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광고의 경계를 부셔서 미래의 스타를 띄운다

사치 갤러리

2023.04.13

모네는 어쩌다 인상파를 대표하는 화가가 되었을까요? 


지금이야 인상파 작품이 인기지만, 19세기 후반의 유럽에서 인상파 화가들은 아웃사이더였어요. 그 때 그들에게 힘이 되어준 사람이 ‘카유보트’예요. 그는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을 사들이며, 그들을 경제적으로 지원했죠. 하지만 그는 안타깝게도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게 돼요. 그러면서 수집한 인상파 작품들을 파리 뤽상부르 박물관에 전시해 달라는 유서를 남겼죠. 여기엔 모네, 르누아르, 세잔 등 7명의 작품이 포함돼 있었어요.


그런데 프랑스 정부가 유증한 작품들을 거부했어요. 부유층 자제가 유증했다는 이유로, 당시 엘리트층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작품들을 국립 미술관에 걸 수는 없다는 입장이었죠. 사회적 논쟁이 벌어졌고, 결국 르누아르의 중재로 유증 작품의 절반 정도를 걸기로 합의했어요.


전시가 시작되자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어요. 언론에서 '카유보트 사건'을 대대적으로 다루면서 대중의 관심이 쏠렸기 때문이에요. 이 때부터 카유보트 7인의 작품들이 더 많이 전시되고, 경매되며, 연구되기 시작했어요. 특히 미술 교과서에 소개가 되면서, 모네는 인상파를 대표하는 화가로 자리매김했죠.


이 사례처럼 예술에 있어 사회적 논란은 득에 가까워요. 논란이 낳은 프리미엄이 생기니까요. 이를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곳이 ‘사치 갤러리’예요. 이곳에선 어떻게 논란을 창조하고 있을까요?



뮤지엄은 ‘영감의 창고’예요. 그래서 이번 런던 위크에서는 V&A 뮤지엄, 코톨드 갤러리, 테이트 모던, 사치 갤러리, 스트릿 아트 등 런던의 뮤지엄을 둘러보면서 인사이트를 찾아볼게요. 오늘의 스토리는 <이제서야 보이는 런던의 뮤지엄>의 일부입니다.    


💡 인사이트를 찾기 위해 눈여겨 볼 포인트

논란으로 만들어내는 보이지 않는 가치



사치 갤러리 미리보기

• 논란의 중심에서 현대 미술을 외치다

 라이징 스타의 투자자가 갖춰야 할 조건

 인스턴트 기획, 로우 아트, 팔기 위한 전시

 반려견에게도 열려 있는 미술관

 슬론 스퀘어에서 만나는 영국 사회




사치 갤러리는 요즘 들어 더 귀에 익숙해진 영국 미술관 중 하나다. 가수 송민호와 웹툰 작가 기안84가 입성한 갤러리로 주목을 받았기 때문이다. 예술의 중심지 영국에서, 그것도 정통 미술 작가이기보다는 엔터테인먼트 시장에서 재능을 펼치고 있는 한국 셀럽들을 ‘픽’한 갤러리라니. 충분히 한국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할 만한 뉴스였다. 호기심을 넘어 사치 갤러리에 대한 관심도와 호감도까지 한 번에 급상승하는 계기가 된 것은 당연한 이야기다. 그러나 개인적인 이야기를 꺼내보자면, 사치 갤러리는 나에게 숙제 같은 곳이다.


앞서 첫 직장이나 다름없었던 영국 박물관이 처음 내게 두려움으로 다가왔고, 테이트 갤러리가 영국 뮤지엄 해설가로서의 사명감을 느끼게 해줬다면, 사치 갤러리는 21세기 예술을 이해하기 위한 숙제라고 말할 수 있다. 영국에 온 지 얼마 안 됐을 때는 사치 갤러리를 잘 알지 못했다. 이름 자체도 생소했다. ‘영국’ 박물관도 테이트 ‘브리튼’이나 테이트 ‘모던’도, ‘국립’ 미술관도 아닌 사치는 도대체 어떤 특징을 가진 미술관인지 짐작이 되지 않았다.




©사치갤러리


하지만 설립자 찰스 사치에서 이름을 따왔고, 그가 영국 광고계에서 영향력이 두터운 권위자란 사실을 알고 나자 미술관의 정체성이 막연하게나마 그려지면서 궁금증이 생겼다. 예술이 아닌 광고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이 만든 갤러리라면, 뭔가 달라도 다르지 않을까?


