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퍼 플레인 프로젝트’. 한글로 번역하면 ‘종이 비행기 프로젝트’예요. 그렇다면 진짜 종이 비행기를 만드는 프로젝트일까요? 그들의 철학과 관점을 담은 비유적인 표현이에요.
종이 비행기는 누구나 익숙하게 그리고 쉽게 만들 수 있지만, 매번 날릴 때마다 도착하는 지점이 달라요. 이처럼 페이퍼 플레인 프로젝트는 아예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기존에 존재하던 것을 새로운 환경에 접목하면서 혁신을 일으킨다는 모토를 가지고 있어요.
이 페이퍼 플레인 프로젝트에서 코워킹 스페이스를 열었어요. 이제 보편적으로 자리잡은 코워킹 스페이스를 이들이 만들면 다를까요? 그들의 비유처럼 같은 종이 비행기일지라도 도착점이 다르듯이, 코워킹 스페이스라는 형태는 비슷해도 도착점이 완전히 달라요. 그들이 날린 페이퍼 플레인 프로젝트가 어디로 향해 가는지 한 번 따라가 볼까요?
페이퍼 플레인 프로젝트 미리보기
• 탈출구를 지향하는 코워킹 스페이스
• 운영 방식을 바꾸면 고객 행동이 달라진다
• 코워킹 스페이스가 밤에 더 북적이는 이유
• 종이 비행기를 달로 보내는 방법
방콕의 밤은 낮만큼이나 활기찹니다. 방콕의 개성있는 바들은 방콕의 밤을 밝히고 여행객들의 발길을 붙잡죠. 세계적 수준의 바들이 차고 넘치는 이 도시에서 옥상으로 바를 올려 프라이빗하게 개방한 야외 루프탑 바는 방콕 여행의 백미예요. 특히 고급 호텔들은 호텔 건물이 고층인점을 활용해 화려한 루프탑 바를 운영하며 앞다투어 방콕 최고의 루프탑 바 타이틀을 차지하려고 하죠.
지금 방콕에서 가장 핫한 루프탑 바를 하나 꼽으라면, 단연 수쿰빗 통로(Sukhumvit Thonglo)에 위치한 ‘티추카(Tichuca)’일 거예요. 그런데 티추카는 호텔이 아닌 점잖은 오피스 빌딩의 꼭대기층에 있어요. 부동산 개발, 미디어, 화장품, 공유 오피스 등 다양한 종류의 회사가 입주해 있는 ‘T원 빌딩(T-One building)’의 46층에 말이죠.
티추카는 건물 1층에서 티추카로 향하는 전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갈 수 있어요. 눈깜짝할 새에 46층에 도착하고 나면 티추카의 시그니처인 6m짜리 ‘생명의 나무(Tree of life)’가 고객을 맞이해요. 이 나무는 나무의 가지와 잎을 LED 조명으로 표현해 시시각각 다른 색의 화려한 빛을 뿜어내요. 마치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듯 움직이는 LED 조명은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내죠.
이런 공간은 누가 만들었을까 궁금해질 때쯤, 티추카를 만든 회사의 이름이 눈에 들어 와요. 티추카를 만든 회사는 ‘페이퍼 플레인 프로젝트(Paper Plane Project)’로 이름부터 범상치 않죠. 그런데 페이퍼 플레인 프로젝트는 티추가가 있는 T원 빌딩에 회사 이름과 동일한 이름의 코워킹 스페이스를 운영해요.
방콕에서 가장 힙한 바를 운영하는 회사가 갑자기 사무 공간을 운영한다니 다소 당황스러운 전개인 듯 하지만, 페이퍼 플레인 프로젝트의 기획 의도를 알고 나면 티추카보다도 이 곳을 더 좋아하게 될 지도 몰라요.
탈출구를 지향하는 코워킹 스페이스
높은 곳을 향한 우리의 열망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에요. 호텔에서 가장 비싼 방도 꼭대기 층에, 아파트에서 가장 넓고 비싼 세대인 펜트하우스도 꼭대기 층에, 회사의 대표나 회장실도 꼭대기 층에 주로 위치해 있죠. 높은 곳은 안락함이자 권력이고, 욕망의 대상이에요.
이런 현상을 좀 더 과학적으로 접근해 볼게요. 진화심리학적 관점에서 인간에게는 생존과 안전을 위한 본능이 내재되어 있어요. 그래서 적으로부터 안전하지만 나는 언제든 상황을 내려다 보고 파악할 수 있는 높은 곳을 선호해 왔어요. 본능적으로요. 이런 본능이 현대인에게도 아직 남아 무의식 중에 높은 곳, 그 곳의 탁 트인 전망을 좋아하는 거예요.
