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의 피부’를 꿈꾸며, ‘양말 장인’이 되기를 자처한 회사가 있어요. 오사카에 본사를 둔 ‘타비오’예요. 말뿐만인 비전이 아니에요. 타비오는 1968년 창업 이래 지금까지 장인 정신으로 제 2의 피부같은 양말을 만들어 왔어요.
타비오는 압도적 품질은 기본, 양말의 기능과 역할을 촘촘하게 제안해요. 가격대, 성별, 용도 등 다양한 축으로 양말을 카테고리화해 서브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거든요. 스탠다드 브랜드인 쿠츠시타야(靴下屋), 성인 여성을 타깃한 프리미엄 브랜드 ‘타비오’, 타비오의 남성 버전 ‘타비오 옴므’, 그 밖에도 ‘타비오 스포츠’, ‘타비오 레그 라보’ 등 8개의 서브 브랜드가 있어요.
세분화된 브랜드만큼이나 각 브랜드에서 기획한 양말들도 구체적이에요. 양말에 관한 웬만한 니즈는 다 포괄하고 있다고 봐도 무리가 없죠. 그런데 그 기획 의도에 군더더기가 없어요. 정확하게 지금 시장이 원하는 니즈를 반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디테일의 레벨이 남달라요. 그래서일까요? 타비오는 일본에만 약 270개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고, 미국, 중국, 대만, 프랑스, 영국 등 해외 시장에도 진출해 있어요. 타비오는 어떻게 양말 하나로 전 세계적인 명성을 얻을 수 있었을까요?
타비오 미리보기
• 불편함 너머의 불편함을 생각한다
• 일상적인 소모품을 넘어 전문적인 도구로 재해석한다
• 공감과 위트로 이성이 아닌 감성을 자극한다
• 속도는 패스트 패션을, 방향은 슬로 패션을
365일 중 양말은 안 신는 날은 몇 일이나 될까요? 말 그대로 매일같이 신는 양말이지만, 그만큼 양말에 신경 쓰는 사람은 많지 않아요. 저렴한 가격에 대량으로 사서 신는 게 대부분이죠. 그런데 이런 양말에 사활을 건 브랜드가 있어요. 심지어 양말 하나로 오사카 증권거래소에 상장까지 했죠. 일본 오사카에 본사를 둔 ‘타비오(Tabio)’예요.
양말에 진심인 타비오는 ‘양말 사전’을 만들기도 했어요. 다소 거창한 이름이기는 하지만, 양말에 자주 쓰이는 소재, 각각의 장단점, 양말 관리 방법, 양말 길이별 명칭 등 양말에 관한 정보를 정리해 둔 자료예요. 특히 양말의 구조와 개념을 정리해 양말 업계에 표준을 정립하겠다는 생각마저 느껴져요.
ⓒTabio
양말에 대한 타비오의 진심은 이게 끝이 아니에요. 고품질의 양말을 위해 일본 내 의류 기업들이 따라야 하는 ‘일본산업규격(Japanese Industrial Standards)’보다 더 엄격한 자체 기준을 만들었어요. 이 기준에 따라 모든 제품을 테스트하는데,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하면 판매하지 않아요.
게다가 반도체나 고도화된 제품을 만드는 하이테크 기업에 있을 법한 QC(Quality Control) 팀이 있어요. 모든 QC 팀 직원들이 직접 제품을 하루 종일 착용해보면서 착용감이 괜찮은지, 발이 밀리거나 거슬리는 부분은 없는지 등을 피드백해요.
이후에는 양말을 신어본 직원들을 두 팀으로 나누어서 한 팀은 와류식 세탁기에, 다른 한 팀은 드럼 세탁기에 신었던 양말을 세탁해요. 고객이 사용하는 다양한 세탁 방식에 따라 내구성의 변화가 생기지 않는지 확인하는 거예요. 세탁이 완료된 이후에 내구성이나 착용감에 변화가 없는지 확인 후, 문제가 없다면 그 제품은 최종적으로 합격점을 받아요. 이렇게 철저히 이루어지는 검증은 양말 품질의 기본이 되어요.
