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풍경을 바꾸는 지붕 없는 갤러리

스트릿 아트, 쇼디치

2023.04.25

스트릿 아트는 1980년대 뉴욕에서 시작했어요. 지금이야 하나의 장르로 인식되고 있지만 시작은 순탄하지 않았어요. 80년대의 발전하는 경제상과 선진적인 작가들을 보고 자란 젊은 예술가들은 새로운 시선과 방법으로 자신들의 예술적 창의력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그러나 미술계 기득권은 그들의 예술을 인정하지 않았죠.


그래서 그들은 완전히 색다른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어요. 돈과 결정력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대중에게 평가를 받아보자는 거예요. 사고의 전환이었죠. 그러고는 대중과 직접 소통하기 위해 길거리로 나왔어요.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거리의 벽을 캔버스 삼아 자신의 생각과 철학을 표현했어요. 그렇게 대중에게 직접 평가 받기를 원했죠.


런던의 쇼디치 지역은 스트릿 아트를 관람하기 위한 최적의 장소예요. 다양한 스트릿 아트 작가들의 그림이 빼곡하니까요. 이곳엔 수많은 작가가 모여 개인적인 철학을 표현하는 것을 넘어, 유명 인사가 되겠다는 포부를 안고 대중에게 자신의 예술을 평가받는 21세기 예술의 진검 승부의 장이에요. 이제부터 이 승부에서 승리한 세 명의 작가를 소개할게요.



뮤지엄은 ‘영감의 창고’예요. 그래서 이번 런던 위크에서는 V&A 뮤지엄, 코톨드 갤러리, 테이트 모던, 사치 갤러리, 스트릿 아트 등 런던의 뮤지엄을 둘러보면서 인사이트를 찾아볼게요. 오늘의 스토리는 <이제서야 보이는 런던의 뮤지엄>의 일부입니다.


💡 인사이트를 찾기 위해 눈여겨 볼 포인트

견고했던 패러다임은 어떤 계기로 바뀔 수 있는가?



스트릿 아트, 쇼디치 미리보기

 21세기 예술가들이 선택한 미술관, 길거리

 뱅크시, 사랑은 쓰레기 통에 예술은 사회 속에

 스틱, 스트릿 아트의 아이콘이 된 노숙자

 센즈, 자신의 예술성을 파는 예술가

 영혼의 음식, 모험하는 영혼들




런던 거리를 걷다 보면 종종 벽에 그려진 낙서 그림을 보게 된다. 낙서라고 하기엔 꽤 정성이 들어간, 지저분하다고 하기엔 나름의 멋과 정교함이 느껴지는 그림들이다. 런던뿐만 아니라 뉴욕, 베를린 등에서 요즘 핫하기로 소문난 동네를 가보면 흔하게 이런 광경을 접할 수 있다. 그러다가 관광객이 오가는 좁은 통로에서, 음악이 흘러나오는 어느 빈티지 숍의 입구 계단에서, 차가 쌩쌩 달리는 널찍한 도로의 벽면에서 열심히 작업 중인 작가들을 보게 되는 경우도 생긴다.





나 또한 그런 경험이 있다. 어느 겨울날, 런던의 쇼디치 지역을 방문했을 때다. 길을 걸어가던 중 벽에 스프레이로 작업을 하고 있는 사람을 발견했다. 한 번도 얼굴을 본 적은 없지만 벽에 그려진 그림을 보고 그가 누구인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나는 곧장 그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내가 생각한 그 사람이 맞는지 묻자 한 손에 스프레이를 든 ‘미스터 그래피티’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이제 이 책의 마지막 뮤지엄을 소개할 차례다. 미술관의 이름은 지붕 없는 미술관, 쇼디치다. 오래전부터 쇼디치는 소외된 사람들의 울타리가 되어 주었던 장소다. 17세기 위그노라 불렸던 프랑스 신교도들이 박해에서 벗어나기 위해, 20세기엔 유대인들이 히틀러를 피하기 위해, 1950~60년대에는 방글라데시 이민자들이 브리티시 드림을 꿈꾸며 모여든 곳이다. 다양한 지역에서 온 다양한 정체성의 사람들 덕에, 쇼디치는 문화적으로도 다양성을 띤 독특한 타운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현재 쇼디치에서 가장 유명한 길은 브릭 레인(Brick Lane)이다. 방글라데시 이민자들이 정착할 당시 벽돌 공장을 비롯한 여러 공장이 많았던 탓에 브릭 레인이란 이름이 붙었다. 1킬로미터 정도 이어진 길에는 수십 개의 인도 커리집이 들어서 있고, 그 사이사이로 빈티지 숍과 나이트 클럽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길거리의 벽은 전 세계에서 몰려든 수많은 작가의 그래피티로 가득하다. 그야말로 젊음의 열기와 예술가들의 열정이 솟아나는 곳이다.


