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의 성공 방정식을 깨서, 지역 주민의 마음을 점령한 편의점

세이코마트

2023.09.06

편의점 전성시대를 넘어 편의점 포화시대예요. 땅따먹기를 하듯 도심 곳곳에 매장을 오픈하던 편의점 체인의 기세도 어느샌가 꺾였죠. 매출액도, 점포수도 성장 둔화에 가로막힌 편의점 체인들은 신성장 동력을 발굴하느라 머리를 싸매고 있어요.


이때 홀로 웃고 있는 편의점 체인이 있어요. 일본 3대 편의점인 세븐일레븐, 패밀리마트, 로손을 제치고 8년 연속 편의점 부문 고객 만족도 1위를 차지한 ‘세이코마트(Seicomart)’예요. 이 편의점은 희한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에요. 기본적으로 홋카이도에서만 지점을 오픈하는 데다가, 편의점 안에 주방을 만들고, 인구 소멸 도시에 떡하니 매장을 내 쇼핑 난민을 구하죠.


전형적인 편의점과는 거리가 한참 멀지만 홋카이도의 도민들은 이 편의점을 ‘내 편’이라 불러요. 찐팬이 사업의 성공 방식이 된 시대, 세이코마트가 사랑받는 편의점이 된 비결을 알아볼게요.


세이코마트 미리보기

 #1. 셰프가 주방에서 일하고 있는 편의점

 #2. 잘나가는 PB 상품을 일부러 숨겨 놓은 이유

 #3. 인구 소멸 도시에서 흑자를 내는 비결

 대지진이 일어나도 정상 영업합니다




영업 중인 편의점 매장 한 켠에서 개최하는 소설가의 사인회. 상상 가시나요? 2016년 8월, 일본 대학가 근처의 편의점 세븐일레븐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이에요. 일본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 소설 작품의 사인회를 편의점에서 개최한 것은 업계 최초예요. 대체 편의점과 무슨 인연이 있길래 이런 시도를 하게 되었을까요?


소설의 제목은 ‘편의점 인간’이에요. 주인공은 18년째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36세 독신 여성이죠. 그런데 여기서 재밌는 사실은 작가인 무라타 사야카도 18년째 편의점에서 일하며 틈틈이 소설을 써왔다는 거예요. 심지어 이쿠타가와상을 수상하던 당일도 편의점에서 일을 했고요. 그러니까 ‘편의점 인간’은 작가의 실제 경험이 어느 정도 반영된 자전적 소설인 셈이에요. 편의점은 이 소설의 제목인 동시에 이야기가 진행되는 중요한 배경이죠.



ⓒ살림


그렇다면 소설 속 주인공은 왜 편의점 인간이 된 걸까요? 그는 어릴 때부터 주변 환경에 쉽게 적응하지 못했어요. 기본적으로 공감 능력이 없는데다 상황에 맞는 감정을 느끼지 못하거든요. ‘보통과 평범’이라는 감각이 무엇인지 모르니 인간 관계도 고난의 연속이에요. 정상적인 사회 생활이 어려워 대학 졸업 후 직장에 취업할 엄두도 내지 못했고요. 


이런 주인공에게 편의점은 곧 구원이었어요. 정해진 대로만 말하고 행동하면 되는 편의점에서라면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주인공은 매뉴얼의 세계인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을 때 비로소 세상에 대한 소속감을 느끼죠. 하지만 편의점을 나서면, 매뉴얼이 없으면 보통의 사람처럼 살아가는 방법을 알 수 없었어요. 그러니 편의점에 의존하는 인간이 될 수밖에요.


극단적이긴 하지만 작가인 무라타 사야카는 현대 사회에서 편의점이라는 공간이 상징하는 바를 정확히 꼬집었어요. 무라타가 생각하는 편의점은 ‘세계로 연결되는 문’이에요. 자본주의의 집약체이자 시대를 반영하는 공간이기 때문이죠. 그리고 이러한 편의점은, 그곳에서 일하는 점원뿐만 아니라 그 자체가 공식에 의해 움직이는 특징을 가지고 있어요. 


