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개의 숫자에 담아낸, 브랜딩의 정석

산뚠반

2022.06.21

산뚠반은 중국 프리미엄 인스턴트 커피 브랜드예요. 우선 이름의 뜻부터 알아볼까요? 산뚠반은 3.5끼란 뜻으로, 매일의 삼시 세끼에 산뚠반 커피를 0.5끼처럼 즐기는 루틴과 문화를 만들겠다는 의미예요. 숫자로 된 네이밍에, 밥처럼 필수적인 존재감을 갖겠다는 목표를 담아냈죠. 이처럼 커피를 끼니에 포함시킨 브랜드 이름도 눈에 띄지만 산뚠반을 더욱 빛나게 한 건 패키지 디자인이에요.


패키지 디자인은 심플하죠. 컬러풀한 테이크아웃 커피컵에 숫자가 1에서부터 6까지 적혀 있어요. 그리고 숫자 아래에 간단하게 숫자가 의미하는 바를 적어 두었죠. 1에는 Light, 2에는 Light +, 3에는 Medium, 4에는 Medium +, 5에는 Dark, 6에는 Dark + 라고요. 어떤 뜻인지 직관적으로 이해가 가죠? 이 숫자는 산미와 로스팅 정도를 나타내며, 1에서 6으로 올라갈 수록 로스팅 강도도 높아지죠.


이처럼 3.5와 1~6까지의 숫자가 산뚠반의 중심이에요. 그리고 이 숫자에다 0, 7, 8, & 를 덧붙여, 변화하지만 변함없는 브랜드로 거듭났죠. 0, 7, 8, & 는 무엇을 뜻하냐고요? 산뚠반의 숫자들을 하나씩 살펴볼게요. 마치 브랜딩의 정석을 보는 듯해요.


산뚠반 미리보기

• 직관의 숫자 1~6: 스타벅스도 탐내는 산뚠반의 디자인

• 확장의 숫자 0,7: 접점을 늘리는 산뚠반의 마케팅

• 만남의 숫자 8: 발길을 이끄는 산뚠반의 오프라인 매장

• 사회적 화폐가 된 산뚠반의 팬심





작은 로컬 카페 앞에 커다란 상자, 자루, 가방 등을 든 사람들이 줄 서 있습니다. 자기 차례가 다가오면 들고 온 것을 뒤집어 잔뜩 무언가를 쏟아내죠. 점원들은 그것들을 카운팅하고 스마트폰에 무언가를 입력해요. 이윽고 사람들은 실내로 들어가 뱃지, 가방, 티셔츠, 스케이트 보드 등 다양한 제품 등을 들고 나와요. 마치 화폐가 없었던 시절, 조개나 쌀 등을 잔뜩 들고 와 원하는 물건과 교환하는 물물 교환의 장이 떠오르기도 하죠. 흥미로운 것은 같은 날, 이 카페뿐 아니라 중국 56개의 도시 내 총 196여 개의 각기 다른 로컬 카페에서 비슷한 현장이 펼쳐졌다는 거예요.




ⓒSaturnbird



이 이색적인 행사를 주최한 건 중국에서 프리미엄 인스턴트 커피 시장의 새 지평을 연 ‘산뚠반(三顿半)’. 프로젝트 이름은 ‘프로젝트 리턴(Project Return)’이에요. 상자, 자루, 가방 등에 사람들이 잔뜩 들고 온 것은 산뚠반 제품의 빈 플라스틱 용기였죠. 산뚠반의 빈 플라스틱 용기를 지정된 장소에 들고 오면 그 개수에 맞게 재활용 플라스틱으로 만든 굿즈로 교환해주는 캠페인이에요.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2019년부터 연간 2회씩 진행하며, 시즌 5까지 마쳤어요. 회차를 거듭할수록 파타고니아, 프라이탁 등 지속가능성과 힙함을 고루 갖춘 브랜드와 협업하면서 더 많은 참여를 끌어냈죠. 현재까지 누적으로 회수된 용기는 약 492만개, 누적 참여인원도 8만여명에 이르러요.


