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대한 동경이 만들어 낸, ‘아메카지’ 패션의 선구자

리얼 맥코이

2023.07.18

이 정도면 미친 거예요. 영화 속 주인공에 빠져, 그가 입고 나온 옷을 그대로 복각했어요. 취미로 복각한 정도가 아니에요. 아예 복각하는 브랜드를 만들었죠. 또한 영화 속 제품을 만들던 회사의 판권까지 사서 오리지널리티를 확보했어요. 심지어는 미국 영화사의 의상 라이센스까지 취득해 버려요. 스티브 맥퀸이 주연으로 출연한 영화 <대탈주>를 본 ‘오카모토 히로시’가 만든 ‘리얼 맥코이’ 이야기예요. 


2차 세계 대전의 패전국이 된 후, 일본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미국 문화를 동경하는 바람이 불었어요. 그래서 미국에서 건너온 ‘아메리칸 캐주얼’ 패션은 일본에서 점점 더 인기를 끌었죠. 일본인들은 이 새로운 스타일인 아메리칸 캐주얼을, 발음하기 편하게 바꿔 ‘아메카지’로 부르기 시작했어요. 아메카지에는 다양한 장르가 있는데요. 유독 두드러지는 장르가 ‘복각’ 브랜드예요. 오리지널을 그대로 재현하는 거죠. 


리얼 맥코이는 이러한 복각 브랜드의 선구자예요. 아메카지 패션 붐을 타고 인기를 끌었죠. 리얼 맥코이를 만든 히로시는 멋에 대한 감각은 있었지만 경영에 대한 감각은 없어 얼마 지나지 않아 망했죠. 하지만 리얼 맥코이는 지금까지도 최고의 복각 브랜드로 남아 있어요. 어떻게 된 일일까요? 이 사연에 일본의 복각 브랜드의 역사가 담겨 있어요.


리얼 맥코이 미리보기

 완벽한 자켓을 위해 브랜드를 만든 덕후

 덕후여서 가능했지만, 덕후라서 실패했다

 청바지 복각의 신이 되살려낸 리얼 맥코이

 살아있는 우상에 대한 여전한 동경, 토이즈 맥코이

 완벽한 복각은 그 자체로 문화가 된다




전쟁은 비극이에요. 패전국에게는 더 가혹하죠. 2차 세계 대전에서 패전한 일본도 마찬가지였어요. 미군의 폭격으로 나라는 쑥대밭이 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죠. 그러고는 미국의 지배가 시작됐어요. 그런데 실제로 마주한 미군들은 일본인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호의적이었어요. 그들은 아이들에게 껌이나 초콜릿을 나눠주면서 주민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죠.


그런 모습에서 일본인들은 힘의 차이를 실감했어요. 폐허를 재건해야 하는 자신들의 처지와 미군의 당당함이 비교되어 보였던 거예요. 그렇게 미국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거부감은 동경으로 바뀌었어요. 당장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자신들의 처지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 미국인들처럼 부유함과 여유로움를 갖기를 원했죠. 이때부터 일본인들은 일상 속의 사소한 영역까지 미국인들의 방식을 유행처럼 따르기 시작했어요.



1964년 도쿄의 미유키 족. 아이비 스타일을 갖춰 입음. ©아메토라



미국의 히피들을 따라한 일본 히피 패션. ©The Guardian



일본 아메카지 워크웨어 패션. 미국의 노동자들의 패션을 그대로 따라입음 ©Pinkoi


특히 패션 분야에서 미국인을 따라하는 것이 두드러졌어요. 미국의 점령이 끝나고, 여러 과정을 거쳐 경제를 회복한 일본은 점차 문화적인 발전에 눈을 돌렸죠. 이때부터 ‘Made in USA’ 카탈로그가 멋쟁이들의 필독서가 됐어요. 게다가 당시에 ‘테이크 아이비’, ‘멘즈 클럽’, ‘뽀빠이’ 같은 패션 잡지들이 생겨나면서 미국의 패션이 전파되기 시작했어요.


1960년대부터는 미국 아이비리그 학생들의 패션을 따라하는 미유키 족이 생겼어요. 도쿄에서 좀 잘 나간다 하는 젊은이들은 대부분 셔츠에 타이를 매고 로퍼를 신고 다녔죠. 이후로도 미국 사람들이 입는 워크 웨어, 스포츠 웨어, 군복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미국의 패션을 따라하는 젊은이들이 늘어났어요. 미국에서는 너무나 평범하고 캐쥬얼한 옷들이 일본에서는 하이 패션이 된 거예요.



Made in USA 카탈로그. 일본을 수입해 오는 미제 상품들의 목록이 사진과 함께 수록되어 있어서 미국의 패션을 따라하고 싶어하는 당시 일본 멋쟁이들의 필독서였음. ©The Armoury



(좌) 테이크 아이비 표지. 1965년 일본에서 초판 인쇄된 이후, 많은 일본 멋쟁이들의 패션 교과서가 되었음. 2010년대 아메카지 패션이 다시 주목을 받으면서 재인쇄됨 / (우)테이크 아이비에 실린 당시 아이비리그 학생들의 패션. 미유키 족들이 따라하고 싶어했던 패션이 이 모습임 ©Amazon



7, 80년대 출간된 멘즈클럽(좌)과 뽀빠이(우) 잡지. 모두 아이비 패션을 다루고 있음 ©Pinterest


미국에서 건너온 ‘아메리칸 캐주얼’ 패션은 점점 더 일본에서 인기를 끌었어요. 시간이 흐르면서 일본인들의 체형에 맞게 형태가 조금씩 변하고, 일본의 감성이 섞이기 시작하면서 독창적이고 새로운 장르로 진화했죠. 일본인들은 이 새로운 스타일인 아메리칸 캐주얼을, 발음하기 편하게 바꿔 ‘아메카지 (アメ・カジ)’로 부르기 시작해요.


