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소 대신 분양권을 파는 수직 농장

윌로

2022.05.14

1999년, 뉴욕의 컬럼비아 대학교(Columbia University)에서 미래 농업의 판도를 바꾸는 중요한 연구가 시작되었습니다. 공중 환경 보건 교수인 딕슨 데스포미어(Dickson Despommier)가 대학원생들에게 뉴욕 시내의 건물 옥상에서 재배할 수 있는 음식의 양을 계산하는 과제를 낸 것이죠. 딕슨의 예상과 달리 학생들의 결론은 고작 1천 명이 먹을 수 있는 양에 그쳤습니다. 그래서 딕슨은 연구 끝에 옥외 대신 실내에서 수직으로 여러 겹의 레이어를 쌓아 식물을 키우는 방식을 고안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30층 규모의 빌딩 농장이면 5만 명의 먹거리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죠. 이것이 바로 농업의 미래이자 미래 산업 중 하나로 손꼽히는 '수직 농장(Vertical Farm)'의 시초입니다.


딕슨이 처음 떠올렸던 30층짜리 빌딩 농장은 현실화되지 않았지만, 그의 수직 농장 이론에 영감을 받은 수많은 정부와 기업들이 수직 농장 분야에 투자하기 시작했습니다. SF 영화에 등장하는 미래 농장에서 비롯한 상상력이나 단순한 지적 호기심 때문은 아닙니다. 2050년이면 인구가 90억 명 이상으로 늘어나는데, 식량 생산에 사용할 수 있는 토지 대부분이 이미 경작에 사용되고 있다는 위기 의식이 새로운 형태의 농업에 당위성을 부여하고 있죠.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진보이기도 하지만, 생존을 위한 진화이기도 한 셈이에요.


그렇다면 수직 농장은 농업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요? 먼저 수직 농장이라는 개념이 탄생하게 된 배경이자 이유이기도 한 생산성이 극적으로 개선됩니다. 좁은 면적에 집약적으로 재배할 수 있어 토지 활용률이 월등하기 때문이죠. 면적이 넓지 않은 도심에서도 농업이 가능해 도시 소비자들에게 빠르고 안전하게 전달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게다가 완벽하게 통제된 환경에서 채소를 재배하기 때문에 날씨, 계절 등의 외부 환경과 상관없이 연중 내내 경작이 가능해요. 균일하고 월등한 품질은 덤이고요. 병풍해로부터 자유로워 살충제나 제초제 등 유해한 성분의 약도 사용할 필요가 없습니다. 양질의 야채를, 일관된 품질로, 언제든 효율적으로 생산할 수 있으니 수직 농장이 농업의 미래로 주목받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전 세계 수직 농장 시장 가치는 현재 약 55억 달러, 2021년부터 2026년까지 5년 간 연 평균 약 24%의 성장세가 예상된다고 해요. 실제로 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 기술 등이 함께 발달하면서 최적의 생육 환경을 조성해 수직 농장의 생산성이 점점 개선되고 있습니다. 특히 미국에서는 이미 에어로팜(AeroFarms), 프레이트 팜(Freight Farms), 플렌티(Plenty) 등의 대규모 수직 농장들을 필두로 새로운 농업의 시대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2020년, 산 호세(San Jose)에 수직 농장을 오픈한 윌로(Willo)에서 수직 농장의 미래를 엿볼 수 있습니다. 2000년대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거대 수직 농장들 틈에서 후발주자가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Willo



수직 농장의 진화 1. 비용과 생산성을 높이는 효율화

수직 농장은 흙 대신 물을 사용해 식물을 기릅니다. 수직 농장에서 물을 사용하는 방식은 크게 3가지로 나뉘는데요, 하나는 물에 식물을 담가 기르는 '하이드로포닉스(Hydroponics)', 또 하나는 물고기 양식과 하이드로포닉스를 결합한 '아쿠아포닉스(Aquaponics)', 마지막으로 가장 진화한 형태인 '에어로포닉스(Aeroponics)'입니다. '분무경 재배', '공중 재배'라고 부르기도 하는 에어로포닉스는 식물을 공중에서 키우며 뿌리에 물을 분무해 기르는 공법이에요. 하이드로포닉스나 아쿠아포닉스보다 훨씬 더 적은 양의 물로 식물을 재배할 수 있고, 별도의 에너지나 기구 없이도 중력이 자연스럽게 잔여 수분을 빼내어 가장 지속가능한 농법으로 평가받죠. 그래서 윌로를 포함한 많은 수직 농장에서는 에어로포닉스를 활용해 효율성을 극대화합니다.