플라스틱 용기를 회수하는 것도 착한데, 수거하는 방식도 따뜻해요. 굿즈 교환 장소를 Project Return 취지에 공감하는 중국 전역 로컬 카페와 독립 서점, 소규모 전시 공간 등으로 한정하죠. 이왕 고객들이 방문한 김에 로컬 카페의 스페셜티 커피를 맛보거나 문화 활동 등을 할 수 있도록 장려하는 거에요. 게다가 함께 참여하는 매장에겐 일정 수준의 자금을 지원하기도 하죠. 지구를 살리는 동시에 지역도 살리겠다는 의지가 엿보이는 접근이에요.


이쯤에서 한가지 의문이 듭니다. ESG 경영이 화두이니 빈 플라스틱을 재활용하고 로컬 기업과 상생하는 마케팅 캠페인을 적극적으로 펼치겠다는 건 이해가 되죠. 하지만 취지가 좋은 것과 고객 참여를 이끌어내는 건 다른 일이에요. 5번의 이벤트를 통해 8만명으로부터 492만개의 빈 플라스틱 용기를 회수한 건 보통 일이 아니죠. 게다가 1인당 평균적으로 60개 이상의 용기를 교환한 셈인데, 다시 말하면 반년 동안 최소 60잔 이상의 산뚠반 커피를 마셨다는 걸 뜻하죠. 아무리 프로젝트 취지가 긍정적이고 한정판 굿즈를 준다 하더라도 어지간한 팬덤이 아니라면 거두기 어려운 성과예요. 그렇다면 이처럼 MZ세대의 참여를 적극적으로 이끌어 내는 산뚠반의 저력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요?



직관의 숫자 1~6: 스타벅스도 탐내는 산뚠반의 디자인

산뚠반 브랜드의 인기를 이해하기 위해선 숫자에 주목해야 해요. 우선 산뚠반은 3.5끼란 뜻으로, 매일의 삼시 세끼에 산뚠반 커피를 0.5끼처럼 즐기는 루틴과 문화를 만들겠다는 의미예요. 숫자로 된 네이밍에, 일상에서 밥처럼 필수적인 존재감을 갖겠다는 목표를 담아냈죠. 이처럼 커피를 끼니에 포함시킨 브랜드 이름도 눈에 띄지만 산뚠반을 더욱 빛나게 한 건 패키지 디자인이에요.




ⓒSaturnbird


패키지 디자인은 심플하죠. 컬러풀한 테이크아웃 커피컵에 숫자가 1에서부터 6까지 적혀 있어요. 그리고 숫자 아래에 간단하게 숫자가 의미하는 바를 적어 두었죠. 1에는 Light, 2에는 Light +, 3에는 Medium, 4에는 Medium +, 5에는 Dark, 6에는 Dark + 라고요. 어떤 뜻인지 직관적으로 이해가 가죠? 이 숫자는 산미와 로스팅 정도를 나타내며, 1에서 6으로 올라갈 수록 로스팅 강도도 높아지죠. 즉, 1호는 가장 라이트한 로스팅으로 감귤과 재스민, 강한 신맛 등의 산미가 풍부한 커피이고, 6호는 다크 초콜릿, 캐러멜 등의 풍미가 깊은 커피예요. 


별 거 아닌 듯 보이지만, 기존의 인스턴트 커피의 스틱 포장과 다른 산뚠반의 커피컵은 콜롬버스의 달걀과 같은 디자인으로 평가받았어요. 감각적인 디자인과 다채로운 색상의 용기, 로스팅과 산미 정도를 가리키는 직관적인 숫자 표기, 그리고 100% 생분해 플라스틱 소재 사용으로 산뚠반은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 2020 패키지 디자인 분야에서 수상을 했죠. 심지어 스타벅스를 비롯한 거대 커피 프랜차이즈도 이 용기를 모방해 유사 제품을 내놓기도 했을 정도에요. 그렇다면 산뚠반은 어떤 이유로 스틱 포장과 다른 형태의 패키지 디자인을 선보인 걸까요? 이를 이해하기 위해선 창업자의 과거를 들여다 봐야해요.


