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로 겪어보지도 않은 시공간에 대해 향수를 느끼는 일이 가능할까요? 최근 Z세대를 중심으로 불고 있는 레트로 열풍을 살펴보면 이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에요. 자취를 감춘 지 오래된 피처폰이나 캠코더, 폴라로이드 카메라 등을 사용하면서 과거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을 느끼곤 하니까요.
경험한 적 없는 시대에 향수를 느끼는 이런 현상을 ‘아네모이아(Anemoia)’라고 부르는데요. 방콕에는 아네모이아를 비즈니스로 만든 곳이 있어요. 더 카세트 뮤직 바(The Cassette Music Bar)죠.
그런데 이 뮤직 바에서는 과거를 더 그리워하게 만드는 독특한 방법을 사용해요. 쉽고 간단하게 사람들의 기억을 조작하죠. 이곳에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냐고요? 지금부터 함께 시대를 되감아볼게요.
더 카세트 뮤직 바 미리보기
• #1. 플레이리스트로 기억을 조작하다
• #2. 오전부터 새벽까지 열리는 90년대로의 통로
• #3. 브랜드 에센스로 성사시킨 핑크빛 휴가
• 시대는 지나가도 시장 가치는 계속된다
시간은 앞만 보고 나아가요. 타임머신을 발명하지 않는 한 시간을 되돌릴 방법은 없죠. 이처럼 앞을 향해 정직하게 달려나가는 것은 시계 속 초침만이 아니에요. 사람들도 제각기 미래의 계획을 세우고, 사회도 기술의 발전 속도에 맞춰 진화하느라 바쁘죠. 하지만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다고 해서 과거에 대한 관심까지 떨어진 것은 아니에요. 오히려 돌아갈 수 없다는 한계는 과거에 대한 향수를 더욱 강화시키죠.
이를 단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현상은 ‘레트로 붐’이에요. 십여 년도 더 된 과거의 유행이 돌고 돌아 다시 한번 트렌드가 되는 것을 뜻하는데요. 레트로 열풍은 한두 개의 산업 군에서만 발생하는 게 아니에요. 패션, 음악, 사진, F&B 업계 등 다양한 영역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죠. 또 일부 국가나 도시에서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 곳곳에서 과거에 대한 향수를 품은 사람들을 볼 수 있어요.
레트로 붐이 불을 붙인 대표적인 아이템은 ‘바이닐(Vinyl)’이에요. 음악 감상법은 기술의 발전에 따라 계속 진화해 왔어요. 턴테이블, CD 플레이어, MP3 플레이어를 거쳐 스마트폰 하나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시대가 됐죠. 이제는 기기 하나로 음악을 무한대로 들을 수 있는 것은 물론, 무작위로 재생할 수도 있을 만큼 편리해졌어요. 그런데 요즘, 젊은 세대들을 중심으로 바이닐을 구입하기 위해 웃돈까지 얹어가며 쇼핑에 참전하는 유행이 번져나가고 있어요. 이미 음원으로 출시된 음반이 바이닐로 제작되어 발매되는 경우도 빈번히 발생하고요.
또 다른 예시로 ‘폴라로이드 카메라’도 있어요. 이제는 스마트폰 하나로도 고화질의 사진을 찍고 인화할 수 있어요. 심지어 실시간으로 필터를 씌우거나 손가락 하나로 편집하는 것까지 가능하죠. 그런데도 요즘 폴라로이드 카메라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점점 늘어나는 추세예요. 디지털카메라에 비해 화질은 떨어지고, 기회는 필름당 한 번만 주어지는 데도 말이죠.
이처럼 레트로 열풍은 사람들이 취미를 향유하는 방법이나 수단까지 바꿔나가는 중인데요. 특히 태어날 때부터 디지털 기기와 함께 자라온 Z세대는 유독 과거의 아날로그 방식에 향수를 느껴요. 심지어 80년대에 유행했던 일본의 음악 장르인 ‘시티 팝’을 들으며 상상 속 과거를 그리워하기도 하죠.
