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는 ‘오미야게’ 문화가 있어요. 여행이나 출장으로 방문한 곳에서 기념품이나 토산품을 사와 선물하는 문화예요. 가장 대표적인 오미야게 상품으로 꼽히는 건 과자. 선물용으로 구입하기에 가격이 비싸지도, 그렇다고 싸지도 않아서죠. 종류나 개수에 따라 가격대가 달라지지만, 대체로 1,000~2,000엔(약 1~2만원)이면 한 상자를 무난하게 살 수 있어요.
각 지역의 오미야게 과자들이 각축전을 벌이며 서로의 존재감을 드러내는데요. 그중에서 인지도 1위를 차지한 과자가 있어요. 바로 홋카이도를 대표하는 과자 ‘시로이 코이비토’예요. 도쿄를 대표하는 오미야게 과자로 유명한 ‘도쿄 바나나’가 5위인 걸 감안하면 시로이 코이비토가 일본에서 얼마나 잘 알려진 제품인지 알 만 해요. 홋카이도의 기념품이었던 시로이 코이비토가 어느덧 일본을 대표하는 기념품으로 거듭난 거예요.
그렇다면 시로이 코이비토는 어떻게 오미야게 과자의 1인자가 되었을까요? 힌트는 ‘홋카이도’라는 낭만을 파는 데 있어요.
시로이 코이비토 미리보기
• #1. 과자가 아니라 정서를 팝니다
• #2. 홋카이도에 연인은 두고 갑니다
• #3. 판매의 장소에서 추억의 장소로
• 10년 전 흑역사를 책으로 출판한 이유
홋카이도는 눈의 왕국이에요. 겨울이 다가오면 온 도시가 하얀 눈으로 뒤덮이죠. 일본 최북단에 위치한 섬이라 겨울은 유난히 춥고 길지만, 관광객은 이 모습을 보기 위해 전 세계에서 몰려와요. 눈이 하나의 관광 자원이 된 거예요. 특히 매년 2월이 되면 세계 3대 눈 축제 중 하나인 ‘삿포로 눈 축제’가 열리는데요. 이 축제를 보러 연간 20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찾아올 정도로 인기가 높아요.
눈 내린 홋카이도의 아름다운 풍경을 꼭 직접 가야만 볼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영화나 드라마 속 배경으로도 종종 등장하거든요. 영화 <러브레터>, 넷플릭스 시리즈 <퍼스트 러브 하츠코이>처럼 영상미를 강조한 작품 속에서 홋카이도의 눈 내린 풍경은 로맨스를 더욱 아련하고 애틋하게 만드는 역할을 해요. 홋카이도의 눈이 작품의 가치를 높이는 셈이에요.
물론 관광 산업과 콘텐츠 산업에서만 홋카이도 눈의 은혜를 누리라는 법은 없어요. 제과 분야에서도 홋카이도의 눈이 제품의 가치를 높이는 데 한 몫을 제대로 하고 있죠. 눈으로 과자를 만들기라도 했느냐고요? 홋카이도에는 이름부터 패키지까지 제품 곳곳에 눈의 모습이 담긴 쿠키가 있거든요. 바로 ‘시로이 코이비토(白い恋人)’, 하얀 연인이라는 뜻이에요.
ⓒishiya
시로이 코이비토는 홋카이도뿐만 아니라 일본 전역에서 존재감이 대단해요. 2017년 마케팅 컨설팅 업체인 네오마케팅이 발표한 오미야게 과자 인지도 조사에서 1위를 차지했죠. 5위가 도쿄 바나나인 걸 감안하면 시로이 코이비토가 일본에서 얼마나 잘 알려진 제품인지 알 만 해요. 홋카이도의 기념품이었던 시로이 코이비토가 어느덧 일본을 대표하는 기념품으로 거듭난 거예요.
