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시게루, 안도 타다오, 구마겐고 등 일본의 기라성 같은 건축가들이 한 프로젝트에 모였어요. 대체 얼마나 대단한 건축물을 짓길래 국가대표급 거장들이 참여하게 된 것일까요? 놀랍게도 그들이 디자인한 건 화장실이에요. 그것도 ‘공중 화장실’이요.
공중 화장실이라는 단어는 생각만 해도 비위생적인 이미지가 떠올라요. 멋진 건축물만을 만들 것 같은 거장들이 공중 화장실을 리디자인하게 된 건, 아이러니하게도 공중 화장실에 대한 이런 거부감 때문이에요.
공중 화장실은 이름처럼 ‘공공’을 위해야 해요. 하지만 더러워서, 위험해서, 불편해서 등 많은 이유로 사람들이 잘 이용하지 않아요. 그렇다면 공중 화장실이 정말 모두를 위한 시설일까요?
이런 문제의식에 공감하고 도쿄의 공중 화장실을 리디자인하는 프로젝트가 바로 ‘도쿄 토일렛 프로젝트(The Tokyo Toilet)’예요.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크리에이터들은 기존의 부정적 이미지의 공중 화장실을 리디자인해 일본의 강점인 아름다움과 청결함을 보여주고자 했어요. 도쿄 토일렛 프로젝트는 어떻게 도쿄의 풍경을 바꾸고 있을까요?
오늘의 스토리는 ‘야마테센의 뉴스 배달부’와 함께 하는 콘텐츠에요. 도쿄의 새로운 뉴스를 배달해 주는 야마테센의 뉴스 배달부와 함께 도쿄의 거리로 떠나보아요.
도쿄 토일렛 프로젝트 미리보기
• #1. 반 시게루 - 내부가 보여서 안심이 되는, 투명 화장실
• #2. 안도 타다오 - 빛과 바람이 드나드는, 격자형 화장실
• #3. 구마 겐고 - 소외된 자를 배려하는, 마을 같은 화장실
• #4. 사토 가즈 - 접촉을 피하는, 말하는 화장실
• 화장실 하나 바꿨을 뿐인데 도시의 가치가 달라진다
공중 화장실은 공공을 위한 시설이에요.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2016년, 일본의 토지, 인프라, 교통, 여행부(Ministry of Land, Infrastructure, Transport, and Tourism) 설문 조사에 의하면 공중 화장실을 전혀 이용하지 않거나 거의 이용하지 않는다고 답한 비율이 90%에 달해요. 1% 남짓한 사람들만 공중 화장실을 자주 쓴다고 응답했죠.
그렇다면 공중 화장실을 기피하는 이유가 뭘까요? 비위생적이고, 청소가 제대로 안되어 있으며, 불편하거나 안전하지 않다고 여기기 때문이에요. 모두를 위한 화장실인데 실상은 1%를 위한 화장실이었던 거예요. 예산이 낭비되고 있는 셈이었죠. 공중 화장실에 새롭게 할 필요성이 대두됐어요.
여기에다가 도쿄 올림픽이 한 몫 거들었죠. 도쿄 올림픽 유치를 할 때 일본 정부에서 강조했던 키워드가 있었어요. 바로 ‘오모테나시’예요. 오모테나시는 손님을 극진히 모신다는 뜻으로, 일본의 접객 문화를 대표하는 말이기도 해요. 그런데 현재의 공중 화장실로는 해외에서 오는 관광객에게 오모테나시를 보여줄 수 없다고 판단한 거예요.
©️Tatsuro Kiuchi
그래서 2018년 10월, 일본 재단(The Nippon Foundation)이 발벗고 나섰어요. 공중 화장실을 개선하기로 한 거예요. 이름하여 ‘도쿄 토일렛 프로젝트(The Tokyo Toilet)’. 그리고는 장소를 제공할 시부야 구, 시공을 담당할 다이와 하우스, 화장실을 디자인할 토토와 손을 잡았어요. 또한 크리에이티브 영역에서 활약하는 16명의 건축가와 디자이너 등을 초대해 17곳의 화장실을 다지인하도록 했어요.
그렇게 탄생한 프로젝트에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 세계적인 관심을 불러 일으킨 작품이 있었으니, 바로 ‘반 시게루’의 투명 화장실이에요.
