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찻집을 거부하는 찻집이, 차를 맥주병에다 팔기 시작한 사연

카이지 차관

2023.10.16

카이지 차관은 시끄러운 찻집이에요. 들어가면 목소리를 줄여야 할 거 같은 다른 찻집과 달리, 이곳에선 저마다 차를 앞에 두고 왁자지껄 떠들고 있는 풍경을 접할 수 있어요.


사람들 앞에 놓인 차들을 보니 제각기 모양도 달라요. 차 주전자와 찻잔이 놓여 있는 원목 트레이부터 맥주병처럼 생긴 아이스차, 우유 거품을 올려 라떼를 연상케 하는 차까지. 주문 카운터 앞에는 따뜻한 차를 우리고 있는 차 항아리들이 놓여 있고, 뒤편에는 생맥주 탭을 연상시키는 차 탭들이 나와 있죠. 가게 벽면과 유리창엔 ‘청년차관(찻집)’이라는 슬로건이 적혀 있고요.


그렇다면 젊은 사람들만을 위한 찻집이란 뜻일까요? 여기에서 청년은 젊은 사람들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카이지 차관이 지향하는 차 문화의 방향을 가리켜요. 올드한 문화가 돼버린 차 문화를 다시 젊음으로 되돌리겠다는 의지가 반영되어 있죠. 단순히 힙한 찻집이 아니라 철학이 우러나는 이 찻집, 한번 살펴볼게요.


카이지 차관 미리보기

 애프터눈 티타임은 시끌벅적하게

 차를 즐기는 방식을 보다 쉽게

 먹거리와 이야깃거리로 옛 분위기 나게

 시장통과 같은 개방형 찻집을, 다시 여기에




중국 근대 문학의 대가 라오서(老舍)의 대표 작품 중 ‘차관(茶馆)’이란 희극이 있어요. 중국 베이징의 한 찻집을 무대로 한 희극 3부작이에요. 중일전쟁, 군벌의 혼전, 국민당의 부패 통치, 신중국 수립 등 역사 흐름을 배경으로 찻집을 드나드는 사람들의 대화로 이야기가 전개되죠.


이 찻집은 사회 축소판으로 오십여 년 동안의 중국 근대 시대상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명작으로 꼽혀요. 중국 베이징엔 라오서 작가를 기리기 위해 만든 동명의 라오서 차관(老舍茶馆)이 있는데 다양한 차와 민속 공연을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베이징 주요 관광명소이기도 하죠.


이처럼 라오서 차관은, 찻집은 누구나 신분의 제약 없이 차를 즐기며 시끄럽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장소예요. 여기에서 영감을 받은 ‘카이지 차관’ 창업자 정즈원(郑志文)은 언젠가부터 찻집이 나이 든 사람들을 위한 공간으로 밀려나고 점점 폐쇄적인 공간이 되는 것에 대해 문제인식을 가졌죠. 게다가 왠지 목소리를 낮추고 조용히 차를 마셔야 할 거 같은 분위기는 역사 속 중국 전통 찻집 이미지와는 정반대였어요. 


그는 전국 유서 깊은 찻집을 돌아다니고 차관 관련 기록도 찾아보면서 나름의 결론을 내렸어요. 중국 전통 찻집은 ‘거리 문화'의 근원이며 이야기가 있는 작은 사회라는 거였죠. 그래서 다시 중국 전통 차관의 역할을 잇는 현대식 찻집을 차려보기로 결심했어요. ‘열다‘, 혹은 ’시작'을 뜻하는 카이(开)와 ‘길함‘ 또는 ’상서로움'을 의미하는 지(吉)를 더해 ‘좋은 기운을 열다’란 긍정적인 이름으로 상하이에서 매장을 오픈했어요.



©KAIJI



애프터눈 티타임은 시끌벅적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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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장 인테리어부터 대비되는 것들이 충돌하면서 시끌벅적한 분위기를 풍겨요. 얼룩덜룩한 시멘트벽에 갈색 나무 문틀, 여기저기 노출된 은색 파이프. 병풍처럼 여닫을 수 있는 접이식 도어 등으로 전통 인테리어 요소와 모던 요소를 의도적으로 충돌시켰죠. 전통 찻집의 현대식 계승을 지향하는 ‘카이지 차관'의 아이덴티티를 드러내는 거예요.