특히 윌로의 에어로포닉스 시스템은 기존 에어로포닉스보다 업그레이드된 모습을 보여줍니다. 윌로의 내부 데이터에 의하면 보통의 에어로포닉스가 전통적인 농업 대비 물 사용량을 최대 90% 절감하는 데에 반해, 윌로는 99%까지도 아낄 수 있다고 해요. 게다가 AI로 각 식물에 대한 데이터와 인사이트를 쌓아 에너지 소비량을 점점 감소시킵니다. 실내 수직 농장에서는 햇빛 대신 LED 조명으로 식물을 키우기 때문에 막대한 양의 에너지 사용은 에어로포닉스의 최대 단점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윌로는 기술력으로 이런 단점을 최소화하고 있는 것이죠. 예를 들어 각각의 식물에게 최적의 타이밍에 필요한 만큼의 빛을 쪼일 수 있도록 LED 조명의 움직임과 출력량을 자동화시켜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식입니다.


비용 절감 뿐만 아니라 생산성 측면에서도 미래지향적인 수직 농장의 면모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최신 기술을 도입한 수직 농장답게 같은 면적에서 기존의 농장보다 250배 더 많은 식물을 재배할 수 있으며 성장 속도도 2배나 더 빠릅니다. 맞춤형 자동화 시스템과 AI 알고리즘을 구축한 윌로의 실내 농업 기술 덕분인데요. 윌로의 수직 농장은 이산화탄소 농도, 온도, 습도 등 기본적인 데이터를 수집할 뿐만 아니라 식물의 초분광(Hyperspectral) 이미지 데이터까지 수집합니다. 모든 단일 식물에 대해 초분광, 즉 다양한 각도에서 고해상도로 찍은 연속적인 이미지를 수집하고, 이 이미지 데이터를 매일 분자 단위로 모니터링해 개별 식물의 품질을 관리합니다. 다른 실내 농업 시스템에서는 찾아 보기 힘든 윌로만의 차별화된 기술로, 이를 통해 남다른 컴퓨터 기반 학습 및 원격 운영이 가능합니다.



수직 농장의 진화 2. 고객의 니즈를 반영한 맞춤화

수직 농장은 공급자의 입장에서 비용과 생산성을 극적으로 개선하면서 소비자 입장에서도 이점이 많은 농업 방식입니다. 식물 재배 환경을 거의 완벽에 가깝게 컨트롤 할 수 있기 때문에 소비자는 온갖 오염이나 화학 약품으로부터 안전한 식물을 먹을 수 있습니다. 재배 또한 최적의 타이밍에 이루어져 신선도와 맛, 영양이 모두 뛰어난 채소를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죠. 수직 농장의 채소들은 이미 소비자 친화적인 방향으로 개발되어 있습니다.



ⓒwillo_farm 인스타그램


하지만 유통은 어떨까요? 보통의 수직 농장들은 대형 마트에 납품을 합니다. 식물을 재배하는 방식은 혁신했을지 모르지만, 유통 방식은 여전히 전통적인 농업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사실 전통적인 농업이 대형 유통 채널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농수산품은 품질이 일정한 공산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소비자들이 직접 눈으로 보고 사야만 품질을 확인할 수 있기에 오프라인 채널을 통한 소비가 굳어져 있었던 것이죠. 하지만 마치 공산품처럼 채소의 품질을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는 수직 농장이라면 유통에서도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 윌로는 전 세계 최초로 고객 맞춤형 수직 농장을 운영합니다. 바로 구독 모델을 통해서 말이죠. 윌로는 홈페이지를 통해 정기적으로 수직 농장의 신선한 야채를 배송받을 멤버들을 모집합니다. 그런데 단순히 구독자를 모집하는 것이 아니라, 'B.Y.O.F.(Build Your Own Farm)'이라는 이름으로 아직 건설 중인 수직 농장을 분양합니다. 현재 캘리포니아 산 호세(San Jose)의 수직 농장은 분양이 끝났고, 2022년에 문을 열 예정인 애리조나 피닉스(Phoenix)에 위치한 수직 농장을 분양 중입니다. 수직 농장을 분양받은 사람들은 자신이 분양받은 면적만큼의 수직 농장에서 재배된 채소를 받아볼 수 있습니다. 여러 가지 채소 중 원하는 채소를 고를 수도 있고요.