#1. 반 시게루 - 내부가 보여서 안심이 되는, 투명 화장실
반 시게루는 건축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프리츠커 상을 수상했던 건축가예요. 재활용 가능한 종이 관(튜브)을 이용한 건축물로 유명하죠. 그런 그가 이번에 화장실을 디자인하면서는 투명함을 전면에 내세웠어요. 은밀한 공간이어야 할 화장실이 투명이라뇨. 이러한 역설적인 디자인에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됐죠. 물론 실용성이 없는 건 아니에요. 사용하지 않을 때는 투명하지만 누군가가 사용 중이라면 불투명한 벽으로 바뀌거든요.
반 시게루는 화장실이 '투명한 이유에 대해 '안전'과 '안심'을 가장 큰 이유로 이야기했어요. '안에 누가 있지는 않을지', '안은 쾌적한 상태일지'. 우리가 공중 화장실에 대해 안고있는 이런 말못 할 걱정같은 것들요. 말하자면, 공중 화장실의 난점을 해결하는 방식으로서의 '투명'이었던거죠. 잘 쓰이지 않는, 사용을 기피하는 화장실에 대한 대응이었어요.
반 시게루가 작업한 도쿄의 미래형 화장실. 미래란 말은 SF 공상 과학처럼 느껴지지만, 희망이 서린 내일의 단어이기도 합니다.
이 투명 화장실은 2곳에 위치해 있어요. 위치는 요요기 토미가야쵸의 '요요기 후카마치 미니 공원'과 ‘요요기 하루노오가와 커뮤니티 파크’ 안에요. 똑같은 디자인에 컬러만 다르죠. 도쿄 토일렛 프로젝트로 총 17곳에 화장실을 만들 예정인데, 16명의 크리에이터가 초대받았어요. 한 명이 2개의 화장실을 디자인하게 된 거예요. 그리고 그 주인공이 바로 반 시게루죠. 그는 중책을 맡은 만큼 센세이셔널한 화장실을 만들면서 도쿄 토일렛 프로젝트를 전 세계에 알렸어요.
#2. 안도 타다오 - 빛과 바람이 드나드는, 격자형 화장실
이번에는 건축가 노출 콘트리트 소재가 시그니처인 ‘안도 타다오’의 공중 화장실을 살펴 볼게요. 반투명 아크릴을 사용한 반 시게루와 정반대의 자리에서 그는 역시나 노출 콘크리트를 떠올리게 하는 단아한 화장실을 완성했어요. 안도 타다오는 비를 피하기 위해 잰걸음에 찾는 '처마', 그리고 '정자'를 이미지화 했어요. 스케치안엔 개구리가 비를 피하고 있죠? 장소는 도쿄도 시부야쿠 진구마에 6-22-8, 미야시타 파크 근처예요.
“작은 '정자'가 되기도 하고, 공용 화장실이라는 기능뿐 아니라, 도시 시설로서의 의미, 퍼블릭한 가치를 지닌 존재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안도 타다오, 공용 화장실의 아이덴티티에 관하여
그리고, 반 시게루의 토일렛이 '투명'으로 안심, 안전을 확보했다면, 안도의 화장실은 '빛'과 '바람'의 힘을 빌렸어요. 외벽을 빛과 바람이 통할 수 있게 격자 형태로 설계한 거죠. 둥글 넓적한 어찌보면 우주선처럼 보이기도 하는 이 화장실에 대해 안도는 "(입구와 출구가) 원형의 외벽을 따라 동그랗게 돌아갈 수 있게 만들어졌어요"라고도 이야기하네요. 나가는 사람 피하느라, 들어오는 사람 탓에 기다리느라 당황할 필요 없게요. 그리고, 화장실 개막식(?)에 맞춰 진행된 기자 회견 일부를 정리해 봤어요.
"2년 전에 (프로젝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비용도 들어가고 진짜일까, 괜찮을까 생각했어요. 하지만, 일본의 '강점' 중 하나는 청결하고 아름다운 것에 있죠. 이걸 테마로 세계에 발신하고 싶다고 생각해 디자인했어요. 그런 의미에서 시부야 전역의 화장실을 다시 짓는다는 마음으로 임했다고 생각해요.
