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칵테일 바가 기억되는 법, 여섯 번째 감각인 '감정'을 자극한다

언더 랩

2024.03.21

때로는 단점이라고 여기던 것들이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힘이 되기도 해요. 비즈니스의 세계에서는 더욱 그렇죠.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술 한 잔이 주량인 바텐더가 만든 타이베이의 칵테일 바 ‘언더 랩’은 늘 만석에, 예약도 힘들어요.


언더 랩의 창립자 페이 리우는 술은 세지 않지만 커피, 요리, 예술 등 다른 분야에 조예가 깊어요. 술을 탐닉하는 대신 다른 분야의 테크닉과 원리를 연구하고, 칵테일에 적용했죠. 덕분에 언더 랩의 칵테일들은 음식, 차, 예술과의 경계를 뛰어 넘어요.


칵테일 자체도 크리에이티브하지만, 이게 전부는 아니에요. 언더 랩은 미각을 넘어 오감을, 오감을 넘어 여섯번째 감각인 육감을 자극하거든요. 마시는 경험이 아니라 몰입하는 경험을 통해서요. 언더 랩은 과연 어떻게 몰입형 경험을 디자인했길래, 고객의 육감을 자극해 대체불가한 칵테일 바가 된 것일까요?


언더 랩 미리보기

 티켓 부스 아래, 지하실에 펼쳐진 칵테일 실험실

 #1. 경계 없음 - 음식, 차, 칵테일 사이의 경계를 허문다

 #2. 서사 있음 - 경계를 넘나드는 코스 메뉴를 하나로 엮는 힘

 #3. 기한 있음 - 시즌제로 서사에 긴장감을 준다

 주량이 1잔인 바텐더, 육감을 디자인하다




타이베이에는 편의점 컨셉의 칵테일 바가 있어요. 대만 최초이자 아시아 최초, 병 칵테일을 개발한 RTD 브랜드 ‘왓(WAT)’의 매장이에요. 왓은 화려한 바텐딩이나 격식 차린 바텐더가 있는 전형적인 칵테일 바 대신 편의점처럼 간단히 들러 한 병 마시고 갈 수 있는 매장을 지향해요.


ⓒ시티호퍼스


ⓒ시티호퍼스


‘칵테일, 어디서나, 언제나(Cocktails. Anywhere, Anytime)’


왓의 브랜드 컨셉이에요. 바텐더가 즉석으로 만들어 주는 게 정석이었던 칵테일을 직사각형 유리병에 담았어요. 여기에 감각적인 패키지 디자인까지 더해 갖고 싶은 병 칵테일을 만들었죠. 물론 왓의 인기 비결은 보이는 게 다가 아니에요. 절대적으로 높은 품질과 대만 제철 식재료를 활용한 유니크한 맛이 인기의 기반이 되었어요.


ⓒ시티호퍼스


ⓒ시티호퍼스


병 칵테일이 브랜드 근간인 왓이 2023년 10월, 매장에서 즉석 칵테일을 선보였어요. 원래도 매장에 탭으로 내려주는 즉석 칵테일 메뉴가 몇 가지 있기는 했지만, 바텐더가 핸드 셰이킹(Handshaking)으로 만들어 주는 칵테일 메뉴를 도입한 거예요. 병 칵테일이나 탭 칵테일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아 컨셉을 바꾸려는 시도였을까요?


오히려 정반대예요. 바텐더를 접해본 적 없거나, 익숙하지 않은 고객들이 편안하게 바에 접근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담아 출시한 칵테일 메뉴거든요. 지나치게 화려하거나 기교를 부린 칵테일이 아닌, 기존 왓 고객들도 부담없이 즐길 만한 칵테일을 준비했어요. ‘고품질 휴대용 칵테일 숍’이라는 왓의 컨셉을 반영해 칵테일을 디자인해 위화감을 줄였죠.