시로이 코이비토를 만든 건, 1947년에 창업한 작은 과자 회사인 이시야 제과예요. 1976년에 시로이 코이비토를 출시했는데요. 이 과자를 세상에 내놓자마자 일약 스타덤에 올린 이시야 제과만의 비결은 남다른 접근법에 있어요. 제품을 조명하는 방식을 바꿨거든요. 제품 그 자체보다 제품이 지닌 정서를 강조하고, 고객을 일부러 불편하게 만들었어요. 그렇게 시로이 코이비토는 50여년의 시간 동안 사랑을 받아왔죠. 구체적으로 어떤 시도들이 있었는지 알아볼게요.
#1. 과자가 아니라 정서를 팝니다
하얀 연인이라는 뜻의 ‘시로이 코이비토’는 랑그 드 샤(Langue de Chat) 쿠키예요. 발매 당해에 500만 개를 팔았을 뿐만 아니라 지금은 연간 2억 개의 판매량을 자랑하는 제품이죠. 이 제품은 연간 매출액 180억엔(약 1,800억원, 2020년 기준)을 기록하는 이시야 제과의 전체 매출에서 80%를 차지할 정도예요. 사실상 이시야 제과의 정체성이나 다름 없죠.
이시야 제과는 원래 콩가루 등으로 과자를 만들던 작은 기업이었어요. 그러던 중 1960년대 들어서 대형 과자업체들이 홋카이도에 잇따라 진출하면서 도산 위기에 처하게 됐어요. 이때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홋카이도의 재료를 사용해서 만든 고급 양과자가 바로 시로이 코이비토예요. 그런데 이 쿠키가 지금과 같은 인기를 얻게 된 건 단순히 쿠키의 맛 때문만은 아니에요. 이시야 제과는 시로이 코이비토를 만든 순간부터 이름, 디자인, 판매 경로까지 세심하게 기획했어요. 마치 홋카이도의 연인으로 태어날 운명이었던 것처럼요.
출시 초기의 시로이 코이비토 모습이에요. ⓒishiya
먼저 과자의 이름이 ‘하얀 연인’이 된 계기부터 살펴볼게요. 이시야 제과에서 이 과자를 만들고 나서 직원들은 골머리를 앓았어요. 화이트 초콜렛이 들어가 있는 이 과자의 분위기를 살려 눈이나 홋카이도를 연상시키는 이름을 짓고 싶었지만 딱히 생각이 나지 않았거든요. 급기야 북극, 겨울 장군, 툰드라, 블리자드 등 겨울과 관련된 독특한 이름까지 나오기 시작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요. 이시야 제과의 창업자이자 대표인 이시미즈 유키야쓰가 눈 내리는 모습을 보다가 ‘하얀 연인들이 내려왔어’라는 한 마디를 던졌어요. 무심코 던진 대표의 이 말에, 이름을 찾으려고 애쓰던 직원들의 고민이 눈 녹듯 사라졌어요. 눈이 내리는 순간을 연상시키는 이 서정적인 이름은 랑그 드 샤 쿠키의 이름으로 제격이었죠. 여기에다가 눈의 결정을 제품 패키지에 그려 넣었어요. 그렇게 시로이 코이비토에서 홋카이도의 눈을 연상하게 끔 했어요.
이름부터 패키지까지 홋카이도의 겨울을 품고 있던 시로이 코이비토가 초창기부터 홋카이도의 기념품으로 자리매김한 건 바로 판매 장소 덕분이에요. 당시 이시야 제과의 대표는 판매 상품만큼이나 판매 장소를 중요하게 여겼어요. 삿포로 시내의 유명 백화점과 거래를 성사시킨 대표가 다음으로 주목한 판매 장소는 다름 아닌 비행기였죠. 그는 치토세 공항 전일본공수 항공사 카운터에 무작정 찾아가 기내식 상품 구매 담당 부서를 만나게 해달라고 부탁했어요.