덕분에 타비오 양말은 편안한 착용감과 튼튼한 내구성으로 유명해요. 남다른 품질 만큼이나 가격도 남달라요. 가장 저렴한 양말이 한 켤레에 약 5천원 정도, 대부분 1~2만원대예요. 가장 비싼 양말은 4만원이 넘는 것도 있어요. 양말 한 켤레에 쓰기에는 쉽게 지갑이 열리지 않는 가격대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비오는 일본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인기가 좋은 양말 브랜드가 되었어요. 일본에만 약 270개의 매장을, 미국, 중국, 대만, 프랑스, 영국 등 전 세계에 매장을 운영하고 있거든요. 독보적인 품질은 기본, 사람들이 타비오를 찾게 만드는 이유는 따로 있어요. ‘제 2의 피부’ 같은 양말을 지향하는 타비오, 어떻게 양말 하나로 전 세계인들의 마음을 사로 잡고 있을까요?
불편함 너머의 불편함을 생각한다
양말은 하루의 시작부터 끝까지 함께 하는 아이템이에요. 양말을 신으면서 하루를 시작하고, 양말을 벗으면서 하루를 마무리하니까요. 오히려 이렇게 공기처럼 함께 하는 아이템이기 때문에 불편함마저 익숙해지는 경향이 있어요. 그런데 타비오는 고객들이 인지했지만 차마 해결할 생각을 못했거나, 인지조차 하지 못했던 불편함을 찾아내 선제적으로 해결해요.
ⓒTab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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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장을 자주 입는 남성이라면 느끼는 불편함이 하나 있어요. 멋지게 수트를 차려 입고 자리에 앉았을 때 바지가 올라가면서 양말이 보이죠. 그런데 양말의 목이 짧아 양말 위의 맨살이 드러나는 경우가 있어요. 정장을 입었을 때 맨살이 보이는 건 에티켓에 어긋나요. 특히 포멀한 자리에서는 더욱 그렇죠. 그래서 다양한 정장 브랜드에서 무릎 아래까지 올라오는 남성용 니삭스를 제작하고 있어요.
타비오도 그 중 하나예요. 타비오도 남성용 양말 브랜드, ‘타비오 옴므(タビオ オム)’에서 남성용 니삭스를 제작하거든요. 그런데 역시 문제를 인지하는 관점이나 디테일의 레벨이 달라요. 니삭스는 종아리를 전부 덮기 때문에 사람마다 다른 종아리 근육의 모양이나 다리의 형태로 인해 흘러내리는 경우가 있어요. 그럴 때마다 다시 양말을 올려야 하는 불편함이 생기죠. 그렇다고 양말의 윗부분을 지나치게 조이면 착용감이 좋지 않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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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비오 옴므는 이런 불편함마저 개선했어요. 니삭스의 양말 입구, 고무 부분이 적용되는 두께를 넓혔어요. 종아리를 조이는 일이 없도록 탄성은 오히려 줄였고요. 길이만 늘린 다른 니삭스들에 비해 고려한 불편함의 레벨이 다른거죠. 1차적인 불편함만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불편함을 개선하면서 생긴 또 다른 불편함마저 계산해 없애버린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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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니삭스, 여기서 끝이 아니에요. 타비오는 양말을 신고 있는 비즈니스 맨의 발에도 집중했어요. 하루 종일 구두에 갖혀있는 발이 겪는 환경은 생각보다 혹독해요. 걷거나 계단을 오르내리면서 최대 몸무게의 1.8배에 이르는 압력을 견디고, 발바닥에만 6만 개의 땀샘이 있어서 습한 환경에 계속 노출되죠.
하지만 기존의 니삭스는 얇은 소재를 사용해서 땀 흡수가 잘 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그렇다고 땀 흡수를 위해 면 소재로 니삭스를 만든다면 축구 선수들이 신는 양말처럼 두꺼워질 수 밖에 없죠. 땀은 잘 흡수될 수 있어도 딱딱한 구두 속에서 발이 더 힘들어질 거예요.
타비오는 이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 자신들의 기술력을 사용했어요. 타비오는 ‘배너’라고 불리는 여러가지 소재를 양말 한 켤레에 섞어서 사용할 수 있는 기계를 보유하고 있어요. 이 기계도, 이 기계를 다룰 수 있는 기술자도 전 세계를 통틀어 몇 명 남지 않았죠. 타비오는 배너를 활용해 발바닥 부분은 흡수력이 좋은 면 소재로, 발등부터 위쪽은 부드러운 실크 소재로 니삭스를 만들어요. 양말에 관해서라면 남들보다 몇 수 앞을 내다보는 타비오다운 디자인이에요.
