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를 재발견하는 눈이, 지구의 내일을 바꾼다

굿 디자인 어워드 2023 #3.지속가능성

2023.12.06

지속가능성은 모두의 문제예요. 동시에 쉽지 않은 문제죠. 편의성이나 효율성을 일정 부분 포기해야 하니까요. 게다가 근본적이면서도 구조적인 변화를 위해서는 자본, 인력, 기술 등이 뒷받침 되어야 하고요. 그렇다고 마냥 외면할 수도 없어요. 이상 기후가 발생하는 등 지구가 더이상 버틸 수 없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으니까요. 


이런 상황에서 디자인은 지속가능성 이슈에 대한 세련된 대안이 될 수 있어요. 막대한 예산을 들이거나 뼈를 깎는 노력 없이도 사람들의 행동을 변화시키고 효과를 내는 게 디자인이니까요. 간단한 넛지(Nudge)만으로도 사람의 인식과 행동이 얼마나 바뀌는지를 생각해 보면 디자인을 통한 문제 해결이 지속가능성을 위한 작지만 큰 걸음이 될 수 있어요. 그 걸음걸음이 오래 쌓이면 환경에도 변화를 줄 수 있겠죠.


시티호퍼스가 일본의 2023년 굿 디자인 어워드를 분석하며 주목한 세 번째 사회적 문제는 지속가능성이에요. 단순히 재치있는 아이디어를 넘어,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거나 확장성을 가진 수상작들을 모았어요. 그렇다면 디자인은 어떻게 사람들의 관점을 바꾸는 도구로서 기능하고, 지속가능성에 기여할 수 있을까요?


[굿 디자인 어워드 2023 #3.지속가능성] 미리보기

• 가리비 껍데기의 지혜까지 재사용한 헬멧

 미래지향적이면서도 지속가능한 나무집

 편의성, 지속가능성, 감성까지 다 잡은 ‘뺄셈’ 전략

 자동차는 죽어서 가전제품을 남긴다

 지속가능성, 비즈니스의 부스터가 되다




과일의 수명을 연장할 수 있을까요? 과일은 유통기한이 짧아 쉽게 상하는데요. 시중에서 판매되는 과일의 40%는 음식물 쓰레기로 버려질 운명에 처할 만큼 문제가 심각해요. 냉장 기술을 혁신하거나 새로운 품종을 개발하는 것도 과일의 수명을 연장하는 방법이에요. 하지만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는 시도를 하려면 또 막대한 시간과 에너지가 들죠. 이 문제에 대해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인 ‘그레이 콜롬비아’는 기발한 해결책을 내놓았어요. 디자인적 관점으로 ‘수명 연장 스티커’를 개발해 과일이나 야채가 버려지는 문제를 간단하게 해결했거든요.



망고의 숙성 정도에 따라 색깔과 그에 걸맞은 레시피를 표기한 수명 연장 스티커 ©Germán Rojas


수명 연장 스티커는 가운데 구멍이 뚫린 동그란 모양인데요. 여기에 과일이 익으면서 나타내는 색상을 그라데이션으로 시각화했어요. 예를 들어 바나나 스티커는 덜 익은 초록색부터 시작해 노란색을 지나 숙성된 갈색으로 끝나요. 단순히 과일이 어떤 색깔로 익는지를 표시한 게 아니에요. 각 색깔마다 어떤 요리에 어울리는지 표기했죠. 초록색 바나나는 튀겨 먹는(Fried) 용도로, 갈색 바나나는 컵케이크로 만들어 먹기에 딱 좋은 상태라는 걸 나타내는 식이에요. 



과일의 종류에 따라 색깔과 레시피를 달리 표시한 스티커 ©Germán Rojas


‘세상에 못 먹을 과일이나 야채는 없다’는 전략이에요. 과일이나 야채를 볼 때 잘 익었냐 아니냐로만 구분하던 기존의 관점을, ‘숙성 정도에 따라 레시피가 달라질 뿐’이라는 관점으로 바꾼 거죠. 그것도 스티커 한 장만으로요. 이렇게 하니 잘 익은 시점을 넘어가면 냉장고에서 방치되다가 버려지던 과일이나 야채의 양을 줄일 수 있죠. 그 결과 그레이 콜롬비아는 환경 문제에 기여한 것은 물론, ‘2023 교토 글로벌 디자인 어워드’ 비주얼 부문에서 우승을 차지하기까지 했어요.


