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레스토랑도 진화하고 있습니다. 상하이에 위치한 로봇 레스토랑 '로봇 허(Robot.he)'에서는 로봇이 식재료를 분류하고 주문한 요리를 자리까지 배달해주며 심지어 다 먹은 그릇까지도 정리합니다. 이쯤되면 로봇 레스토랑의 끝판왕 인것처럼 보이지만 운영 효율과 고객 경험을 최적화시키기 위해 로봇 허의 업그레이드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입니다. 진화하고 있는 로봇 레스토랑은 무엇이 다른 걸까요?
로봇 허 미리보기
• 가정의 냉장고를 없애려는 슈퍼마켓
• #1. 슈퍼스타 서빙 로봇
• #2. 숨은 공신 분류 로봇
• #3. 신입 사원 정리로봇
• 인건비가 설명하지 못하는 것들
매장의 매출보다 고객 만족이 우선인 레스토랑이 있습니다. 보여주기식 구호가 아닙니다. 점장의 성과 평가에 매출보다 고객 만족을 더 비중 있게 반영합니다. 중국의 유명 훠궈 브랜드 하이디라오(海底撈) 이야기입니다. 고객이 만족하면 매출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는 철학을 바탕으로 하이디라오에서는 고객을 극진하게 대접합니다.
접객은 레스토랑에 입장하기 전부터 시작됩니다. 대기 구역에 각종 음료와 다과를 비치해 대기 시간의 지루함을 달래주거나 기다리는 고객에게 네일케어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기다리다가 레스토랑에 입장하면 또 다른 접객이 펼쳐집니다. 가방에 국물이 튀지 않도록 덮개를 덮어주는 것은 기본이고, 안경에 습기가 차는 고객을 위해 안경닦이를 줍니다. 그뿐 아니라 오렌지를 까서 준비해주기도 하고, 심지어 혼자 온 고객을 위해선 건너편 자리에 인형을 놓아주기도 합니다. 식사를 마친 후에도 접객은 이어집니다. 계산을 마치고 나가는 고객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인사를 하고, 엘리베이터에서는 다른 종업원이 배웅합니다. 맛있는 음식에 친절한 서비스가 더해지니 배가 부를 수밖에 없습니다.
ⓒ시티호퍼스
하이디라오에서는 오렌지를 직접 까주거나 전용 대기구역에 다과서비스를 마련하는 등의 고객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시티호퍼스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서도 다뤄질 만큼 파격적인 접객 서비스를 바탕으로 하이디라오는 파죽지세로 성장합니다. 중국은 물론 싱가폴, 한국 등에서 500여 개의 점포를 운영하며 연 매출 3조 원을 달성하고 2018년에는 홍콩 증시에도 상장합니다. 하이디라오의 접객 서비스와 그 서비스에 만족한 고객 덕분입니다. 중국 매장의 경우 한 달에 한 번 이상 하이디라오를 찾는 고객 비율이 60%에 이를 정도입니다.
이렇게 접객의 끝판왕으로 자리 잡은 하이디라오가 2018년에 베이징에 눈에 띄는 매장을 오픈합니다. 기존보다 더 극진한 접객을 하는 식당이 아니라, 로봇과 인공지능 기술을 이용해 재료 준비와 매장 서빙을 하는 스마트 식당을 연 것입니다. 주방에서는 사람의 팔처럼 움직이는 로봇들이 재료의 입고, 조리, 관리 등을 담당하며, 홀에서는 서빙 로봇이 음식을 손님들에게 전달합니다. 로봇 덕분에 주문하고 2분이면 테이블에 요리가 배달됩니다.
그렇다면 하이디라오는 로봇을 도입하면서 시그니처였던 접객 서비스를 포기한 걸까요? 그럴 리가 없습니다. 조리의 전 과정을 로봇화하여 직원들이 하이디라오의 핵심인 접객 서비스에 집중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스마트 식당 도입의 진짜 목적입니다. 재료를 마련하고 접시를 나르는 등의 단순 반복 작업은 로봇에 맡기고 종업원들은 고객 만족을 높일 수 있도록 고객 니즈를 더 세심하게 챙기는 데 집중합니다.
하이디라오처럼 접객 서비스가 핵심역량 중 하나인 레스토랑이야 접객 서비스를 강화하기 위해 로봇을 활용했다 해도, 보통의 매장에서는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서 로봇을 도입합니다. 하지만 로봇으로 개선한 운영 효율이 고객 경험을 해친다면 비용 절감이 매출 감소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로봇을 들일 때는 운영 효율만큼이나 고객 경험을 고려해 매장을 구성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로봇과 공존하는 매장은 어떻게 설계해야 할까요? 상하이에 위치한 '허마센셩' 내에 있는 '로봇 허(Robot.he)' 레스토랑을 참고해보면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가정의 냉장고를 없애려는 슈퍼마켓
'3km 안에 있는 고객에게 30분 내로 배송합니다.'