핸드셰이킹 방식으로 제공되는 칵테일 메뉴는 총 12가지였어요. ‘왓 클래식(WAT Classic)’, ‘과일(Fruit)’, ‘차(Tea), ‘나는 달콤한 것을 좋아해(I Love Sweet)’ 등 총 4가지 타입에, 각 타입마다 3가지의 맛을 개발했거든요. 4개의 카테고리부터 벌써 왓의 정체성과 대만의 맛을 반영하고 있어요. 과일 카테고리의 ‘트렌디 뷰티 베리(潮流美莓)’는 미니 버전으로 줄인 왓의 병 칵테일을 거꾸로 꽂아 주기도 해요. 


ⓒWAT


칵테일 바의 문턱을 낮춘 왓은 고객들이 자연스럽게 바텐딩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핸드셰이킹 메뉴를 출시했어요. 그런데 병 칵테일 전문 브랜드인 왓이 이 메뉴들을 혼자 개발하기에는 무리가 있었을 거예요. 같은 칵테일이라도 병 칵테일과 핸드셰이킹 칵테일에는 개발 과정에서 차이가 있을 테니까요. 왓의 정체성을 반영하면서도 바텐딩의 매력을 십분 발휘한 12가지 칵테일들은 타이베이의 바, ‘언더 랩(unDer lab)’의 작품이에요.



티켓 부스 아래, 지하실에 펼쳐진 칵테일 실험실

언더 랩은 타이베이 다안 구 골목길에 자리한 바예요. 이름처럼 실제로 지하 1층에 위치해 있고, ‘실험실’로서의 정체성을 갖고 있어요. 형태적으로는 스피크이지 바(Speakeasy bar)이기도 해요. 1층에 있는 극장 티켓 부스처럼 생긴 입구를 지나 지하로 내려가면 본격적인 바가 시작되죠. 그런데 보통의 스피크이지 바들이 하이라이트가 입구의 페이크(Fake) 공간인 반면, 언더 랩의 입구는 거들 뿐이에요. 하이라이트는 바 안에서 펼쳐지죠.


언더 랩 안으로 들어가 볼까요? 몇 개의 테이블을 제외하고는 바 좌석이 대부분이에요. 바텐더들이 분주하게 칵테일을 만드는 아일랜드 바를 ㄷ자 형태의 바 좌석이 둘러싸고 있는 구조예요. 바 자리의 좌석은 총 14개. 그리고 자릿 수만큼 핀조명이 설치되어 있어요. 완성된 칵테일을 놓는 자리에 핀조명을 쏴서 칵테일에 대한 집중도를 높였어요. 마치 테이블이 칵테일의 무대라고 말하는 것 같죠.


ⓒunDer lab


ⓒ시티호퍼스


칵테일을 위해 특별하게 꾸민 무대에 그저 그런 칵테일이 올라올 리가 없어요. 언더 랩은 ‘음주 경험의 실험실(A lab of drinking experience)’이라는 부제를 충실히 따라 실험적 칵테일을 만들어요. 여기에서 실험적 칵테일이란, 단순히 칵테일의 맛만 의미하는 게 아니에요. 칵테일을 경험하는 방법 또한 실험적이에요.


언더 랩은 2020년 7월에 처음 시작해 2년이라는 긴 베타 테스트 기간을 거쳐 2022년 8월에 정식 오픈했어요. 대체 어떤 칵테일을, 어떻게 경험할 수 있길래 2년이라는 긴 시간이 필요했던 걸까요? 언더 랩이 칵테일을 소재로 크리에이티브를 펼쳐내는 실험의 원리를 함께 파헤쳐 봐요.



#1. 경계 없음 - 음식, 차, 칵테일 사이의 경계를 허문다

언더 랩에서는 창의적이고 실험적인 칵테일을 경험할 수 있지만, 칵테일을 분류하는 기준이 있어 이해하기 어렵지 않아요. 오히려 친근하고 호기심을 자극하죠. 고객에게 전달하는 방식마저 아방가르드했다면, 지금과 같은 인기를 누리지는 못했을 거예요.