일상적인 소모품을 넘어 전문적인 도구로 재해석한다
타비오가 양말로 해결한 건 일상적인 불편함 뿐만이 아니에요. 전문적인 기술과 한층 더 깊은 고민이 필요한 영역의 불편함마저 해소하죠. 대표적인 예가 스포츠예요. 경기 중 최고의 퍼포먼스를 위해 양말의 역할이 꽤 커요. 과격하게 움직일 때마다 양말이 밀리거나, 땀 흡수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불필요한 불편함이 발생해요. 타비오는 스포츠 전문인들, 혹은 스포츠 마니아들을 위한 양말 브랜드, ‘타비오 스포츠(Tabio Sports)’를 런칭해요.
타비오 스포츠에서는 축구, 야구, 골프, 런닝 등 종목에 따라 양말이 세분화되어 있어요. 모든 종목을 통틀어 베스트 셀러 중 하나는 축구 전용 양말 카테고리의 ‘축구 다섯 발가락 양말(フットボール五本指ソックス)’이에요. 이 양말은 보통의 양말과 달리 5개의 발가락을 따로 따로 감싸고 있어요. 땀이 난 발가락들이 한 공간에서 마찰하면 통증과 불편함을 유발할 수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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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적인 움직임에서 자유로운 발가락만큼 중요한 것이 접지력이에요. 타비오는 접지력 향상을 위해 2가지 조치를 취했는데요. 먼저 사이즈예요. 보통 스포츠 양말의 경우 S, M, L 정도로만 사이즈를 분류하고 있어요. 그러다보니 애매한 발 사이즈의 경우에는 발보다 작거나 큰 양말을 신어야 했죠. 이럴 경우 신발 안에서 양말이 돌아갈 확률이 높아져요. 그래서 타비오는 스포츠 양말의 사이즈를 세분화했어요. 신발 사이즈처럼 최대한 자신의 발에 딱 맞는 양말을 신을 수 있게 한 거죠.
다음은 발바닥 부분에 수십 개의 실리콘 도츠를 부착했어요. 가속할 때 가장 힘을 많이 받는 발 앞부분과 제동할 때 힘을 많이 받는 뒷꿈치 부분을 중심으로요. 덕분에 신발에 양말이 딱 달라붙어 축구화와 양말이 하나가 된 듯한 효과를 내죠. 축구라는 종목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개발한 타비오의 다섯 발가락 양말은 J리그 선수들의 원픽이 되었어요. 현재는 25개 구단, 200명이 넘는 선수들이 착용하고 있죠. J리그 1부 리그 팀 요코하마 FC의 정식 스폰서가 되기도 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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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비오는 양말을 개발할 때 양말의 기능 뿐만 아니라 양말을 신는 ‘맥락’까지 고려해요. 예를 들어 자전거인들을 위한 양말 라인인 ‘타비오 사이클(Tabio Cycle)’의 경우, 자전거를 야간에 타기도 한다는 점을 포착했어요. 그래서 빛을 반사하는 리플렉티브 소재를 발목에 넣어 밤에도 안전하게 라이딩을 즐길 수 있도록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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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말 장인으로서의 타비오가 빛난 건 비단 스포츠 영역 뿐만이 아니에요. 타비오는 ‘타비오 레그 라보(Tabio Leg Labo)’라는 서브 브랜드를 런칭해 뷰티와 헬스 영역에서까지 전문성을 발휘해요. 타비오 레그 라보에서는 다리의 부종을 해소하는 압박 하이삭스, 수족냉증이 있는 사람들을 위해 손난로를 넣을 수 있는 이중 구조의 양말 등을 출시했어요. 건강 및 미용 영역에서 주로 여성 고객들이 겪는 고충을 해소하는 데에 초점이 맞춰져 있죠.
