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음과 헤리티지는 한 끗 차이에요. 똑같이 오랜 시간이 쌓였어도 어떤 것들은 낡아 쓸모 없어지고, 어떤 것들은 지켜야할 소중한 헤리티지가 되죠. 브랜드나 아이템도 마찬가지예요. 그간 쌓여 온 시간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시장에서 외면을 받을 수도, 오히려 환영을 받을 수도 있죠. 브랜드에도, 아이템에도 '안티에이징'이 필요한 이유예요. 역사 깊은 아이템 중 하나인 '술'을 예로 들어 볼까요? 물론 칵테일, 맥주, 와인 등 여전히 젊은 세대에게 인기가 좋은 주종도 있지만, 전통주라면 이야기가 달라져요. 나이 든 중장년층이 주로 마시는 술이라는 인식이 있고, 이 인식은 사실이기도 하죠. 그런데 상하이나 도쿄 같은 도시에서는 젊은 세대가 열광하는 전통주 브랜드들이 있어요. 신제품이 나오면 오픈런은 기본, SNS를 도배해요. 어떤 브랜드는 '마케팅의 신'이라고 불리기도 하죠. 이들은 어떻게 전통주라는 아이템을 브랜딩하고, 어떻게 판매하는 걸까요? 그 비결에서 ‘브랜드 안티에이징’의 힌트를 함께 찾아 봐요. 1️⃣ 마오타이 요새 이 기업, 내놓는 신제품마다 화제에요. 아이스크림, 커피, 초콜릿까지. 제과 브랜드인가 싶은데 그건 아니에요. 중국을 대표하는 최고급 명주로 손꼽히는 ‘마오타이(茅台)’예요. 파트너와의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마오타이의 술이 들어간 간식들을 출시했어요. 매번 출시 예고를 통해 SNS 상에서 화제를 만들고, 출시 당일엔 MZ세대를 오픈런하게 만들죠. 단순히 화젯거리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성과도 어마어마해요. 대표적으로 중국의 스타벅스라 불리는 ‘루이싱커피’와 함께 개발한 ‘아이스 정향 라떼’는 출시 첫날 무려 542만 잔을 판매하며 1억 위안, 한화로 약 180억원이 넘는 매출을 기록했어요. 아무리 인구가 많은 중국이라지만 상상 이상의 화력이에요. 그런데 이 마오타이, 원래도 이렇게 젊은 세대들에게 인기가 좋은 술이었을까요? 전혀요. 가격대도 최소 수십 만원은 기본이라 허들이 높을 뿐만 아니라 브랜드 이미지도 ‘중장년층의 술’이라는 인식이 강했어요. 게다가 요즘 청년 세대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발언으로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고요. 이랬던 마오타이가 최근 위기 의식을 느끼고 변화하기 시작한 거예요. 젊은 세대에게 환영받지 못한다면 미래는 없다고 판단한 거죠. 스스로의 관성을 부수기 시작한 마오타이의 행보는 거침이 없어요. 손 대는 것마다 품절 대란에, 무려 가상세계까지 진출했을 정도예요. MZ에게 외면 받던 오래된 명주는 어떻게 미다스의 손이 될 수 있었을까요? 2️⃣ 누루칸 사토 술은 일반적으로 맛있다고 느끼는 온도가 정해져 있어요. 맥주는 목넘김이 좋은 4~12도, 레드 와인은 실온인 13~15도, 소주는 7~10도가 가장 맛있다고 얘기해요. 취향에 따라 온도차가 있을 수 있어도, 범위가 크지 않아요. 그런데 사케는 다양한 온도로 마시는 것이 가능한 술이에요. 얼음같이 차갑게 마실수도, 뜨겁게 데워서 마실 수도 있죠. 도쿄에 있는 이자카야 ‘누루칸 사토’는 이 온도를 파고 들었어요. 똑같은 사케도 다른 온도로 마실 수 있게 했죠. 그것도 무려 11단계로 나눠서요. 그래서 누루칸 사토에서는 사케를 최저 0도에서, 최고 55도까지, 5도 단위로 사케를 즐길 수 있어요. 심지어 각 온도마다 사케를 부르는 명칭도 다르죠. 온도가 차이나면 정말 사케를 마시는 경험이 달라질까요? 