그런데 쇼디치는 그래피티 예술가들의 터전을 넘어서, 런던에서 가장 힙한 스트릿 아트의 성전으로도 통한다. 현대 예술의 가장 성역 없는 장르인 스트릿 아트를 이해하는 데 있어 간과할 수 없는 아주 중요한 지역인 셈이다. 한때 소외된 이민자들의 공간이었던 방글라타운은 어떻게 런던에서 가장 힙한 장소로 변모할 수 있었을까? 1980년대와 90년대, 젊은 영국 작가들과 함께 쇼디치라는 미술관의 정문을 힘껏 열어보자.



21세기 예술가들이 선택한 미술관, 길거리

쇼디치는 런던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을 대표하는 지역이다. 1980년대와 90년대 영국의 가난한 예술가들은 런던의 서쪽에 비해 물가와 집 임대료가 저렴했던 동쪽으로 몰려들었다. 작업실과 전시 공간을 물색하던 이들은 공장이 즐비한 쇼디치를 눈여겨보았다. 당시 쇼디치는 영국 제조업의 쇠퇴로 빈 공장이 늘어나고 있었는데, 주머니 사정이 여유롭지 않았던 이들에게는 절호의 기회였다. 가난하지만 꿈 많은 예술가들은 쇼디치의 버려진 공간을 하나둘 차지했다. 그러자 유행에 민감한 젊은 세대가 몰려왔다. 그렇게 그들 특유의 젊고 활기 넘치는 문화가 차츰 형성되었다. 시간이 흘러 현재, 쇼디치는 누가 뭐라 해도 유럽 스트릿 아트의 메카로 통한다.


1980년대 뉴욕에서 시작한 스트릿 아트는 이제 전 세계적으로 많은 팬을 확보한 하나의 장르로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 시작은 순탄하지 않았다. 80년대 발전하는 경제상과 선진적인 작가들을 보고 자란 젊은 예술가들은 새로운 시선과 방법으로 자신들의 예술적 창의력을 표현하고 싶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 미술계 기득권은 그들의 예술을 인정하지 않았다.


자유롭고 개방적인 마인드를 소유했던 젊은 작가들은 완전히 색다른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돈과 결정력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아트를 안 좋아한다면, 대중에게 평가를 받아보자.’며 사고의 전환을 꾀한 것이다. 그들은 성공으로 가는 전통적인 루트인 후원자와 미술관, 아트 딜러라는 선택지를 버리고 대중과 직접 소통하기 위해 길거리로 나왔다.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거리의 벽을 캔버스 삼아 자신의 생각과 철학을 표현했다. 그리고 대중에게 직접 평가 받기를 원했다.*

* 그래피티와 스트릿 아트는 다르다. 스트릿 아트 안에 그래피티가 포함된다. 그래피티는 레터링 위주의 예술을 뜻한다. 일반 대중이 아닌, 그래피티 아티스트가 아티스트에게 메시지를 전달한다. 누가 더 위험천만한 곳에 메시지를 남기는가에 따라 작품의 가치가 평가된다. 반면 스트릿 아트는 대중에게 작가 자신을 인지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여전히 기득권은 스트릿 아트를 어반 반달리즘(Urban Vandalism), 도시 파괴라 부르며 인정하지 않았다. 하이 아트와 로우 아트의 구분을 명확히 짓고 로우 아트에 속했던 길거리 예술을 폄하하며, 지하철 플랫폼 같은 공공 시설물에 작업 중이던 작가를 체포해 가기도 했다. 스트릿 아트는 제대로 된 대접을 받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대중은 스트릿 아트 작가에 열광했고, 스트릿 아트에 담긴 철학, 생각, 저항 정신에 열광했다.


