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새 공간으로 세상을 재미있게 만들다

스키마 데파토

2022.06.14

‘스키마 데파토’는 자판기 회사예요. 그런데 이곳에서는 자판기를 다르게 불러요. 자동판매기가 아니라 ‘자유판매기’로요. 말장난처럼 보이지만, 이름을 바꾸니 업에 대한 정의와 사업 모델이 바뀌어요. 자유판매기는 기능적으로는 자동판매기와 같은데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고객이 원하는 바에 따라 자유롭게 맞춤형으로 만들 수 있죠. 예를 들어 음료 1캔 분량의 공간만 렌트해 준다든지, 브랜드에 맞춰 자판기를 랩핑해 준다든지, 대형 디스플레이를 탑재해 준다든지 하는 식이에요.


이처럼 자동판매기에서 자유판매기로 작은 변화를 줬을 뿐인데, 클라이언트가 달라져요. 점포 확장을 신중하게 하기로 유명한 ‘블루보틀’도 스키마 데파토의 자유판매기를 이용하고 있을 정도예요.


자판기가 거기서 거기 아니냐고요? 스키마 데파토를 보면 약간의 변화로도 혁신적인 비즈니스를 만들 수 있다는 걸 알게 될 거예요.


스키마 데파토 미리보기

• 자판기에도 틀을 깨는 사업 모델이 있다

• 점포의 틈새를 메워준다

• 자판기도 체험형 매장이 될 수 있다

• 자판기는 음료만 팔기에는 ‘아까운’ 채널이다





ⓒSukima Department


‘나무를 심어 놓은 입구의 작은 공간에 쓰레기가 버려지는데, 어떻게 할 수 없을까요?’


도쿄 하라주쿠의 캣 스트리트에 있는 한 맨션(한국의 아파트와 유사한 주거 시설) 주인의 호소에요. 아무래도 유동인구가 많은 곳이다보니 지나가던 사람들이 무심코 쓰레기를 버린 것이죠. 부동산 업계에 종사하며, 하라주쿠 일대의 맨션을 관리하던 ‘요시야 쇼지(芳屋昌治)’는 맨션 주인의 이 간곡해 보이는 부탁을 외면할 수 없었죠. 그는 1평 정도의 좁은 공간이지만 하라주쿠라는 장소에 주목합니다. 도쿄에서도 유동인구가 많은 곳의 빈 공간을 그대로 방치해 두는 게 아깝다고 느낀 거죠.  


문제 해결을 위해 그는 스스로 발 벗고 나섰어요. 맨션 주인으로부터 1평 정도의 공간을 월 3만엔에 빌려 그 공간을 광고판으로 만들었죠. 광고를 모집하자 무려 15만엔의 비용을 지불해도 좋으니 그 곳에 광고를 게재하고 싶다는 문의가 들어옵니다. 이 때 그는 작은 ‘틈새 공간’에 엄청난 비즈니스 기회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틈새 공간을 활용한 사업을 고민하기 시작하죠.


틈새 공간을 활용한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려다 보니, 거대한 시장이자 라이벌들이 눈에 들어왔어요. 바로 자판기였죠. 일본에는 400만대 이상의 자판기가 설치되어 있고, 전 세계에서 인구수 대비 자판기 수가 가장 많아 ‘자판기의 천국’이라 불릴 정도예요. 이 자판기 시장을 음료 대기업들이 주도하고 있었어요. 그는 자판기 사업이 틈새 비즈니스를 하는데 딱이라고 봤죠. 그래서 우선 사업 기반을 마련하고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2015년에 한 자판기 회사를 인수하여 자판기 사업을 시작했어요. 그렇게 틈새 백화점이라는 뜻의 ‘스키마 데파토(Sukima Department)’가 탄생했죠.


사업의 성장세는 가팔랐어요. 인수 당시 639대에 불과하던 자판기 수를 2020년에는 3,300대까지 확장시켰죠. 비결은 정보력에 있었어요. 요시야가 부동산 업계 출신이다보니 빌딩이나 맨션 등의 오너, 그리고 부동산 개발업자와 손쉽게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었고, 이를 통해 일반인들은 알기 어려운 틈새 공간의 정보에 대한 접근이 가능했죠. 이를 바탕으로 스키마 데파토는 빠른 속도로 틈새 공간을 채워갔어요. 그러던 어느 날, 요시야 대표의 관점을 바꾸는 사건이 발생하죠.