일본 풋케어 전문 병원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여성들이 겪는 발 관련 질환 중 1위는 무지외반증이에요. 무려 20%를 차지했죠. 타비오 레그 라보가 이를 간과할 리 없어요. 도쿄 오모테산도에서 풋케어 전문 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쿠와 하라(桑原) 박사와 협업해 무지외반증 치료 및 예방을 위한 양말을 개발했어요. 이름은 ‘외반모지 서포트 다섯 발가락 양말(外反母趾サポート五本指ソックス)’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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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외반증은 엄지발가락이 안쪽으로 말리는 증상이에요. 이를 완화하기 위해 엄지가 바깥으로 펼쳐질 수 있도록 박음질을 설계했어요. 다음으로는 무지외반증의 원인 중 하나인 아치의 무너짐을 해결하기 위해 아치 부분이 들어 올리는 힘을 받을 수 있도록 양말 바닥을 디자인했고요. 무지외반증을 가진 사람들이 의식적으로 엄지발가락의 볼에 체중을 가할 수 있도록 발볼 부분의 원단을 도톰하게 짜는 것도 잊지 않았어요.
일본 성인 중 무지외반증을 겪고 있는 사람은 무려 30%나 된다고 해요. 물론 정도에 차이가 있어 치료가 필요 없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만큼 무지외반증 전용 양말에 대한 잠재 수요가 많다고 해석할 수 있어요. 양말을 일상적인 소모품이 아니라, 치료와 예방의 도구로서 접근하니 새로운 수요를 만날 수 있었어요. 전문가와의 협업을 통해 양말 장인으로서의 입지를 굳힌 건 덤이고요.
공감과 위트로 이성이 아닌 감성을 자극한다
양말은 문제를 해결하기는 실용적인 아이템이기도 하지만, 기분을 좌우하는 감성적인 아이템이기도 해요. 기본적으로는 귀여운 디자인의 양말이나 오늘의 의상에 딱 어울리는 양말을 신으면 기분이 좋죠. 타비오는 양말의 이런 감성적인 기능을 극대화해 사용자에게 일상의 재미를 주는 아이템으로도 제안하고 있어요. 매일 신는 평범한 양말에 타비오만의 위트를 섞었거든요.
타비오는 ‘5DW 멘즈 숍 이시카와(5DW メンズショップイシカワ, 이하 5DW)’라는 브랜드와 컬래버레이션을 한 적이 있어요. 5DW는 ‘5 Days a Week’의 약자예요. 일하고 놀기에 바쁜 날들은 일주일에 5일이면 충분하고, 이틀의 주말에는 혼자서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어요. 즉,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일상에 재미를 추구하는 브랜드예요. 컨셉부터 철학적 위트가 있는 이 브랜드와 타비오는 어떤 컬래버레이션을 했을까요?
타비오는 5DW의 컨셉에 맞게 두 가지 세트를 출시했어요. 첫 번째로 출시한 ‘드레스 그래픽(Dress Graphics)’은 평일 출근을 위해 신는 출근용 양말이에요. 다섯 켤레의 양말에 각 요일의 이름을 적어 고민할 필요 없이 양말을 신을 수 있죠.
ⓒTab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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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로 출시한 ‘더 버라이어티(The Variety)’ 세트는 더 재미에 방점을 뒀어요. 모양도, 소재도, 용도도 화려한 양말들로 5켤레를 모아 한 세트로 구성했어요. 취지는 5일 내내 질리지 않고 양말로 확실한 기분전환을 하라는 의미예요. 쉽게 사 신지 않을 디자인의 양말들로만 구성해 소소한 일탈을 의도한 거죠. 이번에는 요일 대신 1~5까지 숫자를 부여해 순서대로 신을 있도록 유도하고 있어요.
ⓒ5D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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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비오와 5DW의 컬래버레이션은 자기만의 여유로운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주말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마음을 파고 들었어요. 동시에 반복되는 평일에도 소소한 재미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어 양말의 감성적 가치를 끌어냈죠.
한편 타비오 독자적으로도 재밌는 컨셉의 양말을 기획하기도 하는데, 대표적인 게 ‘지압점 양말’이에요. 이 제품은 양말의 바닥에 부위별 지압점을 표시해 두었어요. 각 지압점을 지압했을 때 심장, 머리, 마음, 위 등 신체의 어떤 부위에 도움이 되는지가 적혀 있죠. 작은 지압봉까지 세트로 구성해 지압점 양말의 완성도를 높였어요.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강아지, 고양이, 고슴도치 등을 그려 넣은 에디션도 있어요. 귀여운 동물이 지압을 해준다는 스토리를 더해 고객이 웃을 수 있는 포인트를 하나 더 추가한 거예요.