이런 방식으로 인기를 얻은 작가가 미국의 바스키아와 키스 해링이다. 스트릿 아트의 창시자 격인 바스키아의 작품에는 인종 문제에 대한 분노가 담겨 있다. 그는 인종 차별이 만연했던 시절, 자신이 흑인이기에 받았던 부당한 대우와 인격적인 모독을 작품에 표출했다. 바스키아의 그림은 미국과 유럽에 살고 있는 많은 흑인들에게 지지를 얻을 수밖에 없었다.


바스키아의 작품 활동은 로우 아트를 괄시하는 미술계 기득권에 대한 저항이라기보다, 살면서 그가 몸소 부딪혀야 했던 인종 차별에 대한 개인적 분노를 표현한 것에 그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바스키아를 비롯해 길거리 예술가들이 당시 미국이란 나라가 갖고 있던 사회 문제를 예술로써 저항했다는 점은, 스트릿 아트의 정체성과 성격을 형성하는 데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이렇게 시작한 스트릿 아트는 유럽에도 뿌리를 내렸고, 쇼디치는 유럽 스트릿 아트의 중심지가 되었다.


리버풀 스트릿역은 스트릿 아트를 관람하기 위한 최적의 장소다. 여기서부터 브릭 레인을 거쳐 쇼디치의 하이 스트릿역까지 도보로 대략 2시간 정도 걸리는 길에는 다양한 스트릿 아트 작가들의 그림이 빼곡하다. 우리는 이 거리의 미술관을 1년 365일 쉬는 날 없이 무료로 감상할 수 있다. 가로등 기둥부터 이정표까지 길거리 곳곳에는 예술가들이 자신을 알리기 위해 붙인 스티커가 가득하다. 전 세계에서 모인 작가들이 런던에 입성했다는 표식을 이런 식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쇼디치는 수많은 작가가 모여, 개인적인 철학을 표현하는 것을 넘어, 유명 인사가 되겠다는 포부를 안고 대중에게 자신의 예술을 평가받는 21세기 예술의 진검 승부의 장이다. 이제부터 이 승부에서 승리한 세 명의 작가를 소개한다.



뱅크시, 사랑은 쓰레기 통에 예술은 사회 속에

뱅크시는 얼굴 없는 길거리 예술가로 유명하다. 영국 브리스톨 출신이라는 것 외에 자신의 정보를 알리지 않고 10년 넘게 활동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가장 대중적인 지지를 받는, 가장 유명한 스트릿 아트 작가가 되었다. 뿐만 아니다. 그는 미술 시장을 뒤흔들어 하위 예술로 치부되던 스트릿 아트를 최고의 경지에 올려놓았다. 뱅크시는 사회적이고 세계적인 이슈에 자신의 생각을 명료하게 반영해 작품을 만든다. 그의 메시지는 대중에게 직관적으로 전달되고, 이에 공감한 대중은 뱅크시에게 열렬한 응원을 보낸다.


2018년, 뱅크시가 미술계에 신선한 충격을 날렸던 일화가 있다. 그의 벽화 ‘풍선을 든 소녀’가 실크 스크린 판화로 제작되어 소더비 경매에서 낙찰되는 순간, 분쇄기로 파쇄되는 엽기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뱅크시 자신이 계획한 일로 작품 안에 파쇄 장치를 숨기고 낙찰이 결정되자마자 그림이 갈라지도록 작동시킨 것이었다. 이후 작품은 ‘풍선을 든 소녀’에서 ‘사랑은 쓰레기통에 있다’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낙찰받은 사람은 이것 또한 예술이라며 소송을 걸지 않고 분쇄된 작품을 그대로 인수했다. 미술 시장의 거품을 고발하고 싶었던 뱅크시의 메시지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공감을 표하는지 알 수 있는 하나의 사건이었다.



