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이 변하면 업의 본질도 변하기 마련이에요. 리테일, 그 중에서도 백화점도 예외는 아니죠. 과거 백화점은 '임대업'이었어요. 좋은 입지에 큰 규모로 건물을 짓고, 그 안의 공간을 브랜드들에 임대해 주어 임대료를 벌었으니까요. 수많은 제품들을 한 자리에서 구매할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았던 과거에는 공간을 임대해 주는 것만으로도 백화점이 돈을 벌 수 있었죠. 하지만 대형 오프라인 채널은 물론, 집에서도 온라인으로 백화점보다 훨씬 많은 제품들을 구경하고 구매할 수 있는 지금, 백화점 업의 본질은 임대업 이상이에요. 임대업은 거들 뿐, 어떻게 사람들을 백화점으로 모으느냐가 관건이 되었죠. 여기에서 힘을 발휘하는 게 바로 콘텐츠와 고객 경험이에요. 사람들의 이목을 이끄는 '미디어'로서의 백화점이 각광받기 시작한 거죠. 이제 백화점들은 미디어가 되기 위해 타깃을 명확하게 설정하고, 그에 맞는 고객 경험을 디자인하고 있어요. 선진적인 리테일의 도시, 도쿄, 홍콩, 방콕에서 만난 아이코닉한 백화점들은 어떤 고객들을 타깃하고, 어떤 경험을 디자인하고 있을까요? 1️⃣ 엠 디스트릭트 건물에도 사람처럼 성격이 있다면 어떨까요? 태국에서 대형 쇼핑몰을 개발, 운영하는 ‘더 몰 그룹(The Mall Group)’의 수팔락 회장은 자신이 지은 쇼핑몰들을 사람처럼 비유해요. ‘엠포리움(Emporium)은 매력적이고 세련된 파리지앵, 더 몰(The Mall)은 유쾌하고 마음이 따뜻한 태국인, 시암 파라곤(Siam Paragon)은 똑똑하고 강인한 뉴요커’로 표현하는 식이죠. 구색을 맞추는 과정에서 우연히 탄생한 비유가 아니에요. 기존과는 다른 쇼핑몰을 만들어서 쇼핑객들에게 매번 새로운 즐거움을 제공하고자 했던 노력의 결과죠. 그래서 더 몰 그룹이 만든 쇼핑몰은 사람처럼 스타일도, 개성도 다 달라요. 최근에 더 몰 그룹은 ‘엠 디스트릭트(Em District)’라는 이름의 대규모 쇼핑 복합 단지를 완성했어요. 엠 디스트릭트는 엠포리움, 엠쿼티어, 엠스피어라는 뚜렷한 개성을 지닌 3곳의 쇼핑몰로 구성되어 있죠. 과연 이 쇼핑몰의 성격은 서로 얼마나 다른지, 다 함께 모이면 어떤 단지가 만들어지는지 직접 가서 만나볼까요? 2️⃣ 아이콘시암 방콕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해외 여행객들이 방문하는 도시예요. 그만큼 놀거리도, 볼거리도 많지만 그 틈을 비집고 방콕의 아이콘으로 떠오르는 곳이 있어요. 바로 방콕 최대 규모의 백화점, ‘아이콘시암’이에요. 백화점이 도시의 아이콘이라니, 어떻게 된 일일까요? 아이콘시암은 ‘태국의 최고만을 선보인다’는 목표 아래 태국의 최고 선수들이 모여 만든 합작품이에요. 태국의 선도적 리테일 그룹 ‘시암 피왓’, 삼성에 비유되는 태국의 최대 대기업 ‘차로엔 폭판드 그룹’, 태국의 국가대표급 부동산 개발업체 ‘MQDC’가 합작 투자해 만든 백화점이거든요. 간단한 설명만으로도 어마어마한 아우라를 가진 회사들이 만든 백화점이에요. 총 투자 규모는 무려 500억 바트(약 1조 9천억원)으로, 태국 내 민간 부문 투자 중 최대 규모로 알려져 있어요. 그런데 이런 무시 못할 배경도, 규모도 거들 뿐, 아이콘시암의 진짜 경쟁력은 따로 있어요. 바로 ‘태국의 정체성’을 파는 ‘월드 클래스’의 백화점이 되었다는 거예요. 