언더 랩의 칵테일 메뉴는 크게 4가지로 나뉘어요. 먼저 ‘계절 장면(Seasonal Scene)’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계절에 영감을 받아, 지역 재료를 활용해 개발한 칵테일이에요. 프리젠테이션도 계절의 장면을 표현해요. 쌀 베이스의 진, 리치, 코코넛 워터 등을 활용해 거울 같은 바다를 표현한 ‘미러 오션(Mirror Ocean)’, 대나무 잎, 조개 즙, 자스민 등으로 대나무 숲의 산들 바람을 표현한 ‘포레스트 스트림(Forest stream)’ 등이 있어요. 베스트 셀러 중 하나인 ‘트로피칼 페니실린(Tropical Penicillin)’은 아열대 숲의 풍경을 표현한 칵테일인데, 식용 검은 개미로 칵테일을 장식하기도 해요.


미러 오션 ⓒ시티호퍼스


사실 시즈널 씬이 수준급이기는 해도, 계절에 영감을 받아 칵테일로 계절의 장면을 표현하는 건 어느 정도 상상 가능한 영역이에요. 언더 랩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일반인들에게 익숙한 차와 음식, 그리고 칵테일 간의 경계를 무너뜨리며 창의력을 확장해 나가요. 그 결과 대만차를 칵테일에 인퓨징(Infusing)해 만든 ‘티테일(Teatail)’, 취향에 따라 클래식 칵테일과 대만차 조합을 고를 수 있는 ‘티x클래식(Tea x Classic)’, 음식의 재료와 테크닉을 사용해 만든 ‘퀴진 아트(Cuisine art)’가 탄생했죠.


티테일은 그저 찻잎을 우린 차를 칵테일에 넣어 섞는 게 아니에요. 맛과 질감의 조화를 이끌어 내고, 술 안에서 차의 풍미를 극대화하기 위해 ‘진공저온이완법’을 써요. 보통 차를 우릴 때 뜨거운 물을 사용하는데, 일부러 55~65도 정도의 낮은 온도의 술에 찻잎을 우려내 차의 쓴맛을 줄이고 풍미를 끌어 냈어요. 술 맛에 차가 압도되거나, 미각이 부딪히는 일 없이 조화로운 맛의 티 칵테일을 만들죠.


티테일 메뉴 중 하나인 밋 미 인 더 다크 ⓒ시티호퍼스


한편 티x클래식 메뉴는 6가지 칵테일 중 하나, 6가지 차 중 하나를 각각 고르면 바텐더가 두 가지 음료를 섞어 칵테일을 만들어줘요. 칵테일은 진피즈, 김렛, 올드 패션드 등 클래식한 메뉴로 준비되어 있고, 차는 맛차, 우롱차, 철관음차 등이 준비되어 있어요. 차를 잘 모르는 고객도 취향에 맞는 차를 고를 수 있도록 차 메뉴의 맛을 세분화하고, 비슷한 것들끼리 순서대로 나열해 두었어요.


ⓒunDer lab


ⓒ시티호퍼스


마지막 퀴진 아트는 말 그대로 음식에나 쓸 법한 제법과 식재료를 칵테일을 만드는 데 써요. 위트 있는 발상만큼이나 메뉴도 재치가 돋보여요. 숙취를 뜻하는 ‘행오버(Hangover)’를 비틀어 ‘햄오버(Hamover)’라는 칵테일 메뉴를 만들고, 실제로 스페인 숙성 햄과 차가운 피망 수프를 넣어 칵테일을 만들어요. ‘불만 있냐?’는 뜻의 슬랭인 ‘You got beef?’라는 이름의 칵테일에는 실제로 소고기 육포와 사천 고추가 들어가고요. 음식과 칵테일의 경계를 허물어 칵테일에서 경험하지 못할 법한 맛을 구현했어요. 그리고 단순히 특이한 데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칵테일에서 ‘맛있는’ 음식을 느낄 수 있도록 제대로 구현해 신선한 미각적 경험을 선사해요.


