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트레디션’이라는 신조어가 있어요. 핫하고 트렌디하다는 의미인 ‘힙(Hip)’과 전통을 의미하는 ‘트래디션(Tradition)’이 합쳐진 말로, 전통문화를 자기들만의 놀이 문화로 재해석해 즐기고 소비하는 트렌드를 뜻하는 말이에요. 특히 MZ세대 사이에서 한복을 입고 고궁을 방문한다든지, 전통 시장을 간다든지, 카페에서 전통 디저트를 먹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힙트레디션이 발현되고 있죠. 그런데 이 힙트레디션은 한 때 지나가는 유행이 아니라 하나의 소비 패턴이에요. 힙트레디션을 더욱 적극적으로 즐기고 소비할 수 있도록 돕는 브랜드들 덕분이죠. 이런 브랜드들은 패션, F&B 등의 분야에서 오래된 것 혹은 전통을 요즘의 문법에 맞게 재해석해 자기만의 힙을 만들어요. 특히 홍콩은 과거와 현재, 서양과 동양이 한 데 뒤섞인 도시로, 힙트레디션이 브랜드 컨셉으로 발현되기에 제격인 곳으로, <퇴사준비생의 홍콩>에서도 대표적인 사례들을 발견할 수 있어요. 오늘은 홍콩의 힙트레디션을 이끄는 브랜드들을 만나러 가 볼까요? 1️⃣ 킨스맨 영화 <화양연화> 보셨나요? ‘꽃처럼 아름답던 시절’을 뜻하는 <화양연화>는 지난 2000년 개봉 후 여전히 많은 이들의 인생 영화로 꼽히죠. 2016년엔 BBC가 <화양연화>를 21세기 최고의 영화 100편 중 2위로 꼽았고, 2023년엔 타임지가 지난 100년간 최고의 영화 100편 중 한 편으로 <화양연화>를 소개했어요. 팬들이 이 영화를 이토록 좋아하는 데에는 저마다의 이유가 있겠지만, <화양연화>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게 있어요. 여운을 남기는 특유의 분위기와 영상미죠. <화양연화>를 생각하면, 양조위와 장만옥의 눈빛, 어딘가 물기를 머금은 공기, 미묘한 시선과 구도, 배경 음악, 빗소리 같은 게 절로 떠올라요. 그런데 2023년 겨울, 홍콩 소호 지역에 <화양연화>의 이미지를 모티브로 하는 신상 바가 문을 열었어요. 영화 속 미감을 절묘하게 구현해 현대 홍콩인들에게 고된 하루 끝 술 한 잔을 기울일 곳이자, 60년대 홍콩을 향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공간이자, 홍콩의 전통 주류를 재발견하는 칵테일 바로 인기를 끌고 있는 곳이에요. 2️⃣ 매그놀리아 랩 새해엔 신년 계획이 빠질 수 없죠. 이때 다이어트만큼이나 자주 등장하는 목표가 하나 있어요. 바로 ‘금주’ 혹은 ‘절주’예요. 그만큼 술은 ‘만병의 근원’이자, ‘흑역사의 원인’으로 여겨지곤 하는데요. 사실 술은 과거에 사람을 취하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을 치료하기 위해 등장했어요. ‘약주(藥酒)’가 어른들이 술을 마시기 위해 만들어낸 말이 아니라, 진짜 약이었던 거죠. 홍콩에는 이런 약주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젊은 세대들의 환영을 받는 브랜드가 있어요. 바로 ‘매그놀리아 랩’이에요. 매그놀리아 랩은 창업자의 캐릭터부터 브랜드 컨셉과 부합하는데요. 칵테일 전문가인 믹솔로지스트와 한의사가 공동 창업한 브랜드이기 때문이에요. 약재를 바탕으로 풍미가 깊은 리큐어를 만들어 인기를 끌고 있는 매그놀리아 랩, 이들이 제안하는 오늘날의 약주는 어떤 맛일까요? 3️⃣ 클롯 방 안 가득 스니커즈를 모아두고 예술품처럼 아끼는 ‘스니커즈 덕후’, 한 번쯤은 본 적 있을 거예요. 스니커즈 덕후를 보면서 왜 신지도 않을 운동화를 모으는지 궁금해했던 적도 있을 거고요. 그들에게도 다 이유가 있어요. 그들에게 스니커즈란 단순한 신발이 아니라, 개인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수단이에요. 스니커즈 하나에 한 사람의 세계가 온전히 담겨 있는 셈이죠. 수집하고 싶은 사람은 많은데 수량은 정해져 있어요. 브랜드에서 희소성을 위해 한정된 수량만을 풀기 때문이죠. 그래서 인기가 좋은 스니커즈는 몇십 만원대에서 몇백 만원대까지 치솟기도 해요. 이러한 스니커즈는 주로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에서 내놓는데요. 스트리트 패션은 주류 문화에 대한 반발에서 시작해 지역적, 사회적 맥락과 함께 성장해 왔어요. 뉴욕 브롱스 지역의 경제적 불평등에서 힙합 문화가 시작하고, 캘리포니아 서핑 커뮤니티에서 스케이트 보드 문화가 시작된 것처럼요. 그런데 기존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와 완전히 다른 정체성을 내세우며 등장한 홍콩의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가 있어요. 설립하자마자 나이키와 콜라보를 하기도 하고, 스트리트 패션의 불모지였던 홍콩을 패션 피플의 성지로 바꿔놓을 정도로 영향력도 있고요. ‘클롯(CLOT)’이에요. 4️⃣ 초우타이푹 중국에 LVMH, 샤넬, 에르메스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럭셔리 주얼리 회사가 있어요. 딜로이트(Deloitte)의 <글로벌 파워 오브 럭셔리 굿즈 2023>에서 매출 규모로 7위를 차지한 ‘초우타이푹(Chow Tai Fook)’이에요. 8위의 에르메스, 9위의 롤렉스보다 높은 순위에 있죠. 홍콩에 본사를 둔 초우타이푹의 2023년 연 매출은 약 946억8400만 홍콩달러예요. 한화로 환산하면 약 16조5,498억원이죠. 2023년 불가리, 티파니, 쇼메 등을 보유한 LVMH 그룹의 주얼리 및 시계 부문 총 매출액인 10,902백만 유로(약 16조1,945억원)보다 더 높은 수준이에요. 하나의 주얼리 브랜드로 이룬 성과로 보면 어마어마하죠. 초우타이푹은 한국, 일본, 미국 등에도 매장이 있지만, 대부분의 매출이 중국에서 발생해요. 중국에만 무려 7천 개가 넘는 매장이 있거든요. 그런데 한 가지 주목할 점은, MZ세대 사이에서의 인기라는 거예요. 1929년에 설립된 오래된 브랜드임에도, 심지어 ‘금’이라는 올드한 소재로 보석을 만드는 데도 말이죠. 초우타이푹은 과연 어떻게 늙지 않는 금 브랜드를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