그런데 전 세계적으로 보이는 공통된 현상에는 한 가지 의아한 점이 있어요. 보통 무엇인가를 그리워한다는 것은 그것을 이미 경험했다는 걸 전제로 하는데, 요즘 젊은 세대들은 아예 태어나지도 않았던 시대에 대한 향수를 느끼고 있으니까요. 작가인 존 쾨닉(John Koenig)은 ‘모호한 슬픔의 사전(The Dictionary of Obscure Sorrows)’에서 이 같은 현상을 ‘아네모이아(Anemoia)’라고 지칭했어요. 존 쾨닉은 미처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이나 현상을 단어로 정리했는데요. 그에 따르면 아네모이아는 알지 못했던 시간을 그리워하는 감정을 뜻해요. 이처럼 실제로 겪어본 적 없는 시대를 그리워하는 일은 얼마든지 가능해요.
과거에 향수를 느끼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서일까요? 방콕에는 이 그리움을 발판으로 삼아 비즈니스로 만든 곳이 있어요. ‘더 카세트 뮤직 바(The cassette music bar)’죠. 이름만 들어도 과거를 연상하게 하는 이곳은 카세트 플레이어로 노래를 듣던 시대를 브랜드화했어요. 그런데 시대착오라도 일어난 건지, 이곳의 주요 고객은 직장인이 된 30대 이상뿐만이 아니에요. 매장은 카세트 플레이어를 사용해 본 적조차 없는 젊은 세대들로 밤늦게까지 붐벼요. 그야말로 ‘아네모이아’ 현상을 발생하고 있는 셈인데요. 도대체 ‘더 카세트 뮤직 바’는 어떻게 사람들이 겪어보지도 않은 시대를 그리워하게 만들었을까요? 그 비결을 알아보기 위해 지금부터 카세트테이프를 되감아볼게요.
ⓒ시티호퍼스
#1. 플레이리스트로 기억을 조작하다
카세트테이프는 자기 테이프(Magnetic tape)를 감아 놓은 작은 플라스틱이에요. 카세트 플레이어에 넣어서 음악을 재생하거나 소리를 녹음할 수 있죠. 카세트테이프는 기술의 발전에 따라 어느 순간 자취를 감췄는데요. ‘더 카세트 뮤직 바’에 가면 매장 곳곳에서 카세트테이프를 만날 수 있어요. 입구에는 대형 카세트테이프 모형이 끊임없이 돌아가고 있고, 벽면에는 약 1,200개의 작은 카세트테이프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죠. 간판에 크게 써놓은 ‘더 카세트 뮤직 바’라는 글씨만 봐도 이곳이 범상치 않은 바(bar)라는 것을 알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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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독특한 콘셉트의 뮤직 바는 문을 연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사람들의 예약으로 가득 찼어요. 미리 예약을 하지 않으면 입장이 어려운 것은 물론이고, 예약을 하려면 하루 종일 매달려야 하기도 했죠. 특히 해가 지고 저녁이 될수록 이곳은 음악을 듣고 즐기기 위한 사람들로 점점 더 가득 차요. 대체 어떤 음악이 나오길래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걸까요?
선곡의 힌트는 매장명인 ‘더 카세트 뮤직 바’에 있어요. 이곳의 플레이리스트는 카세트테이프로 음악을 듣던 시대의 노래들로 가득 차 있거든요. 90년대에 히트했던 음악들을 선곡해서 들려주는 것인데요. 한때 익숙했지만 이제는 잊혀진 예전 노래들은 사람들에게 과거를 리마인드하는 역할을 해요. 특히 90년대에는 청소년이었고, 지금은 직장인이 된 사람들의 마음을 저격하죠. 사회생활을 하며 구매력까지 갖게 된 직장인 고객들은 퇴근을 하고 뮤직 바에 찾아오는 경우가 많아요. 이곳에서 예전 노래들을 들으며 자유롭고 순수했던 어린 시절의 자신을 만나기도 하고, 하루의 긴장감과 피로를 풀기도 하죠.
ⓒ시티호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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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해서 단순히 90년대의 음악만 틀면 만사형통인 것은 아니에요. 더 카세트 뮤직 바의 선곡에는 한 가지 원칙이 있었어요. ‘너무 슬픈 노래여서는 안된다’는 것이었죠. 예를 들어 똑같이 실연을 주제로 한 노래이더라도, 재생될 노래는 무작정 슬픈 것이 아니라 희망을 품고 있어야 했어요. 고객들이 매장에서 회상하는 90년대의 기억이 더 즐겁도록 말이죠. 더 카세트 뮤직 바가 일종의 ‘기억 조작’을 시도한 것인데요. 손님들이 있는 그대로의 과거를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적으로 즐거운 기억만을 떠올릴 수 있게 만들었어요. 이와 같은 선곡 원칙은 90년대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더 카세트 뮤직 바의 브랜드 아이덴티티로도 이어지죠.