24시간 영업, 기계가 만든 차가운 음식, 표준화된 영업 시스템, 프랜차이즈 운영 방식. 편의성으로 대표되는 공식을 발판으로 편의점은 성장해 왔죠. 특히 본사에서 가맹점을 모집하는 프랜차이즈 체인 방식은 편의점을 더욱 빠르게 확산시키는 치트키였어요. 그런데 일본 편의점의 세계에서 통용되는 공식을 모두 뒤엎어버린 곳이 있어요. 바로 홋카이도의 편의점 체인 세이코마트(Seicomart)예요. 



ⓒ시티호퍼스


세이코마트는 걱정될 정도로 기존의 방식을 역행해요. 그 중에서 가장 특이한 건 편의점의 위치예요. 2023년 7월 기준 1,186개의 매장을 운영 중인데, 이 중 약 92%인 1,090개의 지점이 홋카이도에 있어요. 전체 점포 수만 보면 세븐 일레븐, 패밀리마트, 로손, 미니스톱에 뒤이어 5위 규모의 체인이죠. 하지만 홋카이도에서만큼은 시장 점유율 36%를 차지하는 1위 편의점이에요. 이는 ‘홋카이도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는 원칙 때문인데요. 도서 산간 지역이 많은 데다가 인구 소멸 도시가 산재한 홋카이도에서만 비즈니스를 하다니, 이미 공식을 파괴하는 접근이에요. 


그뿐 아니에요. 세이코마트에는 식당처럼 주방이 있어서 점원들이 음식을 재료부터 손질해 판매해요. 경쟁사 매장은 새벽까지 불이 켜져 있는데 하루 13시간 반만 영업하는 지점도 있고요. 게다가 프랜차이즈 가맹점을 모집해서 점포 수를 늘려온 대형 편의점 체인과는 달리 직영점 비중이 80%나 돼요. 이렇게 편의점의 세계에서 통용되는 공식을 족족 깨고도, 편의점 부문 8년 연속 고객 만족도 1위를 차지했어요. 분명 편의점 답지 않은 편의점인데, 고객들의 사랑을 독차지한 비결은 무엇일까요?



#1. 셰프가 주방에서 일하고 있는 편의점

편의점에서의 식사는 ‘끼니를 때운다’는 이미지가 있어요. 사람들은 보통 시간이나 비용이 부족할 때 편의점으로 가서, 냉장고에 진열된 차가운 삼각김밥이나 도시락을 꺼내 데워 먹거나 인스턴트 식품을 직접 조리해 먹죠. 하지만 세이코마트에서는 때우듯 식사하지 않을 수 있어요. 편의점에 있는 ‘핫 셰프(HOT CHEF)’에서 갓 만든 따뜻한 음식을 팔고 있거든요.



ⓒ시티호퍼스


물론 다른 편의점 체인도 삼각김밥, 도시락, 파스타 등 다양한 식사 메뉴를 팔아요. 카운터 옆에서는 따뜻한 닭 튀김등이 있고요. 그런데 핫 셰프의 음식은 단순히 공장에서 만든 식품을 배송 받아 데우기만 한 게 아니에요. 기계가 아니라 사람이 직접 만든 음식을 팔고 있어요. 점원들은 편의점 안에 있는 주방에서 쌀을 씻고, 밥을 지어 요리를 해요. 닭 튀김을 만들 땐 생고기에 양념을 해서 일일이 튀기죠. 이처럼 고객들은 원재료부터 조리한 갓 만든 요리를 그 자리에서 따뜻하게 맛볼 수 있는 거예요. 