시티호퍼스가 도쿄 마루노우치 매장에 가서 직접 확인해 봤어요. 3️⃣ 강소백 ‘마케팅 잘하는 브랜드’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기발하고 창의적인 콘텐츠, 감각적인 이미지와 문구들, 개인 취향과 관심사에 맞는 타겟팅, 적극적인 커뮤니케이션 등 고객들에게 긍정적인 인상을 주는 활동들을 떠올릴 거예요. 그러면 여기에다가 한 글자만 더 추가해 볼게요. 마케팅’만’ 잘하는 브랜드로요. 한 글자 더했을 뿐인데, 브랜드 이미지가 달라져요. 제품 품질에 대한 의구심이 들고, 부정적인 연상 작용이 일어나죠. 이러한 낙인은 브랜드에 대한 신뢰도 저하와 고객 외면으로 어이지고, 결국 브랜드의 수명을 단축시켜요. 고량주 브랜드인 ‘강소백’이 그랬어요. ‘1세대 콘텐츠 마케팅의 신’이라 불리며, 중국에서 마케팅 대표 사례를 다룰 때 단골로 등장하는 브랜드였죠. 그런데 언젠가부터 ‘마케팅만 잘하는 브랜드’로 대중들에게 낙인찍혀 버려요. 독보적인 마케팅 전략으로 시선을 끌었지만, 제품의 퀄리티가 기대에 못 미쳤던 거예요. 강소백 관련 글 하단엔 “마케팅 능력은 인정, 그런데 정말 맛없는 술" 등과 같은 댓글이 꼬리표처럼 달렸어요. 하지만 최근 강소백은 창립 10주년을 맞이하며, “강소백은 역시 강소백이다", “강소(小)백이 아니라 강대(大)백이다"란 여론을 만드는 데 성공했어요. 강소백은 어떠한 방식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다시 사로 잡았을까요? 4️⃣ 쿠라원 사케의 인기가 뜨거워지고 있어요. 그것도 일본 밖에서요. 2023년 일본의 사케 수출액은 약 475억엔 (약 4,100억원)으로 10년전 대비 약 350%가 증가했고, 이제 해외 어느 식당에서도 사케를 쉽게 찾아볼 수 있죠. 이런 시장 흐름을 타고 글로벌 시장에 출사표를 던진 사케 브랜드가 있어요. 바로 쿠라원(Kura One)이에요. 쿠라원의 사케는 겉모습부터 기존 사케와 달라요. ‘사케’하면 보통 720ml자리 투명한 유리병에 담긴 술이 생각나요. 읽기 어려운 일본어로 이름이 쓰여 있고요. 하지만 쿠라원의 사케는 180ml짜리 알루미늄 캔에 담겨 있어요. 언어가 영어로 된 건 물론이고요. 그렇다면 사케의 세계화를 위해 사케만의 지역색과 로컬 스토리를 버린 걸까요? 오히려 그 반대예요. 쿠라원은 사케가 가진 스토리를 전달하는 데에 진심이거든요. 그렇다면 쿠라원은 어떻게 로컬과 글로벌 사이에서 균형감을 찾으며 사케 문화를 만들고 있는 걸까요? 5️⃣ 사케 스타트업 3곳 - 폰슈그리아, 사케 보틀러, 사케아이스 ‘게이밍 무지개’라는 사케가 있어요. E-sports와 같은 게임을 하면서 마시는 사케예요. 당연히 이름에 게이밍만 붙여놓고 게임할 때 마시는 사케라고 하면 설득력이 떨어지죠. 그래서 ‘사케 보틀러’는 기존의 사케에서 2가지를 살짝 비틀었어요. 하나는 게임적 요소를 넣었어요. 게이밍 무지개의 컨셉은 ‘조금씩 좋아지는 술’이에요. 술을 개봉한 후에 점점 더 맛있어져 개봉한 날보다 다음날 더 맛있어요. 게임에서 단계적으로 레벨이 올라가듯, 천천히 더 맛있어지는 사케를 마시며 게임을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죠. 제품을 소비하는 맥락을 제품 컨셉에 반영한 거예요. 또다른 하나는 도수를 12도로 낮추었어요. 일반적인 사케보다 낮죠. 여기에도 이유가 있어요. 집에서 게임을 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60%가 집에서 게임을 하면서 캔맥주나 츄하이를 마신다고 답했거든요. 사케 보틀러는 사케도 도수만 조금 낮춘다면 승산이 있다고 판단한 거예요. 게이밍 무지개뿐만이 아니에요. 여러 브랜드가 다양한 방식으로 사케를 재해석하고 있어요. 그렇다면 이처럼 기존의 틀을 깨는 사케가 여기저기서 등장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리고 게이밍 무지개 외에 또 어떤 흥미로운 아이디어들이 있을까요? 지금부터 일본 전통주 시장의 미래를 바꿀 곳들을 소개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