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왓디-캅”
두 손을 모아 살짝 고개를 숙이며 태국의 인사를 주고 받으면 마음이 따뜻해져요. 미소로 이방인을 맞이하는 태국 사람들의 진심이 전달되는 것 같거든요.
이러한 태국식 ‘우아한 환대(Gracious hospitality)’를 세계에 널리 알리려는 그룹이 있어요. 태국의 호스피탈리티 산업의 선구자로 통하는 두짓 인터내셔널(Dusit International)이에요. 두짓은 1948년에 방콕 로컬 브랜드에서 시작해 태국의 럭셔리 호텔 스탠다드를 끌어올렸고, 현재는 4개 대륙, 16개 국가에 진출한 글로벌 프랜차이즈로 성장했어요.
이러한 두짓 인터내셔널이 2019년에 별안간, 50년 가까이 고품격 서비스와 헤리티지를 이어오던 상징적인 호텔 ‘두짓 타니 방콕’의 문을 닫기로 했어요. 2023년 컴백을 예고하며 약 4년간의 재정비 시간을 가지기로 한 거예요.
그렇다면 방콕에선 한동안 우아한 환대를 경험할 수 없는 걸까요? 그렇지 않아요. 호텔 없이도 우아한 환대를 이어갈 수 있는 ‘우와’한 방법을 마련했거든요.
두짓 타니 미리보기
• 호텔 건물 없이도 헤리티지를 이어나간다
• 세대 교체가 아니라 세대 포용이다
• 인력을 채용하기 어렵다면 양성한다
• 스스로를 파괴하면서 혁신을 거듭한다는 것
4개월이 아니라 무려 4년 동안 호텔의 문을 닫고도 공백기가 무색한 호텔이 있어요. 방콕의 ‘두짓 타니(Dusit Thani)’ 호텔이에요. 1970년에 개장한 두짓 타니 방콕은 2023년 호텔을 재개장하기 위해 2019년부터 문을 닫았어요. 대부분 호텔이 리노베이션을 하더라도 전면적으로 영업을 중지하는 대신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제한적으로 호텔을 운영하거나 단기간에 공사를 끝내는 것과 대조적이에요.
지금은 철거된 두짓 타니 방콕의 전경이에요. © Dusit International 2017
호텔의 문을 닫으면 호텔이 잊혀질 리스크는 물론, 호텔에서 일하던 직원들도 일자리를 잃어요. 그래서 두짓 타니 방콕은 기존 고용 인력을 그대로 유지한 채 사람들에게 잊혀지지 않는 방법을 마련했어요. 호텔의 핵심 기능과 서비스만 분리해 사람들에게 찾아가는 거예요. 물론 4년 후 호텔이 완공되면 이들은 모두 새단장한 호텔로 복귀할 예정이고요.
두짓 온디맨드와 반 두짓 타니(Baan Dusit Thani)는 이러한 배경에서 탄생했어요. 두짓 온디맨드는 두짓 타니 호텔의 하우스 키핑과 엔지니어링 인력을 방콕 내 다른 콘도미니엄, 레지던스 등에 제공하는 서비스예요. 5성급 호텔에서 제공하는 특급 서비스를 외부에 판매함으로써 두짓의 퀄리티 높은 서비스를 더 많은 사람이 경험할 수 있게 한 거죠.
한편 반 두짓 타니는 두짓 타니 방콕 호텔의 레스토랑과 카페, 컨벤션 기능을 수행하는 공간이에요. 기존 두짓 타니 방콕 건물에서 이 부대시설만 운영하는 건 아니에요. 두짓 타니 방콕 건물은 이미 철거되어 사라졌거든요. 그렇다면 반 두짓 타니는 어떻게 두짓 타니 방콕의 브랜드를 지키고 있는 것일까요?
호텔 건물 없이도 헤리티지를 이어나간다
50년 넘는 시간동안 방콕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제 2의 집이 되어준 두짓 타니 방콕은 원래 호텔 위치 근처에 진짜 ‘집'을 빌렸어요. 그리고 이 집에 ‘집'이란 뜻을 가진 태국어 반(Baan)을 더해 ‘반 두짓 타니(Baan Dusit Thani)’라고 이름 붙였죠.