카이지 차관 내부 공간은 총 3개의 주요 영역으로 나뉘어져요. 첫 번째 구역은 차를 제조하는 티 바(Tea Bar)에요. 카페 아메리카노에 상응하는, 기본 차들이 담긴 4개의 차 항아리와 찻물을 뜨는 대나무 표자가 놓여 있어요. 바 뒤로는 병맥주처럼 생긴 병들이 보관된 냉장실과 함께 생맥주 탭을 연상시키는 차 탭들이 나와 있는데요. 이 탭에서 차갑고 신선한 차를 즉시 내려 서빙해요.



©KAIJI


두 번째 구역은 대나무로 만든 낮은 원형 테이블과 스툴이 놓여진 공간이에요. 추운 겨울날이 되면, 난로 위에 찻주전자를 두고 사람들이 둘러앉아 차를 나눠 마시던 풍경을 의도했죠. 이런 공간에서 사람들이 편안함을 느끼면 자연스레 긴장을 풀게 되고, 긴장을 풀면 목소리가 커져요. 카이지 차관 대표 정즈원은 그런 시끌벅적함을 원했어요.


세 번째 구역은 ‘리딩룸(Reading Room)’이에요. 카페에서 일하거나 공부하는 사람들을 위한 공간으로 모든 좌석엔 콘센트 등이 구비되어 있죠. 그렇다고, 조용하게 침묵해야 하는 공간은 아니에요. 간단한 미팅이나 팀 프로젝트를 위해서 카페를 찾는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죠. 시대가 변하면서 카페와 찻집의 용도가 다양해진 만큼 그들을 위한 공간도 따로 마련한 거예요.


그럼에도 찻집에서의 평화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래서 카이지 차관에선 혼자서 조용히 차 한잔을 즐기고 싶다면, 아침 혹은 야간 시간대 이용을 권장하고 있어요. 하루의 시작 혹은 마무리를 하는 사람들이 들르는 만큼 고즈넉한 찻집 분위기를 즐길 수 있죠. 반면 ‘애프터눈 티타임(13시 30분~18시 30분)’ 에는 활력과 정감 넘치는 찻집을 지향해요.


누구나 부담 없이 문간을 넘나들 수 있는 찻집이 되려면 또 하나의 문턱을 넘어야 해요. 바로 ‘차는 어렵다'란 고정관념이죠. 아무리 개방감 넘치고 편안한 인테리어로 공간을 만들어도 핵심인 ‘차 마시는 것'이 번거롭다면 망설일 수밖에 없어요. 그렇다면 카이지 차관은 어떤 식으로 이 문제를 풀었을까요?



차를 즐기는 방식을 보다 쉽게

카이지 차관의 메뉴부터 살펴볼까요? 우선 차는 순수차와 블렌딩차로 나뉘어요. 순수차는 단일 찻잎을 우려먹는 전통차이고 블렌딩차는 순수차들을 혼합하거나 추가 재료를 넣어 변형을 가한 차를 가리켜요. 여기에서 또 따뜻한 차와 차가운 차로 구분해 볼 수 있고요.


따뜻한 차는 ‘차 한 상'과 ‘컵'으로 구분돼요. ‘차 한 상'은 찻주전자와 1리터의 따뜻한 물, 다기와 함께 찻잎이 따로 제공돼요. 차를 전통 방식으로 직접 우려먹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옵션이죠. 이때 카이지 차관은 의도적으로 대나무 소재를 보온병에 입혀 다른 다기와 조화로운 차 한 상을 제공해요. 물론, 차 한 상이 부담스러운 경우 ‘컵' 단위로 주문할 수 있어요. 인기 4종 차인 경우 차 항아리에서 표자로 차를 떠 내주고요.  그 외의 차는 직원이 직접 차를 우려 컵에 담아 서빙하죠.


인기 있는 따뜻한 차 음료는 쿵푸 화이트(功夫白系列) 시리즈에요. 쿵푸차가 주는 재미난 어감에 에스프레소에 스팀 밀크를 편평하게 올린 플랫 화이트의 이름을 따 쿵푸 화이트라고 메뉴명을 지은 거예요. 여기서 쿵푸차는 중국 무술과는 상관이 없고요. 중국 차오산 지역에서 전해져 오는 중국 다도 기법으로 우린 차를 가리켜요. 재치 있는 네이밍으로 시선을 끌고, 사람들이 잘 모르는 쿵푸차에 대한 관심도 환기시키는 두 가지 효과를 노렸다고 볼 수 있죠.