관여하는 광고마다 소위 대박을 터뜨려 광고계의 마이더스로 통하는 찰스 사치는 1985년에 사치 갤러리를 설립했다. 더욱 놀라운 건 그가 현존하는 가장 핫한 예술가 그룹 yBa를 발굴해 스타로 만들어 낸 장본인이라는 점이다. 사치 갤러리는 yBa 작가들을 거장의 반열에 올려놓으면서 국제적 인지도를 갖춘 미술관으로 우뚝 섰다.


이제 찰스 사치는 광고계의 마이더스란 별명보다 아트 딜러와 아트 컬렉터로서 더 막중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이뿐만 아니다. 설립 35년이 흐른 지금까지 트렌드한 이미지를 유지하며 미술 시장에 새로운 역사를 써나가고 있다. 어떻게 가능한 일일까. 그 비밀을 파헤치기 전,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사치 갤러리의 프롤로그라고도 할 수 있는 yBa의 출발에 관한 이야기다.



논란의 중심에서 현대 미술을 외치다

1980년대는 영국 경제에 먹구름이 드리워졌던 시대다. 예술대를 졸업한 신진 작가들에게는 호락호락하지 않은 날들의 연속이었다. 이렇게 힘든 시기에 런던 골드스미스 대학에는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이라는 교수가 있었다. 마틴은 혈기 왕성한 학생들에게 항상 도전적인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작품을 만들 것을 강조했다. 그의 가르침과 리더십 아래 자라난 작가들이 지금의 yBa다. yBa 초기 멤버들은 1980년대 골드스미스 대학에 다녔던 학생들이었다.


데미안 허스트도 그중 하나였다. 졸업 전시를 앞두고 비싼 갤러리나 전시회장을 빌릴 수 없었던 허스트는 다른 학생들과 템즈강 동쪽에 버려진 창고를 찾아냈다. 과거 무역품을 보관하다 쓸모를 잃어버린 창고였다. 허스트의 주도 아래 학생들은 창고를 저렴한 가격에 대관해 졸업 전시를 준비했다. 함께 참여했던 줄리안 오피, 게리 흄, 사라 루카스, 트레이시 에민 등은 훗날 yBa의 멤버가 되었다. 전시의 제목은 프리즈. 이 전시회에 찰스 사치가 방문하며 이들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책 《Sensation: Young British Artists from the Saatchi Collection(1998)》 표지


사치는 프리즈 전시회를 둘러본 뒤 ‘뭔가 될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는 전시에 참여한 청년들 중 열여섯 명의 작품을 사들였다. 그리고 이 젊고 유망한 작가들과 대화를 나누며 사회적으로 이목을 끌 만한 작품을 만들라고 주문했다. 이렇게 완성된 작품을 갖고 1997년에 센세이션이라는 전시를 열었다. 상어의 시체를 포르말린에 담가 박제한 허스트의 작품도 이 전시회에서 처음 공개된 것이었다. 허스트는 단숨에 미술계와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


센세이션 전에서 가장 논란을 일으킨 작가는 유치원 아이들의 손도장으로 연쇄 아동 살인마의 얼굴을 완성한 마커스 하비였다. 트레이시 에민은 텐트의 천에 다양한 이름을 써 놓고 ‘나와 함께 잤던 사람들’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말 그대로 센세이셔널한 전시가 아닐 수 없었다.


전시회가 열린 장소도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왕립 미술 학교, 고전 예술을 추앙하는 가장 보수적인 집단의 중심에 가장 논란을 일으킬 만한 작품들을 위풍당당하게 선보인 것이다. 사치의 재기와 야망이 제대로 느껴지는 선택이었다. 전시회를 장식한 파격적이다 못해 엽기적이기까지 한 작품들에 영국은 난리가 났고, 사치는 의도대로 젊은 예술가들의 이름을 대중의 머릿속에 새겨넣는 데 성공했다.



