공간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칵테일을 만들기 위해서는 기주가 되는 술이 필요한데, 레시오에는 80여 가지의 기주를 유휴 공간인 천장에 매달아 둡니다. 레시오 로봇이 천장 높이까지 닿을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술병들은 거꾸로 매달려 있어 버튼 하나로 필요한 양만큼만 술을 따를 수 있습니다. 보통의 바라면 바텐더들의 손이 닿는 공간에 기주가 놓여 있어 자리를 차지하지만, 로봇이 칵테일을 만드니 유휴 공간이던 천장에도 쓸모가 생깁니다.



레시오 로봇이 천장에 매달린 리큐어들 중 고객이 주문한 칵테일에 필요한 리큐어들을 셰이커에 담고 있습니다. ⓒ시티호퍼스



#2. 인간의 가치를 높이는 기술

로봇이 음료를 제조한다고 사람의 역할이 없어진 건 아닙니다. 단순히 반복하는 업무와 사람보다 로봇이 잘할 수 있는 일은 로봇이 하되, 로봇이 대체할 수 없거나 대체하면 품질이 떨어지는 영역은 사람이 합니다. 레시오의 로봇은 사람과 협업하는 로봇인 '코봇(cobot)'이기 때문에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고유한 업무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람이 더 잘하는 일은 무엇일까요? 바리스타나 바텐더의 역할 중 음료 제조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접객입니다. 레시오에서는 사람의 세심한 배려와 유연한 전문 지식이 필요한 고객 응대는 매장 직원이 하고, 단순 반복 업무에 해당되는 음료 제조에만 로봇이 관여합니다.


로봇이 음료를 제조하자, 속도는 더 빨라지고 정확도는 더 높아집니다. 게다가 로봇 하나가 바리스타와 바텐더의 역할을 겸하기 때문에 바리스타와 바텐더를 각각 고용하는 것에 비해 인건비를 확연히 줄일 수 있습니다. 초기에 로봇을 구입하는 비용이 들지만, 매달 고정적으로 바리스타와 바텐더 등 2명 이상의 전문 인력에게 지출하는 인건비를 고려하면 영업 기간이 늘어날 할 수록 이득입니다. 줄어든 인건비는 음료 가격에 반영됩니다. 아메리카노는 24위안으로 스타벅스보다 4위안(약 700원)이 저렴하고, 칵테일도 바 믹사토 대비 비슷한 메뉴가 4~10위안(약 700원~1천 700원) 정도 저렴합니다.




ⓒ시티호퍼스

가격뿐만 아니라 맞춤화 측면에서도 고객 혜택이 커집니다. 레시오가 위챗 어플리케이션으로 주문을 받다보니, 자연스럽게 고객 데이터가 쌓입니다. 그래서 레시오에서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고객이 좋아할 만한 음료를 추천합니다. 인공 지능에 의한 추천이기 때문에 주문이 많을 수록 더 정교해집니다. 단골 고객이 즐겨 찾는 음료를 기억해 뒀다가 매장 직원의 감으로 음료를 추천하는 것보다 더 효과적입니다.



#3. 시간의 가치를 높이는 기술

매장의 매출을 단순화시키면 객단가에 고객 수를 곱한 값입니다. 그래서 매출을 증가시키려면 객단가를 높이거나 고객 수를 늘려야 합니다. 이 중에서도 객단가를 높이기 위해선 고객에게 더 많은 제품을 또는 더 비싼 제품을 팔아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이 먹는 양은 평균에 수렴할테니 식음료 매장에서는 더 많은 제품을 판매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식음료 매장에서 객단가를 높이려면 더 비싼 제품을 팔아야 합니다. 또한 객단가와 별개로 고객 수를 늘리기 위해선 단위 시간당 방문객 수를 뜻하는 회전율을 높여야 합니다. 이처럼 매출을 끌어올리는 공식은 정해져 있는데, 막상 현실에 적용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레시오는 로봇을 활용해 공식을 현실에 적용할 방법을 찾았습니다.


우선 로봇이 바리스타와 바텐더의 역할을 모두 할 수 있으니, 객단가를 높일 수가 있습니다. 2인이 함께 레시오에 방문해 카페 음료 2잔과 베이커리류 1개를 주문하는 경우와 칵테일 2잔을 주문하는 경우를 비교해 보면 객단가의 차이가 확연히 보입니다. 카페 음료 메뉴의 평균 가격은 약 27위안(약 5천 원), 베이커리류의 평균 가격은 약 23위안(약 4천 원)으로 2인이 쓴 비용은 77위안(약 1만 4천원)입니다. 한편 칵테일 메뉴의 평균 가격은 약 71위안(약 1만 2천 원)으로, 안주를 시키지 않고 칵테일만 2잔을 주문해도 카페 고객 2인이 쓴 비용의 2배 가까운 금액이 됩니다. 낮 시간대야 칵테일을 찾는 고객이 많지 않겠지만, 저녁 시간에는 상황이 달라집니다. 저녁 시간대의 특성상 칵테일 메뉴를 주문하는 고객이 많으니, 객단가가 높아집니다. 매장 입장에서는 같은 시간을 영업하더라도 시간당 생산성이 올라갑니다.