담당자를 만난 이시미즈 대표는 전일본공수의 캠페인에 딱 맞는 상품을 만들어 왔다고 말했어요. 당시 전일본공수는 홋카이도 여행을 장려하는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마침 시로이 코이비토가 이 캠페인의 컨셉에 딱 맞았던 거예요. 이시미즈 대표의 담대한 배짱 덕분에 시로이 코이비토는 1977년 10월 2주 동안 삿포로와 도쿄를 오가는 비행기의 기내식으로 제공됐어요.
결과는 성공. 비행이 끝나자 제품 패키지 뒷면에 쓰여있는 번호로 문의 전화가 쇄도하기 시작했어요. 이전까지는 홋카이도 내에서 주로 팔리던 시로이 코이비토는 기내식 채택 이후 수도권 고객들이 찾게 되며 폭발적인 인기를 얻게 됐어요. 생산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해 공장을 증설할 정도였어요.
시로이 코이비토, 전일본공수, BE@RBRICK의 콜라보레이션 제품. 친숙한 시로이 코이비토의 패키지가 패턴으로 그려져 있어요. ⓒopen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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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이시야 제과는 제품 출시 초기부터 시로이 코이비토를 홋카이도 여행에서 뗄레야 뗄 수 없는 기념품으로 포지셔닝 해왔는데요. 핵심은 메이드 인 홋카이도(Made in Hokkaido)가 아니에요. 홋카이도에서 만들어 파는 과자는 다른 브랜드도 많죠. 그렇다면 무엇이 시로이 코이비토를 홋카이도를 대표하는 과자로 만든 결정적 차이일까요? 브랜딩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것을 묻자 이시야 제과의 담당자는 이렇게 답했어요.
“시로이 코이비토는 홋카이도의 이미지를 상징하는 것이었으면 합니다. 이시야 제과는 홋카이도의 풍토, 문화에 뿌리를 두고 낭만을 파는 기업이고 싶습니다.”
- Openers 인터뷰 중에서
이시야 제과는 손바닥 크기도 되지 않는 작은 쿠키 안에 홋카이도를 담고 싶었던 거예요. 그래서 눈, 겨울, 추억, 낭만이라는 키워드를 제품과 결합시켜 나가며 홋카이도와의 싱크로율을 높이기 시작했죠. 결국 선물하기 좋은 기념품 1위에 등극하게 됐어요. 제품 그 자체보다 제품이 연상시키는 이미지와 정서에 집중함으로써 사람들의 머릿 속에 자리매김한 거예요. 사람들에게 시로이 코이비토는 단순한 과자가 아니에요. 홋카이도에 다녀왔다는 증거이자 추억이죠.
#2. 홋카이도에 연인은 두고 갑니다
이시야 제과는 시로이 코이비토가 홋카이도에서 보내는 여정의 일부가 되기를 원했어요. 그래서 출시 직후부터 홋카이도 한정 판매 정책을 고수해 왔죠. 그렇지만 인기가 많은 제품을 특정 지역에서만 파는 건 기업 입장에서 손해 아닐까요? 판매 장소가 늘어나면 그만큼 매출액도 비례할 텐데 말이에요.
하지만 이시야 제과는 시로이 코이비토를 홋카이도에서만 살 수 있다는 ‘한정성’ 자체를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오히려 이 한정성이라는 속성을 활용해서 만든 광고가 일본에서 화제가 된 적도 있죠. 바로 이시야 제과가 처음으로 홋카이도가 아닌 도쿄에 이시야 G라는 매장을 오픈할 때였어요. 물론 오미야게라는 단어가 ‘지역의 특산물’이라는 뜻을 품고 있듯이 상품을 특정 지역에서만 판매하는 전략은 흔히 볼 수 있어요. 하지만 이 전략을 활용해서 새로운 브랜드 홍보까지 이어지게 한 것은 기발한 접근이었죠.