반 두짓 타니의 입구예요. ⓒ시티호퍼스
100여 년 가까이 자리를 지킨 가옥과 주변 부지에 두짓 타니의 시그니처 레스토랑과 칵테일 바, 카페, 연회장을 그대로 옮겨왔어요. 잘 가꾼 푸른 정원을 중심으로 태국 전통 건축 양식으로 지어진 건물들이 분산되어 자리잡고 있어요. 정원 한 켠에는 연잎으로 뒤덮인 연못이 조성되어 있고, 태국의 민간설화에 나오는 역동적인 크라이 통(Krai Thong) 청동 조각상도 세워져 있죠. 상업 시설이라는 느낌보단 태국 부호의 저택에 초대받은 느낌이에요.
반 두짓 타니의 근사한 정원은 빌딩 숲이 빼곡한 방콕 도심과 대조적인 분위기를 자아내요. ⓒ시티호퍼스
반 두짓 타니는 크게 5개 건물로 이루어져 있어요. ⓒ시티호퍼스
반 두짓 타니는 두짓 타니 방콕의 시그니처 레스토랑인 ‘벤자롱(Benjarong)’, ‘티엔 드엉(Thien Duong)’, 카페와 바를 겸하고 있는 ‘두짓 고메(Dusit Gourmet)’, 풀사이드 바인 ‘가든 바(Garden Bar)’, 연회장 역할을 하는 ‘댄싱 홀(Dancing hall)’ 등으로 구성되어 있어요.
카페와 바를 겸하는 두짓 고메 매장이에요. ⓒ시티호퍼스
메인 건물을 차지하고 있는 벤자롱은 태국 왕실의 레시피를 기반으로 정통 태국 요리를 선보여요. 인상적인 것은 메뉴의 가격이에요. 5성급 호텔의 우수한 서비스와 메뉴를 그대로 유지하고, 같은 셰프가 요리하는데도 호텔 레스토랑 대비 가격을 20~30% 낮췄어요. 게다가 테이크 아웃 및 배달 서비스도 제공해요. 호텔 밖으로 나왔으니, 호텔 투숙객뿐만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이 두짓 타니의 서비스를 즐길 수 있도록 한 것이죠.
반 두짓 타니의 ‘벤자롱’ 건물 전경이에요. ⓒ김마야
레스토랑 초입에 고대 왕실에서 쓰이는 고급 도자기 ‘벤자롱’을 담은 그림이 걸려 있어요. ⓒ시티호퍼스
호텔에서 먹는 그 맛 그대로 즐길 수 있어요. ⓒ시티호퍼스
게다가 벤자롱은 두짓 타니 호텔의 박물관 역할을 겸해요. 벤자롱 내부엔 태국식 전통 자개장부터 식기류, 예술 작품들이 곳곳에 놓여 있어요. 실제로 두짓 타니를 장식하던 예술 작품과 가구의 일부를 그대로 들고 와 오브제로 활용했죠. 50년 넘게 호텔의 역사를 함께한 유물을 창고에 보관하는 대신, 인테리어 장식으로 활용해 두짓 타니를 추억할 수 있도록 한 거예요.
두짓 타니 방콕과 역사를 함께한 가구들이에요. ⓒ시티호퍼스
두짓 타니 방콕을 추억할 수 있는 요소가 레스토랑 곳곳에 배치되어 있어요. ⓒ시티호퍼스
호텔의 주요 시설 중 결혼식이나 연회, 각종 워크숍 등을 진행하는 컨벤션 홀 역시 빠질 수 없어요. 반 두짓 타니의 널찍한 정원, 가든 바, 댄싱 홀은 결혼식, 프라이빗 파티, 워크숍 이벤트 장소로 활용돼요. 규모는 작아졌어도, 기존 호텔의 연회장과는 다른 분위기와 매력을 가지고 있어요.
풀 파티 대관으로도 가능한 골든 풀사이드 바예요. ©Baan Dusit Thani
두짓은 객실을 제외한 호텔의 핵심 시설인 식음료 및 컨벤션 공간을 재배치하며 호텔에서의 경험을 계속해서 제공하고 있어요. 기존 고객들에게는 두짓 타니의 추억을 상기하는 공간으로, 신규 고객들에게는 두짓 타니의 헤리티지를 경험하는 공간이죠. 호텔 건물은 철거했어도 잊혀지기는 커녕, 새롭게 탄생할 두짓 타니 방콕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는 영리한 전략이에요.
세대 교체가 아니라 세대 포용이다
두짓 타니 방콕을 소유한 두짓 인터내셔널(Dusit International)은 반 두짓 타니로 두짓 타니 방콕의 명맥을 이어가는 한편, 변화하는 호스피탈리티 업계에 대응하는 것도 놓치지 않아요.