ⓒ시티호퍼스



ⓒ시티호퍼스


정식 식당이 아니니 메뉴 수가 적지 않냐고요? 핫 셰프가 사랑받는 또 다른 이유는 메뉴의 풍부함이에요. 가츠동, 부타동 같은 덮밥류 뿐만 아니라 후라이드 치킨, 카레, 삼각김밥, 감자튀김까지 다양한 메뉴를 판매하죠. 심지어 편의점에서 제빵도 해요. 크로와상을 만든 직후에는 매장 안에 버터 향기가 흘러 넘치죠. 핫 셰프의 음식들은 신선함과 영양가를 기대하기 어려운 ‘편의점 음식’의 이미지를 깼어요. 매장에는 사람들이 음식을 사서 곧바로 먹을 수 있는 자리가 있어서, 식사 때가 되면 늘 식사 중인 사람들로 붐벼요.  



ⓒ시티호퍼스



ⓒ시티호퍼스


고객의 입장에서 편의점에서 갓 만든 음식을 사먹을 수 있다는 건 고마운 일이에요. 하지만 기업 경영 관점에서는 채산성이 떨어지는 일이라 세븐일레븐, 패밀리마트는 모두 식품 제조 공장에서 납품받은 음식을 팔고 있어요. 로손은 2011년에 핫 셰프와 같은 컨셉의 ‘마치카도 주방’을 도입했는데요. 1994년에 핫 셰프를 런칭한 세이코마트에 비하면 20년이 늦은 셈이에요.


그렇다면 세이코마트는 어떻게 편의점에 주방을 만들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요? 이 아이디어는 세이코마트의 위치적 특성에서 비롯됐어요. 대다수의 지점이 홋카이도에 있는 세이코마트는 지리적 특성 상 도서 산간 지역에 있는 경우가 많아요. 악천후가 발생하면 상품 배송이 어려울 때가 많죠. 이럴 때 공장 제품에 전적으로 의지하게 되면 음식을 안정적으로 납품받기 힘들어요. 그래서 매장 내 조리라는 해결책을 떠올렸어요.


지리적 특성 하나만으로 이런 결정을 내린 건 아니에요. 세이코마트는 ‘갓 만든 음식이 맛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는데요. 공장에서 음식을 배송 받으면 편하긴 하지만 배송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신선도가 떨어져요. 밥, 달걀 요리, 튀김, 반찬 같은 음식은 매장에서 요리한 게 더 맛있을 수밖에요. 그래서 세이코마트는 편의점에 주방을 만들었어요. 이 곳에서 두 세명의 인원이 당일에 팔릴 음식을 만들어요.



ⓒ시티호퍼스


하지만 아무리 음식 퀄리티가 뛰어나도 편의점에 주방을 만드는 건 위험 부담이 있어요. 주방을 설치하려면 그만큼 투자금이 많이 들어가고, 주방이 생긴 공간만큼 매장 공간이 줄어드니까요. 주방 인원까지 채용하려면 인건비도 만만치 않고요. 겉만 보면 이런 경영 방식은 비효율적으로 느껴져요. 하지만 세이코마트는 운영의 묘책으로 핫 셰프의 사업 리스크를 제거시켰죠.


먼저 고객의 재방문율을 높였어요. 인구 수가 적은 홋카이도 지역에서 매출을 올리려면 인당 재방문율을 높여야 하는데요. 그러려면 편의점에 자주 방문할 수 있는 동기가 필요해요. 그래서 세이코마트는 핫 셰프의 메뉴를 다양하게 준비했어요. 사람들은 일주일에 여러 번 방문해서 메뉴를 바꿔가며 식사할 수 있도록요. 사람들은 핫 셰프의 음식을 살 때 편의점 음료를 함께 구매하는 경향이 있었어요. 객단가가 자연스럽게 올라갔죠.