아메카지에는 다양한 장르가 있는데요. 일본에서 유독 두드러지는 장르가 있어요. 바로 ‘복각’ 브랜드예요. 일본의 복각 브랜드들은 사소한 디테일까지 놓치지 않는 세밀함과 이제는 쉽게 찾을 수 없는 과거의 기술까지 복원해서 세계적으로 꽤 큰 인기를 끌고 있어요. 그렇다면 패션 분야에서 말하는 ‘복각’이라는 건 어떤 개념일까요?


복각의 사전적 의미는 ‘판각본을 거듭 펴내는 경우에 원형을 모방하여 다시 판각함’이에요. 쉽게 말하면 예전의 것을 그대로, 똑같이 만들어내는 거예요. 이 설명을 들었을 때, 한 가지 의문이 생길 수 있어요. ‘똑같이, 그대로 만든다면 카피나 표절이랑 다를게 뭐지?’란 궁금증이죠.


복각은 카피와 차이가 있어요. 복각의 경우에는 이미 상표권이 풀렸거나 현재는 사라진 회사들의 제품을 따라하는 경우가 많아요. 또한 한 회사만이 그 아이템을 복각하는 것이 아니라 산업 전반적으로 동일한 움직임이 일어나는 케이스를 복각으로 볼 수 있어요. 사장된 기술들과 공정을 다시 살리기 위해 많은 연구와 시간을 투자하는 만큼 매니아들에게 인정을 받고 있죠. 특히 일본에서 발전한 복각 브랜드들은, 이제는 구할 수 없는 빈티지가 되어 버린 미국의 다양한 의류들을 재현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어요.


복각 브랜드들이 중요시 여기는 것은 ‘오리지널의 디테일들을 얼마나 챙길 수 있느냐?’예요. 과거 원본 아이템의 원단을 복원하는 것은 당연하고요. 그 안에 쓰인 작은 리벳, 지퍼, 스티칭까지 전부 똑같이 만드는 걸 목표로 하고 있죠. 산업화가 시작된 이후 미국에서 더 이상 쓰지 않게 된 방직기 거의 대부분을 일본에서 구입해 지금까지도 사용하고 있다고 하니까 어느 정도로 복각에 진심인지 느낌이 오시죠?


‘리얼 맥코이(The Real McCoy's)’는 이런 복각 브랜드 중에서도 완벽한 복원에 집중하는 브랜드예요. 일부 사람들은 ‘변태’, ‘환자’ 라는 수식어까지 붙여가면서 설명하죠. 그렇다면 리얼 맥코이라는 매니악한 브랜드는 어떻게 만들어졌고, 지금까지 그 인기를 유지하는 비결이 뭘까요?



완벽한 자켓을 위해 브랜드를 만든 덕후

1953년에 태어난 오카모토 히로시는 어릴 때부터 특이한 취향을 가지고 있었어요. 7살 많은 형의 취향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에요. 히로시의 형은 멋 부리기를 좋아하는 ‘깔롱쟁이’였어요. 당시 여느 멋쟁이들처럼, 아메카지 패션을 좋아고, 스포츠카와 바이크를 타고 다녔죠. 그래서 자연스럽게 히로시도 또래 친구들이 조립 로봇이나 피규어를 가지고 놀 때, 형의 옷과 바이크를 뜯어보고 놀았어요. 이때부터 옷과 바이크는 히로시의 평생 취미가 되죠. 일흔이 넘은 지금도 함께할 정도로요.



자신의 우상 스티브 맥퀸이 프린팅된 티셔를 입고 있는 오카모토 히로시 ©Toys McCoy


형을 따라 할리우드 영화도 자주 보던 히로시는 10살이 되던 해, 평생을 바치게 될 우상을 만나게 돼요. 바로 ‘스티브 맥퀸’이었죠. 많은 영화들 중에서도 히로시의 마음을 사로잡은 작품은 ‘대탈주’였어요. 2차 세계 대전을 배경으로 한 영화에서 스티브 맥퀸은 미공군 파일럿인 힐츠 대위를 연기했어요. 독일군 수용소에서 탈출을 시도하는 힐츠 대위와 동료들을 다룬 실화 바탕의 영화라는 점도 매력적이었지만, 히로시가 빠져든 건 힐츠 대위의 옷차림이었어요.



(좌) 스티브 맥퀸이 바이크로 울타리를 넘는 영화 ‘대탈주’의 하이라이트 장면 / (우) 영화 ‘대탈주’ 속 스티브 맥킨. 오랜 시간 입은 흔적이 보이는 A-2 자켓이 포인트 ©The Great Escape


미 공군 파일럿이라는 설정 때문에 맥퀸은 영화 속에서 A-2 자켓을 주로 입고 나와요. 미 공군 파일럿들에게 보급된 항공 자켓이죠. A-2는 하계용 자켓의 코드명인 A와 두 번째 버전이라는 의미의 2가 합쳐진 이름이에요. 이 자켓은 말가죽을 통으로 사용해 만들어서 입는 사람에 맞게 늘어나고 색도 바래죠. 영화 속에서 맥퀸이 입은 자켓은 자연스럽게 바랜 빛깔과 몸에 알맞게 걸쳐진 실루엣으로 히로시의 마음을 훔쳤어요.


