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트리트 패션'하면 빼 놓을 수 없는 나라가 일본이에요. 미국 뉴욕의 '슈프림'과 캘리포니아의 '스투시'가 스트리트 패션이라는 장르를 선도했다면,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들의 위상을 높인 건 일본 패션 브랜드들의 공이 커요. 공장에서 대량 생산되던 스트리트 패션에 특정 제작 기술과 디테일을 더해 전체적인 레벨을 업그레이드시켰거든요.
그 과정에서 아메리칸 캐주얼을 재해석한 '아메카지'와 같은 일본만의 스타일이 탄생하기도 했어요. 이제 아메카지 스타일의 일본 브랜드들은 오히려 미국으로 역수출되기도 하며 스트리트 패션의 전성기를 이끌었죠. 높은 품질과 빈티지 복각 디자인으로 유명한 '리얼 맥코이'가 대표적인 예죠.
리얼 맥코이를 포함해 베이프, 휴먼 메이드, 비즈빔, 에비수 등 일본을 대표하는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들은 언제나 전성기예요. 이 브랜드들을 쇼핑하러 일본으로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도 심심치 않게 보이죠. 그런데 이 패션 브랜드들의 멋은 비단 기술에서 나오는 게 아니에요. 브랜드를 시작하고 성장시킨 창업자의 철학과 브랜드 스토리가 큰 역할을 하거든요. 오늘은 일본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들의 이야기를 통해 복제 불가한 멋을 만들어 낸 비결을 함께 알아 볼까요?
1️⃣ 에비수
어떤 모방은 환영을 받습니다. 오리지널은 사라졌지만 팬층이 여전할 때 등장한 모방이요. 대표적인 예를 일본의 청바지 업계에서 찾아볼 수 있어요. 청바지는 원래 미국에서 만들어진 바지예요. 최초의 청바지 브랜드인 ‘리바이스(Levi’s)’도 미국 브랜드죠.
특히 1960년대 리바이스의 샐비지(Selvedge) 데님은 일본 젊은이들 사이에서 인기였어요. 거칠고 빳빳한 원단 탓에 입고 다닐 수록 닳아가며 유니크한 스타일을 완성했거든요.
그런데 1970년대부터 청바지 대량 생산 시대가 열리며 샐비지 데님은 자취를 감췄어요. 더 빠르고 대량 생산이 가능한 신형 방직기가 등장하며 샐비지 데님 원단이 더 이상 생산되지 않았거든요.
이에 리바이스 샐비지 데님을 모방해 등장한 것이 바로 일본 청바지 브랜드 ‘에비수(Evisu)’예요. 에비수는 과거의 샐비지 데님을 완벽하게 구현하면서도 카피캣으로만 남지 않았어요. 오히려 또 하나의 오리지널이 되었죠. 오리지널을 모방해 또 하나의 오리지널이 된 에비수, 그 비법이 궁금하다고요?
2️⃣ 리얼 맥코이
이 정도면 미친 거예요. 영화 속 주인공에 빠져, 그가 입고 나온 옷을 그대로 복각했어요. 취미로 복각한 정도가 아니에요. 아예 복각하는 브랜드를 만들었죠. 또한 영화 속 제품을 만들던 회사의 판권까지 사서 오리지널리티를 확보했어요. 심지어는 미국 영화사의 의상 라이센스까지 취득해 버려요. 스티브 맥퀸이 주연으로 출연한 영화 <대탈주>를 본 ‘오카모토 히로시’가 만든 ‘리얼 맥코이’ 이야기예요.
2차 세계 대전의 패전국이 된 후, 일본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미국 문화를 동경하는 바람이 불었어요. 그래서 미국에서 건너온 ‘아메리칸 캐주얼’ 패션은 일본에서 점점 더 인기를 끌었죠. 일본인들은 이 새로운 스타일인 아메리칸 캐주얼을, 발음하기 편하게 바꿔 ‘아메카지’로 부르기 시작했어요. 아메카지에는 다양한 장르가 있는데요. 유독 두드러지는 장르가 ‘복각’ 브랜드예요. 오리지널을 그대로 재현하는 거죠.
리얼 맥코이는 이러한 복각 브랜드의 선구자예요. 아메카지 패션 붐을 타고 인기를 끌었죠. 리얼 맥코이를 만든 히로시는 멋에 대한 감각은 있었지만 경영에 대한 감각은 없어 얼마 지나지 않아 망했죠. 하지만 리얼 맥코이는 지금까지도 최고의 복각 브랜드로 남아 있어요. 어떻게 된 일일까요? 이 사연에 일본의 복각 브랜드의 역사가 담겨 있어요.
3️⃣ 비즈빔
‘미래 빈티지(Future Vintage)’
상반되는 두 단어를 함께 썼어요. 빈티지는 오래된 물건인데 여기에 미래를 붙이다니, 무슨 뜻일까요? 남의 손을 타면서 이미 멋이 난 오래된 패션을 사는 것이 빈티지한 라이프스타일을 즐기는 거예요. 반면 미래 빈티지는 입는 사람과 함께 ‘잘 낡을 수 있는’ 옷을 만들고, 직접 자신만의 빈티지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의미해요.
미래와 빈티지의 조합이 ‘비즈빔’의 철학을 가장 함축적으로 나타내는 말이에요. 이러한 지향점을 가진 비즈빔을 이해하기 위해선 이 브랜드의 수장이자 디자이너인 ‘나카무라 히로키’를 알아야 해요. 1971년생인 그는 15살이 되던 해, 부모님의 권유로 유학을 가게 되었는데요. 그가 스스로 고른 곳은 다름 아닌 ‘알래스카’예요. 지금에서도 가기 어려운 곳을, 1980년대 중반에 15살의 학생이 선택한 거예요.
그런데 이 결정이 그의 인생을 뒤바꿔 놓았죠. 비즈빔의 출발점이 되기도 했고요. 도대체 알래스카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요?
4️⃣ 베이프 • 휴먼메이드
한 때 패션 피플들이 도쿄에 가면 꼭 찾는 스트릿 패션 브랜드가 있었어요. ‘목욕하는 유인원(A Bathing Ape)’이라는 뜻을 가진 ‘베이프(BAPE)’예요. 한정판 전략과 럭셔리 브랜드와의 콜라보로 오픈런을 해야만 구할 수 있는 인기 절정의 브랜드였어요.
그런데 베이프의 소량 판매 정책은 오히려 독이 되었어요. 베이프의 인기는 치솟는데 공급이 늘어나지 않으니, 중국발 짝퉁들이 판을 치기 시작했어요. 정교한 짝퉁의 등장 탓에 베이프의 인기는 시들해졌고, 판매량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어요.
베이프는 이렇게 끝이었을까요? 목욕하는 유인원은 다음 진화를 준비해요. 베이프의 창시자, ‘니고(NIGO)’가 베이프를 홍콩 의류 회사에 매각 후 두 번째 브랜드를 런칭했거든요.
이름은 ‘휴먼메이드(Human Made)’. 2023년 가장 핫한 패션 브랜드 중 하나죠. 그러고보니 이름도 유인원에서 인간으로 진화했어요. 그런데 브랜드 이름만 달라진 게 아니예요. 사업적으로도 진화했죠. 따라하고 싶은 브랜드를 넘어, 따라할 수 없는 브랜드가 되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