부티크 호텔의 창시자이자 호스피탈리티 업계의 거장인 이안 슈레거(Ian Schrager)는 럭셔리는 더 이상 특권 계층의 전유물이 아니라고 말해요. ‘특별한 기분(feel elevated)’을 경험하게 만들어주는 서비스와 스타일, 독특한 경험과 가치를 아우르는 라이프스타일이 요즘 럭셔리이며 이는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Luxury for all). 가격과 상관없이 현재보다 더 나은 것, 새로운 것을 추구하면서 얻는 정신적 만족감이 있는 라이프스타일이 뉴 럭셔리라는 뜻이죠.
두짓 역시 변화하는 럭셔리 시장에, 그리고 이에 따라 달라지는 경쟁 상황에 대응할 필요가 있었어요. 최근에는 전통적인 대면 서비스를 세련된 고객 경험 디자인으로 대체하고, MZ 세대들을 타깃해 뉴 럭셔리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부티크 호텔’들이 부상했어요. 이제는 막대한 자본력을 등에 업은 글로벌 호텔 체인뿐만 아니라, 컨셉과 가치로 승부하는 부티크 호텔들도 두짓의 경쟁자가 된 거예요.
그래서 두짓 인터내셔널은 오랫동안 서비스 제공 범위와 퀄리티를 세분화하며 만들어 온 호텔 및 리조트 포트폴리오에 새로운 시도를 더했어요. 숙소 예약 플랫폼 ‘패브스테이(Favstay)’에 투자하고, 하이엔드 풀빌라 렌탈 플랫폼인 ‘엘리트 헤이븐(Elite Havens)’을 인수하며 요즘 세대들의 라이프스타일을 기반으로 한 영역으로 확장하기도 했죠. 또한 2020년에는 그동안 개발해왔던 기존 호텔 및 리조트와는 다른 라이프스타일 부티크 호텔, ‘아사이(ASAI)’를 런칭했어요.
두짓 인터내셔널은 최고급 호텔인 ‘두짓 타니’부터 미드 스케일 급의 ‘두짓 D2’, 이코노미급의 ‘두짓 프린세스’ 순으로 브랜드를 확장하며 럭셔리 서비스 적용 대상을 점차 늘려왔죠. ⓒDusit International
아사이는 밀레니얼 여행객들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춰 두짓의 섬세한 서비스 정신을 함께 녹인 부티크 호텔 브랜드예요. 방콕에서 가장 힙한 지역으로 부상한 차이나타운에 첫 지점을 오픈했죠. 총 224개의 객실로, 하루 5~7만 원대의 합리적인 숙박료를 자랑해요. 차이나타운 길거리 푸드 골목에 첫 지점을 내면서 좋은 숙소에서 자고 싶지만, 로컬 경험도 하고 싶어 하는 여행객들의 니즈를 모두 충족시켰어요.
아사이 차이나타운의 전경이에요. ©ASAI
아사이 차이나타운 개장 파티의 모습이에요. ©ASAI
“아사이는 저예산 숙소가 아니라, 새롭고 차별화된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어포더블한 라이프스타일 브랜드예요.(Asai is not budget travel, this is an affordable lifestyle brand offering something new, different and bespoke.)”
아사이 호텔 총괄 매니저 시라데즈 도나바닉(Siradej Donavanik)이 언론 인터뷰에서 한 말이에요. 그룹 내 특급 호텔 서비스 운영 인력과 시스템을 공유해 관리와 비용 효율을 꾀하면서 동시에 아사이에서도 두짓 특유의 세심한 서비스를 제공해요. 다만 고객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춰 형태를 달리했죠.
아사이 홈페이지에서는 호텔 주변의 양질의 로컬 정보를 제공해요. ©ASAI
아사이 호텔에서 직접 선별한 Eat/Play/See 장소들을 맵핑해 제공하고 있어요. ©ASAI
아사이 호텔 및 동네 이벤트 소식도 제공해 여행객과 지역 커뮤니티를 연결해요. ©ASAI
대표적으로 아사이 호텔의 리셉션에는 사람이 없어요. 대신 셀프 체크인 키오스크만 마련되어 있죠. 그런데 리셉션 뒷 벽면을 따라 ㄴ자 형태로 벤치를 설치해 사람들이 리셉션을 바라보고 둘러 앉을 수 있도록 공간을 설계했어요. 리셉션 직원은 없지만, 그 곳에 머무르는 손님들이 새로 온 숙박객들을 환대하는 듯한 분위기를 연출해요. 키오스크 셀프 체크인이 줄 수 있는 차가움을 상쇄시킨 셈이에요.