더 카세트 뮤직 바는 음악을 통해 90년대의 생동감을 증폭시키려는 듯 매장에서 정기적으로 라이브 공연도 개최해요. 진동으로 와닿는 90년대의 리듬은 이 노래를 잘 아는 사람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기에 충분하죠. 이쯤 되면 더 카세트 뮤직 바는 90년대의 감성을 이미 경험했던 사람들의 전유물이 되어야 할 것 같은데요. 실상은 전혀 달라요. 매장을 둘러보면 젊은 여성 고객들로 가득 차 있거든요. 이들은 매장에서 음악을 듣기만 하지 않아요. 사진을 찍거나 동영상을 촬영하면서 온몸으로 뮤직 바를 즐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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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히 살펴보니 더 카세트 뮤직 바는 곳곳이 포토 존이에요. 입구에 위치한 대형 카세트테이프 모형뿐만 아니라 복도 속에서 빛나는 음표 모양의 조명, 카세트테이프로 만든 포토 월까지 그냥 지나치기 어렵죠.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건 이 뮤직 바의 주인공은 ‘음악’ 말고도 하나가 더 있다는 사실이에요. 바로 ‘컬러’죠. 뮤직 바는 간판부터 메뉴판, 테이블과 의자, 작은 인테리어 소품 하나까지 전부 인디 핑크 컬러로 통일시켰어요. 그래서 이곳을 찾은 젊은 손님들은 인스타그래머블한 포토 스팟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사진으로 남겨요. 너무 젊은 여성 고객만 타깃 한 것 아니냐고요? 그렇지 않아요. 많은 여성 고객이 몰린다는 것은 곧 남성 고객들의 주목을 받는 구조를 뜻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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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컬러로 인디 핑크를 선택한 더 카세트 뮤직 바는 이 색깔을 음식과 음료에도 주입했어요. 핑크색 번으로 만든 ‘핑크 버거’, 핑크색 장미를 모티브로 하는 ‘미세스 로즈’ 칵테일 등은 핑크색 매장과 이른바 ‘깔 맞춤’을 하고 있죠. 그러니 90년대를 직접 겪어보지 않았던 젊은 세대도 더 카세트 뮤직 바에 매력을 느낄 수밖에 없어요. 이곳에서 노래를 듣다 보면 어딘가 희망이 느껴질 뿐만 아니라 인스타그래머블한 즐거움까지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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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오전부터 새벽까지 열리는 90년대로의 통로
음악과 컬러를 이용해서 사람들에게 ‘90년대라는 환상’을 만들어 낸 더 카세트 뮤직 바는 여기서 만족하지 않았어요. 90년대라는 시대를 핵심 축으로 삼아 새로운 고객들을 만나기 위한 변주에 돌입했죠. 2021년에 ‘더 카세트 커피 바’를 오픈하며 다시 한번 90년대로부터의 시그널을 보냈어요.
‘더 카세트 뮤직 바’가 오후 5시부터 열리는 90년대라는 세계관을 선보였다면, ‘더 카세트 커피 바’는 이를 오전 10시로 앞당겼어요. 저녁 시간 이후부터 음악을 들으면서 식사와 술 한 잔을 즐길 수 있는 바(Bar) 브랜드가 일상적인 분위기를 얻기 위해 새로운 시도를 한 거죠. 더 카세트라는 브랜드에는 밤뿐만 아니라 낮도 있다는 걸 몸소 보여주고자 한 거예요.
더 카세트 커피 바는 외관부터 더 카세트 뮤직 바와 동일한 인디 핑크 색으로 브랜드 컬러를 통일시켰어요.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외부 유리창을 가득 채우고 있는 모형이 카세트테이프가 아닌 커피 그라인더라는 거죠. 커피 그라인더 사이에는 매장의 유일한 입구인 수동 회전문이 있는데요. 사람들은 더 카세트 커피 바에 들어가기 전부터 커피 그라인더와 회전문을 배경으로 줄지어 사진을 찍고 있어요. 매장에 들어가기 전부터 포토 타임이 시작되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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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손으로 묵직한 회전문을 밀고 들어가면 바깥과는 다른 새로운 세계가 펼쳐져요. 카운터 뒷편의 벽면을 가득 채운 핫 핑크색의 열쇠들은 매장을 카페가 아니라 호텔 로비처럼 보이게 하죠. 매장 한 켠에 있는 엘레베이터는 고객들을 태워 다른 차원으로 이동시킬 것만 같고요. 여느 카페와 마찬가지로 커피와 베이커리를 판매하고 있지만 90년대의 클래식한 분위기를 통해 더 카세트 커피 바만의 이질감을 만들어냈어요.