이시야 제과는 2017년 4월 20일, 도쿄 긴자에 새로 오픈한 복합 상업 시설 ‘긴자 식스’에 ‘이시야 긴자’를 오픈했어요. 홋카이도 바깥에서 매장을 오픈한 것은 처음이었죠. 그런데 이시야 제과는 이 곳에서 시로이 코이비토를 판매하지 않기로 했어요. 대신 긴자에서만 살 수 있는 신상품을 팔기로 했죠. 전체 매출의 약 80%를 차지하는 주력 상품을 판매하지 않는다면 무엇으로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있었을까요?
이시야 긴자의 오픈 당일, 이시야 제과는 신문에 지면 광고를 실었어요. 그런데 광고가 실린 지역은 이시야 긴자의 매장이 있는 도쿄뿐만이 아니었어요. 한 곳에 더 광고를 실었죠. 바로 홋카이도예요. 매장이 있지도 않은 지역에 신문 광고를 한 것도 이상한데, 심지어 같은 광고가 아니었어요. 컨셉은 똑같지만 자세히 보면 문구의 일부가 바뀌어 있었거든요.
도쿄에 배포될 요미우리 신문에는 ‘연인은 두고 왔습니다’라는 글이, 홋카이도에 배포될 홋카이도 신문에는 ‘연인은 두고 갑니다’라는 카피가 쓰여 있었어요. 여기서 ‘연인’은 시로이 코이비토를 뜻해요. 도쿄로 진출하더라도 시로이 코이비토는 여전히 홋카이도에서만 판매할 것이라는 인사를 두 지역에 전한 거예요. 알고보니 광고의 버전이 2개였다는 사실이 SNS에서 퍼지자 이 페어링 광고는 큰 화제가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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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는 주말 사이 입소문을 타고 온라인에서 퍼져 나갔어요. 그 결과 이시야 긴자는 개점 1시간 만에 상품이 매진될 정도의 인기를 끌었죠. 이시야 제과는 모기업보다 높은 인지도를 자랑하는 시로이 코이비토라는 제품으로 이시야 긴자를 홍보하는 데 성공했어요. 동시에 한정 판매 전략은 고수함으로서 시로이 코이비토의 가치는 유지했고요.
한정된 지역이나 지점에서만 제품을 판매하는 건 제약이나 불편함으로 여겨질 수도 있어요. 하지만 이시야 제과는 이를 하나의 특권이자 특별함으로 만드는 능력이 있었어요. ‘홋카이도의 겨울을 담은 시로이 코이비토는 오직 홋카이도에서만 구매할 수 있다’는 인식이 퍼지자 사람들은 기념의 용도로 과자를 구매하기 시작했어요. 과자와 홋카이도, 그리고 추억을 엮는 전략은 적중했어요.
다만, 지금은 홋카이도 지역 밖에서도 구매를 할 수 있는데요. 바로 일본의 주요 공항에서죠. 시로이 코이비토가 홋카이도를 대표하는 과자로 자리매김한 후, 일본의 주요 공항으로 판로를 확대한 거예요. 여전히 한정성을 유지하는 동시에 일본을 대표하는 오미야게로서의 입지를 다져 나가는 중이에요.
#3. 판매의 장소에서 추억의 장소로
시로이 코이비토는 홋카이도라는 이미지를 과자에만 담아 놓은 게 아니에요. 삿포로에 시로이 코이비토를 구현한 공간을 만들어 놓았죠. 바로 이시야 제과가 만든 테마파크인 ‘시로이 코이비토 파크’인데요. 과자를 만드는 기업이 만든 테마파크는 어떤 모습일까요? 그리고 테마파크를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요?