히로시는 맥퀸의 A-2 자켓을 구하고 싶어서 여기저기 돌아다니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아무리 찾아다녀도 맥퀸이 입고 있는 자켓의 페이딩과 실루엣을 가진 자켓은 찾을 수 없었어요. 결국 중학생이었던 히로시는 집 앞 전당포에서 허름한 가죽 자켓 2개를 사서 집으로 돌아왔어요. 그리고 이 자켓들을 뜯고 다시 재조합해서 영화 속 자켓과 비슷하게 리폼해서 입고 다녔죠.


이후 도쿄로 놀러간 히로시는 미제 밀리터리 빈티지 숍에서 진짜 A-2 자켓을 보고 자신이 만든 자켓은 조잡하다고 느꼈어요. 이때부터 미군 항공 자켓에 더욱 빠진 히로시는 여기저기서 빈티지 항공 자켓들을 사 모으면서 공부를 시작했어요. 직접 발품을 팔아서 모은 빈티지 가죽 자켓들을 뜯어보고 재조합해보면서 점점 제조 기술이 향상됐죠. 그리고 이 과정에서 노즈 아트를 배우게 돼요. 노즈 아트는 세계 대전 당시 공군 항공기나 항공 자켓에 부대 마스코트를 그려 넣는 걸 말해요. 주로 엔진이 있는 항공기 앞 쪽에 그려서 노즈 아트라고 불렸어요.


히로시는 노즈 아트를 배우면서 키운 그림 실력으로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게 돼요. 점점 돈을 벌면서 히로시의 덕후 기질은 꽃을 피우기 시작했죠. 가츠동 한 그릇에 300엔이던 시절에 월급을 탈탈 털어 84만엔이라는 거금을 주고 할리데이비슨 바이크를 사기도 했고요. 또한 오토바이에 대한 열정을 그림으로도 불태운 히로시는 나고야 전시회에 오토바이 일러스트를 출품했는데요. 이 일러스트가 입상하면서 패션 잡지 ‘뽀빠이’에 표지 일러스트레이터로 취직까지 했어요.



히로시가 그린 일러스트레이션. 야구를 하고 있는 미공군 조종사의 모습임 ©Ameba


본격적으로 직업을 가지게 됐지만 여전히 히로시의 삶에선 바이크와 자켓이 우선이었어요. 나고야에서 도쿄까지 무려 300km가 넘는 거리를 가죽 자켓을 입고 할리데이비슨 바이크를 타고 통근하는 게 히로시의 일상이었죠. 일과 로망 사이에서 갈등하던 히로시는 결국 자신의 마음의 소리를 따르기로 했어요. 진정한 A-2 빈티지 자켓을 찾아 미국으로 떠나기로 결심한 거예요. 그는 밤을 새우는 것을 마다하지 않고 1년치 표지 일러스트레이션을 미리 그려 제출한 후, 곧바로 미국으로 떠났어요.


1년간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면서 수많은 빈티지 항공 자켓을 구했지만 끝내 히로시가 원하는 맥퀸의 자켓은 찾을 수 없었어요. 1987년에 일본으로 돌아온 히로시는 직장 상사이자 뽀빠이 잡지 편집장인 이시카와 지로에게 자신의 아쉬운 마음을 털어놓았죠. 그러자 지로는 뽀빠이에 항공 자켓을 주제로 특집 기사를 내자고 제안했어요. 게다가 회사의 특별 프로젝트로 직접 A-2 자켓을 300벌 만들어서 팔아보라고 했죠. 


프로젝트는 일사천리로 진행됐고, 자켓을 살 사람들을 찾기 위해 사전 예약 공고를 올렸어요. 옷이 언제 완성된다는 구체적인 스케줄도 없이 단순히 ‘300벌 만들어 보겠습니다.’ 라고 계획만 발표했을 뿐인데, 300벌 전량이 매진돼버려요. 히로시는 한풀이 하듯이 자켓 제작에 몰두했고 높은 퀄리티의 A-2 자켓을 만들어냈어요.


히로시는 이 사건을 계기로 자신과 같은 취향을 가지고 있고, 높은 퀄리티의 항공 자켓을 사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확인했어요. 그와 같은 일본의 밀리터리 패션 애호가들은 대부분 미군에 대한 로망을 가지고 있었죠. 하지만 너무 큰 미군의 오리지널 빈티지 모델들은 일본인의 체형에는 맞지 않았어요. 게다가 A-2 항공 자켓은 매물 자체를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였죠. 히로시는 동양인들의 몸에도 촥 감기는 항공 자켓을 가지고 싶은 시장의 니즈를 꿰뚫고는, 1988년에 리얼 맥코이를 설립했어요.



덕후여서 가능했지만, 덕후라서 실패했다

리얼 맥코이는 항공 자켓을 복각하는 전문 브랜드예요. 덕질을 바탕으로 브랜드를 만든 거죠. 그러고는 리얼 맥코이라는 이름에서도, 과거의 자켓을 진짜처럼 복각하겠다는 진정성을 강조했어요. McCoy라는 단어는 영어권 국가에서 ‘진짜, 진퉁’ 정도의 의미로 사용되는 단어인데요. 이 앞에 한 번더 Real을 붙이면서 ‘진짜 진짜!’라는 뜻의 이름을 만들었거든요. 리얼 맥코이가 바로 일본의 밀리터리 복각 브랜드의 시초예요.


히로시 본인이 가장 좋아하던 A-2 자켓을 만들기 시작한 리얼 맥코이는 자연스럽게 그 품질과 재현률을 인정받아 인기를 끌었어요. 1920년대 말부터 세계 대전 종전 직후까지 생산된 A-2 자켓의 다양한 버전들을 모두 연구하고 각 버전에 맞는 제품들을 출시했죠. 가죽도 고증에 맞게 말가죽을 사용했어요. 일본에서 생산되는 최상급 말가죽만을 고집했고요. 부속품들도 3~40년대에 쓰이던 부속품을 그대로 복각해서 썼어요. 흥미로운 점은 오리지널 A-2 자켓을 생산하고 군에 납품한 회사 중 하나인, 이제는 생산을 멈춘 러프웨어 사의 판권까지 취득해서 복각 브랜드로서의 오리지널리티를 높였죠.



