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숏폼의 시대, 영상의 시대, 온라인의 시대. 어느 틈에도 서점이, 그것도 오프라인 서점이 설 자리는 없어 보여요. 실제로 2000년대 이후 온라인 서점의 등장으로 인해 국내 오프라인 서점 숫자는 지속적으로 감소해 왔는데요. 앞으로 20년, 30년 후에도 오프라인 서점은 존재할까요? 지금 추세라면 언젠가 오프라인 서점이 없어지는 것도 이상하지 않아요.
하지만 이런 시류에도 어떤 서점들은 새로운 생존 공식을 써 내려가고 있어요. 힌트는 판매하는 상품의 정의를 바꾸는 건데요. 우리가 서점에 가는 건 책을 사기 위한 것만은 아니니까요.
1️⃣ 세이와도 책방
잼을 먹으려면 식빵이 필요해요. 물론 잼만 먹을 수도 있지만, 잼은 식빵에 발라 먹을 때 가치가 더 커지죠. 그래서 보통의 경우 맛있는 잼이 먹고 싶다면 식빵도 함께 사요. 반대로 말하면 식빵을 팔기 위해 식빵 자체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잼에 관심을 갖는 것도 식빵 판매를 늘리는 방법이 될 수 있는 거예요.
이 원리를 영리하게 응용한 책방이 있어요. 오사카에 있는 ‘세이와도 책방’이에요. 책이 팔리지 않는 시대, 세이와도 책방도 책을 어떻게 팔아야 하는지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이때 세이와도 책방은 책 대신 북커버에 주목했죠. 갖고 싶은 북커버를 만들면, 책이 팔릴 거라는 발상이었죠. 그러고는 책을 아이스크림처럼 보이게 만드는 북커버를 선보였어요. 이름하여 ‘아이스캔디’ 시리즈.
이 기발한 북커버는 소셜미디어를 타고 순식간에 일본 전역에 알려졌어요. 세이와도 책방도 유명세를 탔죠. 실제로 점을 찾는 고객의 발길이 늘어났어요. 덩달아 매출도 올라갔고요. 그런데 이 책방, 그 다음 행보가 심상치 않아요. 북커버로 히트를 친 세이와도 책방은 책방의 미래를 위해 또 어떤 일을 벌였을까요?
2️⃣ 분키츠
2018년, 도쿄 롯폰기에 희한한 서점이 등장했어요. ‘분키츠’라는 서점인데요. 이곳에는 입장료를 내야만 들어갈 수 있어요. 당시 입장료는 1,500엔(약 1만 5천원, 현재는 1,650엔). 입장 후에 책을 사면 입장료만큼 할인해주는 것도 아니에요. 입장료는 말 그대로 서점에 들어가기 위해 내는 돈이죠. 그냥 들를 수 있는 서점도 널렸는데, 사람들이 이런 서점에 가냐고요?
분키츠의 기획 의도를 알면, 이곳에 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어요. 분키츠는 “책을 선택하는 시간이야말로 사치가 있는 시간이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입장료를 설정했다.”고 설명해요. 온라인에서 원하는 책을 바로 살 수 있는 시대지만 책을 고르는 시간과 서점에 머무는 것 자체에도 체험으로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마치 뮤지엄이나 미술관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처럼요. 그래서 입장료도 전시회 등과 유사한 가격대로 책정했고요.
경영진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지표는 체류시간의 길이. 회전율이 높아야 매출이 올라갈 수 있으나 방문자들이 얼마나 쾌적하게 시간을 보내고 책과 만날 수 있는가를 더 중요하게 보는 거예요. 취지야 알겠는데, 과연 책이 팔리지 않는 시대에 분키츠의 이러한 실험은 성공적일까요? 분키츠의 지표와 행보를 보면 유의미한 답을 찾은 듯해요.
오늘의 스토리는 글로벌 트렌드 유료 구독 서비스, ‘데일리트렌드’에 실린 콘텐츠예요. 라이프스타일 업계의 트렌드 족보와 같은 데일리 트렌드와 함께 분키츠로 떠나 보아요!
3️⃣ 골즈보로 북스
런던에 있는 ‘골즈보로 북스’는 서명받은 초판을 팔아요. 컨셉은 분명했어요. 하지만 1999년에 오픈한 상대적으로 젊은 서점이 고서적 거리에서 두각을 나타내기는 쉽지 않았어요. 그러던 어느 날, 주목을 받는 계기가 생겼어요.
골즈보로 북스의 주인은 로버트 갤브레이스가 쓴 《쿠쿠스 콜링》이라는 소설의 높은 완성도를 눈여겨봤고, 추천할 만한 책이라고 판단했어요. 그래서 250권의 책에 저자 사인을 받아서 보내달라고 출판사에 요청했죠. 그런데 알고 봤더니 이 소설은 《해리 포터》를 쓴 J.K. 롤링이 별도의 필명으로 쓴 소설로 그녀가 유명세에 기대지 않고 스토리만으로 승부하기 위해 쓴 책이었어요.
진짜 저자가 드러나자 초판 서명본은 가치가 100배 이상 뛰어 1,750파운드(약 263만 원) 정도에 거래가 이루어졌어요. 초판 서명본을 250권이나 보유하고 있으니 대박났을까요? 아니에요. 골즈보로 북스는 폭등하는 시세를 따르지 않고 원래 가격으로 팔았어요.
100배의 수익을 포기했으니 자연스럽게 세간의 이목이 집중됐어요. 골즈보로 북스는 이 기회를 큐레이션이라는 보이지 않던 핵심 경쟁력을 드러내는 계기로 삼은 거예요. 하지만 여전히 의문이 남아요. 서명이 없어도, 초판이 아니어도 책을 큐레이션을 할 수 있는데, 어떤 연유로 유독 저자의 서명과 초판에 초점을 맞추는 걸까요?
4️⃣ 피터 해링턴
‘6만 6,500파운드(약 1억 원)’
‘피터 해링턴’ 매장의 한쪽 코너에 세워둔 유리 진열장 안에 있는 9권의 헌책 가격을 더한 값이에요. 1권 당 평균 1,000만 원이 넘는 셈이죠. 특별히 비싼 책만 모아둔 것이긴 하지만, 피터 해링턴에서 판매하는 모든 헌책들은 기본적으로 비싸요. 눈길을 돌려 어느 책장을 보아도 눈에 들어오는 영역에 있는 헌책들의 가격을 더해보면 1,000만 원을 가볍게 넘어요. 정가보다 싼 책은 한 권도 없죠.
피터 해링턴이 저명한 저자의 초판본이나 사인본, 그리고 희소성 있는 헌책들만 선별해서 팔기 때문에 가능한 가격 설정이에요. 이렇게나 비싼 헌책을 누가 사나 싶지만 피터 해링턴은 2021년 기준으로 3,200만 파운드(약 480억 원)의 매출을 올렸어요. 2015년 매출이 2,000만 파운드(약 300억 원)이었으니 연평균 8.15%씩 성장한 셈이에요.
피터 해링턴에서 벌어지는 비현실적인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이를 가능하게 하는 피터 해링턴의 영리한 전략을 하나씩 살펴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