퀴진 아트 메뉴 중 하나인 블러디메리 ⓒ시티호퍼스



#2. 서사 있음 - 경계를 넘나드는 코스 메뉴를 하나로 엮는 힘

음식과의 경계를 허문 메뉴가 하나 더 있어요. 그런데 아무 때나 먹을 수 있는 메뉴는 아니고 일요일에만 주문이 가능한 ‘테이스팅 메뉴’예요. 잔 와인, 칵테일, 카나페, 아이스크림 등 술, 음식, 디저트의 영역을 넘나 들며 하나의 ‘코스’를 구성했어요. 마치 코스 요리처럼 구성된 이 메뉴는 가볍고 산뜻한 잔 와인으로 시작해 스몰 디쉬와 칵테일, 차 등을 오가다 아이스크림으로 마무리해요.


이 테이스팅 메뉴는 와인 1잔, 와인 칵테일 1잔, 칵테일 4잔, 무알콜 음료 1잔, 카나페 4가지, 아이스크림 1가지 총 12가지 아이템으로 구성되어 있어요. 음식과 술을 그저 페어링하는 게 아니라 각각의 영역을 오가며 코스를 구성했죠. 이 발상 자체도 창의적이지만, 히든 카드는 따로 있어요. 코스에 ‘서사’를 부여했다는 점이에요. 메뉴 하나 하나에 의미가 있고, 전체적인 코스에 스토리가 있어요.


이 테이스팅 메뉴는 ‘해체:성숙-인류 문명(Deconstruction: Maturity-Human Civilization)’이라는 테마 하에 구성되어 있어요. 다소 철학적이고 추상적인 주제지만, 코스가 하나 하나 진행될 때마다 이 어려운 주제를 직관적으로 풀어낸 그 창의력에 감탄을 하게 되어요.


ⓒunDer lab


코스를 구성하는 12가지 메뉴들은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식생활과 문명이 성숙하는 과정을 표현해요. 언더 랩은 인류 문명이 성숙하는 과정을 원시 시대의 집, 불, 발효, 건조, 흑화, 폭발, 생명 등으로 구체화했어요. 그리고 12가지 각 메뉴들이 이 요소들을 순서대로 프리젠테이션해요.


테이스팅 메뉴는 ‘성숙’을 상징하는 배럴 숙성한 와인 한 잔으로 시작해 인류 문명의 시작을 함축한 ‘집(巢)’ 메뉴를 거쳐 ‘불(火)’ 메뉴로 이어져요. 불의 사용은 인류 문명의 중요한 과정 중 하나로, 주술에서 ‘불’을 상징하는 무화과와 무화과 잎을 활용한 칵테일을 선보여요. 클래식 칵테일인 ‘깁슨(Gibson)’에 불맛 나는 햄과 절인 무화과를 더해, 아담과 이브가 무화과 잎으로 옷을 만들어 수치를 가린 성경의 이야기를 표현한 거예요.


ⓒunDer lab


ⓒunDer lab


이후 쌀을 발효한 사케를 활용한 ‘단맛과 발효(甜與發酵)’ 메뉴가 나오고, ‘공기 건조(風乾)’로 이어지는데 이 메뉴의 프리젠테이션이 기발해요. 칵테일 한 잔과 간단한 핑거 푸드가 함께 제공되는데, 얇게 썬 오리가슴살과 껍질이 공기 중에 널려져 나와요. 시간이 흐르면서 건조되죠. 그런데 이 공기 중에 널려있는 핑거푸드가 마치 스페인 초현실주의 작가 살바도르 달리의 <기억의 영원> 속 시계를 닮아 있어요. 일부러 의도한 바죠.