ⓒwillo_farm 인스타그램


2022년에는 고객들이 자신이 분양 받은 수직 농장에서 채소가 자라나는 모습을 타임랩스 이미지로 모니터링할 수 있도록 멤버십 전용 어플리케이션을 개발 중입니다. 각 야채의 영양 정보, 레시피 등을 받아보는 것은 물론이고요. 개인의 건강이나 영양 상태, 취향 등에 대한 데이터가 충분히 쌓이면 개인에 맞춘 채소 추천 기능까지 가능해 질 것입니다.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보다 쉽게 구독을 신청하고, 구독할 채소를 고르고, 심지어 분양받은 수직 농장을 다른 사람과 거래하거나 자선 단체에 기부할 수도 있게 되죠. 보다 정교한 개인화가 가능해질 것입니다.



ⓒwillo_farm 인스타그램


개인 고객을 넘어 기업 고객을 위한 맞춤화도 가능합니다. 지역적 기반을 가진 레스토랑에서는 특정 지역에서 자란 특정 채소가 연중 내내 필요한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수요를 위해 윌로는 기업 고객이 원하는 품종을 그대로 구현합니다. 윌로의 초기 고객 중 하나인 멘톤(Mentone)은 캘리포니아 압토스(Aptos)에 위치한 이탈리안 레스토랑으로, 이탈리아 프라(Pra) 지역에서 나는 특정 바질을 원했어요. 윌로는 바질의 사이즈, 형태, 맛, 질감 등을 테스트하며 멘톤이 원하는 바질을 정확하게 구현했고, 현재는 멘톤의 유일한 바질 공급자가 되었죠. 윌로만의 독자적인 방식으로 개발한 바질이기에 복제가능성도 낮고, 안정적인 생산도 가능합니다. 윌로는 유니크한 상품과 고정 판매처를 얻을 수 있고, 기업 고객 입장에서는 필수 식재료를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어 모두가 윈윈하는 셈입니다.



ⓒmentoneca 인스타그램



수직 농장의 진화 3. 사업성을 확보하는 스케일업

전통적인 농장에서 자란 식물들은 평균 2,000마일을 이동하고, 여러 단계의 유통 과정을 거쳐 식탁 위에 오릅니다. 하지만 현재 윌로는 농장으로부터 20마일 이내로만 주문을 받아 이동하며 수확하자마자 바로 최종 소비자에게 배송되죠. 윌로가 20마일 이내로만 주문을 받는 것은 궁극적으로 전 세계 주요 도시에 윌로의 수직 농장을 짓고 가장 신선하고 깨끗한 채소를 고객에게 배달하고자 하는 목표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최종적인 목표 하에 지금부터 채소의 이동거리를 최소화하는 것이에요.


수직 농장은 토지를 활용한 기존의 농장과 달리 어디에나 쉽게, 작은 면적에도 지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 이론적으로는 인구 밀도가 높은 주요 도심에 농장을 복제할 수 있다는 의미에요. 사업성을 위해서라도 스케일업은 모든 수직 농장 기업에 중요한 이슈입니다. 그럼에도 수직 농장의 확장은 빠르지 않습니다. 바로 높은 초기 투자 비용과 인건비 때문인데요. 초기 투자 비용이야 사업이 진행되면 언젠가는 상쇄될 비용이지만, 인건비의 경우 운영비에서 가장 높은 항목을 차지하는 고정비입니다. 투자를 많이 받아 주머니가 넉넉한 수직 농장 회사도 사정은 마찬가지입니다.


