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는 편하게 입다 가도, 중요한 미팅이 있거나 업무상 외부 일정이 있는 경우 정장을 잘 갖춰 입고는 해요. TPO에 맞는 옷차림이 예의라는 건, 비즈니스 세계에서 불문율이니까요. 이처럼 일하는 사람에게 패션이란 자신의 태도를 드러내는 역할을 해요. 하지만 어떤 옷들은 TPO에 맞는 것은 물론, '일을 더 잘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줘요. 일하는 사람의 관점에서 원단의 기능을 개발하고, 디자인적인 만족감을 높여 심지어 인재 채용에 도움을 주기도 해요. 패션 피플이 아닌, 워킹 피플을 위한 패션 브랜드들의 이야기를 들어 볼까요? 1️⃣ 테아토라 ‘호모 세덴스 (Homo Sedens)’ 앉아서 생활하는 인간이라는 뜻이에요. 현대인들을 지칭하는 용어죠. 선사시대부터 이어져온 진화 과정과는 상반되게 점점 앉아 있는 시간이 늘어나고 있어요. 의자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고, 점점 더 길어지고 있기 때문에 생긴 말이에요. 실제로 2022년 북미 기준으로 20세에서 75세 연령 성인들은 하루 평균 9.5시간을 앉아서 생활해요. 하루의 3분의 1 이상을 앉아서 보내는 셈이죠. 심지어 성인 4명 중 1명은 하루에 12시간이 넘는 시간을 앉아있을 정도예요. 이정도면 자는 시간보다 앉아있는 시간이 더 긴 셈이에요. 워크웨어 브랜드 ‘테아토라’의 디렉터 카미데 다이스케도 오랜 시간 의자에 앉아 생활하는 호모 세덴스 중 한 명이었어요. 그래서 카미데는 ‘앉아있는 상태’에 집중하기로 했어요. 현대인들을 위한 워크웨어라면 앉아있는 상태에 최적화되어야 한다고 판단했죠. 사무실에 앉아 있는 상태에서 옷을 입고 있는 시간이 제일 길테니까요. ‘키보드 셔츠’, ‘워크 체어 팬츠’, ‘디바이스 코트’ 등 테아토라에서 출시한 제품들은 이름부터 앉아서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옷이라는 것을 알 수 있어요. 그런데 이름은 시작일 뿐, 디테일의 레벨이 감탄을 자아내요. 차마 인지하지 못했던 불편함까지 고려해 옷을 디자인했어요. 책상에 앉아 일하는 현대인이라면 테아토라에 대한 구매욕을 참기 힘들걸요? 2️⃣ 오아시스 라이프스타일 그룹 몸을 많이 쓰는 일을 하는 사람이 신체를 보호하고, 움직임이 편한 특수 목적의 작업복을 입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에요. 문제는 이런 작업복 특유의 투박함이 작업복을 입은 사람에 대한 고정된 인상으로 이어진다는 점이에요. 안 그래도 인력난이 심한데, 작업복을 많이 입는 건설업계에서는 구인난이 더 심각했어요. 작업복에 대한 인식, 그리고 그 복장을 착용하는 사람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다 보니 젊은 인재들의 지원이 더욱 저조했거든요. 이에 한 수도 설비 회사가 작업복에 대한 고정관념을 극복하고자, 새로운 작업복을 디자인했어요. 그런데 사내에 도입하자마자 거래처에서도 이런 작업복을 어디에서 구매할 수 있는지 문의가 쏟아 져요. 이후에는 동일한 원단으로 캐주얼 패션 브랜드까지 론칭했는데, 팝업 스토어를 오픈한 첫 날 목표 매출액의 10배를 달성했어요. 론칭 2주 만에 매장은 물론, 온라인 스토어까지 전 아이템이 매진되는 사태까지 발생했죠. 수도 설비 회사로 시작한 ‘오아시스 라이프스타일 그룹’의 이야기에요. 