라이징 스타의 투자자가 갖춰야 할 조건

사치 갤러리의 역사가 한 권의 책이라면, 한 장 한 장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놀라움을 멈추지 못할 것이다. 초기 전시에 참여했던 작가들의 이름 때문이다. 1985년, 문을 연 첫 해에는 도널드 저드, 사이 트웜블리, 앤디 워홀의 작품이 미술관에 걸렸다. 그 이듬해에는 안셈 키퍼, 리차드 세라, 제프 쿤스, 로버트 고버, 브루스 나우만, 신디 셔먼과 같은 미국 신진 작가들이 갤러리 안으로 들어왔다. 대가들의 ‘떡잎’을 알아본 사치는 1980년대부터 이들의 전시를 기획하고 있었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사치 갤러리가 전시하고 있는 작가들을 다 소개하자면 아마 수십 권의 책이 더 나올지도 모르겠다. 찰스 사치는 20세기와 21세기의 전도유망한 작가들을 엄선해 전시를 주최해 왔다. 당시에는 미술 애호가조차 난해하다고 느낀 작품이 많았지만, 사치는 자신의 안목을 밀어붙여 무명 작가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그리고 세계 최고의 작가로 키워 냈다. 그가 yBa부터 세계 최정상의 작가를 발굴해 성공시킨 수많은 사례는 단순한 운이 아니라, 트렌드를 읽고 예술 시장의 흐름을 예측하는 안목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물론 안목을 갖췄다고 모두가 성공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안목과 더불어 투자자 본인의 사회적 인지도혹은 네트워크, 이 모든 걸 현실화할 수 있는 자본, 그리고 문화적 정체성까지 필요하기 때문이다. 찰스 사치는 이 네 박자를 고루 충족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우선 그는 자신이 선택한 예술가를 국제적으로 키워 내는 데 탁월했다. 자신의 이름값을 활용한 갤러리가 더 큰 이목과 부를 끌어올 것이란 판단으로 사치 갤러리를 설립했다. 광고계의 큰손으로서 사회적 인지도와 네트워크가 어느 정도 갖춰진 상태이니, 다른 투자자나 컬렉터에 비해 뜻을 실현하기가 상대적으로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사치에게 또 하나의 이점으로 작용했던 것이 문화적 정체성이었다.


현대 미술 시장에는 간과할 수 없는 벽이 존재한다. 작가와 투자자의 국적이다. 작가와 투자자의 국적은 생각보다 중요하다. 예술가는 곧 자신이 몸담은 국가 및 사회의 경제력을 대변한다. 경제가 탄탄할수록 문화 예술에 대한 투자가 이뤄지고, 국가적인 지원도 가능해진다. 다행히도 찰스 사치는 이 조건에 부합했다. 그가 키워 낸 yBa는 대부분 영국인이었고, 사치 자신은 유대계 이라크 출신의 영국 이민자였다. 영국 태생이라는 든든한 뒷배를 짊어진 사치가 국제 예술 시장에 안착하고 명성을 얻는 일은, 그렇지 않을 경우보다 훨씬 수월했을 것이다.


또한 현대 미술 시장에서 최고의 영향력을 가진 도시는 런던과 뉴욕, 베를린이다. 런던과 뉴욕은 비슷한 언어와 문화 코드를 공유한다. 즉, 런던에서 성공한 작가는 뉴욕에서 성공할 가능성이 높고, 그 반대의 케이스도 마찬가지라는 뜻이다. 런던과 뉴욕을 점령한 작가는 세계적인 작가가 된다. 사치 역시 영국에서 대대적인 전시를 마친 뒤 뉴욕에 진출했고, 미국에서 싹을 틔우고 있는 인기 작가를 영국, 나아가 유럽에 알리는 일에 앞장 섰다. 안목과 사회적 인지도, 문화적 정체성이 뒷받침된 사치에게 마지막으로 필요한 것은 과감하게 투자할 수 있는 돈이었다. 그는 한화 약 2,000억 원을 소유한 광고 재벌로 한때 영국 자산가 순위 438위에 오르기도 했다.


미술 시장의 판도를 바꾸기 위해선 이처럼 개인의 안목 외에도 다양한 요소가 맞물려야 한다. 찰스 사치는 좋은, 다시 말해 큰돈을 불러들일 수 있는 작가를 동물적 감각으로 파악하는 재능 위에 자신의 타고난 조건을 활용해 최고의 미술 사업가로 성장할 수 있었다. yBa와 찰스 사치를 지나 다음으로 열어볼 챕터는 사치 갤러리 그 자체에 대한 내용이다. 사치 갤러리는 현재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풍부한 관심을 갖고 영국 미술을 배워 나가고 있는 나의 눈에 비친 사치 갤러리는 어떤 모습인지 풀어내보려고 한다.



