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력이나 자본력만큼이나, 상상력의 힘도 세다

샌프란시스코 공항

2023.01.13

어느 호텔의 CEO가 외국에 있는 호텔에 두번째 방문했을 때의 일이에요. 호텔 직원들은 그의 재방문을 사전에 인지하고 환영해 주었어요. 특별한 대우를 받은 것처럼 느낀 호텔 CEO는 그의 호텔에도 똑같은 방식을 적용하고 싶었죠. 


전문가들과 논의를 했는데 안면 인식 장비를 설치해야 한다는 결론에 다다랐어요. 체크인할 때 고객의 얼굴을 인식해서 데이터베이스로 만들었다가 그 고객이 재방문시 인지할 수 있게 하는 거예요. 문제는 비용. 수십억원의 투자를 해야 해서 포기했죠.


그는 세번째 호텔 방문 때에도 동일한 환대를 받았어요. 시스템이 너무 궁금해졌죠. 그래서 호텔 직원에게 비결을 물었는데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어요. 택시 기사들과 계약을 맺고 택시 기사가 손님을 호텔까지 모시고 오는 동안 과거에 방문한 경험있는지를 묻는다는 거예요. 재방문일 경우, 호텔 직원에게 신호를 보내면 택시 기사들에게 1달러를 지불하는 방식이죠.   


이처럼 상상력을 발휘하면 기술력이나 자본력이 없어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요. 또 다른 사례도 한 번 살펴볼까요? 이번에는 런던 기차역을 거친 후, 샌프란시스코 공항으로 가볼게요.





ⓒ시티호퍼스



‘런던에서 파리까지 가는 기차 여행을 어떻게 하면 더 나은 여정으로 만들 수 있을까요?’


약 25여 년 전에 여행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던진 이 질문에 엔지니어들이 해답을 내놓았어요. 60억 파운드(약 9조원)를 들여서 런던에서 도버해협까지의 선로를 새로 짓자는 거예요. 그러면 3시간 반 정도 걸리던 여행 시간을 40분 단축시킬 수 있으니까요. 이동 시간이 줄어드니 여행의 경험이 더 좋아질 수 있죠.


이 답변에 대해 광고인인 ‘로리 서덜랜드(Rory Sutherland)’는 의문을 던져요. 공학적으로는 맞는 이야기지만 여행 시간을 단축시키는 건 상상력이 부족한 접근이라고 말하면서 나름의 답을 펼쳐 보이죠.


“남녀를 불문하고 전세계의 탑모델을 고용해 기차 안을 걸어다니면서 공짜로 비싼 샴페인을 여행 내내 따라주면 되지 않을까요?”


순진한 답이라는 전제를 깐 후에, 그가 제안한 방법이에요. 여행하는 시간을 줄이는 대신 여행하는 시간을 즐겁게 해도 여행의 가치가 올라갈 것이라는 설명이죠. 이런 방식이라면 예산의 절반인 30억 파운드(약 4.5조원)로도 충분하다고 예상하면서, 오히려 승객들이 기차가 더 천천히 가기를 바랄지도 모른다는 농담도 덧붙여요.


그가 TED 강연에서 보이지 않는 가치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이야기했던 사례는 실제로 구현되진 않았어요. 그래도 그의 접근은 의미가 있어요. 인지된 가치만 바꿀 수 있어도 고객 경험이 달라질 수 있음을 유머감각으로 풀어내 공감하게 했기 때문이에요.


광고쟁이의 인생교훈, 로리 서덜랜드 ⓒTED


10여 년 전에 TED에 올라온 강연이 떠올랐던 건,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만난 홍보물 덕분이에요. 서울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탑승구를 지나쳐 가는데, 어느 탑승구 근처의 창문에 ‘That will be This’라는 문구가 적혀 있는 게 눈에 띄었어요.



ⓒ시티호퍼스


‘That’ 아래에는 창밖의 공사 현장이 보였고, ‘This’ 아래에는 그 공사가 완료되었을 때의 모습이 이미지와 함께 설명되어 있었어요. 이곳에 펼쳐질 풍경을 상상하게 함으로써 공사로 인해 발생하는 소음과 미관상의 불편함을 완화시키는 거예요.



ⓒ시티호퍼스


물론 탑승 대기를 하는 승객들이 겪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기술력, 자본력 등을 동원해 공사 기간을 단축시키는 것도 방법이에요. 하지만, 로리 서덜랜드의 상상처럼 승객들이 인지하는 가치만 긍정적으로 바꿀 수 있어도 문제를 효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어요. 게다가 ‘This’ 아래의 설명은 샌프란시스코 공항 주변에 들어설 시설에 대한 홍보 역할도 톡톡히 해요. 샌프란시스코 공항을 자주 이용하는 사람들에게는 도움이 될 정보죠.



ⓒ시티호퍼스


‘놀라운 풍경이 곧 도착할 것입니다.(Amazing will soon be arriving.)’라는 제목이 적힌 홍보물 자체가 이미 놀라운 풍경이었어요. 로리 서덜랜드가 제안하듯이 문제 해결을 할 때 꼭 대단한 기술이나 거창한 시도가 필요한 것은 아니에요. 기술력이나 자본력만큼이나 상상력도 힘이 세니까요.




Reference

광고쟁이의 인생 교훈, 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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