수명 연장 스티커 사례처럼, 디자인에는 천문학적 예산을 들이지 않고도 많은 사람들의 인식과 행동을 바꾸는 힘이 있어요. 그래서 디자인을 통한 문제 해결을 하면서 지속가능성을 추구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죠. 구체적으로  어떤 사례가 있는지, ‘굿 디자인 어워드’ 수상작들을 통해 알아볼게요.



가리비 껍데기의 지혜까지 재사용한 헬멧

일본 정부는 가리비와 싸우고 있어요. 가리비는 일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조개인데, 가리비 껍데기는 크고 단단해서 환경을 오염시키거든요. 1년간 버려지는 양만 해도 10만 톤이나 돼죠. 보다 못한 일본 정부는 2030년까지 가리비 껍데기 재활용률을 70%까지 높이자는 목표를 내세웠어요. 그렇다고 해서 정부가 무작정 높은 목표를 제시한 건 아니에요. 가리비 껍데기에는 탄산칼슘이라는 단단한 성분이 함유되어 있기 때문에, 재활용할 여지가 많아요. 가리비 껍데기를 압착하거나 분쇄해서 가구나 건축 자재 등에 넣는 사례가 대표적이죠.


하지만 가리비 껍데기의 활용도를 성분에서만 찾는 건 일차원적인 해결책이에요. 자연계에는 오랜 세월에 걸쳐 최적화된 구조가 많이 있는데요. 이 구조를 응용해 기술 개발에 활용하는 것을 '생체모방(Biomimicry)'이라고 해요. 물론 가리비 껍데기에도 생체모방할 요소가 있어요. 가리비 껍데기를 가까이 들여다보면 립(Rib) 모양의 울퉁불퉁한 구조가 외부의 충격을 효과적으로 분산하거든요.



가리비 껍데기의 구조를 모방한 호타멧 ©Koushi Chemical Industry


이러한 립 구조와 볼록한 모양을 모방해 만든 헬멧이 바로 ‘호타멧(Hotamet)’이에요. 폐껍데기를 분쇄한 다음 립 모양으로 디자인한 거예요. 호타멧은 헬멧의 본질인 안전성에 있어서 일반 헬멧보다 133%나 높은 강도를 자랑해요. 게다가 플라스틱 헬멧에 비해 CO2 배출량을 최대 36%까지 줄일 수 있죠. 유선형의 립 라인이 민무늬 헬멧에 비해 시각적으로 더 보기 좋은 건 덤이고요.



일반적인 헬멧보다 외부 충격에 강한 호타멧 ©Koushi Chemical Industry


그리고 본래의 목적이었던 가리비 껍데기의 재활용에 있어서도 성공적이에요. 생산하면 할수록 환경 오염이 줄어들겠죠. 여기까지만 해도 충분한데, 호타멧은 수명이 다한 후에 분쇄해 새로운 호타멧의 재료로 재사용이 가능해요. 쉽게 버려지는 가리비 껍데기가 환경을 오염시킨다는 문제를 잊지 않고 수명이 다한 이후에도 제품으로 순환될 수 있게 디자인했어요. 디테일한 설계죠. 



미래지향적이면서도 지속가능한 나무집

건물만 새로 지은 재건축이 아니라 건축 자체를 재정의했어요. 도쿠시마 현에 있던 신하마초 주택이 노후화되고 주거 성능 개선이 필요해지면서 재건축을 했는데요. 이때 일본 최초로 ‘노출목재’로 공공주택을 지었거든요. 노출목재는 기존의 목재 주택과 판이하게 달라요. 기존의 중대규모 목재 건축은 튼튼하게 만들기 위해 목재뿐만 아니라 석고, 강철 등을 함께 사용했어요. 그러나 신하마초 주택 재건축은 여러 개의 목재를 접착시켜 강도를 높인 집성재만으로 주택을 완성했죠.