자판기에도 틀을 깨는 사업 모델이 있다

스키마 데파토는 틈새를 잘 알았지만, 특색이 있지는 않았어요. 흔하게 볼 수 있는 음료 판매 자판기를 운영했죠. 특색이 없어도 매출이 그럭저럭 잘 나왔으니까요. 보통의 방식대로 자판기 수를 늘려가던 중, 한번은 이런 문의가 들어왔어요. 한 인도 요리 체인점이 가게 앞에 설치된 자판기에 자신들의 카레루를 판매하고 싶다는 의뢰를 한 거예요. 굳이 거절할 이유가 없어 350엔짜리 카레루를 캔에 넣어서 식당 앞 자판기에서 판매하기 시작했는데, 의외의 결과를 얻게 되죠. 카레루만으로 한달에 6~7만엔의 매출이 발생한 거예요. 일반 음료 자판기 한 대의 월 평균 매출이 5~6만엔인점을 고려하면 꽤 쏠쏠한 장사였던 거죠. 게다가 음료는 종류가 다양해서 상품을 관리하는데 손이 많이 가는 반면 카레루는 종류가 3가지 뿐이어서 상품 관리도 쉬웠어요.


“인도 카레 가게를 방문한 사람이 지인의 선물로 또는 주변에 사는 독신 학생이 자취용으로 사 갔어요. 자판기에서 음료만 팔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죠.”

– 요시야 대표


하나의 사례였지만, 요시야의 직감이 움직였어요. 이 때부터 그는 자판기를 통해 음료만 판매하는 것은 아깝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해요. 그리고는 자판기 사업에 대한 관점을 바꾸죠. 단순히 음료를 진열해서 파는 기계가 아니라 물건을 팔고 싶은 사람과 빈 공간을 유용하게 쓰고 싶은 사람을 잇는 인프라이자 유통 채널로 자판기를 바라보기 시작한 거죠.


관점을 바꾸면서 스키마 데파토는 스스로에 대한 정의와 사업 모델도 새롭게 했어요. ‘작은 공간으로 세상을 즐겁게 만든다’는 미션 하에 ‘자유판매기’라는 이름의 새로운 서비스를 시작하죠. ‘자동판매기’가 아닌 ‘자유판매기’라는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 고객이 원하는 바에 따라 자유롭게 자판기를 맞춤형으로 만들 수 있는 서비스에요. 음료 외에도 식품, 기념품, 캐릭터 등 다양한 제품의 판매가 가능하도록 상품을 진열하는 공간의 크기를 조정해 줄 뿐만 아니라 브랜드에 맞춰 자판기를 랩핑하기도 하고, 대형 디스플레이를 탑재하기도 하는 등 고객의 입맛에 맞게 커스터마이즈 해주는 거죠.




ⓒSukima Department


커스터마이즈 할 수 있는 자유판매기라고 해서 자판기를 꼭 통째로 사용해야 하는 건 아니에요. 음료 1캔 분량의 공간 단위로도 임대가 가능하죠. 원하는 만큼만 자판기 공간을 이용할 수 있다는 건데, 이렇게 하니 유통 채널로써의 경쟁력이 커져요. 극단적으로 보자면 스키마 데파토가 운영하는 수천대의 자판기에 1칸씩을 빌려 판매하고 싶은 상품을 동시다발적으로 유통시키는 것이 가능해지기 때문이죠. 


이처럼 스키마 데파토가 자판기를 기계가 아니라 공간으로 바라보자 새로운 사업 기회가 생깁니다. 자판기를 고객 니즈에 맞게 유연하게 변화시키며 하나의 매장 역할을 할 수 있게 만들 수도 있고, 자판기 공간을 쪼개서 판매하면서 가볍게 고객 접점을 늘릴 수도 있죠. 틈새 공간에 특색 없이 있던 자판기가 틀을 깨고 나오며 존재감을 갖는 유통 채널로 거듭나는 거예요.