ⓒTab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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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지압 효과가 얼마나 있을지는 미지수예요. 하지만 사람들은 양말에 지압을 더한 그 아이디어에 재미를 느껴요. 게다가 애초에 선물을 타깃해 기획된 제품인만큼, 위트를 덤으로 선물할 수 있어 효용이 높은 제품이에요.
속도는 패스트 패션을, 방향은 슬로 패션을
타비오는 제품의 특성이나 타깃 고객에 따라 8개의 브랜드를 가지고 있어요. 그리고 각 서브 브랜드에서도 수십 가지 종류의 양말을 생산하고 있고요. 형태는 같은데 프린팅만 다른 것도 아니고, 양말에 따라 필요한 기술력이나 디테일도 모두 다르죠. 이쯤 되니 궁금해져요. 타비오는 어떻게 이렇게 다품종의 양말을 생산하고 관리할 수 있을까요?
사실 양말은 다품종 소량 생산하기가 어려운 아이템이에요. 원통형으로 한 번에 생산되는 특성상 최소 생산 단위가 있기 때문이죠. 당시에는 3천 족이 최소 수량이었어요. 한 켤레 씩 생산하는 것이 불가능할 뿐더러 수지타산도 맞지 않아요. 그래서 판매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산더미 같은 재고를 떠 앉게 될 리스크가 있어요. 그만큼 양말 제조업에서 재고 관리는 필수적이에요.
1968년에 설립된 타비오는 당시 재고를 관리하기 위해 양말 한 켤레마다 카드를 넣어 생산했어요. 출고할 때 카드 수를 파악하고, 판매할 때마다 각 지점에서 이 카드를 회수하면서 출고량과 판매량을 파악했던거죠. 이 때만 해도 양말 종수도 많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어요.
그런데 문제는 시간이 흘러 카드 시스템이 전산으로 대체되고, 패션 트렌드와 고객의 니즈가 빠르게 변화하면서부터 생겼어요. 기존처럼 양말 공장에서 양말을 생산하고, 소매점으로 재고를 이동한 후 판매하는 방식으로는 판매 시점의 고객 니즈를 따라가기가 어려워졌어요. 제품 기획 및 디자인, 생산, 판매까지 수개월이 걸리니 제품 기획 시점과 판매 시점의 시차 때문에 소매점에서 떠안아야 할 재고 부담이 점차 늘어났어요.
타비오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염색 공장, 직조 공장, 물류 창고, 소매점, 해외 매장 등 모두가 판매량을 실시간으로 공유하기 시작했어요. 실시간으로 어떤 양말이 얼만큼 판매되는지 보면서 양말의 생산량을 결정한 거죠. 예측한 양에 맞게 각 공장에서 완성된 양말들은 타비오 물류 센터로 옮겨졌어요. 이후 시스템에서 파악한대로 지점들에 분배하거나, 직접 주문한 손님에게 바로 직배송했어요.
데이터에 기반해 각 양말에 대한 수요를 예측하고, 소매점 대신 중앙 물류 창고에서 모든 재고를 관리해 소매점의 재고 부담을 덜어낸 게 핵심이었어요. 동시에 고객들이 어떤 제품을 많이 사는지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빠르게 고객들의 니즈에 대응할 수 있었죠. 타비오의 CEO 오치 가츠히로는 월드 폴리오와의 인터뷰에서 타비오의 시스템에 대해서 이렇게 말해요.
“패스트 패션 기업들은 제품 기획부터 매장 입점까지 빠르다고 광고합니다. 하지만 그런 기업들은 상점에 엄청난 양의 물건을 놓고, 빨리 팔기 위해 큰 할인을 해요. 다음 제품을 위한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팔리지 않은 물건을 폐기하고요. 타비오는 대량생산을 전문으로 하거나 이유 없이 대량생산을 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저희와 패스트 패션의 공통점은 속도입니다. 고객의 요구에 신속하게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며, 이 점에서는 우리도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타비오는 패스트패션 기업을 지향하지 않지만, 속도만큼은 그에 못지 않아요. 데이터와 시스템의 힘 덕분이에요. 시장이 변하고, 고객이 변해도 타비오의 유연한 양말 라인업이 앞으로도 지속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Reference
• Socks of splendor and no need to be a big spender, The Worldfoli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