인스턴트 기획, 로우 아트, 팔기 위한 전시

사치 갤러리는 국립 미술관이나 파리의 루브르처럼 언제 가더라도 같은 작품을 보여 주는 전형적인 유럽의 미술관이 아니다. 성장 가능성이 있는 작가들을 선정해 그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주기적으로 기획을 변경한다. 그래서 아마 사치 갤러리만큼 전시가 자주 바뀌는 미술관은 없을 것이다. 주요 전시는 2층에서 열리는데 3~6개월 주기로 테마가 바뀐다. 1층의 전시실은 전환이 더 빠르다. 한 달에서 두 달 주기의, 심지어는 일주일뿐인 기획 전시들이 굉장히 빠르게 열렸다가 사라진다.


너무 상업적으로 인스턴트식 전시만 기획하는 게 아닌가 싶을 수 있지만, 지금만큼 트렌드가 빠르게 바뀌는 시대는 역사적으로 없었다. 중세 미술에서 르네상스로, 르네상스에서 인상주의 등으로 예술 사조가 바뀌는 기간이 짧게는 100년, 길게는 수백 년씩 걸렸다면 이제는 10년에서 5년 단위로 짧아졌다. 세계 각지에선 매일 신진 작가가 탄생한다. 사치 갤러리는 21세기 예술의 특징 중 하나를 직관적으로 보여 주는 미술관인 셈이다.


21세기 예술의 또 다른 특징은 스트릿 아트다. 벽에 스프레이로 그림을 그리는 그래피티는 1980년대 미국에서 시작한 이후 빠르게 유행했지만, 아직도 예술계 기득권은 이를 저급한 예술로 대우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예술계의 분위기와 선입견을 타파하기 위해 사치 갤러리는 2019년에 스트릿 아트 시즌을 열었다. 더 이상 ‘로우 아트(Low Art)’와 ‘하이 아트(High Art)’를 나누지 말고 예술가들이 자신감을 갖고 다양한 방법으로, 다양한 재료를 가지고, 다양한 장소에서 작품 활동을 할 수 있게 힘을 실어 주자는 것이다. 찰스 사치는 20세기와 21세기의 예술뿐만 아니라, 동시대에서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사람들의 고집스러운 점을 선으로 연결하고 평면으로 완성시키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만일 사치 갤러리에 방문했다가 너무나도 마음에 드는 작품이 있다면 구매를 문의할 수도 있다. 적나라하게 표현하자면 사치 갤러리에서 행하는 전시는 ‘팔기 위한 전시’인 셈이다. 이런 면에서 찰스 사치는 데미안 허스트와 유사한 면모가 있다. 그들의 목적은 한마디로 ‘시장을 주도하는 것’이다. 두 사람은 자신의 사회적 포지션을 영리하게 이용할 줄 안다. 비교적 저렴한 값에 사들인 작품은 찰스 사치와 데미안 허스트라는 프리미엄이 붙은 채 몇 배나 뛴 가격에 팔릴 수 있다. 반복해 말하지만 뉴포트 스트릿 갤러리에, 그리고 사치 갤러리에 작품이 걸린다는 것은 흥행 보증수표를 얻는 것과 같다. 두 미술관은 시장의 물길을 바꾸고 있다.



반려견에게도 열려 있는 미술관

나는 매번 숙제를 하듯이 사치 갤러리를 방문한다. 정말 이해하기 힘든, 아니 좋아하기 힘든 작품의 연속임에도 불구하고 꾹 참고 전시를 본다. 어떤 시대든 젊은 작가들은 새로운 정신과 시각으로 작품을 만들어 냈다. 기득권과 기성세대는 이런 예술에 굉장히 냉소적이었다. 책을 읽는 지금 순간에도 익숙함과 새로움 사이의 줄다리기는 계속되고 있다. 항상 미술사에 존재했던 이 차이를, 나는 사치 갤러리에서 느낀다.