택에 오리지널 제작사 Rough Wear사의 브랜딩이 찍혀있는 것을 볼 수 있음 ©The Real McCoy’s


이렇게 만들어진 완벽한 자켓에 일러스트레이터였던 히로시의 장기를 살려 미군들의 자켓처럼 노즈 아트도 그려넣었어요. 많은 조종사들이 자신들의 취향과 개성을 담아 자켓을 꾸몄던 것까지 고증한 거예요. 보통의 경우 재킷 앞 부분에는 성공적인 급습 장면을, 뒷면에는 핀업걸이나 자신이 좋아하는 그림을 그려넣었죠. 히로시가 그린 높은 퀄리티의 노즈 아트는 브랜드 이미지가 되어서 리얼 맥코이 항공 자켓의 매력 포인트로 자리잡았어요.



실제 조종사들의 자켓에 그려진 노즈 아트 ©Oncuration



오카모토 히로시가 직접 그린 노즈 아트 ©Toys McCoy


완벽한 고증과 상상을 초월하는 품질로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게 되자, 히로시는 복각 영역을 넓히기로 해요. 리얼 맥코이 산하에 조 맥코이, 8 아워 유니온, 볼 파크, 아웃도어스맨 스포츠웨어 등 다양한 라인을 만들어서 밀리터리뿐만 아니라 워크웨어나 캐주얼한 의류까지 복각하기 시작하죠. 또한 1930년대 그가 좋아하는 바이크 의류를 만들던 회사 ‘부코’의 판권을 사들여서 바이크용 가죽 자켓도 만들었어요. 이 자켓도 퀄리티로 인정을 받았죠. 할리 데이비슨과 파트너십을 맺기도 하고 인디언 바이크에는 가죽을 공급하기도 할 정도였으니까요.


덕후 정신을 가득 담은 라인업은 여기서 끝이 아니에요. 1996년에 설립한 토이즈 맥코이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장난감을 만드는 라인이었어요. 그에게 무한한 영감을 주는 우상, 스티브 맥퀸의 피규어를 만들었죠. 금방이라도 ‘대탈주’ 영화 속에서 튀어나온 것만 같이 사실적이었어요. 이처럼 리얼 맥코이는 히로시가 가진 아메카지 패션과 스티브 맥퀸에 대한 동경을 녹여내어 과거의 미국 문화를 복각한다는 강력한 브랜드 정체성을 만들어냈어요.



토이즈 맥코이 스티브 맥퀸 ‘대탈주’ 피규어 ©Steve McQueen Online ©Lulu Berlu


하지만 이러한 팬심과 무리한 라인업 확대는 독이 됐어요. 리얼 맥코이의 색깔을 제대로 알리기도 전에 라인업이 늘어나면서 브랜드 중심축이 흔들렸어요. 여기에다가 높은 복각률과 퀄리티에 집착하는 브랜드 정체성도 문제가 됐어요. 


예를 들어 볼게요. 주력 상품 A-2 자켓의 주재료인 최상급 말가죽은 일본 내에서 소량만 생산되다 보니 갈수록 가격이 높아졌어요. 게다가 복각을 위해 부속품들을 자체적으로 생산해야 했고, 꼼꼼한 생산 공정까지 거치다보니 제조 원가가 높아졌죠. 자연스럽게 자켓의 가격은 매니아들조차 접근하기 어려운 수준까지 올라버렸어요. 복각률은 높였지만 결국 상품성은 점점 떨어졌던 거예요.


옷을 사는 것도 어려웠지만 사고 난 이후도 문제였어요. 복각을 위해 사용한 말가죽은 다른 가죽들보다 두껍고 억세서 착용감이 불편했어요. 자켓을 벗어 놓으면 마치 마네킹이 입은 것처럼 그대로 옷이 서있을 수 있는 정도였죠. 이렇게 억세다 보니 착용이 불편해서 매니아들이 원하는 빈티지한 가죽의 질감을 내기까지 오랜 시간 옷을 입고 길들여야 했어요.


이런 이유로 리얼 맥코이를 찾는 사람들이 줄어들기 시작했어요. 더군다나 일본에 다른 복각 브랜드들이 등장했고, 가격 경쟁력을 갖춘 버즈릭슨 같은 복각 대중화 브랜드까지 나타나면서 상황은 악화됐어요. 점점 힘들어지는 상황에 쐐기를 박은 건 히로시의 과도한 팬심이었어요. 


밀리터리 수집광이었던 그가 폭격기를 구입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어요. 평소에도 일본 본토 공습에 참여한 미 공군 제 8항공군을 흠모했던 히로시는 구설수에 오르내렸어요. 그러던 중, 히로시가 전쟁 당시에 일본 공군을 상대로 전공을 세웠던 미공군의 B-17 기종을 구입했다는 소문이 퍼져버렸죠. 


아무리 미국에 대한 동경이 퍼져 있었다고 해도, 아픈 역사를 상징하는 폭격기를 샀다는 소문에 민심은 나락으로 떨어졌어요. 결국 2001년, 리얼 맥코이는 11억 엔 (한화  110억 원)의 빚을 지고 히로시의 어음사취 문제까지 겹치면서 도산하게 됐어요. 덕후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브랜드가 결국 덕후였기 때문에 망하게 된 거예요.