조리 방식과 판매 체계도 효율화했어요. 하루에 어떤 음식을 얼마나 만들지, 조리 순서와 방법은 어떻게 되는지, 몇 시부터 작업해야 하는지 등 세세한 지침을 전부 매뉴얼화했어요. 주방에서 가장 도움이 된 건 조리 기자재에요. 해외에서 찾은 스팀 컨벡션 오븐 덕분에 많은 종류의 메뉴를 대량으로 만들 수 있게 되었죠. 또한 세이코마트는 당일 고객 방문 현황에 따라 조리 양을 조절할 수 있다는 장점을 살려 핫 셰프를 중점적으로 운영하고, 공장 배송 식품의 양은 줄여나갔어요. 그 결과 세이코마트는 어느덧 연간 6,000만 끼를 판매하는 맛집으로 성장했어요.


“핫 셰프를 좋아하는 고정 고객을 늘리고, 같은 사람이 여러 번 방문하도록 해서 총 방문객 수를 늘리고 싶어요. 100명의 손님을 늘리기보다 10번 오는 손님을 10명 늘리고자 합니다.”

- 세코마 회장 마루타니 토모야쓰,  공식 홈페이지 중


이러한 전략으로 핫 셰프에 공을 들이는 세이코마트는 홋카이도 내 인구 과소화가 심화된 마을까지 진출해 있어요. 그 중에는 마을에 식당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경우도 있죠. 이런 지역의 주민들에게 세이코마트는 편의점 그 이상의 존재예요. 핫 셰프에서 따뜻하고 신선한 한 끼를 다양하게 즐길 수 있으니 마루야 회장의 말처럼 다시, 자주 방문할 수밖에 없어요.



#2. 잘나가는 PB 상품을 일부러 숨겨 놓은 이유

핫 셰프의 또 다른 인기 비결은 ‘저렴한 가격’이에요. 보통 직접 조리해서 만드는 음식은 공장에서 대량 생산한 음식보다 비쌀 수밖에 없어요. 대량 생산을 하면 개당 재료비, 생산비, 물류비, 인건비 등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죠. 그런데 핫 셰프의 음식을 포함한 세이코마트의 상품들은 전반적으로 가격이 저렴해요. 대형마트도 아닌데 어떻게 음식도, 상품도 저렴하게 판매할 수 있을까요? 


반찬 코너에 있는 제품의 가격은 120엔(약 1200원)부터 시작해요. 수도권의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반찬 시세가 300엔(약 3000원) 내외인 것에 비하면 굉장히 저렴한 편이에요. 반찬뿐만 아니라 우유, 와인 등 다른 상품들도 마찬가지고요. 홋카이도 구석 구석에 있는 매장까지 배송하는 데 드는 물류 비용을 감안하면 믿기지 않는 저렴한 가격대인데요. 이는 세이코마트의 공급망과 PB 상품 덕분이에요. 



ⓒ시티호퍼스



ⓒ시티호퍼스


세이코마트를 운영하는 세코마 그룹의 강점은 소매업뿐만 아니라 제조, 물류 기능이 있다는 거예요. 원재료의 생산부터 식품 제조, 유통, 판매까지 전부 담당하죠. 2020년 기준 세코마 그룹 산하의 제조 공장은 21개, 물류 공장은 7개예요. 일찍부터 구축해 둔 물류망에 따라 세코마그룹의 물류 트럭 210여대가 하루 총 7만 km를 달려요. 트럭 1대 당 주행 거리가 333km에 달할 정도죠.


이는 대형 편의점 3사가 PB 상품을 출시할 때 생산과 배송을 외부에 위탁하는 것과는 다른 행보예요. 이렇게 제조와 배송, 판매를 일체화할 때의 장점은 확실해요. 각 단계별로 발생하는 중간 마진을 덜어낼 수 있어 최종 상품 가격을 낮출 수 있어요. 소비자의 기호에 맞춰 그때 그때 상품을 기획, 제작할 수도 있고요.