ⓒ시티호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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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것은 인테리어뿐만이 아니에요. 더 카세트 커피 바의 시그니처 음료는 ‘더 카세트 커피 슬러피(The Cassette Coffee Slurpee)’인데요. 이 음료는 편의점인 세븐일레븐에서 판매하는 슬러시인 ‘슬러피’에서 영감을 받은 메뉴예요. 어린 시절에 자주 사 먹었지만 어느 순간 잊혀진 슬러피를 커피 메뉴로 재탄생시켰죠. 더 카세트 커피 바에서는 이 메뉴를 통해 좋았던 10대 시절을 떠올려보라고 권해요. 음료를 과거로 돌아가는 하나의 매개체로 만든 거죠.
ⓒThe Cassette Coffee Bar Instagram
그렇다고 더 카세트 커피 바가 오직 과거를 되새기는 데만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에요. 더 카세트의 브랜드 정체성과 접점만 있다면 동시대와의 교감도 서슴지 않죠. 예를 들어 볼게요. 최근에는 음반사 워너뮤직 태국(Warner Music Thailand)과 함께 컬래버레이션을 진행했어요. 2023년 11월에 발매된 글로벌 팝스타 두아 리파의 신곡 ‘후디니(Houdini)’를 홍보하기 위해 음료 메뉴 ‘Truly Ruby’를 선보인 건데요. 두아 리파는 디스코 장르의 부활을 이끌면서도 세련미를 놓치지 않는 디스코 붐의 대명사예요. 또 시그니처 헤어 컬러가 체리 레드 컬러이기도 하죠. 음악과 컬러라는 두 가지 교집합은 두아 리파와 더 카세트 커피 바의 컬래버레이션을 성사시켰어요. 더 카세트 커피 바에서는 두아 리파의 헤어 컬러를 쏙 닮은 석류를 베이스로 음료를 만들어 매장 한정으로 판매 중이죠.
ⓒ시티호퍼스
ⓒ시티호퍼스
한편, 늦은 밤이 될수록 더 돋보이는 매장 ‘더 카세트 스카이 바’도 있어요. 더 카세트 스카이 바는 방콕의 럭셔리 호텔인 SO 방콕에 위치한 루프탑 바로 새벽 2시까지 운영해요. 이곳에서도 들어서자마자 핑크색으로 악센트를 준 인테리어가 고객들을 반겨줘요. 굳이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비주얼 콘셉트 자체만으로 더 카세트 뮤직 바가 기획한 공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죠.
ⓒThe Cassette Sky Bar at SO Bangkok facebook
심지어 더 카세트 스카이 바에서는 천장 가까이로 핑크색 구름 조형물이 떠다녀요. 이 구름이 조명의 빛을 반사해서 창문에 비친 모습은 마치 밖에 핑크색 구름이 떠 있는 것 같은 착시 현상을 불러 일으키죠. 현실 세계에 만들어 놓은 천국처럼요. 더 카세트 스카이 바는 자신들이 만든 천국을 보여주는 것에서 만족하지 않았어요. 구름 한 조각을 떼어 만든 듯한 시그니처 칵테일 ‘더 카세트 클라우디 핑크’로 사람들에게 천국의 맛이 어떤지 보여주죠.
이처럼 더 카세트 뮤직 바는 커피 바와 스카이 바를 통해 운영 시간과 타깃 고객 군에 미세한 변화를 주고 있는데요. 조금씩 변화를 주면서도 일관성 있게 유지하는 것이 있어요. 모든 매장에서 90년대의 10대들이 가장 좋아했던 노래들을 틀어준다는 거죠. 물론 이 노래를 모두가 알고 있을 필요는 없어요. 90년대의 추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음악으로, 그 기억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은 비주얼로 끌어당기는 투 트랙 전략을 취하고 있으니까요. 처음에 무엇에 끌렸든 관계없이, 방문한 모든 사람들은 90년대의 즐거움을 경험하게 되어 있어요.