청바지 복각의 신이 되살려낸 리얼 맥코이

그렇다면 2001년에 도산했던 리얼 맥코이가 어떻게 지금까지 생산되고 밀리터리 복각 브랜드 정상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걸까요? 이를 알아보기 전에 잠깐 다시 아메카지 이야기를 해볼게요. 아메카지 장르 안에서 단연 최고 인기를 끌었던 아이템은 청바지였어요. 질긴 셀비지 원단으로 만들어 입을수록 은은하게 색이 빠지는 미제 청바지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어요. 


하지만 1970년대부터 미국에 본격적으로 자동화 공장이 세워지면서 청바지의 생산 공정도 바뀌게 되었어요. 자연스럽게 공정이 단순해지면서 셀비지 데님 특유의 느낌이 점점 사라지게 됐죠. 막상 미국인들은 이 변화에 빠르게 적응했지만, 일본의 멋쟁이들은 충격에 빠졌어요. 더 이상 고품질의 셀비지 데님을 수입할 수 없게 됐다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했죠.


이 때, 구원자들이 나타났어요. 미제 옷을 판매하는 업체들이 가장 많았던 오사카에서 미국의 셀비지 데님을 복원하는 업체들이 우후죽순 생겨났고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다섯 개의 회사를 ‘오사카 5’라고 불렀어요. 시티호퍼스에서 소개했던 청바지 브랜드 에비수도 오사카 5 중 하나예요. 이들은  높은 퀄리티로 미국 셀비지 데님을 복각하는 데에 성공해서 지금까지도 세계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고 있죠. 오카모토 히로시의 리얼 맥코이가 ‘밀리터리’라는 복각의 한 축을 만들어냈다면, 오사카 5는 ‘데님’이라는 복각의 또 다른 중요한 흐름을 개척한 거예요.



오사카 5 ©Grailed


여기서 흥미로운 점이 있어요. 오사카 5의 생산과 제작 자문은 단 한 사람이 맡았죠. 바로 청바지 복각의 살아있는 교과서, 츠지모토 히토시에요. 히토시는 한 인터뷰에서 “의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발명은 데님 청바지예요. 청바지는 세상을 지배한 아이템이에요.”라고 말할 정도로 데님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복각했어요. 데님 복각 브랜드들의 사부이자 선구자였던 히토시가 도산한 리얼 맥코이를 살린 장본인이에요.



츠지모토 히토시 ©The Wall Street Journal


1959년, 오사카에서 태어난 츠지모토 히토시는 어렸을 때부터 또래보다 키가 컸어요. 큰 체격 덕분에 고등학교에서 미식축구 선수로 활동하기도 했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미국 문화를 동경하게 된 히토시는 18세가 되던 해에 미국으로 40일간 여행을 떠났어요. 미국을 열심히 돌아다니면서 자신의 취향에 맞는 미군 빈티지 의류를 사 모았어요. 히로시와 히토시 모두 미군 의류에 대한 열정은 비슷했지만 다른 점이 있었어요. 히로시가 자신의 덕질을 위해 콜렉션을 했다면, 사업가 기질이 강한 히토시는 자신이 모은 빈티지 의류로 사업을 하고자 했어요.


일본으로 돌아온 히토시는 오사카에 위치한 아메카지의 성지, 아메리카무라에 빈티지 수입 판매 소매점을 내게 돼요. 히토시가 미국에서 가져온 미군 빈티지 의류들은 A-2 자켓보다 훨씬 뒤에 나온 모델들이었어요. 그래서 가죽이 아니라 나일론 소재로 만들어진 옷이 많았죠. 히토시는 이 점을 활용해서 가게 이름을 NYLON이라고 짓고, 본인도 Mr. Nylon이라는 예명을 지어서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했어요.


아메카지 열풍에 힘입어 히토시의 사업은 순항했어요. 하지만 점점 물류비가 높아져 더 이상 미국에서 수입 판매를 해서는 수익을 내기가 어려워졌어요. 위기가 찾아왔지만 이 때부터 히토시의 사업가 기질이 힘을 발휘하기 시작해요. 히토시는 당시 절정에 달한 일본 직물 기술의 우수성을 믿고 본인이 직접 아메카지 의류를 만들어 판매하기로 했죠.


그는 나일론(Nylon)이라는 브랜드 이름으로 항공 자켓, 샴브레이 셔츠, 루프휠 맨투맨, 데님까지 다양한 아메카지 아이템들을 팔았고, 퀄리티가 높아서 인기도 많았죠. 특히 이 때 업그레이드시킨 데님 제작 기술이 정말 뛰어나서 오사카 5의 생산 자문까지 맡을 정도의 실력을 갖추게 됐어요.


성공적으로 나일론 편집숍을 운영하던 히토시는 리얼 맥코이에서 만드는 제품들도 입점시켜서 판매하고 있었어요. 가게가 위치한 고베 시에서 리얼 맥코이 총판을 맡고 있었죠. 그런데 2001년에 리얼 맥코이가 도산하자 손님들은 히토시를 괴롭혔어요. 리얼 맥코이는 왜 망한거냐, 언제 다시 옷을 만들거냐, 아직 리얼 맥코이 옷 못 샀는데 망하면 안된다 등 손님들의 끊임없는 질문에 질려버린 히토시는 리얼 맥코이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죠. 긴 시간 동안 면밀하게 연구한 끝에 히토시는 리얼 맥코이라는 브랜드를 본인이 살려보겠다는 큰 결심을 하게 돼요.


2001년, 리얼 맥코이 재팬(The Real McCoy’s Japan)을 인수한 히토시는 우선 리얼 맥코이 인터내셔널(The Real McCoy’s International)로 이름을 바꿨어요. 그러고는 본격적으로 체질 개선을 시작해요. 가장 먼저 손 댄 문제는 바로 리얼 맥코이의 시그니처, 가죽 자켓이었어요. 