점포의 틈새를 메워준다

이제 스키마 데파토의 자유판매기를 자유롭게 커스터마이즈 할 수 있는 건 이해했어요. 그렇다면 실제로 자유판매기는 어떻게 활용되고 있을까요? 사례를 살펴볼게요. 한 그래놀라 전문점은 자사의 점포 앞에 자판기를 설치하면서 음료뿐만 아니라 자판기 중앙에 그래놀라를 배치하였어요. 1식 분량의 사이즈 그래놀라를 4칸에 걸쳐 진열했고, 1개를 250엔에 판매했는데요. 그래놀라만으로 월 4~5만엔의 매출을 올렸죠. 게다가 그래놀라 패키지에 붙여 놓은 QR코드를 통해 자사의 온라인 쇼핑몰로 고객을 유도하여 온라인 매출도 늘어나는 효과가 발생했죠.



ⓒSukima Department


여기서 또하나의 궁금증이 생깁니다. 고객은 왜 점포가 아니라 점포 앞의 자판기에서 제품을 사는 걸까요? 매장에 들어가서 살 수도 있는데 말이죠. 이유는 2가지로 볼 수 있어요.


하나는 가게에 들어가지 않고 지나가는 길에 부담없이 살 수 있어서에요. 가게 앞에 자판기가 있으니 물리적 거리는 큰 차이가 나지 않지만, 매장 문을 열고 들어가야 한다는 점에서 심리적 거리가 생겨요. 특히 매장이 식당과 같은 곳이라면 식사를 하지 않고 가정대용식(HMR)만을 구매하러 식당에 들어가는 것이 익숙하지 않죠. 그런데 자판기에서 가정대용식같은 제품을 살 수 있으면 쭈뼛쭈뼛할 필요 없이 돈넣고 버튼을 눌러 간편하게 구매할 수 있어요.


또다른 이유도 있어요. 자판기는 인건비 부담없이 24시간 영업이 가능해요. 그래놀라 점포의 영업 시간은 11~19시인데, 이 시간에 들르지 못하는 고객이 의외로 적지 않았던 거예요. 자판기가 ‘Shop in shop’이 아니라 ‘Shop outside shop’ 역할을 하면서 인건비가 부담되어 영업 시간을 연장하기 어려운 매장에 도움이 되는 거죠. 요시야 대표의 설명에 따르면 한 백화점에서 식품 층에서 팔리지 않고 남은 반찬 등을 폐점 후 백화점 밖에 위치한 자유판매기에서 판매하고 싶다고 해서 논의 중에 있다고 하네요. 이렇게 하면 늦은 시간 귀가하는 사람들도 백화점에서 파는 반찬을 구매할 수 있고, 백화점은 버리는 음식을 줄일 수가 있죠.


이처럼 영업 시간이 정해져 있는 매장의 운영 시간을 늘려주기도 하지만, 반대로 24시간 영업해야 하는 편의점같은 곳의 운영 시간을 줄여주기도 해요. 새벽 시간에는 방문 고객 수나 판매량이 많지 않은데, 이 시간에 매장 문은 닫고 자판기를 통해 필수 제품과 주요 제품을 24시간 동안 판매하는 거죠.


자유판매기가 매장 밖에 있으면 시간적으로 점포를 확장해주는 Shop outside shop 기능을 하지만, 매장과의 거리가 멀어지면 새틀라이트(Satellite) 매장으로 역할을 할 수 있어요. 새틀라이트 매장은 고객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주요 거점 등에 내는 보조 매장이에요. 블루보틀 자판기가 대표적인 예죠. 스타벅스처럼 점포 수가 많지 않은 블루보틀은 고객과 만나는 방법의 하나로 자판기를 선택했어요. 2021년에 ‘퀵 스탠드 (quick stand)’라는 이름의 새틀라이트 매장을 런칭한 거죠. 블루보틀이 직접 로스팅한 신선한 원두뿐만 아니라 콜드브루 캔 커피 등도 판매함으로써 더 많은 고객들이 블루보틀 커피를 즐길 수 있도록 했어요. 새틀라이트 매장을 활용하면 일반 매장을 내는 것과는 비교가 안될 만큼 낮은 비용으로 오프라인 고객 접점을 늘릴 수 있죠. 물론 본 매장에서 제공하는 고객 경험을 구현하긴 어렵겠지만요.




ⓒSukima Department



자판기도 체험형 매장이 될 수 있다

자유판매기는 새틀라이트 매장으로서 본 매장을 보완하는 것에 그치지 않아요. 스키마 데파토는 자판기 자체가 체험형 매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볼게요.