Dominic Robinson from Bristol, UK - Banksy Girl and Heart Balloon, CC BY-SA 2.0


뱅크시는 벽에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지만, 때로는 벽 자체를 통해서도 의미를 남긴다. 2021년, 영국에서 동성애가 심각한 사회 이슈로 떠올랐을 때 버크셔주의 레딩 감옥 담장에서 뱅크시의 그림이 발견되었다. 죄수복을 입은 사내가 침대 시트로 매듭을 지어 교도소를 탈출하는 그림이었다. 매듭의 끝에 매달린 물건은 다름 아닌 타자기였다. 뱅크시는 커밍아웃을 했다는 이유로 사회적 질타를 받고 래딩 감옥에 투옥되었던 오스카 와일드를 추모하면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영국 사회에 날카로운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Steve Daniels, CC BY-SA 2.0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한 그림이지만, 오스카 와일드라는 역사적 인물을 공유한 서양인들에게는 뒤통수를 한 대 치는, 재치와 깊이를 잡은 작품이었다. 그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에도 관심이 많아 평화를 모티브로 한 작품을 팔레스타인 쪽에 많이 남겨 두었다. 세계를 무대로 자신의 철학을 길거리 벽에 묘사하며 더 많은 사람과 소통할 수 있도록 길을 만들어 준 작가가 뱅크시라 생각한다.


뱅크시의 명료한 메시지와 사회, 정책 비판은 언론이 해야 하는 일과 닮아 있다. 그러나 언론은 언어라는 한계가 있다. 반면 뱅크시는 이미지로 말을 건다. 16세기 작가들이 르네상스의 이상과 철학을 이미지화하고 18세기 작가들이 변화무쌍한 시대성을 표현했듯이, 뱅크시는 자신의 생각을 스프레이로 그린다. 뱅크시에게서 우리가 봐야 할 것은 얼마나 그림을 잘 그리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메시지를 잘 전달하느냐다. 그가 주목받는 이유는 그림을 잘 그려서라기 보다 이슈에 대한 정곡을 찔러서다. 언어와 문화적 장벽을 관통하는 그의 작품은 공감을 이끈다.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주제에 대해 스트릿 아트로 카운터펀치를 날리는 뱅크시의 작품을 쇼디치에서 만날 수 있다.


쇼디치에는 뱅크시의 작품 몇 개가 보존되고 있는데 그중 두 개를 소개한다. 하나는 경찰관이 푸들을 데리고 서 있는 모습이다. 뱅크시의 눈으로 본 경찰의 무능함, 권력 밑에서 하수인 노릇을 하는 경찰의 현실, 작가 자신이 갖고 있는 공권력의 불신을 묘사한 그림이다. 이 그림이 그려진 벽면의 끝에는 또 하나의 뱅크시 작품이 있다.



강아지 한 마리가 바주카포를 어깨에 메고 축음기를 향해 발사하기 직전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이 그림은 세계적인 음반사 HMV를 패러디한 작품이다. HMV는 ‘His Master’s Voice’의 앞 글자를 따서 만든 이름이다. 로고 모양은 축음기에서 죽은 주인의 목소리가 나오자 강아지가 반응하며 주인의 목소리를 들었다는 이야기에서 유래되었다. 하지만 뱅크시는 인간이 아닌 강아지의 입장에서 작품을 묘사했다. 죽어서까지 자신을 컨트롤하려는 주인이 얼마나 싫었으면 바주카포로 축음기를 날려버리려고 한다. 이 얼마나 영국스러운 유머인가.




나의 뇌리에 강하게 남은 작품이 몇 점 더 있다. 2015년에 프랑스 칼레에서 경찰이 영국으로 넘어가기 위해 몰려 있던 난민들에게 최루탄을 발포해 무력 진압한 사건이 뉴스에 보도되었다. 그 일이 일어난 직후 뱅크시는 런던의 프랑스 대사관 벽에 작품을 남겼다. 이 벽면에는 《레미제라블》의 주인공인 코제트가 울고 있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코제트가 눈물을 흘리는 이유는 작품 아래에 묘사된 최루탄 가스 때문이다.