높은 원가를 낮추기 위해 일본산 말가죽에 집착하지 않고 폴란드에서 말가죽을 수입해 단가를 낮췄어요. 자체 가공 기술을 통해 기존에 뒤지지 않는 퀄리티로 만들어서 소비자들의 니즈도 충족시켰죠. 자켓을 만들고 남은 자투리 가죽으로는 악세사리를 만들어서 수율을 높였고요. 이렇게 리얼 맥코이의 시그니처인 가죽 제품의 퀄리티를 지키면서도 비용 문제를 해결해낼 수 있었어요.



잉여 말가죽을 활용한 악세서리 ©The Real McCoy’s


히토시는 자신이 자문을 했던 오사카 5 네트워크를 활용해서 가죽 자켓의 착용감 문제도 해결했어요. 다섯 브랜드 대표들의 자문을 통해서 고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기존의 자켓 보다는 넉넉한 핏을 만들어냈죠. 그리고 오사카 5 브랜드들의 청바지와 어울릴 법한 리얼 맥코이 제품을 골라 다양한 매체를 통해 홍보하면서 새로운 팬들이 리얼 맥코이에 입문할 수 있게 유도했어요. 이처럼 완벽한 고증보다는 고객의 니즈에 집중한 이유에 대해서 히토시는 이렇게 말했어요.


“원본과 100% 일치하는 제품을 만드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성공적인 복각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모든 디테일을 똑같이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 그 디테일을 바꿀지를 아는 것입니다. 리얼 맥코이는 더 멋진 것을 만듭니다. 과거의 핏은 무기나 장비들을 가지고 다녀야 하는 군인들을 위한 것이었기 때문에 현대에서는 핏을 수정하는 것이 더 올바른 복각이라고 생각합니다.”


시대적, 기능적 변화를 고려하지 않고 과거의 제품에 집착하기 보다는 현재 소비자들의 삶에 맞는 제품을 만들어내는 방향으로 복각의 개념을 진화시킨 거예요. 하지만 여전히 가죽 제품의 가격은 입문자들에게는 부담되는 수준이었어요. 가죽 제품 외에 퀄리티가 높으면서 가격은 좀 더 저렴한 제품이 필요했죠. 히토시는 자신에게 익숙한 소재인 나일론으로 답을 찾았어요. 가죽보다 저렴하고 가공도 쉬우면서 착용감도 부드럽기 때문에 새로운 제품에 딱 맞았죠. 나일론 소재는 복각 브랜드의 정체성에도 문제되지 않았어요. 역사적으로 고증해봐도, 가죽 이후에 나일론이 항공 자켓의 소재로 쓰였거든요.


리얼 맥코이는 철저히 역사적인 고증을 지키면서 MA-1, L-2A 등 다양한 나일론 자켓들을 만들어냈어요. 새로 출시한 나일론 자켓들은 밀리터리 복각 세계에 발을 들이는 신규 팬들에게 괜찮은 선택지가 되었죠. 나일론 자켓의 성공 이후, 리얼 맥코이에서는 가죽과 나일론 이외에도 데님, 코튼, 울 등 다양한 소재들을 사용해 역사적인 의류들을 고증한 라인업을 만들어 냈어요. 이를 통해서 더 많은 팬들을 유입시키고 동시에 마진율도 개선할 수 있었죠.



(좌) L-2A 자켓 / (우) MA-1 자켓 ©The Real McCoy’s


히토시는 과하게 확장했던 라인들도 정리했어요. 리얼 맥코이, 조 맥코이, 부코 등 세 브랜드만 남겼죠. 밀리터리는 리얼 맥코이, 워크웨어와 캐주얼은 조 맥코이, 라이더는 부코. 각 브랜드 별로 정체성이 뾰족해지자 각 영역을 좋아하는 덕후들을 더 쉽게 유인할 수 있었어요. 특유의 가공 기술과 빈티지한 감성을 극대화해서 고객들을 진성 팬으로 만들었죠. 


히토시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어요. 사업가 기질을 발휘해서 쓰러져가던 리얼 맥코이를 다시 복각 브랜드 정상 자리에 올려두기 위해 노력했죠. 복각의 대중화를 노리는 버즈릭슨, 페로우즈 등 상대적으로 저가형 브랜드들이 생기면서 경쟁이 치열해졌지만, 리얼 맥코이는 가격을 낮추거나 퀄리티와 타협하지 않았어요. 이를 통해 오히려 ‘밀리터리는 돌고 돌아 리얼 맥코이’라는 견고한 브랜드 이미지를 만들어냈죠.


‘밀리터리 복각 끝판왕’이라는 리얼 맥코이의 이미지를 강화하기 위해 히토시는 판매 전략도 새롭게 짰어요. 대형 쇼핑몰에 입점하는 저가형 브랜드들과는 다르게 직영점을 중심으로 판매하면서 쉽게 구할 수 없는 물건이라는 인식을 줬어요. 당연히 세일도 하지 않고요. 예를 들어 8년의 연구 끝에 출시한 엔지니어 부츠의 경우에는 한 달에 스무 켤레만 생산해서 돈 주고도 구할 수 없는 부츠가 됐어요. 이렇게 생산량 관리하고 유통 채널을 제한해 브랜드의 가치를 높여온 거예요.