ⓒASAI
아사이 인테리어를 총괄한 위 총(Wit Chong)은 방콕 차이나타운을 걷다가 집마다 대문 앞에 설치된 석조 벤치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해요. 행인들이 잠시 앉았다 갈 수 있기도 하고, 벤치 주인이 이웃들과 교류하는 공간이기도 하고요. 주변 동네 풍경을 재해석해 호텔의 리셉션에 옮겨와 현지 분위기를 연장할 뿐 아니라 아사이 핵심 가치 중 하나인 ‘진정한 연결(Authentic Connections)’을 구현했어요.
리셉션 앞은 ‘거실’이라고도 불리는 공용 공간이에요. 낮엔 코워킹 공간으로도 개방해 게스트와 현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섞이는 사교의 장이 돼요. 거실에서 이어지는 안뜰에선 주기적으로 명상, 요가 같은 프로그램, 다양한 워크숍, 파티 등을 진행하고요. 시그니처 레스토랑인 ‘잼잼 이터리 앤 바(JAM JAM Eatery & Bar)’는 팜 투 테이블(Farm to table), 제로 웨이스트를 지향해 가치 소비를 중요시여기는 MZ 세대를 타깃했어요.
아사이의 거실이에요. 거실 밖 안뜰과 연결되어 있어요. ©ASAI
아사이의 ‘잼잼 이터리 앤 바’ 내부예요. ©ASAI
잼잼 이터리 앤 바에서 운영하는 유기농 정원은 누구나 산책하며 허브를 맛볼 수 있어요. ©ASAI
유기농 정원에서 직접 가꾼 태국식 허브, 채소 등을 식재료로 활용해요. ©ASAI
아사이는 개장한 후 2년 동안 트립어드바이저에서 5점 만족도(5점 만점)를 유지하고 있어요. 새로운 세대의 취향에 맞게 기존 서비스를 변형하되 디테일과 섬세함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핵심 가치를 계속해서 지켜나가는, 올드 럭셔리의 관록이 빚은 결과가 아닐까요?
인력을 채용하기 어렵다면 양성한다
기업이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선 핵심 인재가 필수적으로 있어야 해요. 하지만 문제는 원하는 인재를 고용하기가 어렵다는 점이에요. 두짓 인터내셔널도 예외가 아니었어요. 1990년대까지만 해도 두짓 역시 심각한 인력난을 겪고 있었죠. 당시 호스피탈리티 산업이 아직 성숙하지 않아 관련 교육 기관도 열악했고 당장 현장에 투입할 수 있는 사람 찾는 것도 어려웠죠.
그래서 두짓은 호스피탈리티 인력을 양성하기 위한 대학교, ‘두짓 타니 대학교(Dusit Thani College)’를 직접 설립했어요. 1996년 공식 고등 교육 기관 허가를 받아 본격적으로 호스피탈리티 경영 학위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시작했죠.
©Dusit International
현재 방콕과 파타야에 캠퍼스가 있고 학사부터 박사 과정까지 커리큘럼이 있어요. 호텔에서 운영하는 대학교인 만큼 이론과 실무를 균형있게 다뤄요. 신입 양성뿐만 아니라 두짓 직원이라면 누구나 일과 학업을 병행하면서 석박사 과정을 밟아 전문가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해줘요.
두짓이 글로벌 호스피탈리티 브랜드로 자리 잡으면서 두짓 타니 대학교도 함께 명성을 얻게 돼요. 두짓의 호스피탈리티 경영 노하우를 배우려는 해외 유학생들이 유입되고, 이후 단기 연수 프로그램도 개발하면서 사업이 커졌죠. 2021년 기준, 두짓 인터내셔널 전체 매출의 8.8%가 교육 사업에서 나올 정도예요.
학위증을 수여하는 두짓 타니 대학교 외에도 자격증이나 수료증이 발급되는 아카데미 형태의 교육 기관도 운영하고 있어요. 2019년에는 세계 최고의 요리 교육 기관으로 인정받는 르 꼬르동 블루(Le Cordon Bleu)와 협약을 통해 ‘르꼬르동 블루 두짓 요리 학교(Le Cordon Bleu Dusit Culinary School)’를 열었어요.