그래서 고층 빌딩의 전망 좋은 자리는 보통의 경우 식사 한끼에 몇십만원하는 파인 다이닝이나 술 한 잔에 몇만 원씩 하는 비싼 바의 전유물이었어요. 비싼 임대료를 감당할 수 있는 업장이어야하고, 그러려면 객단가가 높아야 하거든요. 그런데 T원 빌딩의 40층은 고급 레스토랑도, 바도 아닌 코워킹 스페이스 페이퍼 플레인 프로젝트가 꿰차고 있어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의 오피스에서 일하는 것을 싫어해요. 그래서 그들에게 일종의 탈출처를 제공하기로 했어요."
페이퍼 플레인 프로젝트의 대표 친다나이 수아이지라왓(Chindanai Suaijirawat)의 말이에요. 그는 도심 속 정글 컨셉의 티추카로 나이트 라이프에 탈출구를 만들었듯, 페이퍼 플레인 프로젝트로는 발 아래 방콕 시내를 두고 탁 트인 조망을 즐길 수 있는 공간에 업무 공간을 만든 거예요. 답답한 오피스가 아니라 해방감을 느낄 수 있는 자유로운 공간에요.
페이퍼 플레인 프로젝트는 마주 보고 앉을 수 있는 롱 테이블 4개를 중심으로 자유롭게 착석할 수 있는 라운지 좌석이 많아요. 충분한 콘센트는 기본이고요. 롱 테이블 좌석 옆에는 회의실의 역할을 하는 3개의 공간이 마련되어 있어요. 이 회의실도 보통 사무실에서 볼 수 있는 딱딱한 회의실이 아니라 각기 다른 컨셉의 개인 집무실처럼 꾸몄어요. 회의실의 경우 문 없이 개방된 구조를 갖추고 있어 답답한 느낌이 들지 않아요.
운영 방식을 바꾸면 고객 행동이 달라진다
“일과 라이프가 공존하는 곳(Where Work and Life Coexist)”
페이퍼 플레인 프로젝트의 슬로건이에요. 일과 라이프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공존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페이퍼 플레인 프로젝트는 보통의 코워킹 스페이스에서 주를 이루는 회사 단위 사무 공간이 없어요. 대신 누구나 자유롭게 앉아서 일할 수 있는 롱 테이블과 개방된 미팅룸이 전부죠. 왜냐하면 이 곳은 기본적으로 ‘카페’로 운영되거든요. 누구나 와서 앉고 싶은 자리에 앉아 원하는 음료를 마시고, 식사도 할 수 있죠. 그야말로 일과 라이프가 공존하는 곳이에요.
기존의 공유 오피스가 ‘오피스’를 공유하는 곳이기 때문에 보안 등의 이슈로 입주 멤버들만 이용할 수 있는 폐쇄적인 공간임에 반해, 페이퍼 플레인 프로젝트는 이 곳이 가진 전망과 공간을 모두에게 열어 둬요.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스카이라운지 같은 공간인 셈이죠. 그래서 꼭 일을 하러 오지 않더라도 페이퍼 플레인 프로젝트를 카페로 이용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카페 좌석도 한 켠에 마련되어 있어요.
페이퍼 플레인 프로젝트의 이런 개방적인 구조와 운영 방식은 업무 공간의 이미지를 더 자유롭게 만들어요. 지평선까지 펼쳐진 전망과 시너지를 내면서 누구나 자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을 구현한 거죠. 일하고 싶은 사람은 일하고, 쉬고 싶은 사람은 쉬고, 또 일하면서 쉬고, 쉬면서 일할 수 있는 공간을요.
페이퍼 플레인 프로젝트는 카페이기 때문에 별도의 매장 이용료나 임대료를 낼 필요가 없어요. 주문한 음료나 식사만 결제하면 되죠. 보통의 카페에서는 카페에서 오래 머무르는 사람들을 ‘카공족(카페에서 공부하는 사람)’이라고 부르며 기피하고는 해요. 하지만 페이퍼 플레인 프로젝트는 아무리 오래 앉아 있어도 전혀 눈치를 보지 않아도 돼요. 이 곳은 일하라고 만들어 놓은 카페니까요.
대신 퀄리티 있는 식사 메뉴와 디저트, 핑거 푸드 등을 판매해 객단가를 높여요. 일을 하다가 식사 시간이나 오후 시간에 고객들이 필요할 만한 메뉴를 갖춰서 음료 메뉴 이상의 매출을 기대할 수 있어요.
게다가 오피스 빌딩이다 보니 같은 빌딩의 다른 회사에 근무하는 사람들도 이 곳으로 점심식사를 하러 와요. 빌딩을 벗어나지 않고도 퀄리티 있는 식사를 하면서 좋은 전망까지 즐길 수 있으니 직장인 점심 식사 장소로 매력적인 대안이에요.
코워킹 스페이스가 밤에 더 북적이는 이유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객단가 높은 고급 레스토랑이나 바의 임대료를 감당할 수 있을 법한 입지인데, 커피와 식사 메뉴를 판매하는 것만으로도 운영비를 감당할 수 있을까요? 효율적인 좌석 배치와 높은 이용률을 감안한다고 해도 말이죠. 그럼에도 페이퍼 플레인 프로젝트가 비즈니스적으로도 수익성이 있는 데는 이유가 있어요.