ⓒSukima Department


2021년 7월, 도쿄 긴자의 한 골목에 위치한 빌딩 1층의 약 10평 정도의 공간에 다수의 자판기가 들어섰어요. 스키마 데파토와 일본 전역의 식재료를 소비자와 직접 연결하는 플랫폼 기업인 플래닛 테이블(Planet Table)이 협업하여 일본 각지에서 엄선한 맛을 소개하는 팝업 스토어를 연 거예요.


시즈오카 어부가 잡은 생선으로 만든 캔이나 가공식품, 미야자키현의 유명한 드레싱, 아오모리현에서 생산한 과일로 만든 음료 등 7개 지역의 특산물이 자판기에 전시되어 있는데요. 음료와 드레싱은 자판기에서 바로 구매할 수 있지만 생선과 같은 신선식품은 자판기에 설치된 디지털 패널에서 구매하고 집으로 배송받을 수 있어요. 홋카이도부터 미야자키까지 도쿄에서는 쉽게 만나볼 수 없는 지역의 상품을 전시함으로써 지역의 매력을 알리는 것이 주된 목적이에요. 자판기, 디지털 사이니지, 그리고 전시된 설치물이 광고의 역할을 하기에 제품이 많이 팔리지 않아도 광고비로 생각하고 출점을 결정한 업체도 있죠.



ⓒSukima Department


2021년 10월에는 도쿄 시부야의 복합상업 시설인 ‘시부야 히카리에 신쿠스 (渋谷ヒカリエ ShinQs)’의 이벤트 스페이스에 ‘어트랙션 프래그런스(ATTRACTION FRAGRANCE)’라는 팝업 자유판매기를 기간 한정으로 설치했어요. 일본에서 유명한 조향사인 나카타 마유미씨가 만든 오리지널 향수를 자판기로 판매한 거죠. ‘시부야의 향기‘라는 테마 하에 시부야의 35개 거리에 관한 나카타 자신의 추억이나 인상을 바탕으로 직접 개발한 향을 선보였어요.


조향사가 만든 오리지널 향수는 당연히 향을 맡아 보는 것이 중요할텐데요, 스키마 데파토는 이를 재치있게 풀어내요. 자판기 앞에 수도관을 설치하여 수도관에서 향이 나오도록 한 거죠. ‘향이 나는 수도관’은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소비자들의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했어요. 체험형 매장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한 셈이죠.


이러한 자판기라면 일부러 찾아가고 싶지 않으신가요? 이처럼 스키마 데파토는 자판기도 일부러 찾아가고 싶은 ‘데스티네이션’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증명합니다.



자판기는 음료만 팔기에는 ‘아까운’ 채널이다


“자판기는 오래되었지만 동시에 새로운 유망 채널이에요. 이러한 채널을 음료 판매에만 사용하는 것은 아깝죠.”

- 요시야 대표


스키마 데파토 요시야 대표의 말이에요. 여기서 주목해야할 단어가 ‘아깝다(못다이나이, もったいない)’이죠. 그는 자판기 사업을 세상에서 버리기 ‘아까운’ 것을 새로운 가치로 바꾸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자투리 공간을 방치해 놓는 것도 아깝고, 누군가가 공들여 만든 제품이나 브랜드가 고객을 만나지 못하는 것도 아깝다고 여기죠. 게다가 지구의 미래와 우리의 안녕을 고민하는 지금의 사회적 분위기에서도 아까운 것을 가치있게 활용하는 편이 낫다고 보는 거죠.


그는 1평 정도의 작은 공간에 쓰레기가 버려지는 걸 막기 위해서 문제를 해결하다가 우연히 자판기 사업을 시작했어요. 하지만 그는 자판기 사업을 운영하면서 자판기의 필연적 가능성에 눈 뜨게 되죠. 그리고는 자판기 사업을 새로운 레벨로 끌어올렸어요. 사업성 있는 비즈니스로 만든 건 물론이고요. 스키마 데파토처럼 우리가 신경쓰지 않았던 자투리 공간에 관심을 가져 보는 건 어떨까요? 틈새 공간에서도 특색 있는 가치가 탄생할 수 있으니까요.   


 



Reference

PR Times

Diamond Chain Store

닛케이 크로스 트렌드

스키마 데파토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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