호스피탈리티 산업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식업을 기점으로, 교육 사업 영역을 넓히기도 해요. 이탈리아 요리 학교 ‘알마(ALMA)’, 일본 요리 학교 ‘츠지 조리사 전문학교(Tsuji Culinary Institute)’ 등과 함께 ‘더 푸드 스쿨(The Food School)’을 개설해 이탈리아, 일본, 태국 요리를 가르치고 F&B 스타트업을 인큐베이팅할 계획이죠.
처음에는 두짓 호텔에서 일할 인재를 육성할 목적으로 대학을 설립했지만, 시간이 흐르며 두짓의 브랜드 파워, 발전한 미식 문화, 방콕의 글로벌한 환경이 맞물려 두짓 인터내셔널의 주요 비즈니스로 자리 잡았어요. 두짓 그룹의 교육 사업은 맞춤형 인재 양성과 수익성,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는 두짓의 큰 그림이었던거죠.
스스로를 파괴하면서 혁신을 거듭한다는 것
“아사이는 우리가 파괴당하기 전에 우리가 스스로 파괴한 모델이에요.(Asai is the way we disrupt ourselves before being disrupted.)”
아사이 호텔 총괄 매니저 시라데즈 도나바닉(Siradej Donavanik)이 호텔 개장을 할 때 방콕 포스트(Bangok Post)와 인터뷰를 하며 남긴 말이에요. 그런데 이 말 한마디는 두짓의 70년 역사를 관통하기도 해요.
두짓 인터내셔널 창립자 탄푸잉 챠넛 피야오위(Thanpuying Chanut Piyaoui)는 1948년, 그녀의 첫 번째 호텔인 ‘프린세스 호텔(Princess Hotel)’을 열어요. 30개의 객실 뿐이었지만, 수영장을 갖춘 방콕 최초의 현대식 호텔이기도 했어요. 그 때 프린세스 호텔은 팬암 항공사의 승무원 전담 숙소로 지정되면서 순조로운 미래를 그리고 있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팬암 그룹이 방콕에 프린세스 호텔보다 훨씬 럭셔리한 ‘시암 인터콘티넨탈 호텔(Siam InterContinental Hotel)’을 짓는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어요. 이대로는 고객을 그대로 빼앗기겠다 싶었던 그녀는 시암 인터콘티넨탈 호텔에 맞설 수 있는 급의 호텔을 짓기로 결심했어요. 곧바로 그녀는 프린세스 호텔을 매각하고 글로벌 럭셔리 스탠다드에 부합하는 호텔, 두짓 타니 방콕을 지었어요.
만약 방콕 최초의 현대식 호텔로서 그 당시 이미 혁신적이라고 평가받았던 프린세스 호텔에 미련을 가졌다면, 오늘날 두짓 인터내셔널이란 글로벌 그룹이 있었을까요? 그리고 두짓 타니 방콕이 지어진지 50년이 지난 지금, 두짓 타니 방콕의 유산에 매몰되어 새로운 호텔로 탈바꿈을 꾀하지 않았다면 두짓 인터내셔널에 다음 50년이 있을까요?
두짓의 행보는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 그 자체예요. 창조적 파괴는 경제학자 조셉 슘페터(Joseph Schumpeter)가 처음 만든 개념으로, 낡은 것은 파괴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면서 끊임없이 경제구조를 혁신해 가는 산업재편 과정을 뜻해요. 파괴자가 곧 파괴의 대상으로 바뀐다는 역설이 담겨 있기도 해요. 즉, 혁신을 위해선 지금까지 쌓아 올린 것을 기꺼이 포기하고 파괴할 필요가 있다는 거죠.
외부 환경의 변화로 위기가 찾아올 때마다 더 큰 도약을 위해 현재 가지고 있는 것을 과감하게 파괴할 수 있는 용기야말로 두짓이 헤리티지를 오랫동안 이어갈 수 있는 비결이에요. 물리적 형태는 잠시 없을지라도 ‘우아한 환대'라는 알맹이는 유지한 채 헌 껍데기에서 새 껍데기로 탈바꿈하는 것 뿐인 거죠. 50년의 역사를 허물고 2023년에 새롭게 탈바꿈할 두짓 타니 방콕의 모습이 기대되는 이유예요.
Reference
• THE MAGNIFICENT DUSIT THANI, Art4d
• Leigh Gallagher, The Original Hospitality Disrupter, FORTUNE
• Dusida Worrachaddejchai, Dusit adds Asai hotel in Chinatown, Bangkok Po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