소녀가 한 손에 든 자유, 평등, 박애를 상징하는 프랑스의 삼색기는 찢어져 있다. 프랑스에는 더 이상 자유와 평등, 박애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난민들에게 최루탄을 발포한 프랑스 정부의 행동은 정당하지 못하다는 것을 뱅크시는 고발한 것이다. 뱅크시의 작품이 등장했다는 뉴스를 들은 다음날, 나는 곧바로 런던의 프랑스 대사관을 찾아갔다. 놀랍게도 이미 많은 사람이 와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경찰 인력을 동원해 보초까지 배치되어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웃기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다. 알 수 없는 미묘한 감정이 들었다.


런던에서 경험한 뱅크시의 작품이 하나 더 있다. 2017년, 런던은 바스키아 특별전이 한창이었다. 전시회가 열린 장소는 바비칸 센터, 20세기의 새로운 패러다임인 실용성에 착안해 계획적으로 만들어진 런던의 문화 복합 주거 단지였다.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메인 연주장도 이 바비칸에 속해 있다. 바스키아 전이 한창 열리고 있을 때, 한 관계자가 더 이상 바비칸 지역에서 스트릿 아트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포고를 날렸다. 자신들이 추구하는 고전 예술이 진정한 예술이고, 스트릿 아트는 도시 파괴에 불과하다는 기득권의 속내를 여과 없이 발표한 것이다.


이 발표가 있고 난 후 뱅크시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바로 행동으로 옮겼다. 바비칸 전시 홀이라는 이정표가 정확히 붙어 있는 벽을 선택한 그는, 바스키아를 상징하는 검은 해골이 경찰들에 의해 수색받고 있는 모습을 그렸다. 뱅크시의 그림이 생겼다는 기사를 보고 내가 서둘러 바비칸을 방문했을 때는 이미 경비원이 경비를 서고 있었다. 멋지게 스트릿 아트를 금지한다고 표명했지만 그들도 뱅크시의 작품을 놓고 어찌 해야 할지 상당히 고민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이 상황을 보면서 앤디 워홀의 말이 생각났다. ‘유명해져라, 그러면 사람들은 똥을 싸도 박수를 쳐줄 것이다.’


스트릿 아트는 장단점이 분명하다. 장점이라면 누구나 쉽게 건물주의 허락하에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진입 장벽이 아주 낮다. 하지만 뱅크시 같은 경우는 주인에게 허락을 받지 않아도 얼마든지 작품을 원하는 대로 그릴 수 있다. 일단 뱅크시의 작품이 그려지고 나면, 그 건물과 작품은 일제히 매스컴의 주목을 받아 가치가 상승하고 사람들이 몰려든다.*

* 뱅크시는 그림을 그린 후 자신의 웹사이트 banksy.co.uk에 해당 작품을 공개하며 진위 여부를 가리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된 2020년 초, 뱅크시는 자신의 고향인 브리스톨의 주택 벽에 재채기를 하는 귀여운 할머니를 그렸다. 그녀의 입에서 틀니가 빠져나오며 침이 사방으로 튀는 익살스러운 작품이었다. 재미있게도 그 집주인은 집을 팔려고 내놓은 상태였는데, 뱅크시가 그림을 그려 놓으면서 집값이 몇 배로 상승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만약 자고 일어났는데 뱅크시가 내 건물의 벽에 그림을 남겼다면 화를 낼 일이 아니라 어떻게 보호해야 할지 신경쓰는 데 더 골몰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스트릿 아트의 단점에 대해서도 한 번 이야기를 해보자. 바로 거리에 무방비로 노출된다는 점이다. 아무리 뱅크시라 할지라도 모든 사람의 사랑을 받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를 싫어하는 안티 뱅크시에게 공격을 당할 수도 있다. 누군가 작품에 스프레이를 뿌리거나 물감으로 덫칠을 할 수도 있고, 작품이 아예 없어질 수도 있다. 벽에 그렸다고 해서 자동으로 보호 장치가 생기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 때문에 소문난 스트릿 아트를 그 장소에서 실제로 보기는 상당히 힘들다. 뱅크시 작품의 경우에는 파괴를 방지하기 위해 벽을 잘라놓기도 한다. 앞서 소개한 쇼디치의 작품 두 점도 지금은 아크릴로 보호하고 있는 상태지만, 언제까지 보존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스틱, 스트릿 아트의 아이콘이 된 노숙자