©KAIJI


차가운 차 영역으로 넘어가 볼까요? 카이지 차관의 시그니처는 바로 ‘빙지추이(冰极萃)’류에요. 차를 우리고 급속 냉각해 차의 맛과 향을 손실 없이 병에 담아 제공하는데요. 이 병이 마치 맥주병과 닮아 SNS상에서 화제가 되었죠. 굳이 맥주병을 선택한 이유는 급속 냉각한 아이스차를 담기 위해선 밀폐용기가 필요한데, 용기 중 가장 저렴한 것이 맥주병 용기여서이죠. 의도하진 않았지만, 이 맥주병 용기에 담은 차는 ‘쿨하고 힙하게 차를 마시는 법’으로 알려지며 카이지 차관의 상징이 됐어요.


또한 서빙된 차를 유심히 보면 각각 다른 색상의 라벨이 달린 것을 확인할 수 있어요. 라벨에는 해당 차의 이름과 품종, 차 노트, 알아두면 좋을 특성이  한 줄로 기재되어 있는데, 라벨의 색상은 차 노트로 구분해요. 이때 차 노트는 카이지 차관이 새롭게 만든 차 향과 맛 체계예요. 커피처럼, 차 역시 원산지나 품종에 따라 맛이 다르지만 차알못인 경우엔 어떤 차가 무슨 맛인지에 대해 좀처럼 알기 어려워요. 그래서 카이지 차관은 사람들이 차를 마실 때 표현하는 단어인 ‘꽃 맛’, ‘우디한 맛’, ‘달콤한 맛’ 등 3개를 뽑아 차를 구분했죠.


물론 차의 세계는 그보다 더 세분화되어 있어요. 하지만 더 많은 단어를 뽑지 않은 이유는, 노트를 세부적으로 구분할수록 오히려 더 혼란스럽고 어렵단 느낌만 들기 때문이에요. 분석하듯 차를 마시는 것보단, 누구나 한 번 차를 머금고 떠올리는 직관적인 단어로 차 맛을 정의해 사람들이 쉽게 자신의 취향에 맞는 차를 주문할 수 있게 한 거죠. 차를 즐길 때 페어링할 수 있는 간식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어요. 카이지 차관은 흔히 찻집에서 내놓는 다식들과도 차별화를 하거든요.



먹거리와 이야깃거리로 옛 분위기 나게

‘베이징 덩키롤 치즈볼(驴打滚芝士丸)’, ‘광시 싼야(广西的酸嘢)’, ‘원저우 오리혀(温州的鸭舌)’, ‘상하이 마우또우화셩(毛豆花生)’ 등 카이지 차관에서 고를 수 있는 페어링 간식들이에요. 그냥 달콤한 다과가 아니라, 다양한 맛을 가진 중국 지역별 특색 간식들을 살짝 변형한 후 선보인다는 게 독특해요.


예를 들어, 베이징 간식 중 뤼다군(驴打滚)은 찹쌀과 팥을 반죽해 롤케이크처럼 돌돌 말아, 콩가루를 입힌 간식이에요. 그 모양이 당나귀가 모래에서 뒹군 모습과 유사해 붙은 이름이고, 이를 영어로 옮기면 덩키롤(Donkey Roll)이죠. 여기에 요즘 사람들이 좋아하는 치즈를 넣어 단짠 조합을 만들었어요.


가장 인기 있는 간식 중 하나인 광시 싼야도 살펴볼까요? 싼야의 경우 원래 고춧가루 및 향신료, 소금 등을 과일에 뿌려서 먹는 광시 지방의 대표 간식이에요. 하지만 이 조합은 사람마다 호불호가 강해요. 그래서 카이지 차관은 고춧가루와 향신료를 제외하고 소금에 절인 과일 형태로 다시 내놓아요. 간단하지만, 은근히 중독성이 강해 가장 인기 있는 간식 메뉴가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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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음식에 가까운 독특한 간식거리는 옛날 전통 차관의 문화와 맞닿아 있다고 볼 수 있어요. 옛날 전통 차관에서는 차뿐만 아니라 가벼운 식사까지 즐길 수 있는 공간이었거든요. 차를 마시다가 출출하면 요깃거리를 할 수 있는 간단한 밥이나, 고기류, 만두 등을 시킬 수 있었죠. 오늘날 홍콩, 광동 지역 여행할 때 여전히 볼 수 있는 ‘차찬탱(茶餐厅)’ 문화와도 유사하고요.