#3. 브랜드 에센스로 성사시킨 핑크빛 휴가
더 카세트 뮤직 바는 90년대를 상징하는 브랜드로 성장하며 정체성을 강화시켜왔어요. 누구나 카세트테이프 모형, 인디 핑크 컬러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더 카세트 뮤직 바를 떠올릴 수 있게 됐죠. 그런데 더 카세트 뮤직 바는 이 정도에서 안주하지 않았어요. 자신들의 강점인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살려 독특한 확장 전략을 펼쳤죠.
더 카세트 뮤직 바는 자신의 존재감을 더 많은 사람에게 각인시키는 방법으로 ‘팝업 바’를 선택했어요. 한번 보면 지나치기 어려운 특성을 이용해서 유동 인구가 많은 지역에 기간 한정으로 팝업 매장을 오픈한 거죠. 어차피 사람들은 카세트테이프나 인디 핑크 컬러만 보고도 쉽게 더 카세트 뮤직 바를 떠올렸어요. 그래서 굳이 정식 매장을 오픈하느라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일 필요가 없었죠. 또 팝업 바를 열면 자신들이 타깃으로 삼는 고객을 직접 만나러 갈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어요.
ⓒThe Cassette Music Bar Instagram
그래서 더 카세트 뮤직 바는 2023년 12월 7일부터 2024년 1월 7일까지 한 달간 방콕의 대형 쇼핑몰 ‘엠쿼티어’에서 팝업 매장을 운영했어요. 이른바 ‘더 카세트 홀리데이’였죠. 과연 더 카세트 뮤직 바가 사람들을 위해 준비한 휴가는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이번 팝업 바에서 더 카세트 뮤직 바는 솔로 플레이가 아니라 팀플레이를 선택했어요. 기존에 가지고 있었던 더 카세트 뮤직 바만의 브랜드 정체성과 타 브랜드와의 교차점을 찾아서 적극적으로 컬래버레이션을 시도했죠.
예를 들어볼게요. 팝업 매장 한편에서는 더 카세트 스시를 팔았어요. 연어가 들어있는 이 스시 롤은 SO 방콕 호텔에 위치한 ‘스시 소라’와 함께 컬래버레이션 한 메뉴로 겉면을 핑크색 파우더로 마무리했죠. 이곳에는 식사를 마치고 나면 즐길 수 있는 디저트도 있어요. 젤라토 아이스크림으로 유명한 ‘몰토(Molto)’와 함께 핑크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선보였죠.
ⓒThe Cassette Music Bar facebook
브랜드 간 컬래버레이션은 단순히 색깔이라는 교차점 하나로만 이루어지지 않았어요. ‘지난날들을 추억한다’는 의미로도 성사됐죠. 예를 들어 유명 아이스크림 브랜드인 ‘구스 댐 굿(GUSS DAMN GOOD)’은 더 카세트 홀리데이의 팝업 기간 중 특별히 12월 20일 하루 동안만 만날 수 있는 소프트아이스크림을 선보였는데요. 핑크색 소스로 마무리한 아이스크림의 이름은 ‘Good Old Times’였어요. 참고로 구스 댐 굿의 캐치프레이즈는 ‘좋은 기억, 좋은 사람들, 그리고 좋은 인생에 대한 회상’이에요. 표현법이나 상품은 달라도 더 카세트 뮤직 바와 동일선상에 있는 브랜드죠.
그 밖에도 더 카세트 홀리데이에서는 곳곳에서 브랜드 컬래버레이션을 엿볼 수 있었어요. 선반 위에는 샴페인 브랜드 샹동(Chandon)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 인디 핑크 컬러의 샴페인 잔이 진열되어 있고, 라이브 공연의 필수 간식인 팝콘 패키지에는 태국 멀티플렉스 영화관인 ‘메이저 시네플렉스’의 이름이 쓰여 있었죠.
ⓒThe Cassette Music Bar facebook
이처럼 더 카세트 홀리데이는 스시부터 아이스크림, 샴페인, 팝콘까지 컬래버레이션의 가지를 다채롭게 뻗어나갔어요. 업종은 다양했지만 이 브랜드들이 서로 어울려 하나의 홀리데이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데에는 한 가지 비결이 있어요. ‘더 카세트 뮤직 바’라는 견고한 구심점이죠. 더 카세트 뮤직 바는 자신들이 가진 브랜드 컬러나 의미를 바탕으로 여러 브랜드들을 초대해서 ‘더 카세트 홀리데이’를 만드는 능력이 있었어요.