슈퍼마켓인 허마센셩의 슬로건입니다. 신선식품을 포함해서 슈퍼마켓에서 파는 모든 제품을 30분 안에 배송해, 가정에 냉장고가 필요 없게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2016년에 상하이 1호점을 오픈한 이후 3년 만에 100개 이상의 점포를 열 정도로 성장세가 가파릅니다. 매장의 증가 속도보다 더 눈에 띄는 건 영향력입니다. 허마센셩이 배달을 지원하는 3km 내의 권역이냐, 아니냐에 따라 부동산 가격이 달라집니다. 허마센셩의 구역이라는 뜻의 신조어인 '허취팡(盒區房)'이 생겼을 정도입니다. 우리나라식으로 표현하자면 '허세권' 정도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허마센셩에서는 매장 3km내에 위치한 고객에게 30분 내로 배송을 완료합니다. ⓒ시티호퍼스
상하이 국가 전시 컨벤션 센터 1층에 위치한 허마센셩 매장입니다. ⓒ시티호퍼스
#1. 슈퍼스타 서빙 로봇
상하이 국가 전시 컨벤션 센터 내의 로봇 허 매장은 150여 석의 큰 규모를 자랑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컨벤션 센터 내에 위치해 있어 관람객들이 몰려들 때는 이마저도 좌석이 모자라 줄을 서서 먹습니다. 그래서 컨벤션이 열리는 기간에는 매장 안팎으로 혼잡스러울 거 같은데, 막상 매장에 들어서면 의외로 분위기가 쾌적합니다. 서빙 로봇 덕분입니다. 로봇 허에서는 이 서빙 로봇이 종업원을 대신합니다. 하지만 단순히 로봇이 사람의 역할을 대신한다면 행위의 주체가 바뀔 뿐 과정은 동일할 텐데, 어떻게 매장의 혼잡함이 줄어드는 걸까요? 로봇을 도입하면서 종업원이 해야 할 일을 없애거나 효율적으로 대체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로봇 허의 로봇은 레일을 따라 고객들에게 식사를 배달합니다. ⓒ시티호퍼스
어플리케이션을 이용해 원하는 요리를 주문하고 결제할 수 있습니다. ⓒ시티호퍼스
이 매장에는 T자 모양의 레일이 뼈대처럼 자리 잡고 있는데, 모든 테이블은 이 레일 옆에 붙어 있습니다. 이 레일 위로 서빙 로봇이 다니면서 음식을 나르기 때문입니다. 반듯하게 놓인 길로만 서빙 로봇이 다니니 동시에 여러 로봇이 다녀도, 로봇이 자주 왔다 갔다 해도 복잡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하나의 접시만 나를 만큼 작아 시야를 방해하지도 않습니다. 그뿐 아니라 길을 분리해두니 사람과 로봇이 이동할 때 동선에 간섭이 생기는 걸 방지하는 효과도 있습니다. 이렇게 서빙 로봇의 길을 따로 만든 덕분에 주방에서 테이블까지 음식을 나르는 데 40초를 넘지 않습니다.
#2. 숨은 공신 분류 로봇
서빙 로봇이 정해진 길을 따라 돌아다니는 로봇 허 레스토랑은 허마센셩과 공간을 함께 쓰고 있습니다. 입구를 기준으로 왼쪽이 로봇 허고 오른쪽이 허마센셩입니다. 물론 둘 다 허마에서 운영하고 있어서 공간을 공유하는 이유도 있겠지만, 두 매장이 붙어있는 데는 또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 3km 안에 있는 고객에게 30분 내로 배송해주는 허마센셩의 서비스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앱을 통해서 고객이 주문하면 마트 안에 대기 중이던 직원이 10분 안에 주문 상품을 장바구니에 담습니다. 그리고 이 장바구니를 컨베이어 벨트 역할을 하는 로봇 팔에 걸면, 로봇 팔이 장바구니를 물류 창고로 이동시킵니다. 이때 컨베이어 벨트는 지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천장에 설치되어 있어 이동 동선이 최적화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고객의 쇼핑 경험을 해치지도 않습니다. 물류 창고로 옮겨진 장바구니를 분류 로봇이 배송 위치 등을 고려해 구분하면, 배달원들이 이 장바구니를 20분 내로 고객에게 배송합니다. 결국 10분 내에 장바구니를 구성해 배달원에게 전달하는 게 핵심인데, 이를 컨베이어 벨트와 연계된 분류 로봇이 도와주는 것입니다.
고객들은 자신이 먹을 신선한 해산물을 직접 고르는 재미가 있습니다. ⓒ시티호퍼스
물론 모든 주문이 이러한 방식으로 이뤄지는 것은 아닙니다. 수산물 요리를 주문한 고객 중에 재료를 눈으로 확인하고 싶거나 재료를 직접 고르는 재미를 즐기려는 고객들이 선택적으로 이용합니다. 컨베이어 벨트와 분류 로봇을 활용한 허마센셩의 배송 시스템 덕분에 로봇 허에서는 여느 곳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새로운 고객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3. 신입 사원 정리로봇
서빙 로봇과 분류 로봇으로 미래 지향적 고객 경험을 만드는 로봇 허 매장은 상하이에 2개 있습니다. 상하이 국가 전시 컨벤션 센터 내에 있는 매장은 2호점인데, 여기에는 1호점에는 없는 로봇이 하나 더 있습니다. 정리 로봇입니다. 이 로봇은 고객이 식사를 마치고 호출을 하면 테이블로 가서 빈 그릇을 싣고 주방으로 옮기는 일을 합니다. 테이블을 정리하는 종업원의 역할을 대신하는 것입니다.