이번에 소개할 스트릿 아티스트는 스틱이다. 쇼디치를 걷다 보면 간단한 선으로 이루어진 마르고 긴 사람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한 번 보면 평생 기억할 수 있을 만큼 단순하지만 강렬하게 다가오는 작품이다. 이 작품의 아티스트 스틱은 노숙자 출신이라는 과거를 갖고 있다. 노숙자 시절 벽에 그림을 그리다가 영국 출신의 영화 배우 주드 로에게 발탁되어, 주드 로 집의 정원 벽에 작품을 남기면서 인기를 얻었다. 이제는 스트릿 아트의 전설적인 작가가 되어 매스컴에서도 그의 작품이 자주 등장한다.





브릭 레인에 가면 스틱의 작품 여러 점을 만날 수 있다. 그중에서도 백인과 히잡을 쓴 두 인물 그림이 있는데, 이주민과 무슬림이 많은 지역의 정체성을 고려해 서로 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사이좋게 살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간단명료하게 전달한 것이다. 더 나아가 스틱은 노숙자들을 위한 자선 운동을 꾸준히 벌이고 있다. 그들을 훨씬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으로서, 자신의 인지도를 이용해 노숙자들이 새로운 삶을 찾을 수 있도록 돕고 있는 중이다.


스트릿 아티스트들의 목표는 대부분 비슷하다. 대중에게 자신을 알려 유명한 작가가 되고, 작품을 상업적으로 파는 것이다. 그 목표에 도달하기까지 여러 방법이 있다. 권력자에게 스폰서를 받을 수도 있고, 갤러리에 입성하거나 미디어에 노출될 수 있다. 또는 스트릿 아트처럼 대중을 상대로 진검 승부를 펼칠 수도 있다.


그런데 스틱은 조금 독특한 면이 있다. 처음부터 유명해지기 위해 그림을 배운 것이 아니라, 노숙자 출신으로서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그림을 시작했기에 단 한 번도 예술가로서의 성공을 꿈꿔본 적이 없었다. 경제적 성공을 이룬 뒤에도 그에게는 예술가로서의 성공이라거나 유명인이 되겠다는 목표가 생기지 않은 듯하다. 자신의 예술적 능력과 경제력을 과거의 자신과 같은 사람들, 노숙자의 삶을 위해 다 바치고 있으니 말이다. 개인적으로 21세기 예술이 추구해야 하는 궁극적인 방향은 사회 재생이라고 생각한다. 스틱은 그걸 보여 주는 바람직한 예다. 그는 상업적으로 자신의 가치를 올리기보다 사회적 약자를 돕는 데 핵심을 둔다. 유명해진 뒤에도, 돈을 번 뒤에도 이 목표에는 흔들림이 없다. 정말 대단한 일이다.



센즈, 자신의 예술성을 파는 예술가

하지만 스트릿 아트의 영역에서는 스틱과 반대되는 케이스가 더 많다. 21세기 대형 글로벌 회사들이 홍보를 위해 스트릿 아트를 어디까지 활용하는지 이야기를 듣고 나면, 그 차이를 더 적나라하게 비교할 수 있다. 애플, 구글, 구찌와 같은 기업들은 홍보를 위해 스트릿 아트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눈에 잘 띄는 벽을 임대한 후 유명 작가나 혹은 이름이 알려져 있지 않아도 목적에 맞는 스트릿 아트 작가를 고용해스트릿 아티스트들을 보유한 에이전시가 따로 있을 정도다 길거리 광고를 한다. 업종도 다양해지고 있는 추세다. 쇼디치에 가면 이런 비즈니스 광고를 그리는 예술가들을 실제로 여러 명 볼 수 있다.