산뚠반 창업자 우쥔(吴骏)은 중국 창사(长沙)란 도시에서 로컬 카페를 운영하며 스페셜티 커피의 가능성을 봤어요. 그는 차 음료 문화가 지배적인 중국에서 커피를 마신다는 것은 남들과 다르다는 개성의 표현이며, 그중 스페셜티 커피에 대한 수요는 하이엔드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는 것과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했죠. 여기에다가 경제가 발전할 수록 스페셜티 커피를 찾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날 거라 예상했고, 이에 장소 불문하고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온라인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를 만들겠다고 다짐했어요. 하지만 시장은 녹록치 않았죠. 2번의 실패가 기다리고 있었어요.


창업 후 처음으로 선보인 커피는 드립백 커피였어요. 하지만 가뜩이나 작은 시장에서 쟁쟁한 바리스타나 커피 프랜차이즈 제품들과 경쟁하면서 특별한 개성이 없는 산뚠반이 차별화를 꾀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죠. 첫번째 실패였어요. 다음으로 우쥔은 콜드브루를 집에서도 즐길 수 있게 하는 커피를 연구하기 시작했어요. 스타벅스에서 콜드브루를 마시다가 떠오른 아이디어였어요. 시행착오 끝에 8~10시간 동안 우려내는 콜드브루 커피 티백을 개발했죠. 밤에 티백을 담가놓고 다음 날 아침 신선한 콜드브루 커피를 즐긴다는 컨셉으로 런칭하자마자 유명세를 탔어요. 하지만 이 아이디어 역시도 스타벅스를 비롯해 여러 경쟁사들이 카피했고, 또 한번 시장에서 설 자리를 잃게 되죠.


이 때 우쥔은 브랜딩의 중요성을 실감했어요.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로 새로운 방식을 제시하더라도 인지도 있는 기존 브랜드가 따라 할 경우 소비자들은 결국 그 브랜드를 선택한다는 걸 깨달았죠. 그는 심기일전해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기로 했어요. 콜드브루 커피 티백을 경쟁사들에게 빼앗기는 쓰라림을 겪었지만 좀처럼 콜드브루를 포기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콜드브루의 통점인 ‘시간’을 공략하기로 하죠. 가장 빠르게 마실 수 있는 커피는 인스턴트 믹스 커피란 것에서 착안해, 냉온수와 상관없이 빠르게 물에 용해되는 인스턴트 콜드브루 커피 개발에 박차를 가했어요. 결과는 성공.


‘냉온수, 그리고 음료 종류와 상관없이 3초면 완성되는 고급 콜드브루’



ⓒSaturnbird


제품의 방향까지 정했지만 문제는 브랜딩이었죠. 기존 인스턴트 커피처럼 스틱형 포장으로 나갈 경우 프리미엄 이미지가 상쇄될 뿐만 아니라 소비자들에게 어필하기엔 매력도가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죠. 그래서 그는 획기적인 디자인 패키지로 눈길을 끌기로 한 거에요. 그렇게 ‘세상에서 가장 작은 스페셜티 커피’란 컨셉으로 ‘프리미엄 인스턴트 콜드브루 커피’가 탄생했죠. 1~6까지의 숫자가 큼지막하게 적힌 산뚠반 시그니처 커피컵 용기에 담겨서요.



확장의 숫자 0,7: 접점을 늘리는 산뚠반의 마케팅

산뚠반 커피의 기본 라인은 1~6호예요. 커피 맛을 세분화하기에는 충분한 단계일지 모르지만, 반대로 말하면 명확히 정해진 숫자라 변화를 주기 어렵죠. 그래서 산뚠반은 0호와 7호, 그리고 숫자가 아닌 &호를 추가로 선보였어요. 여기에는 산뚠반 커피의 유연한 라인업 확장과 마케팅 전략이 깔려 있죠. 각 호가 어떻게 다른지 이해하기 위해 사례들을 살펴 볼게요.