대체 어떤 작업복, 그리고 어떤 옷을 만들었길래 이런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었을까요? 3️⃣ K-3B J리그 선수 스즈키 무사시는 소문난 패셔니스타예요. 평소 좋아하는 패션 사진, 아들과 코디를 맞춘 사진을 SNS에 자주 올려요. 그런 스즈키 무사시를 앰배서더로 섭외한 브랜드가 있어요. 비즈니스맨을 위한 무경계 정장 브랜드 ‘K-3B’예요. 정장의 세계는 깊고 복잡해요. 소재와 품질, 버튼의 개수, 베스트의 유무, 스타일 등까지 고려해야 할 게 많죠. 하지만 K-3B는 정장을 공부할 필요가 없다고 말해요. 바쁜 비즈니스맨들에게는 코디에 고민하는 시간조차 낭비라고 보는 거예요. 대신, 정장에 넘버링 체계를 도입했어요. 각 옷에 숫자가 적혀 있고 1의 자릿수가 0에 가까울수록 캐주얼, 9에 가까울수록 포멀한 느낌이에요. 그러니 직관적으로 상황에 맞는 코디를 할 수 있는 거예요. K-3B의 매력은 이게 다가 아니에요. 섬유의 재미와 신기술에 대한 도전을 최대치까지 끌어올려 정장의 가능성을 넓혔거든요. 축구선수 스즈키 무사시를 앰배서더로 임명한 것과도 무관하지 않죠. 그렇다면 K-3B는 어떻게 남성 정장씬에 새 바람을 불어넣고 있는 걸까요? 4️⃣ 미니스트리 오브 서플라이 “우주복에서 시작해 지구를 위해 만들어지다(Born from Spacesuits, built for Earth.)” 여기, 우주복을 만드는 소재를 활용해 신소재를 개발한 의류 브랜드가 있어요. 열을 흡수하거나 방출해 자동으로 온도를 조절하는 PCM 소재로 만든 ‘아폴로 셔츠’로 대히트를 쳤던 ‘미니스트리 오브 서플라이’예요. 미니스트리 오브 서플라이는 아폴로 셔츠를 시작으로 주름이 생기지 않는 ‘에어로 셔츠’, 물세탁이 가능한 정장 ‘벨로시티’ 등 진화를 멈추지 않아요. 최근에는 열을 가하면 핏이 달라지는 원피스를 개발하기도 했어요. 이처럼 미니스트리 오브 서플라이는 옷에 ‘과학’을 더했어요. 테크 마니아들을 위한 옷인가 싶지만, 의외로 미니스트리 오브 서플라이의 옷들은 비즈니스 맨들을 위한 ‘워크레저’예요. 사무실에서 입는 비즈니스 캐주얼치고는 기술이 오버 스펙이 아닌가 싶다고요? 하지만 이 브랜드의 과학적 접근법을 알고 나면, 도리어 브랜드의 행보에 공감하게 될 거예요. 이 워크레저에는 세상에 영향력을 만드는 비즈니스 맨들을 응원하는 마음이 담겨 있거든요. 5️⃣ 피그스 간호사, 의사들이 입는 수술복이 힙해질 수 있을까요? 샌프란시스코에는 의료 업계 종사자들 사이에서 그 어떤 패션 브랜드보다 트렌디하게 여겨지는 스크럽 의료복 브랜드가 있어요. 바로 ‘피그스’예요. 피그스는 미국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스타트업 중 하나예요. 2013년 설립돼, 2021년 뉴욕 증권 거래소에 상장했죠. 뉴욕 증권 거래소에 상장한 기업 중 최초로 여성 창업가 두 명이 운영하는 기업이에요. 2023년 연매출은 무려 약 7,500억원. 2023년 12월 31일 기준 활성 고객 수는 260만명에 달해요. 아니, 의료복 시장이라고 하면 틈새시장을 노린 것 같은데 고객이 이렇게 많다고요? 공동 창업자 트리나 스피어는 이렇게 말해요. 이 시장이 틈새라고 생각하는 시선은, 세상에 얼마나 많은 의료진이 있는지 간과하는 거라고요. 피그스는 의료복이라는 생소한 아이템으로 어떻게 잘 나가는 스타트업이자 트렌디한 패션 브랜드가 됐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