PB 상품의 품목 수는 1,000개가 넘어요. 카테고리는 반찬부터 술, 음료, 과자, 가공식품, 일용품까지 폭넓죠. 세코마 그룹은 상품 개발 과정에서 자사 공급망의 이점을 살려 비용을 효율화해요. 식품 제조 단계에서는 비표준 제품을 활용해서 식품 로스를 줄이죠. 흠집이 난 삶은 계란으로 샐러드와 샌드위치를 만들고, 규격 외 멜론으로는 멜론 아이스크림을 만드는 식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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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재료 조달 프로세스를 구축하려는 목적으로 M&A를 통해 제조업체를 자회사화하기도 해요. 지금 세코마 그룹 산하에는 농업생산법인, 수산가공회사, 식품 및 음료 제조회사 등이 있는데요. 다른 기업처럼 위탁 생산을 하지 않고 기업의 덩치를 키워나가는 이유는 명확해요. 길거리에 편의점이 넘칠 정도로 포화된 시장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세이코마트에 방문해야 할 명확한 이유가 있어야 했거든요. 고품질 저단가의 PB 제품은 그 이유가 될 수 있었어요.


세이코마트가 M&A를 통해 얻고자 한 건 건물이나 설비가 아니라 기술을 가진 사람이었어요. 일본에는 ‘떡은 떡집(餅は餅屋)’이라는 표현이 있어요. 모든 일은 그 일을 제일 잘하는 전문가에게 맡겨야 한다는 뜻이에요. 이 말처럼 세마코 그룹은 상품력을 키우기 위해 기업을 사들였고 전략은 적중했어요. PB 상품으로 출시한 찹쌀떡이 한 달만에 100만 개의 판매량을 달성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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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편의점 체인의 현실은 어떨까요? 물론 다른 편의점 체인들도 PB 상품을 판매하지만, 도입 시기에 큰 차이가 있어요. 세이코마트의 첫 번째 PB 상품은 1995년 출시됐어요. 세븐 일레븐이 2007년 PB 상품을 판매하기 시작했으니 12년이나 앞선 거죠. 점내 주방 도입도, PB 상품 출시도 번번이 대형 편의점 체인을 앞서가는 비결을 묻자 사장인 아카오 히로아키는 아버지를 언급했어요. 아버지인 아카오 아키히코는 세이코마트의 실질적 창업자이자 선대 회장인데요. 유통업계의 미래를 미리 내다본 그는 언젠가 시장이 포화 상태가 되더라도 쉽게 따라잡히지 않으려면 원재료부터 다뤄야 한다고 했죠. 예언은 현실이 됐어요.


세이코마트가 만든 PB 상품에는 홋카이도의 지명을 사용한 컵라면, 맥주, 홋카이도의 원료가 들어간 술 안주처럼 홋카이도를 브랜드화한 상품들이 많아요. 홋카이도를 찾아온 관광객은 유바리 멜론으로 만든 아이스크림, 징기스칸 도시락 등을 사먹으며 홋카이도를 맛보죠. 고품질 저단가의 상품과 지역을 브랜드로 만든 상품 기획 덕분에 PB 상품의 매출은 전체 매출의 50%가 넘어요. PB 상품을 세이코마트의 얼굴로 키우려는 의도에 부응하는 결과죠.



ⓒ시티호퍼스


그런데 실제로 편의점에 가 보면 매장에서 세이코마트의 PB 상품이 잘 보이지 않아요. 같은 톤과 폰트로 패키지 디자인을 통일시킨 타 편의점 체인과는 달리, 로고만 작게 넣었거든요. 이렇게 PB 상품을 눈에 띄지 않게 만들어 군데 군데 배치한 건 의도된 전략이에요. 눈에 잘 띄게 만들면 고객에게 브랜드를 인지시키기 쉽고 정돈된 느낌을 주지만, 비슷한 상품들만 취급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거든요. 그래서 세이코마트는 일부러 디자인의 통일성을 깨뜨려요. 사내 디자이너가 각 아이템의 개성을 살린 창의적인 패키지 디자인을 만들어 제품의 오리지널리티를 살리죠.