2020년 No.0 커피는 바리스타 협력 시리즈로,  2021년 No.0 커피는 도시적 영감을 테마로 항주, 베이징, 천주, 상하이에서 깊이 재배된 커피 브랜드와 콜라보했습니다. ⓒSaturnbird



ⓒSaturnbird


0호에는 유명 바리스타나 로컬 카페의 시그니처 커피를 주로 담아요. 타 커피 브랜드와의 콜라보인 거죠. 대표적으로 0호 ‘도시 영감 시리즈’에는 베이징시 ‘빅스몰커피(BigSmallCoffee)’, 상하이시 ‘슬랩타운커피(SlabTownCoffee)’, 취안저우시 ‘로컬피쉬커피(LocalFishCoffee)’, 항저우시 ‘세레모닝(Ceremorning)’ 등이 있는데요. 모두 같은 0호이지만 고유 색깔로 구분한 뒤 중국 도시 대표 로컬 카페 시리즈로 출시했어요. 또한 중국을 넘어 한국의 '프릳츠 커피'와도 콜라보를 진행한 바 있어요. 프릳츠 커피의 컬러와 물개 로고를 활용해 프릳츠 서울 시네마를 ‘히든 월드 시리즈(Hidden World Series)’의 첫 콜라보로 출시했죠. 프릳츠와의 콜라보를 시작으로 산뚠반은 전 세계 유명한 로컬 커피 브랜드를 0호에서 선보일 예정이에요. 0이라는 숫자를 하나 늘렸을 뿐인데 확장성이 어마어마해지죠.



산뚠반의 루이보스 티 입니다.ⓒSaturnbird





No.7 Yunnan Coffee 시리즈의 꽃, 산, 구름을 주제로 유명한 애니메이션 팀 BX-Planet과 협력하여 출시한 패키지 디자인 입니다. ⓒSaturnbird


7호는 산뚠반이 직접 기획한 한정판 커피와 음료 라인이에요. 산뚠반은 커피 이외에도 디카페인 커피, 보이차 등 커피 대체 음료 등을 출시하기도 하는데요, 이를 7번을 추가해 선보였어요. 7호의 대표적 사례는 최근 커피 시장의 강자로 꼽히는 중국 운남 커피 시리즈에요. 운남의 꽃, 산, 구름을 메인 테마로 하죠. 꽃 시리즈는 꽃내음의 아로마 향이 가득한 커피를, 산 시리즈는 중국 고지대에서 자란 산사나무 열매를 미디엄 로스팅으로 선보였죠. 구름 시리즈는 48시간 동안 운남의 강한 햇빛에 말린 커피콩을 라이트 로스팅한 커피에요. 여기에다가 ‘루허(鹿菏)’, ‘BX-플래닛(BX-Planet)’, ‘유조우페이고우(宇宙废狗)’ 등 3명의 일러스트 작가들에게 운남의 꽃, 산, 구름을 주제로 한 패키지 디자인을 맡겼죠. 작가가 직접 꽃, 산, 구름 시리즈를 맛보고 얻은 영감을 각자 화폭에 담았고, 작가별 운남 시리즈를 출시해 소장 가치를 더했어요.



ⓒSaturnbird



Tokyo Bike와 협업하여 만든 커피와 스포츠 양말입니다. ⓒSaturnbird



ABC CAMPING의 브랜드 슬로건을 담은 패키지와 캠핑 머그잔입니다. ⓒSaturnbird


&호는 커피나 음료 브랜드가 아니라 타 영역에 있는 브랜드와 콜라보한 커피 라인이에요. 산뚠반의 프리미엄 커피는 건강에도 좋다는 이미지를 레버리지해, MZ세대들이 열광하는 스포츠, 액티비티, 홈트 관련 브랜드들과 협업한 것이 대표적이죠. 캠핑족에게 각광받고 있는 캠핑 브랜드 ‘ABC 캠핑(ABC CAMPING), 도쿄의 자전거 브랜드 ‘도쿄 바이크(Tokyo Bike)’,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홈트 앱인 ‘킵(Keep)’ 등과 콜라보를 진행했어요. 해당 브랜드의 성향에 맞게 블랜딩한 커피를 해당 브랜드 컬러와 슬로건이 적힌 용기 속에 담고, 캠핑 머그잔, 스포츠 양말, 홈트 마시지 볼 등과 함께 세트 상품으로 판매하는 식이에요. 이후 MZ 세대들이 열광하는 힙한 패션 브랜드로도 협업 범위를 확장하면서 산뚠반의 고객 접점을 강화하면서도 넓히죠.