곧이어 더 카세트 뮤직 바는 오프라인 팝업 바를 통해 확장시킨 브랜드 파워를 온라인으로도 전파시켰어요.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SNS 공식 계정 피드를 ‘더 카세트 홀리데이’를 방문한 사람들의 사진으로 꾸몄죠. 컬래버레이션 한 F&B 메뉴와 라이브 공연 소식 등도 실시간으로 업로드했고요. 공식 계정에 손님이나 게스트, 컬래버레이션 대상에 관한 포스팅을 주로 올린다면 주객이 전도된 것 아니냐고요? 그렇지 않아요. 모든 사진의 뒷배경으로 자리 잡고 있는 인디 핑크 컬러 하나만으로도 ‘더 카세트 뮤직 바’는 자신의 존재감을 충분히 드러내니까요.
더 카세트 뮤직 바가 온라인에서 활약한 것은 꽤 오래됐어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매장이 잠시 문을 닫았을 때조차 온라인에서는 카세트테이프가 계속 돌아가고 있었죠. 영업이 중단되어 라이브 공연이 불가능해졌을 때도 포기하지 않고 페이스북을 통해 공연을 생중계한 것인데요. 비록 실제 매장에 관객은 단 한 명도 없었지만 뮤지션들은 똑같이 가게에서 노래를 부르고 연주를 이어나갔어요. 달라진 점은 딱 하나. 관객들이 온라인으로 이 공연을 듣고 호응한다는 점이었죠. 뮤지션들을 지원하고자 하는 더 카세트 뮤직 바의 마음이 전해져서일까요? 공연 영상은 한 회당 조회 수 10만 건을 넘어서는 등 높은 호응을 보여줬어요. 그리고 다시 카세트 뮤직 바가 문을 열었을 때 매장은 손님들로 붐볐죠.
시대는 지나가도 시장 가치는 계속된다
더 카세트 뮤직 바는 커피 바와 스카이 바, 팝업 바 등을 통해 영역을 확장해 왔어요. 동시에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들며 존재감을 키웠고요. 그러면서도 지금까지 일관성 있게 유지해온 것이 하나 있어요.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90년대부터의 시그널을 보냈다는 거예요. 덕분에 사람들은 더 카세트 뮤직 바가 있는 곳에서라면 언제 어디서나 90년대의 활력과 희망을 체감할 수 있었어요. 그 시대를 직접 살아보지 못했더라도 말이죠.
이 시그널에는 한 가지 특별한 점이 있어요. 신호를 보내는 쪽도, 받는 쪽도 모두 지나간 과거를 그리워한다는 거예요. 어느 시대든 해결해야 하는 과제나 고민, 걱정거리가 있다는 건 매한가지인데 사람들은 왜 유독 과거를 그리워하는 걸까요? 사실 사람에게는 언제나 과거를 실제보다 더 좋게 기억하는 심리가 있어요. 슬펐거나 괴로웠던 기억은 자체적으로 기억에서 지우고, 좋았던 기억만 남기죠. 행동 경제학에서는 이와 같은 편향 심리를 므두셀라 증후군(Methuselah Syndrome)이라고 불러요. 이루어지지 않은 첫사랑을 미화해서 기억하거나, 고생했던 어린 시절을 좋게 기억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시라고 할 수 있어요.
결국 지나간 시간을 그리워하는 것은 개인 차원의 성향이 아니에요. 온 인류가 다 함께 겪고 있는 일종의 증후군이죠. 특히나 요즘처럼 글로벌 경제 위기로 미래에 대한 안정감이 떨어지고, 많은 정보들이 눈앞의 시야를 가로막는 시기에는 누구나 뒤를 돌아보고 싶은 마음이 강해질 수밖에 없어요. 그러니 과거의 유행이 시차를 두고 계속 돌아오는 데는 다 타당한 이유가 있었던 거예요.
하지만 제아무리 미화된 과거라고 해도 한때의 유행으로 소비된 후 잊히지 않으려면 노력이 필요해요.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상품과 서비스, 공간이 대중을 현혹시키는 시대니까요. 만약 시대를 초월해서 사랑받는 타임리스(Timeless) 브랜드가 되고 싶다면 더 카세트 뮤직 바에 가서 노래 한 곡을 들어보는 건 어떨까요? 이미 지나간 시대를 되돌릴 수는 없어도, 시장 가치를 지속시키는 법을 배울 수 있을 거예요.
Refere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