ⓒunDer lab


ⓒunDer lab


후반부의 ‘폭발(爆炸)’에서는 미래지향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 금속 풍선을 사용해 반전과 평화의 이미지를 전달해요. 깨진 계란처럼 생긴 크루아상 칵테일과 아이스크림 디저트는 폭발 이후의 새로운 삶, 생명을 상징하고요. 밤고구마, 화이트 머스크, 새콤한 감귤 등으로 구성된 산뜻한 풍미는 미래에 대한 기대와 시작을 연상시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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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언더 랩의 테이스팅 메뉴는 단순한 미식 경험을 넘어 한 편의 연극을 보는 것 같아요. 기승전결이 있는 한 편의 서사를 싣고 있으니까요. 그 과정에서 언더 랩만의 깊이와 창의력으로 대체불가한 고객 경험을 선사하는 건 물론이고요.



#3. 기한 있음 - 시즌제로 서사에 긴장감을 준다

테이스팅 메뉴의 서사에 몰입감을 더해 주는 장치가 하나 더 있어요. 바로 고객의 시선이 모이는 곳, 테마를 반영한 프로젝션과 설치 미술이에요. 바텐더의 무대이자 칵테일을 제조하는 아일랜드 바의 천장에는 기하학적 모양의 오브제가 겹겹이 쌓여 있어요. 이는 시간의 흐름과 분자 크기 변화에 대한 상상을 구체화시킨 거예요.


ⓒunDer la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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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일랜드 바 뒤쪽에는 나무가 있고, 불빛이 깜빡여요. 이는 보이는 것처럼 불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문명 속에서 인간이 발견한 빛나는 순간을 뜻하기도 해요. 그 옆에서는 인류 문명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을 표현한 표현한 영상이 재생되고요. 이처럼 언더 랩은 예술의 힘을 빌려 단순한 미각 경험을 넘어 미각, 시각, 청각 등 다양한 감각을 자극하는 ‘몰입형 경험’을 지향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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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티호퍼스


하지만 아무리 몰입감이 좋고, 예술적 볼거리가 있다 하더라도 한 번 왔던 고객이 또 올 확률은 얼마나 될까요? 테이스팅 메뉴의 핵심은 ‘처음’ 경험하는 맛과 프리젠테이션이 주는 카타르시스인데, 이미 한 번 경험한 고객이라면 그 감흥이 떨어질 수 밖에요. 같은 테마, 같은 서사가 반복되다 보면 고객도, 바텐더도 피로도가 높아지겠죠. 


칵테일 실험실을 자처하는 언더 랩도 이를 모를 리 없어요. 게다가 연구와 실험을 거듭 하다 보면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기 마련이죠. 그래서 언더 랩의 테마에는 ‘시즌’이 있어요. SS(Spring Summer), AW(Autumn Winter), WS(Winter Spring) 등으로 기간을 나눠 각 시즌마다 새로운 테마를 선정하고 그에 따라 메뉴, 설치 예술, 조명 디자인 등도 달라져요.


사실 현재 진행 중인 ‘해체:성숙-인류 문명(Deconstruction: Maturity-Human Civilization)’ 테마도 2024년 WS(Winter Spring) 시즌 한정이에요. 벌써 3번째 테마죠. 지난 2023년 SS 시즌에는 ‘숲의 소우주 3.0(Forest microcosm 3.0)’을, 2022년 AW 시즌에는 ‘해양(Ocean)’을 테마로 테이스팅 메뉴를 선보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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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의 소우주 3.0’ 테마에서는 숲 속의 이미지와 재료를 요리와 칵테일로 표현했어요. 전체적인 메뉴의 서사는 사람들이 맛을 따라 땅에서 점차 산으로 올라가는 듯한 경험을 구현했죠. ‘해양’ 시즌에는 바다색을 표현한 파란색 액체를 더한 칵테일과 다시마, 오징어 등 바다의 맛을 구현한 칵테일로 언더 랩 테마의 시작을 알렸어요. 언더 랩은 약 6개월 정도의 시즌제를 통해 질리지 않는 놀라움을 디자인해요. 언더 랩의 새로운 시즌은 주기적으로 언더 랩을 방문할 이유를 만들고 있고요.