리얼 맥코이 R&D 창고에 놓여있는 엔지니어 부츠. 적은 생산량으로 구하기 힘든 레어템이다 ©Ropedye


과거의 리얼 맥코이는 가격과 상품성을 고려하지 않고 오직 ‘멋’만을 추구한 브랜드였어요. 반면 히토시가 만들어낸 새로운 리얼 맥코이는 기존의 멋을 지키면서도 비즈니스 감각을 한 스푼 섞었죠. 그렇게 밀리터리 복각 패션의 팬층을 성공적으로 확대시켰어요. 히토시의 심폐소생술로 하드코어한 매니아들의 영역이었던 리얼 맥코이가 보다 대중화될 수 있었고, 현재는 최고의 복각 브랜드 자리에 올라섰죠.



살아있는 우상에 대한 여전한 동경, 토이즈 맥코이

다행히도 리얼 맥코이는 부활해서 최고의 브랜드가 됐어요. 그런데 정작 창업자인 오카모토 히로시는 어디로 갔을까요? 망해버린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면서 잠적했을 수도 있지만 최고의 덕후 히로시는 여전히 자신만의 브랜드를 전개하고 있어요.


(구)리얼 맥코이 산하에 있던 라인 중에서 토이즈 맥코이 기억하시죠? 토이즈 맥코이는 히로시의 사심을 가득 담아 피규어를 만드는 라인이었어요. 리얼 맥코이를 츠지모토 히토시에게 넘길 당시에, 히로시는 토이즈 맥코이만은 스스로 운영하기로 했어요. 히토시가 새롭게 탄생시킨 리얼 맥코이와는 아예 별개로 독자적인 길을 걷게 된 거죠.


히로시는 처음엔 토이즈 맥코이를 세웠던 원래의 의도와 같이 열심히 피규어를 만들었어요. 자신의 팬심과 일러스트레이션 능력을 합쳐서 높은 퀄리티의 피규어를 선보였죠. 하지만 히로시가 만들었던 오리지널 리얼 맥코이를 그리워한 팬들은 그에게 다시 옷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어요. 또 히로시가 만든 피규어가 입고 있는 옷을 실제로 입어보고 싶다는 사람들도 많아지면서 그는 토이즈 맥코이라는 이름을 걸고 다시 옷을 만들기 시작해요.


패션에 재도전하면서 히로시는 자신의 복각 방향성을 재설정해요. 밀리터리 복각 브랜드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타이트한 조종사들의 핏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에 집중했던 과거의 방향성을 버리기로 결심했죠. 그 대신 초심으로 돌아가 자신을 A-2 자켓에 몰두하게 만들었던 영화 속 스티브 맥퀸의 실루엣을 복각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요. 밀리터리 복각 브랜드에서 스티브 맥퀸 복각 브랜드로 살짝 방향을 바꾼 거예요.


스티브 맥퀸은 영화 속에서 실제 조종사들처럼 타이트한 자켓을 입지 않았어요. 조금 더 움직임이 자유롭고 여유로운 핏의 A-2 자켓을 입고 있었죠. 히로시는 이 핏을 만들기로 결심하고 조금 더 여유로운 핏으로 자켓을 제작하면서 과거의 문제를 자연스럽게 해결했어요. 이렇게 해서 2005년에 새롭게 만든 A-2 자켓이 탄생했죠. 이름부터 ‘대탈주’의 주인공, 힐트 대위의 이름을 따서 ‘A-2 V.HILTS’ 라고 지어졌어요. 이 자켓은 큰 인기를 끌었고, 맥퀸이 입고 있던 바지와 상의까지 그대로 복각해서 매년 대탈주 시리즈로 출시되고 있어요.



영화 ‘대탈주’ 속 스티브 맥퀸. 넉넉한 품의 A-2 항공 자켓과 색이 바랜 공군의 ‘에어 포스 블루’ 스웻셔츠, 2차 대전 당시의 오피스 팬츠, M-43 서비스 부츠까지 ‘대탈주’ 세트로 불림 ©The Great Escape



영화 ‘대탈주’ 속 스티브 맥퀸은 긴팔이었던 스웻셔츠 소매를 가위로 잘라 입고 있음 ©The Great Escape



(좌) 영화 속 맥퀸의 스웻 셔츠처럼 소매를 가위로 잘라 거친 단면을 보여주는 토이즈 맥코이 정식 제품 / (우) 자르지 않은 긴팔 버전도 함께 판매하고 있음 ©Toys McCoy



‘대탈주’ 세트로 함께 판매되는 오피스 팬츠 복각 제품 ©Toys McCoy


여기서 끝났다면 토이즈 맥코이는 단순한 덕후 브랜드에 그쳤을 거예요. 하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끝까지 파고드는 히로시는 더 정교한 복각을 위해 노력했어요. ‘대탈주’에 사용됐던 자켓을 그대로 복각한다는 목적을 위해 히로시는 영화사의 의상 라이센스를 취득해버려요. 그래서 토이즈 맥코이의 A-2 자켓에는 할리우드 소품실의 의상 분류 코드인 랏(Lot) 번호가 찍혀져 있어요. 쉽게 말해서 스티브 맥퀸이 ‘대탈주’를 촬영할 당시 입었을 자켓을 그대로 부활시킨 거죠.



토이즈 맥코이 A-2 V.HILTS 자켓에 찍혀있는 할리우드 소품실 랏 넘버 ©Toys McCoy


이 A-2 자켓은 두 가지 버전으로 판매하고 있어요. 하나는 멀끔하게 새로 만들어진 일반 버전이에요. 나머지 하나는 영화 속 할리우드 소품실에서 받아낸 빈티지 샘플과 똑같이 여기저기 헤진 모습을 재현한 버전이죠. 얼마나 정교하냐면, 히로시가 직접 할리우드 빈티지 샘플과 같은 자리, 색상, 질감 그대로 가죽의 까짐과 주름을 수제로 구현했어요. 그러고는 맥퀸의 별명을 따서 ‘쿨러 킹’ 가공 버전이라고 이름 붙였어요.