차와 간식, 편안한 공간. 젊은 세대들을 위한 찻집이 되기 위한 필수 조건은 모두 갖춘 것처럼 보여요. 하지만, 카이지 차관은 여기서 만족하지 않아요. 전통 찻집의 풍경을 구현하려면 이곳에서 사람들의 이야기가 왁자지껄하게 오고가면서 문화 교류가 이루어져야 하거든요. 창업자 정즈원은 차관을 ‘도시의 문화 전달자’라고 봤어요. 그래서 카이지 차관은 ‘요즘 세대들의 문화 활동'에 주목했어요.


가령, 상하이에서 가장 핫한 레저 활동인 사이클링, 프리스비 동호회와 협업해 함께 오프라인 이벤트를 기획해요. 다양한 분야에 있는 지식 인플루언서들과 차를 마시며 대담하는 ‘골목 대화(路边对话)’프로그램 등도 있고요. 또한 온라인 공식 채널에는 책과 음악을 추천하는 ‘카이지북스(Kaiji books)’, ‘카이지뮤직(Kaiji Music)’, 특정한 날 카이지에 방문한 고객 중 한 명과의 인터뷰를 담은 ‘카이지 데일리 보이스(Kaiji Daily Voice)’ 등 다양한 콘텐츠를 연재 형태로 올리고 있어요.



시장통과 같은 개방형 찻집을, 다시 여기에

카이지 차관은 누가 봐도 트렌디해요. 하지만 인스타그래머블한 제품이나 인테리어 구성에만 신경 쓰고 정작 차 본질에는 소홀히 하지 않겠느냔 의구심이 들 수도 있죠. 카이지 차관도 이를 모르지 않아요. 맥주병이 저렴해서 아이스티를 담아 판매했는데, 이것이 시그니처럼 자리 잡은 것을 경계하죠. 그럴듯함에 차 본질이 가려질 것을 우려하는 거예요.


그래서 카이지는 끊임없이 새로운 맛을 추구하는 세대들의 입맛을 맞추기 위해 제품 개발을 꾸준히 하고 있어요. 이때 보유한 모든 차 메뉴를 S급, A급, B급으로 구분해요. 이는 제품 품질과 등급을 표현한 게 아니라 해당 차의 포지셔닝을 가리켜요. S급은 브랜드를 표현하는 제품, A급은 시장 트렌드를 따르고 일부 특성에 맞게 변화를 주는 제품, B급은 소비자 리뷰를 바탕으로 주기적으로 맛을 조정하며 시장 반응을 계속 관찰하는 제품을 말해요.


가령, 2022년 겨울에 출시한 S급 차는 올드 백차예요. 흔히 백차를 표현할 때, “첫해는 차, 3년 된 차는 약, 7년 된 차는 보물(一年茶,三年药, 七年宝"이라고 하는데요. 이에 맞춰, 카이지 차관에서도 1년, 3년, 7년된 백차를 내놓았죠. 트렌디하지만, 전통과 차의 본질을 소홀히 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에요.


"차관은 중국 전통문화의 일부입니다. 시장통 같은 개방형 찻집을 도시에 다시 불러왔을 뿐입니다. 우린 새로운 모델을 창조한 게 아니라 전통으로 회귀했을 뿐입니다."


창업자 정즈원의 설명이에요. 카이지 차관은 한때 구시대적이라고 치부됐던 찻집을 다시 끄집어내 현대의 취향에 맞게 외형에 변화를 줬을 뿐, 찻집의 본질을 그대로 이어 나가고 있어요. 어쩌면 삭막하고 차가워진 도시 속에서 온기를 주는 찻집은 요즘 우리 사회에서 정말 필요한 장소일지도 모르죠. 카이지 차관에 모인 사람들은 또 어떤 이야기를 나누면서 문화를 꽃피워나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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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erence

 카이지 공식 홈페이지

 카이지 샤오홍슈 채널

 iziRetail对话:“新中式”风靡,“开吉茶馆”主理人谈如何以年轻姿态打磨中式茶文化?,iziRetail

 魔都青年的chill vibe,藏在古寺旁的茶馆里!,搜狐

 茶之外,「开吉茶馆」还想让年轻人爱上充满烟火气的生活方式,36氪,姚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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