로봇 허 내부 전경 사진입니다. ⓒ시티호퍼스
두 로봇 모두 고객의 도움 없이는 온전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합니다. 로봇이 운반한 접시를 테이블로 내리거나 테이블의 빈 그릇을 로봇에 싣는 일은 고객이 해야 합니다. 이때 고객이 서빙 로봇의 일을 돕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식사를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반면 정리 로봇을 도울 유인은 명확하지 않습니다. 정리 로봇을 부르고 기다리는 불편을 감수할 필요 없이 다 먹은 접시를 테이블 위에 둔 채 나서면 그만입니다. 정리 로봇이 무용지물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로봇 허는 금전적 보상 체계로 고객이 정리 로봇에 협조할 이유를 만듭니다. 방식은 간단합니다. 정리 로봇에 빈 그릇을 실어주면 추가 비용이 발생하지 않지만, 반대의 경우에는 30위안을 별도로 청구합니다. 빈 그릇을 치우지 않은 대가로 지불하기에는 아까운 금액입니다.
이처럼 보상 체계 없이 작동하기 어려운 정리 로봇은 아직 완성도가 높지는 않습니다. 사람이 다니는 길로 다녀 고객과 부딪칠 수 있고, 그래서 이동 속도도 느립니다. 서빙 로봇이 독립적인 길에서 신속하게 음식을 나르는 것과는 대조됩니다. 그렇다고 정리 로봇 도입이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로봇을 통해 인력 효율화를 완성하려면 종업원이 하는 모든 역할을 대체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초기 단계라 개선할 여지가 많지만, 서빙 로봇이 그러했듯이 정리 로봇도 진화할 것입니다. 서빙 로봇의 경우 1호점에서는 로봇이 다니는 길을 2차선으로 만들어 이동 방향을 지정해줘야 로봇 간 부딪침이 없었지만, 2호점에서는 1차선으로 줄여도 사고가 나지 않게 진화했습니다. 로봇의 길을 줄인 만큼 테이블을 더 설치하거나 매장 공간에 여유를 줄 수 있는 장점이 생깁니다. 정리 로봇이 다음 버전에서 더 개선될 거란 기대를 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인건비가 설명하지 못하는 것들
로봇 허가 아직은 완성도가 낮은 정리 로봇까지 도입하면서 종업원이 하는 모든 일을 대체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물론 인건비를 절감하려는 목적이 큽니다. 하지만 인건비 절감만으로 로봇의 효용을 충분히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종업원을 대신하는 로봇들은 인건비 너머에 보이지 않는 문제들을 해결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먼저, 종업원을 고용할 때 인건비만 드는 게 아닙니다. 인건비의 범주를 4대 보험, 주휴 수당, 퇴직금 등을 다 포함하는 비용이라 해도, 여전히 고용할 때 추가로 들어가는 비용이 있습니다. 교육비입니다. 새로운 종업원이 입사하면 메뉴 숙지 등 매장 운영 전반에 대해 익숙해질 때까지 교육이 필요한데, 교육을 담당할 직원이 별도로 있건 아니면 기존 종업원이 인수인계하건 별도의 비용이 들어갑니다. 미국의 레스토랑 리서치 업체인 'TDn2K'에 따르면, 미국의 경우 서빙 직원이 이직해서 새로 고용할 때 드는 비용이 약 2,000달러입니다.
더 큰 문제는 종업원 이직이 어쩌다 한 번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미국 노동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미국에서 레스토랑 종업원의 이직률은 72.9%로, 민간 부문 전체 이직률보다 1.5배 이상 높습니다. 미국의 상황이긴 하지만 국가별로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레스토랑 종업원의 이직률이 타 업종 대비 높은 건 공통적 현상입니다. 당연히 종업원의 이직 횟수가 늘어날수록 새로 고용할 때 드는 비용은 증가합니다.
교육비를 감당한다 해도 문제는 또 있습니다. 종업원들의 근무 성실도입니다. 물론 맡은 바 일을 책임감 있게 하는 종업원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종업원이 어떤 이유에서건 갑작스레 지각하거나, 결근하는 등의 이슈가 발생하면 매장 운영이 어려워집니다. 그렇다고 인력을 넉넉하게 고용하자니 인건비에 비효율이 생깁니다.
이러한 보이지 않는 문제로 인해 로봇을 도입하려는 시도가 로봇 허를 비롯해 전 세계 곳곳에서 이뤄지고 있습니다. 로봇이 사람의 역할을 대체하는 과정을 바람직하게만 볼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비관적으로 바라볼 일도 아닙니다. 인간의 터전으로 들어온 로봇을 적절히 활용하여 공존할 수 있다면, 이전엔 경험할 수 없었던 풍요로움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로봇을 만드는 기술이 발전하는 만큼, 로봇과 함께하는 기술도 진화할 것입니다.
Refere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