ⓒ시티호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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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파크는 주로 규모로 압도하는 곳이에요. 부지가 넓어야 다양한 체험 제공이 가능하니 그만큼 하드웨어가 미치는 영향이 크죠. 하지만 이시야 제과의 대표는 시로이 코이비토 파크에서 중요한 건 하드웨어보다 소프트웨어라고 생각했어요. 물론 주변이 주택가였기 때문에 시로이 코이비토 파크의 부지를 더 넓히기도 어려웠지만, 중요한 건 규모가 아니라 여기서 만들어 나갈 농도 깊은 추억이라고 봤죠. 그래서 이곳에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체험 프로그램들이 많아요.
그렇게 테마파크를 운영하면서 소프트웨어가 중요하다는 데 확신을 갖게 된 계기가 생겼어요. 과거에 ‘1일 공장장’이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한 적이 있거든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꿈의 과자를 그림으로 그려달라고 한 뒤, 그걸 파티시에가 실제로 만들어주는 기획이었어요. 놀랍게도 이때 뽑혔던 아이가 수십 년이 지나서 실제로 이시야 제과에 입사하는 일이 벌어졌어요. 어릴 때 경험한 과자 만들기 체험의 영향력이 상상 이상으로 크다는 걸 알게 됐고, 이런 취지의 프로그램을 늘렸죠.
그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건 바로 고객들이 직접 제품을 커스터마이징해 볼 수 있는 체험이에요. 먼저 나만의 쿠키를 만들어볼 수 있어요. 14cm 크기의 시로이 코이비토를 직접 만들어보는 거죠. 과자를 캔버스 삼아 주어진 재료들로 과자를 다 꾸미고 나면, 실제 판매하는 제품처럼 포장을 해줘요. 순간을 기념하기에도, 누군가에게 선물하기에도 적합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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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더해 시로이 코이비토 제품 패키지를 직접 만들 수도 있어요. 원래 시로이 코이비토 제품 패키지의 하트 안에는 홋카이도의 리시리 산이 들어가는데요. 이 산 대신에 UV 프린터기를 이용해서 고객이 고른 사진을 넣을 수 있도록 한 거예요. 이렇게 하면 세상에 단 하나만 존재하는 나만의 시로이 코이비토를 만들 수 있어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까 싶지만, 2018년 한 해 동안 16,300건 이상의 주문이 접수되는 등 큰 인기를 모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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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자가 만들어지는 모습도 실시간으로 지켜볼 수 있어요. 직원들이 일하는 모습을 창 밖으로 지켜보며 각 단계별 제조 공정과 하루 생산량을 볼 수 있죠. 과자를 굽고, 조립하고, 식히고, 포장하는 과정을 두 눈으로 지켜보다 보면 제품에 대한 이해도와 신뢰도가 동시에 올라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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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외에도 시로이 코이비토 파크에는 초콜릿의 역사를 재미있게 배울 수 있는 체험형 어트랙션과 이시야 제과의 과거를 기록한 이시야 뮤지엄까지 농도 깊은 공간들로 가득차 있어요.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전체 공간이 유료 존과 무료 존으로 나뉘어져 있다는 건데요. 이시야 제과는 무료 존을 구성해 시로이 코이비토 파크의 문턱을 낮춰 관광객과 지역 주민 모두가 추억을 만들 수 있기를 원했어요.
더 나아가 이시야 제과는 회사의 목표가 ‘추억 만드는 일을 돕는 기업’이 되는 것이라 말해요. 매출만 중요시하는 기업이 아니라, 사람들이 가진 추억의 배경 혹은 소품이 되기를 바랐던 거예요. 실제로 시로이 코이비토 파크는 그런 기능을 톡톡히 하고 있어요. 매년 70만 명 이상의 방문객이 방문하는 관광지가 되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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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흑역사를 책으로 출판한 이유
하지만 성공의 달콤함에 취하기라도 했던 걸까요? 홋카이도뿐 아니라 일본 전역에서 사랑을 받았던 시로이 코이비토가 사람들에게 사상 최악의 배신감을 안긴 적이 있어요. 2007년, 이시야 제과는 팔리지 않고 남은 시로이 코이비토를 유통기한만 바꿔 팔았죠.