이쯤에서 궁금증이 하나 생긴다. 내로라하는 기업들이 눈을 돌릴 만큼, 대중은 스트릿 아트에 정말 반응하고 있는 걸까? 특히 한국에서 스트릿 아트를 쉽게 볼 수 없는 우리에게는 더더욱 다른 세상의 이야기처럼 들린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한 마디로 압축하자면, 이런 광고 활동은 런던의 전역에서 펼쳐지지 않는다. 오직, 쇼디치에서만 자주 목격된다. 쇼디치가 갖는 특징, 바로 젊음과 다양성과 트렌드에 민감한 이들이 모여 있는 곳이란 상징성 때문이다. 21세기의 작가들은 저명한 미술 학교, 기득권이 주시하는 전시회에서 빠져나와 길거리를 선택했다. 그리고 도시의 벽을 통해 자신들의 예술관을 어필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많은 돈을 벌기 시작했다.


10년 이상 쇼디치를 주기적으로 다니면서 많은 작가의 작품을 보았다. 그중에서 나의 마음을 사로잡은 작가가 있었고, 그가 10년 동안 어떻게 성장하는지 지켜보았다. 센즈라는 작가였다. 센즈의 작품은 공상 과학 만화를 보는 듯 퓨처리스틱하다. 스프레이로 그렸다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매우 화려하고 정교하다. 그의 작품은 10년 동안 꾸준히 쇼디치를 점령했다. 작품의 크기는 대부분 작지 않다. 작업 시간도 아주 오래 걸렸다는 것을 보는 즉시 인지할 수 있다.


여기에서 바로 앞서 소개한 뱅크시와 센즈의 차이가 드러난다. 첫째, 뱅크시는 건물주의 허락을 받지 않고 몰래 그린다. 즉, 사유 재산 파손이다. 그래서 뱅크시는 정교하게 준비해 온 도화지를 벽에 대고 스프레이로 뿌려 작업하는 실크 스크린 방법을 사용한다. 넉넉잡고 1분 안에 작품을 벽에 남기고 사라질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사람들은 그의 얼굴을 알지 못한다.


센즈는 어떨까? 그 반대다. 주문을 받거나 건물주로부터 허락을 받고 작품을 한다. 그렇다 보니 작가가 심혈을 기울여 작업했다는 흔적이 분명하게 느껴진다. 작품의 크기가 크고 위치 또한 벽의 높은 곳에 작업되어 있다. 크레인을 동원했다는 뜻이다. 이런 식으로 자신의 특징을 대중에게 어필한 센즈는 갤러리에서 작품을 파는 작가로도 활동한다. 이 지점에서 뱅크시와 센즈의 두 번째 차이점이 드러난다. 뱅크시는 미술계 기득권이 득실득실한 전시회와 경매장, 갤러리의 아성을 무너뜨리며 사회 풍자적인 작품을 선보이는 반면, 센즈는 다른 방향을 바라본다. 그는 철학을 전파하기보다 자신이 추구하는 예술의 스타일을 ‘파는’ 예술가에 가깝다.





지금까지 세 명의 스트릿 아티스트를 알아보았다. 이 외에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들이 있지만 그 수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스트릿 아트에는 대중의 마음을 얻기 위해 부단한 창작의 고통이 뒤따르고, 설사 관심을 받는 데 성공했다 하더라도 그 유효 기간을 보장할 수 없어서다. 수많은 스타가 등장했다가 눈 녹듯 사라지는 세상이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자신의 세계관과 캐릭터를 구축해 성공한 작가들이 있다. 이 챕터에 소개된 세 명의 아티스트는 21세기에서 가장 위대한 작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개인적으로 21세기의 벽에 그려지는 스트릿 아트는 중세 시대 교회 벽에 그려졌던 제단화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교회 벽에 제단화가 그려졌던 건 신도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교회의 가르침을 잘 따르고 신앙 생활을 충실히 해나가자는 무언의 독려이자 압박이었다. 나는 애플과 구찌도 비슷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만든 최신 전화기를 사용하자는, 우리가 만든 가방을 어깨에 걸치자는 무언의 독려이자 압박이다.