이처럼 0호, 7호, 그리고 &호를 통해 산뚠반은 틀을 깨고 나왔어요. 1~6호가 직관적이긴 하지만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데, 그 단점을 앞뒤에 숫자를 붙이고, 특수 기호까지 끌어들이면서 영리하게 해결한 거에요. 여기에다가 0, 7, &호에 콜라보와 한정판이라는 역할을 부여하면서 산뚠반의 핵심 제품을 중심으로 끝없이 확장할 수 있는 발판도 마련한 셈이에요. 브랜딩의 진리인 변하되 변하지 않을 수 있는 구조를 숫자로 심플하게 만들어 낸 거죠.



만남의 숫자 8: 발길을 이끄는 산뚠반의 오프라인 매장

2021년 9월, 산뚠반은 상하이에 핫플레이스가 밀집한 골목에 카페를 오픈해요. 가게명은 ‘into_the force (原力飞行)’. 이름만 들어선 좀처럼 산뚠반을 연상하기 어렵죠. 공간 구성 역시도 심플하고도 직관적인 산뚠반 제품들과 차이가 있어요. 이곳은 외부와 내부를 구분하는 문이 따로 없으며, 상점이 모여있는 골목에서 누구나 들어올 수 있도록 공간이 개방되어 있죠. 낡은 콘크리트 벽과 천장 위를 가로지르는 철골 구조물이 인더스트리얼 풍으로 드러난 내부 공간은 동네 분위기와 이질감 없이 연결되요.





ⓒSaturnbird


그렇다면 이곳에서 산뚠반 제품을 파느냐, 그렇지 않아요. 여기서 판매하는 커피는 산뚠반 프리미엄 인스턴트 커피가 아니라, 바리스타가 직접 내리는 스페셜티 커피에요. 아메리카노, 라떼와 같은 기본 커피를 포함해 한정판 커피 음료 등 총 8~9가지 메뉴로 구성되어 있죠. 가격은 38~52위안 정도로 꽤 비싼 편에 속하지만, 여타 커피 프랜차이즈 음료보다 퀄리티가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어요. 물론 이곳에서 파는 커피도 고객의 발길을 끌어 모으는 요소인데, 산뚠반 팬들이 이곳을 찾는 이유는 따로 있어요.  


가게 구석에 있는 커다란 철제 선반엔 8이라고 적힌 박스들이 촘촘히 꽂혀 있죠. 8이라는 숫자에서 벌써 감이 오죠. 오프라인 매장에서만 판매하는 8호 한정판 시리즈에요. 재활용 종이로 만든 상자 속에 공정 무역 커피를 담은 용기 7기가 포함되어 있죠. 키트 가격은 무려 149위안. 기존 산뚠반 커피보다 2.5배 가량 비싸지만 산뚠반의 유일한 8호 시리즈라는 점에서 수집 욕구를 자극하고 가치 소비를 이끌죠. 기념품 삼아 8호를 구매하는 팬들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어요.





ⓒSaturnbird


물론 오프라인 매장의 존재의 이유가 8호 한정판 제품에만 있는 건 아니에요. 산뚠반이 오프라인 매장을 연 진짜 의도를 엿보려면 홀 가운데 질서 없이 놓은 의자 겸 테이블을 봐야해요. 나무 판자와 높이를 조절하는 지지대로 구성된 이 의자 겸 테이블은 블록 형태로 되어 있어요. 높이를 조정해 테이블 용도로 사용할 수도 있고, 다른 것과 조합해 긴 테이블이나 1인석으로 만들 수도 있죠.