토이즈 맥코이 A-2 V.HILTS 자켓 ’쿨러 킹’ 가공 버전 ©Toys McCoy



직접 ‘쿨러 킹’ 버전 가공을 하고 있는 오카모토 히로시 ©VISLA 매거진


히로시는 영화 속에서 맥퀸이 사용한 가방과 부츠, 장신구까지 그대로 만들어요. 심지어는 맥퀸이 촬영 대기 현장에서 입었다고 알려진 버팔로 셔츠까지도 복각해서 판매하고 있어요. 빈티지 소품이 남아있는 경우에는 그 소품을 재현했지만, 빈티지 소품을 구하지 못 하는 경우도 많았어요. 그런 때는 영화를 몇 백 번 돌려보고, 영화와 관련된 포스터, 책, 촬영 현장 사진까지 아이템에 관련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모든 자료를 참고해 눈짐작으로 만들었어요.



(왼쪽 위 부터 시계방향으로) 맥퀸이 영화 속에서 신은 부츠 복각 / 극중 힐츠 대위가 아내에게 받은 은 펜던트 복각 / 맥퀸이 촬영 대기 현장에서 즐겨 입던 버팔로 셔츠 복각 / 맥퀸이 항상 왼손에 끼고 있었던 자신의 이니셜이 새겨진 은 반지 복각 ©Toys McCoy


이 밖에도 토이즈 맥코이에서 판매하는 ‘대탈주’ 시리즈의 제품들은 상상을 초월해요. 영화 속 맥퀸의 사진을 프린팅한 티셔츠나, 일러스트레이터였던 히로시가 직접 그린 스티브 맥퀸의 그림은 귀여운 수준이에요. 가장 인상적인 제품은 히로시 스스로가 ‘힐츠 대위가 포로로 잡히기 전, 일상에서는 어떤 옷을 입었을까?’를 상상하면서 만든 티셔츠에요. 영화 속의 맥퀸을 재현하는 것을 넘어서서 그 인물이 되고 싶었던 히로시의 긴 팬심을 담은 거죠.



오카모토 히로시 본인이 그린 스티브 맥퀸 일러스트 ©Toys McCoy



(좌) 힐츠 대위의 일상을 상상하면서 만든 티셔츠 / (우) ’대탈주’ 개봉 60주년 기념 티셔츠 ©Toys McCoy


이처럼 토이즈 맥코이는 누군가는 변태적이라고 표현할만큼 디테일에 집중해요. 그러면서 ‘대탈주’뿐만 아니라 스티브 맥퀸이 출연한 다양한 영화 속 의상과 소품들도 같은 방식으로 복각하고 있어요. 이에 더해서 토이즈 맥코이 공식 홈페이지에는 말론 브란도, 로버트 드니로처럼 유명한 할리우드 배우들의 의상을 복각한 제품과 탑건, 택시 드라이버 같은 유명 영화를 테마로 한 상품들도 있어요. 모두 히로시 개인이 좋아하는 작품들이나 배우들이죠. 기존의 밀리터리 복각 팬들뿐만 아니라 영화와 배우들의 팬들도 토이즈 맥코이의 고객으로 유입되면서 토이즈 맥코이는 복각 브랜드 내에서 독보적인 입지를 갖게 됐어요.



영화 ‘The Wild One’ 속 말론 브란도의 모습 ©The Wild One



영화 ‘The Wild One’ 속 말론 브란도의 의상을 복각한 제품들. 자켓 가슴팍에 영화 주인공 자니의 이름이 그대로 적혀있음 ©Toys McCoy



(좌) 영화 ‘Taxi Driver’ 속 로버트 드 니로의 모습 / (우)영화 ‘Taxi Driver’ 속 로버트 드 니로의 의상을 복각한 M-65 자켓. 킹콩이 그려진 마크가 포인트 ©Toys McCoy



완벽한 복각은 그 자체로 문화가 된다

리얼 맥코이와 토이즈 맥코이는 오카모토 히로시의 팬심을 뿌리로 하고 있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제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죠. 오카모토 히로시와 츠지모토 히토시, 두 디렉터의 성향과 철학은 다르지만, 두 사람 모두 미국 문화에 대한 이해와 동경을 바탕으로 복각에 집중한다는 공통점이 있어요. 가장 미국적인 제품이 일본에서 만들어진다는 점이 아이러니하지만, 미국에서도 이들의 제품을 찾는 사람들이 많을 만큼 퀄리티를 인정받죠.



앤디 워홀의 그림들이 벽에 걸려있는 츠지모토 히토시의 방 ©Dig-it



현대 미해병 USMC 군복을 입고 가스 BB탄 총을 들고 있는 오카모토 히로시. 행복해보이는 표정이 포인트 ©Ueno Americaya 610


복각은 단순히 원본을 카피하는 것 이상의 가치를 지녀요. 리얼 맥코이와 토이즈 맥코이는 한 문화를 사랑하고 동경하는 마음이 극에 달하면 원본을 능가하는 새로운 문화를 탄생시킬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걸 보여주죠. 앤디 워홀의 작품을 수 백개씩 모으고 있다는 츠지모토 히토시와 이제는 2차 세계 대전을 넘어서 현대 미군들의 군복을 똑같이 입고 BB탄 총으로 무장한 자신의 모습이 좋다는 오카모토 히로시.


누군가는 철없는 할아버지들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미국 문화에 대한 두 사람의 동경과 애정은 여전히 불타오르고 있어요. 그리고 디렉터들의 꺼지지 않는 열정만큼 두 브랜드가 가진 유니크한 힘은 시간이 갈수록 더 강해질 거예요.




Refe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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