이처럼 예술은 숭고하기만 한 것이 아니다. 모든 예술은 상업성을 품고 있다. 10대들의 낙서라고 치부되던 스트릿 아트는 어느덧 대중과 손잡기 위해 애플이 이용하고, 구글이 애용하는 용광로가 되었다. 이것이 21세기의 시대성이 아닐까 생각한다. 예술가들은 시대성을 묘사하고, 선택은 특권층이 아닌 대중이 한다. 스트릿 아티스트들은 대중을 설득하기 위해 오늘도 벽을 마주한 채 그림 그리기를 계속하고 있다.



영혼의 음식, 모험하는 영혼들

어느 국민에게나 가장 좋아하는 소울 푸드가 있다. 그렇다면 영국인에게 영혼의 음식은 무엇일까? 영국에 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우리가 자연스럽게 강남역 등에서 약속을 잡는 것처럼 영국인들이 쇼디치에서 자주 만나는 것을 보고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흘러 그 이유를 알게 되었을 때는 참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피쉬 앤 칩스나 햄버거도 아닌, 바로 인도 커리 때문이라니.


영국은 100년이 넘는 오랜 기간 동안 인도를 식민 지배해 왔다. 오랜 시간 영국에 정착한 인도인들은 자신의 음식 문화를 영국에 뿌리내렸다. 그런 영향으로 대부분의 영국인들은 어려서부터 인도 커리를 주기적으로 접한다. 자신의 취향에 맞는 인도 소스도 한두 가지씩은 알고 있다. 특히 기숙 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은 급식소에서 일주일에 한 번 꼴로 커리를 먹는다. 인도 커리는 영국인들에게 떼려야 뗄 수 없는 음식이자 영국을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키워드다.


최고의 인도 요리사들은 모두 이 런던에 모여 있다. 그리고 런던에서도 커리로 가장 유명한 장소가 쇼디치의 브릭 레인이다. 런던 사람들은 브릭 레인이라는 말을 들으면 반사적으로 커리를 떠올린다. 많은 분들이 피쉬 앤 칩스를 영국의 대표 음식으로 꼽지만, 꼭 브릭 레인의 커리집을 방문해보기 권한다. 브릭 레인 길에는 몇십 개의 커리집이 자리한다. 어느 집에 들어가도 실패는 안 할 것이다.




브릭 레인은 벼룩시장으로도 유명하다. 매주 일요일이면 수많은 노점상이 등장하는데 주로 빈티지 제품을 판다. 한때 전 세계 음반 시장을 장악했던 영국답게 옛날 버전의 레코드판을 판매하는 숍도 쉽게 만나볼 수 있다. 신발과 의류 등 편집숍도 늘어서 있어서 젊음의 바이브를 느끼고 싶다면 쇼디치의 브릭 레인 만한 장소가 없다. 게다가 자유로운 마인드와 꿈을 가진 스트릿 아트 작가들의 영혼을 365일 24시간 느낄 수 있는 곳이니, 이보다 더 모두에게 열려 있는 뮤지엄이 있을까. 마지막으로 상당 기간 쇼디치에 머물며 극작 생활을 했던 셰익스피어의 문장으로 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The World is Your Oyster.’


세상은 기회로 가득차 있다는, 셰익스피어의 《윈저의 즐거운 아낙네들》에 나오는 문장이다. 영국 사람들은 큰 모험을 앞두고 있는 사람들에게 자신감을 주고 싶을 때 이 말을 건넨다. 자신만의 눈으로 세상을 정의하고, 이상을 꿈꾸며, 현실을 바꿔 나갔던 런던의 아티스트들처럼, 막 기회의 문에 들어선 여러분의 모험을 온 마음을 다해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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