로손의 PB 상품 패키지 디자인. 로손은 2020년 자사의 PB 상품 700여 품목의 디자인을 통일했어요. ⓒlawson



두번째 단에 진열된 세이코마트의 PB 상품 과자들. 세이코마트는 PB 상품의 패키지 디자인에서 의도적으로 통일감을 없앴어요. ⓒmdnext



#3. 인구 소멸 도시에서 흑자를 내는 비결

이렇게 색깔이 강한 세이코마트는 대형 편의점 3사인 세븐일레븐, 로손, 패밀리마트가 일본 전역에서 경쟁을 펼칠 때 홀로 홋카이도에서 국지전을 치러요. 전체 점포 수의 약 92%인 1090개의 지점(2023년 7월 말 기준)이 전부 홋카이도에 있죠. 당연히 홋카이도 지역 내 점유율 1위예요. 그런데 홋카이도를 주 무대로 활동하는 전략은 괜찮은 걸까요? 홋카이도는 일본 전체 땅의 22%를 차지하지만 인구 수는 약 522만 명으로 총 인구의 4%밖에 되지 않거든요. 인구 밀도가 제곱킬로미터 당 67명으로 전국 평균의 5분의 1 수준이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이코마트는 홋카이도에 계속 지점을 열었어요. 이걸 가능하게 만든 건 독자적인 공급 체인과 물류망이에요. 맛있는 홋카이도의 식자재로 직접 식품을 만들고 자사의 직영 트럭 수백 대로 배송하기 때문에 비용 컨트롤이 가능했어요. 또 1990년대 초부터 홋카이도 전역에 배송 체제를 구축하고 100억엔 (약 1,000억)을 들여 물류 체제를 만든 덕에 문제 없이 홋카이도에 매장을 열 수 있었어요.


그럼에도 인구가 계속 소멸 중인 도시에 매장을 열기는 쉽지 않을 거예요. 그런데 세이코마트는 2014년 인구 수가 약 1,200명 밖에 되지 않는 홋카이도의 작은 마을 쇼산베쓰에 편의점을 열었어요. 2022년 말 인구 수는 1,075명으로 8년 사이에 10%나 줄어들었죠. 감가상각비, 물류비, 인건비와 광열비, 임대료 등을 감안하면 이런 지역에서는 운영을 하면 할수록 적자 폭이 늘어나요. 그런데 예상과는 달리 이 지점은 현재 흑자로 운영 중이에요. 이유가 뭘까요?



ⓒseicomart


일단 편의점이 들어서는 땅은 마을이 준비했어요. 마을 중심부에 있던 상점마저 폐점을 해서 다같이 쇼핑 난민이 되기 직전이었으니 모두가 간절했던 거죠. 동사무소 옆에 있는 300평의 땅을 매달 2,500엔(약 2만 5천원)만 주고 사용할 수 있게 됐어요. 세이코마트는 24시간 운영을 고집하지 않아서 인건비와 광열비도 낮출 수 있었고요. 마지막으로 물류비는 이미 물류망을 구축해 놓은 덕분에 걱정을 덜었어요.


다행히 적자는 면할 수 있는 비용 구조였지만 흑자까지 기대하긴 어려웠어요. 애초부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마을 주민을 돕고 싶어서 적자를 각오하고 오픈한 매장이었죠. 하지만 세이코마트의 선의가 통한 걸까요? 개업 초기에 계속되던 적자가 어느새 흑자로 전환되는 기적이 일어났어요. 인구 수가 줄어든 대신 객단가가 평균의 1.5배 수준으로 증가했거든요.