윌로는 자동화된 수직 농장을 지향하며 인건비 수준을 낮추고, 수익성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사업을 확장합니다. 윌로를 운영하는 원포인트원(OnePointOne)은 농업 기술회사로, '서비스로서의 농장(FaaS, Farm-as-a-Service)'을 구현하기 위한 AI, 자동화, 식물 과학 등을 종합적으로 연구해요. 원포인트원이 개발한 '오폴로(Opollo)'는 완벽히 자동화된 수직 농장 시스템으로 수직 농장의 인건비를 크게 낮췄어요. 아직 윌로의 확장 속도가 빠르다고 속단하기는 이르지만, 수직 농업계의 후발주자인만큼 신기술을 활용해 적극적인 확장을 추진 중입니다. 2021년에 첫 번째 수직 농장을 만들고 1년도 채 되지 않은 시점에 두 번째 수직 농장이 문을 열 예정이죠. 빠른 미래에 LA, 샌디에고, 뉴욕 등 미국 주요 도시로의 진출도 계획하고 있어요.



ⓒwillo_farm 인스타그램



함께 만드는 수직 농장의 진화

윌로는 식물을 재배하고 소비하는 방법을 혁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윌로를 운영하는 원포인트원의 꿈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원포인트원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목표 덕분에 윌로의 개인화된 수직 농장이 더욱 타당성을 갖습니다.


'인류를 치유하고 영양을 공급하기 위한 자동화 수직 농장, 식량 재배, 신약 개발, 유전학 발견 간의 글로벌 네트워크(A global network of automated vertical farms, growing the food, developing the medicines and discovering the genetics to nourish and heal humanity)'


원포인트원의 미션입니다. 원포인트원의 공동 창업자인 샘 버트램(Sam Bertram)과 존 버트램(John Bertram)은 향후 몇십 년 뒤 인류가 마주할 식량 문제에 위기 의식을 느끼고, 보다 궁극적인 해결책을 찾고자 원포인트원을 설립했습니다. 기술과 과학이 힘을 합쳐 인류의 건강을 유지할 수 있도록 식물이 가진 자연의 힘을 극대화하는 것이죠. 위기가 다가올 것을 알고도 아무것도 행동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모든 것을 잃게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에요. 실제로 생물약제학, 식물 과학에 대한 연구를 통해 더 진화한 형태의 수직 농장을 구현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수직 농장 산업을 이끌어 온 대표 플레이어들은 어떨까요? 2004년 처음 시작해 수직 농장의 선구자격으로 인정받는 미국의 에어로팜스는 현재 6개의 수직 농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뉴욕 이타카, 뉴저지 뉴어크 등에 대형 상업형 수직 농장을 지어 도심과의 거리를 좁혔죠.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 비전펀드의 손정의 회장, 알파벳의 에릭 슈미트 전 회장 등으로부터 약 3천억 원의 투자를 유치하며 농업 기술 분야에서 가장 큰 규모의 투자를 받은 플렌티는 '신선하고 맛있는 농작물을 월마트 수준의 저렴한 가격으로 공급한다'라는 목표를 갖고 있어요. 현재 중국에까지 진출해 300여 개의 수직 농장을 짓고 있습니다. 플렌티의 수직 농장은 안정적인 환경 제어가 가능한 모듈형 컨테이너형으로 확장에 유리하죠.



ⓒAeroFarms



ⓒPlenty


이 외에도 80 에이커스 팜(80 Acres Farms), 보워리 파밍(Bowery Farming), 미라이(Mirai), 산안바이오(Sananbio) 등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수직 농장 회사들이 농업의 미래를 만들어 가고 있어요. 회사마다 방식이나 방향성은 조금씩 다르지만 궁극적으로 농업을 혁신하고 미래의 식량 위기를 해결한다는 큰 미션은 같죠. 시장 전체가 하나의 선한 목표를 향해 성장하고 있기에 미래의 위기가 오히려 혁신의 기회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Refe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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