©Tokushima Prefecture



©Tokushima Prefecture


이러한 노출목재 방식의 재건축은 화학제품 사용을 최소화하고 목재 사용을 늘려 지속가능성에 기여해요. 하지만 목재라고 해서 무조건 친환경적이라고 보기는 어려워요. 자칫 삼림을 난개발해 환경을 해치는 아이러니에 빠질 수 있죠. 그래서 도쿠시마현은 대량 벌목을 방지하기 위해 목재 조달처를 여러 곳들로 분산시켰어요. 또, 한꺼번에 대량 주문하는 대신 선주문을 통해 미리 계획된 수량만큼만 벌목되도록 했고요.


신하마초 주택이 지속가능성에 많은 신경을 썼지만, 다른 주택이 모방할 수 없는 특수한 사례라면 의미가 퇴색될 거예요. 지속가능한 부동산이 되려면 확장성이 필요하겠죠. 신하마초 주택은 설계 당시부터 재건축의 기본 모델을 목표로 지어졌어요. 지역의 공무점에서도 시공이 가능할 정도로 쉬운 기술, 즉 일본에서 가장 널리 보급된 재래식 축조 공법을 사용한 이유예요. 목재의 크기도 310mm, 910mm 모듈을 적용했고요.


일본은 국토의 70%가 산지일 정도로 삼림 자원이 풍부하고, 지방에 오래된 주택들이 많아 재건축 수요가 높아요. 노출목재를 사용한 신하마초 주택이 새로운 모델로서 기능하기에 적절한 환경이죠. 이러한 상황과 환경 속에서 건축을 재정의한 신하마초 주택이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을까요? 관심을 가지고 지켜볼 일이에요.



편의성, 지속가능성, 감성까지 다 잡은 ‘뺄셈’ 전략

면도날만 남긴 면도기예요. 전기면도기는 대개 머리와 몸통 부분으로 나뉘는데, 길고 두꺼운 몸통 부분을 날려버린 거예요. 덕분에 길쭉했던 전기면도기가 에어팟 케이스만큼 작아졌어요. 파나소닉이 만든 ES-PV6A 시리즈는 기존에 정형화된 전기면도기 디자인을 혁신한 결과예요. 스펙과 장식적 요소로만 경쟁하던 ‘덧셈’ 시장에 ‘뺄셈’을 제안한 거죠.



©Panasonic



몸통을 없애고 헤드 부분만 남긴 전기면도기 ©Panasonic


덧셈 경쟁에 역행해 크기를 줄이니 제품의 지속가능성이 대폭 개선됐어요. 플라스틱 사용은 40%나 감소했고요. 기존 면도기에 비해 부품 수와 크기도 30%가 줄었어요. 이렇게 부품 수가 줄어든 만큼 제조 공정이 간소화 되니 효율이 높아졌죠. 제품 크기가 줄어든 덕분에 패키지에 사용되는 종이와 부자재도 감소했고요. ‘뺄셈 관점’ 하나로 환경 보호와 비용 절감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셈이에요.


단순히 하드웨어를 덜어내기만 한 건 아니에요. 크기를 줄이면서도 성능은 그대로 유지하기 위해, 독자적인 모터를 개발했거든요. 친환경 제품이라고 해서 고객의 편의성을 포기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오히려 편의성을 증대시키기도 했어요. 일반적인 전기면도기는 전용 충전기가 필요한데 ES-PV6A는 USB-C 타입 충전 방식을 채택해, 일상 생활에서 들고 다니기 편하도록 한 거예요.



면도기 본체를 손에 쥐고 섬세한 조정이 가능하도록 설계한 디자인 ©Panasonic


지속가능성을 영리하게 활용하면 편리함을 넘어 감성적 경험까지 업그레이드할 수 있어요. ES-PV6A는 표면에 친환경 소재를 사용하는 동시에 도자기와 같이 맨질맨질한 질감을 구현했거든요. 손으로 만졌을 때 부드럽고 기분 좋은 느낌을 받도록 한 거죠. 또, 전체 모양을 둥글게 만들어 컨트롤하기 쉽게 했어요. 이 모든 노력의 목표는 사용자가 전기면도기를 더 세밀하게 조정함으로써 피부에 부드럽게 밀착되는 감성적인 경험을 선물하기 위함이에요.