ⓒunDer lab



ⓒunDer lab



주량이 1잔인 바텐더, 육감을 디자인하다

크리에이티브로 둘째 가라면 서러울 언더 랩, 누가 만든 걸까요? 언더 랩의 중심에는 창업자이자 바텐더인 ‘페이 리우(Pei Liu, 이하 페이)’가 있어요. 페이는 월드 클래스 바텐딩 대회, 캄파리 칵테일 대회 등 다수의 바텐딩 대회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실력자예요. 그녀는 늘 단정하게 질끈 묶은 머리에 안경을 쓴 모습으로 언더 랩을 지키며 누구보다 진지하고, 또 진심으로 칵테일을 만들고 있어요.


ⓒ시티호퍼스


그런데 페이는 이력이 꽤 독특해요. 실력적으로 뛰어난 바텐더지만 동시에 재주가 많은 종합 예술가예요. 대학교에서 이공계열을 전공했고, 국립 역사 박물관의 ‘산유 감각 체험전’에서는 팀과 함께 아트 디너를 연출하기도 했고요. 전부터 예술과 음식의 경계를 오가며 페이만의 창의적인 감각과 관점을 성장시켜 왔어요.


예술 분야에서 쌓은 페이의 경험은 실험적 컨셉의 언더 랩을 설립하고, 매 시즌마다 새로운 결과물들을 펼쳐낼 수 있는 토대가 되었어요. 칵테일의 ‘맛’을 넘어 오감을 자극하는 ‘경험’을 만들어야 한다는 발상, 그리고 그것을 높은 완성도로 해낼 수 있는 능력에 자양분이 된 셈이죠.


오감은 직관이지만, 사람을 기억하게 만드는 것은 육감, 즉 감정이다. 따라서 훌륭한 맛이란, 사람을 감동시키고, 공감하게 하고, 환경에 침투할 수 있어야 한다.”

- 페이 리우, Mot times


페이는 오감을 넘어 육감, 즉 고객의 감정을 자극해야 한다고 말해요. 감각의 자극을 넘어 감동을 느낀 고객들은 비로소 언더 랩의 메시지를 이해하고, 전율을 느낄 수 있죠. 그제서야 언더 랩의 실험에 공감하고 응원하게 될 거예요.


이토록 창의적이고, 인사이트 있는 바텐더지만 페이에게도 치명적 약점이 하나 있어요. 바로 술을 잘 못 마신다는 점인데요. 바텐더지만 오히려 커피와 차를 좋아하고, 술은 한 잔만 마셔도 금방 취한다고 털어 놓죠. 직업적 특성상 술을 많이 마시고, 많이 접해야 자기만의 칵테일을 개발하는 데 유리하지 않을까요?


하지만 그녀의 이런 단점은 오히려 그녀가 고객을 더 깊이 이해하고, 더 넓은 영역에서 영감을 받는 데에 도움이 되었어요. 술이 약하다 보니 그녀처럼 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 고객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고, 술을 많이 마시지 않고도 만족감을 유지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죠. 여기에 그녀가 좋아하는 커피, 차, 디저트, 요리 등 다른 분야의 재료와 테크닉에 대해서도 연구하며 창의적이면서도 조화로운 맛의 칵테일을 개발할 수 있었고요.


특히 그녀는 셰프가 메뉴를 만드는 과정에 관심이 많다 못해 ‘동경한다’고 말해요. 계절에 맞는 프리젠테이션과 스토리를 완성도 높게 표현하기 위해 고민하는 셰프의 모습을 닮고 싶어하죠. 그래서 그녀는 일본식 오마카세나 디저트와 와인 페어링 등 셰프들의 방식을 적극적으로 차용하고 그녀의 것으로 만들어요.


페이에게 술이 약하다는 건 더 이상 단점이나 한계가 아니에요. 오히려 다른 바텐더들은 보지 못하는, 상상하지 못하는 영역의 술을 구현하는 시발점이 되었죠. 그러니 술이 약한 바텐더라는 표현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려요. 술은 많이 마시지 못해도, 누구보다 강력하게 고객의 감정을 파고드는 술을 만드는 바텐더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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