그뿐 아니에요. 이시야 제과가 만든 아이스크림에서 대장균이 검출되었는데도 보건소에 신고하지 않고 자체 폐기한 이력이 있었어요. 사람들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어요. 하루에 걸려온 항의 전화만 8만 건에 달했죠. 대표의 기자회견에도 여론은 사그라들지 않았고 결국 3개월 간 제조, 판매 금지라는 행정 처분을 받게 됐어요.
이때 이시야 제과는 환골탈태에 가까운 쇄신을 하게 돼요. 책임을 통감한 대표는 사임했고, 이시야 제과는 품질 관리부를 신설해서 컴플라이언스 체제를 구축했죠. 제조 현장도 대폭 달라졌어요. 기계음이나 과자의 색깔에 조금이라도 이상이 생기면 즉시 제조라인을 정지했고, 대책을 세울 때까지 가동하지 않았어요. 다른 회사에서는 늘 해왔던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이시야 제과로서는 엄청난 변화였어요.
3개월 간의 영업 정지가 끝나고 다시 판매를 재개하던 날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백화점과 공항은 시로이 코이비토를 구입하려는 사람들로 가득했어요. 이날 이후 무려 반 년 가까이 모든 매장에서 당일 매진이 이어졌죠. 이때 시로이 코이비토를 사줬던 것은 관광객이 아니었어요. 이변을 만든 건 홋카이도 도민들이었죠.
평소에는 홋카이도에 방문한 사람들의 선물용 구입이 많았지만, 이날은 홋카이도 도민들이 응원의 마음을 전하고자 나타났던 거예요. 이 마음에 힘입어 폐업의 위기까지 갔던 이시야 제과는 다시 일어설 수 있었고, 2009년 4월 사상 최고치인 약 93억엔(약 930억 원)의 매출을 달성했어요.
위기가 닥치면 본질이 드러나요. 다시 일어난 이시야 제과는 자신의 흑역사를 숨기지 않고 오히려 전시했어요. 시로이 코이비토 파크에 있는 ‘이시야 뮤지엄’의 벽에는 이러한 사건들에 대한 내용이 쓰여 있어요. 게다가 이시야 제과는 심지어 사건이 일어난지 10년이 지난 후, 이 사건을 주제로 한 책을 출판했어요. 제목은 <‘시로이 코이비토’ 기적의 부활 이야기>로, 유통기한 변조 사건에 대한 내용과 그 후의 극복 과정을 담았죠. 시간이 흐르며 가만히 잊혀지기를 기다리기보단 10년 전 실패를 다시 꺼내기로 한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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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이 코이비토 파크에 있는 이시야 뮤지엄. 2007년을 묘사하는 문구는 ‘고객을 배신했던 날’이에요. ⓒ시티호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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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지나간 실패를 다시 꺼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할지도 몰라요. 하지만 기업이 스스로 자초한 실패를 복기하는 모습은 오히려 개선을 향한 강한 의지와 가능성을 보여줘요. 실제로 이시야 제과는 이 사건을 반면교사 삼아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될 수 있었어요. 지금은 홋카이도 도민들이 보내준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지역 공헌 활동을 펼치는 중이고요.
이시야 제과의 3대 째 대표는 이시즈미 이시오예요. 어릴 때부터 과자 가게 사장이 되는 게 꿈이었던 그에게 홋카이도는 어떤 존재인지 묻자 그는 이렇게 답해요. ‘온 힘을 다해 보답하려는 장소’라고요. 어떻게든 받은 사랑을 돌려주려는 이 마음이 존재하는 한 홋카이도의 곁에는 하얀 연인이 남아있지 않을까요?
Reference
• 石水創さん「『白い恋人』 奇跡の復活物語」 安心・安全への努力も伝えたい, Asahi Shimb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