코로나를 의식한 건 아니지만, 통풍이 잘 되고, 아름다운 공중 화장실로 세계에 하나의 메시지를 보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내벽을 격자로 만들어서 최대한 낙서를 하지 못하게, 할 수 없게 궁리하기도 했죠. 전체적으로 보석과 같이, 작기에 가능한 커다란 울림을 의식했고, 그런 표현이었다고 볼 수 있어요. 공원을 다시 바라보는 계기도 되지 않을까요."
원형의 디자인에 '남자', '여자'와 함께 '누구든'으로 구분되어 있어요. 그리고 바람도 빛도 잘 통하는 '오픈된' 화장실이네요.
여기에다가 이렇게 덧붙여요.
"화장실이지만 깨끗하다면 비가 올 때 비를 피할 수 있는 장소도 되고, 한숨 쉬었다 갈 수도 있어요. 공간이 깨끗하다면 사람은 좀처럼 더럽히지 않는 성질이 있기 때문에, 청결함을 가장 의식했죠. 그리고 이 화장실의 메인은 장애를 가진 분, 그리고 아이와 함께인 사람을 의식해 만들었고, 그런 점에서 기존의 공중 화장실이 갖고있는 문제들에 대처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다른 작품, 투명해서 밖에서 보일지 모른다고 화제가 됐던 반 시게루의 화장실에 대해서도 의견을 남겼죠.
"다른 사람들의 작품을 다 보지는 않았지만 모두 긴장감을 갖고 전력을 다해 만든 것에 대해 깜짝 놀랐어요. 화제가 된 유리창(화장실)은 비쳐서 보이면 어쩌지라고 생각했지만, 그런 '위험감'이 역으로 좋다고 생각해요.“라고요.
#3. 구마 겐고 - 소외된 자를 배려하는, 마을 같은 화장실
이번에는 최근 가장 열일하는 건축가 구마 겐고의 화장실이에요. 그가 디자인한 화장실은 시부야 고급 주택가의 공원 '나베시마쇼토 공원(鍋島松濤公園)’에 문을 열었어요. 그런데 그건 무려 방 다섯 개로 구성되는, '마을 형태의 화장실'이에요. 구마 겐고는 대체 화장실에서 무얼 이야기하고 싶었던 걸까요.
"공용 화장실은 일상, 지역에 밀착된 건축임에도 지금까지 디자인적인 고려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이번 기획은 그런 의미에서 획기적인 프로젝트라 느꼈고, (화장실이 만들어진 장소는) 숲이 울창하고 수로, 연못이 있기에 이번 기획에 최적의 장소라고도 생각했어요."
-구마 겐고, 도쿄의 화장실이 제안하는 프로젝트, 9번째 화장실을 완성하고
먼저, 이 5개의 화장실은 소변기용, 일반 토일렛, 유아용 화장실, 누구든지 화장실(다목적, 다기능), 그리고 베이비 체어/베드, 오스트메이트(Ostomate, 암이나 질병으로 소화관이나 요도관을 착용한 사람들)용 설비, 피팅보드, 고령자와 임산부 우선 설비 등으로 구성되어 있어요.
남자용, 여자용, 그리고 지금은 좀 시대가 눈을 뜨기 시작하며 '다목적 화장실'까지는 만들어지는 분위기지만, 그럼에도 소외되는 누군가를 위한 배려가 더해져 5개의 화장실이 완성되는 셈이에요. 각각의 화장실 '방(?)'과 '방' 사이엔 작은 오솔길도 만들어 산책의 기분이 느껴지도록 설계했어요. 화장실이 참 깊고, 생각을 하게하죠.
나라현의 고급 브랜드 목재인 '요시노스기(吉野杉)'를 잘라낸 단면을 가공하지 않고, 랜덤하게 조립한 방식의 건물로 만들어졌어요. 조금 멋이 없어보이기는 한데요, 기존의 화장실에 대한 이미지를 불식시키고, 자연과 삶에 어우러지려는 마음이 보여요.
고작 화장실이지만 그곳엔 분명 일상이 있고, 때로는 소외와 배제가 생겨나기도 해요. 그래서 쿠마는 자연을 의식하는 것으로, 자연과 함께하는 방식으로 누구인지 모를 '그 누군가'까지, 함께하는 화장실을 만들어낸 거에요. 일본에선 다목적 화장실이란 말보다, '다레데모(누구든지)' 화장실이란 말을 더 자주 쓰는데요. 그 '누구든지', '다레데모'를 구현하며 화장실은 방 다섯개, 작은 마을이 되었어요. 그리고 그곳엔 아마, '함께하는 일상'이 시작되겠죠?