자동차는 죽어서 가전제품을 남긴다

내연기관 자동차가 100% 전기차로 바뀌어도, 환경 보호를 위해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가 있어요. 전기차에 쓰이던 배터리를 폐기할 때 발생하는 문제예요. 수명이 다한 배터리를 재활용하면 가장 좋겠지만 그렇게 간단한 문제는 아니에요. 자동차 배터리에는 리튬부터 구리, 흑연 등 다양한 금속과 화학 물질이 결합되어 있어 분해하거나 재활용하기 어렵거든요. 빠르고 효율적으로 분해하기 위해 열 처리를 하면 유해한 화학 물질이 발생하고요.



차량용 배터리를 휴대용 배터리로 재활용한 디자인 ©JVCKENWOOD


닛산자동차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폐배터리를 보조배터리로 재탄생시켰어요. 전자제품 제조사인 JVC 켄우드와 협력해서 재사용 배터리(Reusable Battery)를 출시한 거예요. 폐배터리를 자동차에 쓰기엔 효율이 떨어지지만, 개인용으로 노트북을 충전하거나 캠핑장에서 사용하기엔 충분하다는 점을 파고들었죠. 쓸모없다고 여겨진 배터리의 사용 주체를 바꿈으로서 새 생명을 불어넣은, 관점의 전환이에요.



캠핑이나 비상용 전력 등 다방면으로 사용이 가능한 배터리 ©JVCKENWOOD


개인용으로 바뀌었지만 차량용 배터리의 장점은 그대로예요. 영하 20도에서 영상 60도까지 저온과 고온의 극한 환경에서도 안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고요. 1년간 창고에 보관해도 전력의 84%가 남아 비상용으로 구비하기에 적합하기도 해요. 정전이나 지진 등 각종 재난에 대비할 수 있죠. 재충전 횟수도 2,000회에 달해서 매일 충전해도 5년 이상 사용할 수 있고요. 차량용 배터리의 높은 안전 기준과 우수한 안정성이 일반용 배터리로 전환되면서도 빛을 발하는 거예요.



지속가능성, 비즈니스의 부스터가 되다

시장이 성숙하고 제품의 성능이 한계에 도달할수록 혁신의 효용은 줄어들 수밖에 없어요. 고객이 필요로 하는 성능보다 지나치게 뛰어난 스펙의 제품이 탄생하기도 하죠. 자연스레 더 비싼 원자재, 더 화려한 디자인으로 부가가치를 쥐어짜내는 형국이 되기 쉽고요. 하지만 진정한 혁신과 부가가치는 스펙 그 자체가 아니라 고객의 만족도를 높이는 데 있어요.


굿 디자인 어워드 수상작들은 오랫동안 변화가 없던 제품에 혁신을 더했어요. 다만 그 방식이 성능을 향상시키는 수직 이동이 아니라, 360도 어디든 갈 수 있게 관점을 이동시키는 것이었죠. 제품의 사용처를 바꾸기도 하고, 오래된 재료를 부활시키기도 하고, 본질만 남긴 채 대부분의 부품을 덜어내기도 하면서요.


“제품이 평범함에서 벗어나 스스로 이야기를 창조해냈다.”


가리비 껍데기로 만든 헬멧, 호타멧의 심사평이에요. 일반적인 사고 틀에서 벗어나 관점을 바꾼 디자인은 그 자체로 흥미로운 이야깃거리가 돼요. 언제나 그렇듯, 좋은 이야기는 제품의 매력을 더해 ‘구매할 이유’가 되어주고요. 지속가능성은 비즈니스의 발목을 잡는 모래주머니가 아니에요. 오히려 새로운 생각의 방향성을 던져주고 부가가치를 높여주는 부스터에 가깝죠.  관점을 바꾸는 디자인은, 그 부스터에 지속가능한 연료가 되어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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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erence

Kyoto Global Design Awards, Life Extending Stickers

 2023 GOOD DESIGN GOLD AWARD Portable Power Supply with built-in reusable battery IPB01N/IPB01G

 2023 GOOD DESIGN GOLD AWARD BEST 100 Hotamet

 2023 GOOD DESIGN GOLD AWARD awa holzbau project

 2023 GOOD DESIGN GOLD AWARD Panasonic Lamdash PALM IN ES-PV6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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