1980년대 사치 갤러리에 작품이 걸렸던 작가들은 당시 대중으로부터 큰 관심을 받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현재 대중은 앤디 워홀을 동경하고 제프 쿤스와 리차드 세라를 미술계의 거장으로 추켜세운다. 이 작가들 모두 미술에 조금만 관심이 있으면 누구나 다 아는 사람들이 되었다. 내가 아직 마음으로 좋아하지 못하는 작가들도 30~40년 후에는 어떤 대우를 받을지 알 수 없다. 사치 갤러리는 그런 궁금증을 안고 작품을 감상하는 재미가 톡톡한 곳이다. 이미 최고의 인정을 받은 작가들의 작품만을 전시하는 다른 미술관에선 해볼 수 없는 상상과 재미를 제공한다.


동시대의 예술품을 전시한다는 건 갤러리의 성향도 진보적이라는 뜻이다. 21세기 작가의 그림이 루브르나 국립 미술관에 걸리는 건 매우 어렵다. 하지만 현재의 시대상을 반영한, 젊은 작가를 소개하는, 새로운 비전을 품은 미술관도 필요하다. 나는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라면 꼭 21세기 작품을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겪는 사회 문제를 함께 겪고 느끼는 작가들이 그려 낸 세상은, 물론 난해하지만 볼 만한 가치가 있다.


한번은 사치 갤러리를 방문했다가 놀란 적이 있다. 반려견을 데려와 목줄도 없이 편안하게 작품을 관람하는 사람을 보았기 때문이다. 사치 갤러리와 어울리는 장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술관이 갖고 있는 보이지 않는 장벽이 소리 없이 천천히 무너지는 인상을 받았다. 강아지를 데리고 오는 것까지 허용한다는 건 미술관이 진보적인 마인드를 갖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작품만이 아닌 작품을 감상하는 방식까지 경계를 허무는 사치 갤러리의 행보에서, 트렌드를 이끌어 가려는 진정성이 엿보였다.




근래에는 사치 갤러리에서 한국 작가의 전시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이는 한국 작가가 유럽 시장에 정착하고 국제적으로 활동 범위가 늘어나며 서구 사회가 충분히 반응할 만큼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 작가의 위상이 많이 달라졌음을 실감하게 된다. 19세기 자포니즘의 영향으로 우키요에가 유럽에서 성행했던 것과 같이, 21세기의 키워드는 한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유명 컬렉터의 안목이 이들을 가리키고 있으니 말이다.


지금, 가장 뜨거운 미술의 트렌드를 확인하고 싶다면 뉴포트 스트릿 갤러리와 사치 갤러리를 방문 리스트에 꼭 포함시켜보자. 데미안 허스트와 찰스 사치가 어떤 사회적 문제와 트렌드를 캐치해 해당 작품을 ‘픽’했는지 유추하는 과정은, 작품을 해석하는 것 이상으로 색다른 재미를 선사할 것이다.



슬론 스퀘어에서 만나는 영국 사회

사치 갤러리는 런던 슬론 스퀘어에 위치한다. 슬론 스퀘어는 영국 박물관 설립의 초석을 마련했던 기부자 한스 슬론의 이름에서 유래한 만큼 갤러리 앞 광장에서 그의 조각을 볼 수 있다. 슬론 스퀘어는 런던에서도 부유한 고급 지역에 속한다. 주변을 걸으며 영국 부촌의 풍경을 구경하는 것도 즐거운 경험이 될 것이다.


길을 걷다 보면 많은 분들에게 익숙한 예술 전문 출판사 타셴(Taschen) 스토어도 발견할 수 있는데, 평소에 접하기 힘든 대형 서적부터 수많은 장르의 예술 서적을 만날 수 있다. 타셴 출판사는 글보다 그림 위주로 책을 구성한다는 장점이 있으니 더욱더 편하게 감상할 수 있다. 주말 오전이면 다양한 음식을 파는 마켓도 열리니 눈과 입이 모두 만족스러운 산책길이 되지 않을까?


사치 갤러리의 외형은 현대 미술관이라고 하기에는 꽤 고전적인 모습을 띠고 있다. 갤러리 이전에 군부대 시설로 사용된 이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주변에는 군인과 연관된 박물관과 시설이 많다. 군대 박물관이 있고, 국가유공자들이 연금을 받으며 사는 숙소인 첼시 펜셔너도 갤러리에서 멀지 않다. 영국은 군인에 대한 예우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잘 되어 있는 나라다. 그래서 군대와 관련된 시설이 런던의 부유한 지역에 들어설 수 있고 국가유공자가 평생 살 수 있는 집도 제공하는 것이다. 이런 모습을 보다 보면 영국이라는 사회를 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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