이렇게 테이블과 의자, 자리 간 경계를 허물 수 있는 가변적 공간 구성을 바탕으로, 산뚠반은 방문객들끼리 쉽게 교류할 수 있도록 게임 등을 제공하기도 해요. 산뚠반, 커피, 환경 등을 주제로 한 십자말풀이 퍼즐을 제공해 처음 보는 고객들도 서로 머리를 맞대어 함께 풀 수 있도록 한 거죠. 퍼즐을 다 맞추고 카운터에 제출하면 소정의 굿즈를 줘요. 그 뿐 아니라 탁구 테이블을 배치해 놓고 게임 결과에 따라 상품을 제공하기도 해요.


또한 주기적으로 지역 예술가들과 협업해 공간 전체를 전시회장, 콘서트장, 마켓 등으로 탈바꿈하기도 해요. 최근엔 ‘내 이름은 하양(我是白)’이란 일러스트 작가와 콜라보해 ‘만짐(Touch)’이란 주제로 전시전을 개최하기도 했고, 동네 주민들이 중고 소품 등을 판매할 수 있도록 플리마켓을 열기도 했어요. 카페에서 지인들 간 관계가 깊어지 듯, 산뚠반은 이 공간에서 브랜드와 고객 간의 관계를 구축할 뿐만 아니라 고객과 고객 간에 관계를 만들어나갈 수 있는 지역 커뮤니티이자 소셜 커뮤니티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에요.



사회적 화폐가 된 산뚠반의 팬심

브랜드가 없어서 브랜드가 되고 싶었던 산뚠반은 그 설움을 달랜 듯 합니다. 스틱이 아닌 컵 모양의 패키지, 콜라보와 한정판을 꾸준히 쏟아내는 마케팅, 지역과 소셜 커뮤니티 역할을 하는 오프라인 매장 덕분이죠. 그런데 좀 더 들여다보면 설움을 달랜 정도가 아니에요. 브랜드 팬덤이 얼마나 센지, 산뚠반은 MZ세대 사이에서 사회적 화폐(Social Currency, 사회 관계적 자산을 쌓는 데 도움이 되는 모든 것들을 의미)로도 통용되요.


산뚠반 커피는 개당 약 8위안. 보통 인스턴트 커피의 10배가 넘는 가격이에요. 산뚠반 커피를 가방이나 파우치에 넣어 들고 다니다 필요할 때 물이나 우유 등에 타서 마심으로써 소비력과 취향을 표현하는 거죠. 그뿐 아니라
프로젝트 리턴에서 빈 용기와 교환해 획득한 굿즈를 사용함으로써 ‘환경 보호에 동참했다’는 자기 만족과 동시에 환경 의식이 있는 사람이라는 자기 자랑을 할 수도 있죠. 꾸준히 산뚠반을 소비해야만 얻을 수 있는 굿즈는 개인의 취향, 소비력, 환경 의식 등을 모두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콘텐츠 소재이기도 해요.


어느 정도냐면, 한 유저가 올린 투명한 액자에 산뚠반 미니 컵과 귀여운 인형이나 피겨 등을 넣은 인테리어 소품이 온라인 상에서 화제가 되어 타오바오엔 산뚠반 용기 수집 액자가 판매되고 있어요. 혹은 산뚠반의 이 작은 용기에 다육이를 키우기도 하죠. 다음
프로젝트 리턴 시즌을 기다리는 따분함을 나만의 소품을 만드는 자발적이면서도 재미있는 방식으로 해소하면서, 이 캠페인에 참여하는 것 자체가 더욱더 쿨하고 멋진 행위로 발전하는 거에요. 이토록 작은 커피 컵으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산뚠반, 다음엔 어떤 의외성으로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낼까요?




Reference

• 산뚠반 공식 홈페이지

산뚠반 공식 위챗 계정 내 Project Return 관련

• 심층 연구 - 산뚠반이 0에서 1이 될 수 있었던 전략, FOODAILY

• 《into_the force》 서프라이즈 오픈, 미래로 향하는 비행에 여러분들을 초대합니다., BANG!

• 인스턴트 콜드브루, 산뚠반의 새로운 이야기, 36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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