페이퍼 플레인 프로젝트는 오후 5시가 되면 일하던 손님들에게 모두 자리를 정리하고 나가달라고 부탁해요. 그런데 이는 페이퍼 플레인 프로젝트의 영업이 끝나서가 아니라, 코워킹 스페이스로서의 역할이 종료되었기 때문이에요. 저녁 6시부터는 라이브 공연을 즐길 수 있는 칵테일 바로 변신해 다시 영업을 시작해요.
일하기에 좋았던 적당히 밝은 조명은 어느 새 알록 달록한 조명으로 바뀌고, 인테리어인 줄 알았던 책장 앞 디제잉 기구와 드럼, 각종 음향장비가 제 역할을 하기 시작해요. 이 곳이 곧 무대가 되는 거예요. 무대 앞의 롱 테이블은 어느 새 관객석이 되어 있어요. 자리 이동도 용이하고, 무대와 객석 간의 거리도 가까워 라이브 공연장으로 제격이죠. 애초에 똑똑하게 설계된 자리 배치는 페이퍼 플레인의 변신을 더욱 용이하게 만들어요.
수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매일 저녁 라이브 공연이 열리고, 특히 주말은 인기 DJ나 밴드를 초청해 새벽까지 공연을 계속해요. 사전 예약으로 티켓을 판매하는데 거의 매회 매진이 될 정도로 인기가 좋아요. 공연 정보는 페이퍼 플레인 프로젝트의 SNS 계정에서 확인할 수 있고요.
티켓 판매뿐만 아니라 흥을 돋우는 데 빠질 수 없는 술도 함께 판매해요. 약 20여 종의 칵테일과 하이볼, 와인, 위스키를 판매하는데 가격대가 칵테일 1잔에 350바트(약 1만3천 원)부터 시작해요. 와인이나 위스키를 보틀 단위로 시키면 10만 원은 훌쩍 넘고요. 방콕 현지 물가를 생각하면 결코 저렴한 가격은 아니지만 좋은 전망과 맛있는 술, 흥겨운 라이브 공연을 즐기기 위해 사람들은 기꺼이 지갑을 열죠.
페이퍼 플레인 프로젝트는 공간의 활용도를 높이고 사업을 확장해 수익성을 개선했어요. 밤에 인기 있는 바 겸 공연장으로 변신하는 덕분에 낮에 운영하는 카페의 수익성에 대한 부담을 분산하는 효과가 있죠. 덕분에 고객들은 페이퍼 플레인 프로젝트의 지리적 이점을 마음껏 누리며 일을 할 수 있는 거고요.
종이 비행기를 달로 보내는 방법
페이퍼 플레인 프로젝트를 한글로 번역하면 ‘종이 비행기 프로젝트’예요. 종이 비행기는 누구나 익숙하게 그리고 쉽게 만들 수 있지만, 매번 날릴 때 마다 도착하는 지점이 달라요. 이처럼 페이퍼 플레인 프로젝트는 아예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기존에 존재하던 것을 새로운 환경에 접목하면서 혁신을 일으킨다는 모토를 가지고 있어요.
“우리는 항상 새로운 관점으로 기존의 비즈니스 아이템들을 바라보려고 노력해요. 그리고 이러한 방식으로 어떻게 사람들의 수요와 욕망을 충족시킬지 해답을 찾습니다."
페이퍼 플레인 프로젝트 역시 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창 유행하던 2020년, 사람들이 집에서도, 회사에서도 일하기 싫어하는 현상을 포착하는 것에서 시작했어요. 이런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제 3의 업무 공간인 카페 겸 바를 열자는 아이디어를 떠올렸죠. 여기에 일과 삶 모두를 중시하는 사람들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요소를 한 공간에 구현했어요.
‘달로 향하는 종이 비행기(Paper plane to the moon)’
페이퍼 플레인 프로젝트의 홈페이지에 있는 문구예요. 달로 가기 위해선 꼭 최첨단 로켓을 개발해야 할까요? 관점을 달리 하면 이미 익숙한 개념과 존재하는 비즈니스를 활용해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어요. 과연 페이퍼 플레인 프로젝트의 다음 종이 비행기는 어디에 도착하게 될까요? 어쩌면 그들의 비전처럼 진짜 달에 도착하게 될지도 몰라요.
Tips to share
• 페이퍼 플레인 프로젝트도 따로 마련된 티추카 전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갈 수 있어요.
• 페이퍼 플레인 프로젝트의 시그니처 음료는 ‘시그니처 더티(Signuture Dirty)’예요. 우유가 많이 들어간 밀크 커피에 라즈베리 시럽과 바닐라 시럽을 넣었어요.
Where to find
• Paper Plane Project
T-One Building 8, 40th Floor Sukhumvit 40, Alley, Phra Khanong, Khlong Toei, Bangkok 10110, 태국
Referenc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