백화점 곳곳에서 태국만의 문화를 찾아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수준의 백화점이 되고자 했어요. 방콕의 한강, 짜오프라야 강변에서 방콕에서만 가능한 세계 유일의 백화점이 되었죠. 방콕의 아이콘이자 리테일의 미래로 함께 떠나볼까요? 3️⃣ K11 면적 대비 가장 많은 백화점이 있는 나라는 어디일까요? 홍콩과 싱가포르가 늘 1,2위를 다투는데요. 국토 면적은 작은데 인구 밀도는 높은 상황에다가 소비 중심의 경제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에요. 특히 글로벌 수준의 쇼핑의 메카로 불리는 홍콩에는 소고, 하비 니콜스, 이온 등 외국계 백화점들이 많이 진출해 있어요. 그 틈에 남다른 존재감으로 자리 잡고 있는 홍콩의 백화점 브랜드가 있는데요. 바로 ‘K11’이에요. 지점에 따라 ‘K11 뮤제아’, ‘K11 아트 몰’ 등 이름이 달라져요. K11의 가장 큰 특징은 ‘문화’와 ‘예술’을 리테일에 접목시켰다는 점이에요. 단순히 백화점 안에 예술 작품을 전시하는 것을 넘어 스스로의 영역을 확장하며 예술과 삶 사이의 간격을 좁혀 나가고 있죠. 그렇다면 K11은 리테일 격전지에서 ‘아트 리테일’, 혹은 ‘리테일테인먼트’로 어떻게 차별화하고 있을까요? 4️⃣ 하라카도 2024년 4월, Z세대 문화의 발상지 도쿄 하라주쿠에 ‘하라카도’라는 쇼핑몰이 문을 열었어요. 위치가 위치인만큼 Z세대의 젊은 고객들을 타깃하고 있어요. 그런데 매장 구성이 예상과 달라요. 타깃 고객들이 좋아할 만한 브랜드의 매장들로 쇼핑몰이 가득 차 있을 것 같았는데, 이런 상상을 보기 좋게 벗어났거든요. 일본 기성 세대의 전유물로 여겨지는 대중 목욕탕부터 무료 잡지 도서관, 영상을 찍거나 팟캐스트를 녹음할 수 있는 스튜디오 등이 입점해 있어요. 심지어 4층에는 매장 하나 없이 전 층을 비워 실내 녹지 공간까지 있어요. 하라카도는 왜 이렇게 쇼핑과 거리가 멀어 보이는 공간을 만든 것일까요? 하라카도는 제품을 파는 쇼핑몰을 넘어 하라주쿠의 지역적 맥락을 부활시키고자 하는 목적이 있기 때문인데요. 하라주쿠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한 하라카도는 어떻게 Z세대를 겨냥하고 있을까요? 5️⃣ 도큐 플라자 시부야 최근 들어 많은 기업들이 주목하는 소비자 집단이 있어요. 바로 시니어예요. 고령화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일본에서는 이미 시니어를 대상으로 한 다양한 비즈니스들이 생겨나고 있는데요. 시니어를 타깃한 다양한 시도 중에서 눈에 띄는 곳이 있어요. 바로 ‘도큐 플라자 시부야’예요. 도큐 플라자 시부야는 40대 이상의 ‘젊은 시니어’를 핵심 고객으로 삼았어요. MZ세대가 모여드는 공간이 아니라 ‘어른들을 위한’ 복합 문화 공간을 자처한 거예요. 젊은 시니어는 20대에 비틀즈를 듣고 맥도날드를 트렌드로 즐겼던 세대이니, 그들이 다시 젊은 감각을 느낄 수 있도록 공간을 구성한 건 물론이고 트렌디한 브랜드로 매장을 채웠죠. 그뿐 아니라 젊은 시절을 시부야에서 보낸 시니어들을 위해 시니어가 과거를 추억할 수 있는 공간과 100세 시대의 중간에 온 만큼 남은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공간도 만들었는데요. 도큐 플라자 시부야가 어떤 식으로 젊은 시니어를 불러들이고 있는지 살펴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