객단가가 올라간 건 세이코마트가 주민의 니즈에 철저히 대응했기 때문이에요. 인구 과소 지역에 위치한 세이코마트에서는 일반 점포에 없는 상품을 판매해요. 회, 꽃, 대용량 조미료 등 주민이 원하는 거라면 무엇이든 구비하죠. 그래서 이 지역 주민들은 생활에 필요한 제품을 전부 세이코마트에서 구매해요. 하루에 3번 씩 편의점을 찾아오는 주민이 있을 정도예요.


시장 점유율보다 마인드 점유율을 중요시하는 세이코마트에게 가장 중요한 건 지역 주민과의 관계성이에요. 홋카이도 출신의 편의점 직원은 매장에서 지역 주민에게 말을 걸고 활발히 소통하며 이들이 원하는 것을 알아내요. 한정된 상권에서 소비자의 선택을 받기 위해 먼저 손을 내미는 거예요.



ⓒ시티호퍼스


그렇다고 아날로그 방식으로만 소비자의 니즈를 알아내는 건 아니에요. 세이코마트는 클럽 카드인 페코마(Pecoma)로 고객 데이터를 얻어 상품 개발 및 리뉴얼에 활용하죠. 예를 들어 반찬의 양념을 바꾸거나 양에 변화를 줄 때는 과거의 리뉴얼 데이터를 참고해요. 판매 데이터를 성별, 연령대별로 분석해서 마케팅에도 활용하고요. 2000년에 도입한 이 회원 카드는 사용하는 사람이 많을 수록 데이터의 신뢰도가 올라가요. 그래서 점원들은 계산대에서 적극적으로 클럽 카드 유무에 대해 물어요. 소비자의 선택을 받을 확률은 점점 더 올라가죠.



대지진이 일어나도 정상 영업합니다

이쯤되면 세이코마트가 대형 편의점 체인을 제치고 홋카이도의 터줏대감이 된 이유를 알 것 같아요. 홋카이도에서 세이코마트는 편의점은 물론이고 동네의 식당, 슈퍼마켓, 모임 장소까지 담당하며 하나의 사회 인프라가 되었으니까요. 그런데 홋카이도에서 세이코마트를 부르는 또 다른 별명이 하나 있어요. 바로 ‘홋카이도의 아군’이죠. 시민들이 편의점을 ‘우리 편’이라고 생각하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요?


때는 2018년 9월, 홋카이도 대지진이 일어났을 때였어요. 진도 7의 강도를 이기지 못하고 홋카이도의 지역이 연쇄적으로 블랙아웃 됐죠. 대다수의 지역이 고립 상태에 빠졌고 음식 배송은 꿈도 꿀 수 없었어요. 도시락을 판매하는 기업은 반찬 공장이 하나라도 작동하지 않으면 도시락 구성의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이유로 음식을 팔지 않았어요. 이때 주민들의 불안을 잠재운 건 세이코마트였어요.


과거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했을 때 교훈을 얻은 세이코마트는 가솔린 차량에 연결해서 발전기를 돌릴 수 있는 비상용 키트를 전점에 보유하고 있었어요. 덕분에 자연재해 속에서도 50개의 점포를 제외한 1,100개의 점포가 정상적으로 영업할 수 있었죠. 핫 셰프라는 이름에 걸맞게 따뜻한 주먹밥과 반찬을 만들어 제공한 덕에 주민들은 대지진의 여파를 견딜 수 있었어요. 어려운 시기에 곁에 있어줬으니 세이코마트와 주민 간 관계성은 더욱 깊어졌고요.


세이코마트는 다른 편의점에서 가지 않은 길을 골라 걸어가면서 특별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었어요. 남들이 하지 않는 것을 하고, 모두가 하는 것을 과감히 하지 않으면서요. 일본 북부에 위치한 홋카이도의 겨울은 길고 춥지만, 주민들이 걱정할 이유는 없어요. 홋카이도에는 어디서든 온기를 불어 넣어주는 세이코마트가 있으니까요.




Reference

 <편의점 인간>, 무라타 사야카, 살림

 세이코마트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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