#4. 사토 가즈 - 접촉을 피하는, 말하는 화장실
이번에는 건축가가 아닌 크리에이터가 만든 화장실을 소개할게요. 바로 광고 대행사 TBWA의 CCD(Chief Creative Director), 사토 가즈의 화장실이에요. 그는 접촉을 피하는, 말하는 화장실을 디자인했어요.
위의 사진이 사토 가즈의 화장실인데요, 이 반구(球) 형태의 토일렛은 화장실 내에서 행하는 모든 행위를 접촉 한 번 없이, 손발 쓰지 않고 가능한 형태로 설계되었어요. 데이터를 기반으로 모든 행위를 목소리로 전달하면 실내에 장착된 마이크가 인식해 행위를 대신 처리해주는 음성 주문형 토일렛(Voice-command Toilet), 이름하여 'Hi Toilet'에요. 문을 열고 닫는 것부터 좌변기의 각종 조작들, 뿐만 아니라 음악이 24시간 틀어져있어 깨끗하고 즐거운 장소를 의도했다고 해요. 그런데 굳이 왜 반구(球) 의 디자인일까요? 사토 씨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어요.
"중앙 높이가 4m에 이르는 높은 천장의 하얀 구형태의 건축은 공기의 흐름을 제어하고, 냄새가 잔류하지 않게하기 위한 디자인이에요. 또한 자연 현상으로 인한 통기에 기계를 사용한 배기를 더한 24시간 환기 시스템이 설치되어 있기도 합니다."
- 사토 가즈, TBWA 치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사토 가즈 씨의 화장실은 어둠이 찾아오면 이런 모습이 돼요. 뭔가 미래스럽지 않나요?
그에 더해 이 하얀 반구(球) 모양의 화장실은 성별, 연령, 장애의 유무에 상관없이 누구나 쾌적하게 이용 가능한 공용 토일렛을 지향한다는, 프로젝트의 취지에 어울리는 그림이기도 해요.
화장실 하나 바꿨을 뿐인데 도시의 가치가 달라진다
17곳 중 현재까지 14곳의 화장실이 만들어졌는데요. 아직 진행 중이 이 도쿄 토일렛 프로젝트의 성과는 어땠을까요? 전 세계의 2,275개 이상의 매체에 소개됐고, 53억 명에게 노출됐어요. 그리고 여성의 이용률이 200% 증가했죠. 2022년 6월 시점의 결과이니, 지금은 그보다 더 높은 수치를 자랑할 거예요.
그런데 흥미로운 점이 하나 더 있어요. 일본 재단은 16명의 건축가, 디자이너, 크리에이터 등을 초대하여 전 세계적인 관심을 받을 만한 작품을 만들었어요. 하지만 심미적이고 의미 있는 공중 화장실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아요. 화장실은 감상하는 곳이 아니라 일상 속에 있어야 하는 공간이니까요.
그래서 일본 재단은 시부야 구, 시부야 관광 협회가 제휴해 화장실 청소 및 관리를 하기로 했죠. 형식적으로 조직체를 만든 게 아니라 실제로 청소 및 관리를 열심히 해요. 어느 정도냐면 하루에 3번 청소를 하고요, 한 달에 한 번 물청소와 정기 점검을 해요. 그리고 일년에 한 번은 특별 청소를 하죠. 공중 화장실을 기피했던 가장 중요한 이유, 비위생적이고, 더러운 상태를 개선하려는 목적이에요. 프로젝트의 본질을 놓치지 않는 거죠.
마지막으로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안도 타다오의 말로 마무리 할게요. 그의 믿음처럼 화장실을 바꿨을 뿐인데 도시의 브랜드 가치가 높아질 수 있어요.
"일본은 깨끗하고 아름다운 나라로 인식되어 있어요. 외국 관광객이 방문해서 리디자인한 공중 화장실을 본다면, 이 화장실들을 일본의 아름다움을 만드는 일부로 생각할 거라 믿어요."
Refere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