레시오는 낮에는 카페, 저녁에는 칵테일 바를 지향합니다. ⓒ시티호퍼스


또한 레시오는 주문과 음료 제조에 걸리는 시간을 줄여 매장의 회전율을 높입니다. 고객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QR코드로 주문하기 때문에 주문을 하기 위해 기다리지 않아도 됩니다. 테이크 아웃 고객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레시오 웹사이트에 있는 테이크 아웃 전용 QR 코드로 매장에 도착하기 전부터 주문이 가능합니다. 그 뿐 아니라 음료 제조는 로봇이 해서 사람이 제조할 때보다 속도가 빠릅니다. 주문에서 음료 수령까지의 시간이 줄어들어 고객들은 더 빨리 매장을 나갈 수 있고, 그만큼 회전율도 개선됩니다. 여기에다가 QR 코드로 주문한 화면에는 현재 대기 중인 음료 잔 수와 예상 대기 시간이 표시가 되어 고객들은 대기 시간을 유용하게 쓸 수도 있습니다. 고객도 매장도 이득인 시스템입니다.



테이블 폭을 좁힌 간이 좌석 또한 회전율을 높이고 더 많은 고객들을 확보하는 요소입니다. ⓒ시티호퍼스



닮은 듯 다른 미래

로봇 바리스타나 로봇 바텐더의 이야기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닙니다. 포문을 연 건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카페 엑스(Cafe X)'였습니다. 로봇 바리스타가 커피를 만드는 카페 엑스는 무인화를 통해 커피를 신속하게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2017년에 오픈했습니다. 이후 로봇이 일하는 매장이 전세계적으로 확산되는 조짐과 징후가 보이더니, 2019에는 서울에도 라운지엑스(LoungeX), ‘카페봇(CAFE.BOT)’ 등 로봇 바리스타가 있는 식음료 업장들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라운지엑스에서는 로봇이 드립 커피를 만들고, 또 다른 로봇이 빵도 서빙해 줍니다. 카페봇에서는 커피를 내리는 드립봇, 칵테일을 제조하는 드링크봇, 케이크 위에 고객이 선택한 디자인의 데코를 그려 주는 디저트봇 등 3가지 로봇이 각자의 역할을 소화합니다. 여기에 미디어아트로 매장 공간을 꾸며 감성적인 즐길 거리도 함께 마련합니다. 매장에서 로봇이 일을 한다는 공통분모가 있지만 운영 효율성을 끌어올린다는 측면에서는 레시오와 다른 점이 있습니다.


보통의 로봇 매장들이 별개의 로봇이 각각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과 달리, 레시오에서는 하나의 로봇이 바리스타도 하고 바텐더도 합니다. 한 대의 로봇만 있으면 되기 때문에 초기 투자가 적게 들고, 로봇을 설치할 공간도 줄어들며, 운영의 복잡성도 낮아집니다. 또한 중국인의 약 80%가 위챗 페이나 알리페이와 같은 모바일 페이를 사용하고 있는 상황이라, 어플리케이션으로 주문과 결제를 간편화하고 인공 지능을 통한 추천 서비스까지 더하니 로봇이 일하는 매장에서의 고객 경험이 살아납니다.


레시오가 커피와 칵테일을 동시에 만들 수 있는 로봇을 설계한 건 운영 효율성 측면을 고려하기도 했지만, 목표하는 바가 있어서 이기도 합니다. 레시오의 창업자 개빈 패스로스(Gavin Pathross)의 궁극적 목적은 칵테일의 대중화입니다. 그래서 카페와 바를 결합해 칵테일 바의 문턱을 낮추고, 카페로 낮 시간의 활용도를 높여 운영비 부담을 줄이며, 양질의 칵테일을 합리적인 가격에 판매하기 위해 바리스타와 바텐더를 겸할 수 있는 로봇을 도입한 것입니다.


이처럼 로봇의 형태는 비슷할 수 있지만, 목적과 컨셉에 따라 로봇은 다른 양상으로 활용될 수 있습니다. 결국 로봇의 역할과 가치는 사람의 생각과 상상력이 결정합니다. 이제 막 존재감을 드러낸 로봇을 식음료 업계가 어떻게 진화시켜 나갈지 궁금해집니다.






Refe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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